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34)
134. 이상한 병에 걸렸다 -4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
겨우겨우 집에 도착해 문을 열려고 열쇠를 찾는 중, 열려 있는 창문 틈새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게 느껴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 첫 번째,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고.
두 번째는··· 철저히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런데 갑자기 이 순간 선배들의 말이 떠오른다는 것이 두 번째다.
보고 싶었다고 한마디 하면 끝일 거라고?
···대체 끝이 나긴 뭐가 끝날 거라는 건지.
진짜 웃기지도 않지.
그런데 왜 나는 솔깃하게 느껴지는 걸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음? 어! 지안이 왔구나.”
“네.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미소를 띤 얼굴의 아빠가 현관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에고, 고생했네. 이리 줘라.”
그런 아빠에게 빼앗기듯 짐가방을 건네드린 뒤, 신발을 벗기 위해 허리를 숙이니··· 그 뒤로 역시나 반가운 목소리가 뒤통수에 때려 박힌다.
“너 혼자 또 스페인 다녀오니까 좋냐?”
···어쩜 이리도 예상을 벗어나지 못할까.
잘 다녀왔냐는 말 대신 들려오는 퉁명스러운, 그러면서도 반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충분히 신발을 벗을 수 있음에도 잠시 뜸을 들인다.
올라가려는 광대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응. 좋더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지우를 지나친다.
벌써 몇 번이나 빨아서 입은 건지, 사용감이 물씬 느껴지는 앞치마를 입은 채 한 손엔 뒤집개까지 들고 있는 지우의 모습이 주변 시야로 스친다.
“와, 이게 얼굴도 안 보고 휙 들어가 버리네? 누나가 그렇게 가르쳤니?”
“···뭐래.”
괜히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쳐 방으로 향하는데, 지우가 뒤에서 졸졸 쫓아오며 재잘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앉아 간만에 느끼는 아늑함에 한숨을 내쉬는와중, 어느새 지우가 여기까지 따라와서 방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여 괜히 흠칫.
“···?”
마치 뭐 협박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한쪽 팔꿈치를 벽에 기댄 지우가 날 쏘아본다.
이에 슬쩍 고개를 돌리고 괜히 딴청을 피우며 말한다.
“···왜.”
“왜? 왜에에?”
“···뭐가.”
“와, 얘 웃기네. 아니, 그래도 나름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 정돈해야 하는 거 아냐? 진짜 너무하네?”
“새삼스럽게 뭔··· 방금까지도 문자 했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사람이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은 포기하기로 한다.
문자는 문자고, 인사는 인사지.
근데 이상하다.
지우를 봐온 게 몇 년인데.
심지어 그 몇 년 중 서로 떨어져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을 보다시피 했는데.
그런데 왜 오늘따라 지우를 못 쳐다보겠지?
도무지 지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괜히 멀쩡한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정리하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지우가 다가와 날 요리조리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에 나는 역시나 계속 반대로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피한다.
그러자 지우가 스읍,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야, 너 왜 그래? 좀 이상하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모습이 부자연스러우니 지우가 그걸 못 알아볼 리 없다.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뭐가···”
“왜 날 피해? 인사도 안 하고, 얼굴도 안 보고.”
“새삼스럽게 뭘···”
“야. 나 봐. 나 보라고.”
“아, 왜···”
내가 자꾸만 피하니, 어떻게든 나와 눈을 마주치겠다는 듯 지우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댄다.
나는 더욱더 필사적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피한다.
···이럴 때 쓰려고 연습한 탈압박이 아닌데.
그래도 훈련을 열심히 하긴 했는지, 지우가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이게 진짜.”
“뭐가···”
결국 끝까지 탈압박에 성공해내자 지우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이내 아-하며 말한다.
“와, 알았다.”
“···뭘.”
“너, 뭐 잘못한 거 있지.”
“잘못이라니 뭐가···”
“맞잖아. 그러니까 피하는 거잖아.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내 눈도 못 마주치는 거지. 뭔데. 빨리 말해. 지금 말하면 용서해 줄 테니까.”
마치 뭘 내놓으라는 듯 한 손을 내밀며 말하는데, 헛다리도 수준급이다.
“내가 잘못할 게 뭐 있어.”
“그건 나야 모르지. 그러니까 얘기하라고. 뭐 잘못했는데.”
“없어. 그런 거.”
“그럼 왜 그러는데.”
“내가 뭘···”
“뭘은 무슨. 봐봐. 지금도 눈 피하잖아. 잘못한 게 없으면 왜 내 눈을 못 봐?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런 거 없다니까··· 그리고 내가 눈을 피하길 뭘 피해···”
···음.
내가 말하면서도 웃기긴 하다.
피하길 뭘 피하냐는 말을 하는 지금 이 와중에도 눈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뜨끔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 내가 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자길 놀리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
초등학생 때 지우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지막 기회 준다. 말해. 뭐 잘못 했어.”
이런 걸 PTSD라고 하던가.
그 시절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모든 걸 실토할 뻔했다가 간신히 참아낸다.
대신 시치미로 때운다.
“없어.”
“그럼 왜 눈 피하는 건지 말해.”
“···”
“말 안 해? 어쩔 수 없지.”
“뭘 어쩔 수 없······ 읍!”
어쩔 수 없지 라는 말을 들은 순간.
지우를 알고 지내온 수년간의 경험들을 토대로, 뭔가 위험하다는 직감이 드는 동시에.
텁-!
무언가 손을 쓸 틈도 없이, 갑자기 둔탁한 손길이 두 뺨에서 느껴진다.
지우가 내 얼굴을··· 마치 갓 건져 올린 물고기를 잡듯 움켜쥔 것이었다.
“나 봐.”
“···!”
“죽을래?”
“···아, 아니.”
밀가루 반죽처럼 짜그라진 얼굴 탓에 뭉개진 발음이 입에서 새어나간다.
잠깐 잊고 있었던 지우의 본 모습이 드러남에 침이 꼴깍 삼켜진다.
한데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도 없는 것이··· 나와 지우의 얼굴이 불과 축구공 하나 정도 들어갈 거리 정도로 가까웠다.
···일단 밀려난 볼살 때문에 오리 주둥이가 된 입술을 얼른 다물고.
고개를 돌릴 순 없어 괜히 인중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지우의 인중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데.
이런 와중에도 인중이 귀엽게 파였다는 이상한 생각이 드는 순간.
“어?”
지우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 손을 떼어 내 이마에 올린다.
그리곤 표정이 확 바뀌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야, 얼굴이 왜 이렇게 뜨거워? 너 열 나!”
“어··· 어?”
“거의 끓는 수준인데? 어떡해, 이거!”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 얼굴이 진짜 밀가루 반죽인 건 아닌데.
다급함이 느껴지는 손길이 내 얼굴 여기저기를 주무른다.
연신 뜨거워, 뜨거워만 외치는 지우의 숨결이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젠장.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 얼굴이 안 뜨거워질 수 있겠냐고.
“감기야? 몸살? 비 와서 그런가? 따뜻한 데 있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헛다리만 짚는 지우의 손을 슬쩍 밀어낸다.
“그, 일단 그만 좀 만져봐···”
“어? 어, 미안. 아니, 근데 너무 뜨거워! 이, 일단 있어 봐. 수건이라도 적셔서 가져올게!”
···수건?
말릴 틈도 없이 지우가 다급히 방을 뛰어나가고, 정신없는 가운데 나는 슬며시 내 볼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와.
손을 대자마자 느껴지는 용암 같은 뜨거움에, 지우가 왜 저렇게 야단을 떨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그리곤 이내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부끄러워한다는 걸 들켰다는 게 미칠 듯이 부끄러웠다.
안 되겠다.
이렇게 된 이상··· 아픈 척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
아니지.
나 진짜로 아픈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 얼굴이 이렇게 뜨거워질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렇게 보고 싶다던 얼굴이 막상 앞에 있으니 보지 못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야, 여기!”
지우가 방을 나간 동안, 슬며시 스윽 이불을 덮고 누워 있으니 곧 지우가 젖은 수건을 들고 뛰어왔다.
어찌나 급하게 적셔 왔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읍!”
“이, 일단 식히자!”
자, 잠깐만.
수, 숨 막힌다, 숨!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다 덮어 버리면···!
“읍! 읍!”
“어? 차갑다고?”
“읍! 읍읍읍!”
“아, 아! 숨 막힌다고! 미안, 미안!”
앓느니 죽는다는 말도 있다던데, 그래도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니 그제서야 코와 잎을 덮었던 수건이 걷힌다.
후아.
주, 죽을 뻔했다.
간신히 찾아드는 빛과 함께 당황 곱하기 백인 지우의 얼굴이 보인다.
“아, 아니 나도 어디서 보기만 했지 해본 적은 없어서··· 이렇게 대야 하나?”
나만큼이나 자기도 당황했는지, 지우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수건을 이리저리 접는다.
그러다 얼추 이마 위에 얹어지는 모양새가 되긴 한 듯했으나··· 아니, 지금 그것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수영장에 온 기분이라고.
“아이고, 너무 대충 짰나. 다 젖었네. 어떡하지?”
뚝뚝 떨어지는 물을 그제야 눈치챈 지우가 허둥대더니 이불로 내 얼굴과 귓가를 닦아내기 시작한다.
···뭔가 뒤바뀐 것 같은데.
수건을 덮고 이불로 닦는다니.
그러나 여기서 괜히 한마디 더 하면 지우가 더 당황할 것 같아, 그래서 뭔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 가만히 있기로 한다.
“휴, 됐다. 됐지?”
“···응.”
일단 아프지도 않은데 졸지에 환자가 된 것부터 해서,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진작 자포자기한 상태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지우는 여전히 당황이 가시지 않는 듯,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가··· 이내 그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아니, 씨.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안 아파.”
“안 아프긴 뭐가! 손에 화상 입는 줄 알았다고, 뜨거워서.”
“···”
“아니, 그. 뭐 아무튼. 일단 푹 쉬어. 나가서 약이라도 사오든지 할 테니까.”
“아니 안 사와도 돼···”
“시끄러. 일단 넌 그냥 누워 있어.”
아, 아니 그럴 거까지는 없는데.
그러나 또다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지우는 휙 방을 나가 버렸고.
“···”
돌덩이 같은 수건을 이마에 얹고, 축축해진 이불을 덮은 채 혼자 남겨진 난 잠시 천장을 말없이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정신없이 몰아치던 폭풍우가 한차례 지나가고 고요해진 느낌.
···일단 이마를 짓누르는 돌덩이를 좀 치우고 싶긴 한데. 지우가 언제 또 들어올지 모르니 그냥 놔두기로 하고.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웃겼다.
이 상황도 상황이고··· 그중에서도 제일 웃긴 건.
그렇게 보고 싶다더니, 막상 눈앞에 있으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내가 제일 웃겼다.
“···.”
···또다시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다.
동시에 문득 선배들이 했던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떠오른다.
이걸··· 그거라고 한다고?
“···.”
뭔가 온몸이 붕 뜨는 듯하면서도, 반대로 착 가라앉듯 답답하기도 했다.
이젠 진짜 나도 모르겠다···
ㆍㆍㆍ
2022년 10월의 둘째 날, 아르테미오 프랑키.
살랑이는 바람이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가운데.
“가보자, 가보자!”
“깔끔하게 가자, 깔끔하게!”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불어넣는 선배들을 따라 라커룸을 나선다.
오늘은 리그 7라운드, 나폴리와의 경기가 있는 날.
12월에 있을 월드컵 때문에 조금씩 앞당겨진 일정 속에서, 6라운드까지 우린 아직 한 번의 패배도 겪고 있지 않았다.
개막전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6라운드 US 레체와의 경기에서도 승리.
그 가운데 무승부가 하나 끼어 있기는 했으나 패배는 단 한 번도 없이 5승 1무의 전적을 이어나가는 중.
그런 기세가 그라운드로 나서기 전 대기하는 터널을 가득 메운다.
으음.
사실 딱히 뭐가 있는 건 아니다만.
그냥 뭐랄까.
이렇게 선배들과 일렬로 서 있을 때면,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우리의 옆으로 어떤 팀의 선수들이 나란히 선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자신감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생각해보면, 역시나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이들과 함께 승리를 맛보는 경험.
그저 우러러보게만 되던 선수들을 상대로도 지지 않았던 경험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젠 나도 꽤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주변 사람들 덕분에.
“Hey-”
“Hey.”
어쨌거나 그렇게 잠시 대기를 하고 있던 와중.
가볍게 인사하는 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오며, 나폴리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하나씩 우리의 옆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지만, 리그에서 오래 뛴 선배들은 상대 팀이라도 친분이 어느 정도 있기에 보통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편.
그럴 때마다 나는 잠자코 있거나, 가끔 인사를 건네오는 선수가 있으면 어색하게 받아주는 편인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나에게 누구보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는 상대 팀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쎄.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유달리 반갑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집에서나 들을 수 있는 한국말을 썼다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
반가우면서도 어색하게.
짧게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는 그의 등을 슬쩍 바라본다.
Kim.
한국 이름을 부르고 생각하면 괜히 내적친밀감이 쌓일 것 같아, 그저 Kim 정도로 선을 긋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적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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