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35)
135. 어른 말을 잘 듣자 -1
삐이이익-!
희한하게, 오늘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마저 쾌청하게 들린다.
그 기분을 표현하듯, 풀쩍 한 번 뛰어오른 뒤 공을 뒤로 보내곤 전방을 향해 산뜻하게 뛰어나간다.
터널에서 입장을 앞두고 있을 때도, 그리고 센터 서클 정중앙에 서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도.
오늘따라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게 내가 느끼기에도 좀 희한하다 싶더라.
원래는 긴장감에 온몸을 툭툭 털어내면서, 떨림을 날려버리기 위해 조용히 상대 팀의 정보나 ‘할 수 있다’ 따위의 자기 암시를 중얼거리는 것이 대기 시간을 보내는 루틴 같은 거였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낄 만큼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그 긴장감의 자리를 대신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일단은 몸 상태가 좋았다.
타타탓-!
내 위치를 향해 달려가는데, 무릎이 하늘을 찌를 듯 발이 가볍게 움직인다.
마치 오늘 100미터 기록을 재면 신기록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컨디션이 좋았다.
오늘은 찬물 샤워마저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했다.
그렇게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한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여서, 집을 나오기 전에 일기까지 써두고 나왔다.
어제 뭘 하고, 뭘 먹고, 몇 시에 자고, 심지어 어떤 자세로 잤는지까지.
앞으로도 이런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다.
리그 경기가 그럴 일은 없지만, 오늘은 연장전에 간다고 해도 풀 타임을 뛸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
어쨌거나, 이게 오늘 유독 긴장감보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이유 중 첫 번째일 것이고.
두 번째라면 역시나 최근 패배가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6라운드까지 치러진 리그 경기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심지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파리와 세비야에게 무승부와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건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이다.
지는 법을 망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진다는 게 어떤 거였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오늘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다.
타타탓-!
경쾌하게 움직이며 수비 사이 공간을 누빈다.
가볍게 움직여지는 몸의 느낌이 너무 좋아 가만히 서 있기가 어렵다.
덕분에 걸어 다니며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나만의 시간도 오늘은 생략하기로 한다.
오늘은 그냥 본능대로 움직이는 게 더 좋겠다는 감이 와서, 그렇게 하기로 한다.
왠지 지금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파아앙-
파아앙-
마치 눈밭에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주체를 못 하고 뛰어다니는 와중, 동료들은 후방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고 있다.
빠르게 공을 보내줬으면 좋겠으나, 사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우리가 세운 전략은 그 반대.
신중하게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상대가 나폴리라서 그랬다.
지난 시즌에도 나폴리는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워낙 공격력이 좋았다. 특히나 공수 전환이 빨라 역습이 무서웠는데, 그 역습을 마무리해 줄 공격수의 결정력까지 뛰어나 절대 역습을 내줘선 안 된다는 게 나폴리 상대법이었다.
오늘도 그것은 마찬가지.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길, 도전적인 시도는 줄이고 최대한 만들어서 공격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공격을 시도하다 공을 빼앗기면 그 자리에서 다시 압박을 가해 역습 속도를 늦추라고, 안 될 것 같으면 파울을 해서라도 끊어내라고 하시기까지 했다.
그만큼이나 나폴리의 역습과 공격력은 무섭다.
때문에 지금처럼, 동료들도 천천히 공을 돌리며 상대가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을 줄이려 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 좀처럼 전진 패스를 시도하지 않는 선배들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한 편으론 조금씩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빨리 공이 왔으면 좋겠는데.
일단 공만 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가 어렵다.
상대의 역습이 무섭다곤 하나, 그럼 역습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마무리하면 되는 일 아닌가.
타타탓-!
최후방 수비 라인 근처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시선을 끌던 중, 보나벤투라 선배가 공을 잡는 순간 아래로 내려간다.
“···”
그리고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 애매한 공간에 위치를 잡으며 선배와 조용히 눈을 맞춘다.
공을 줘도 괜찮다는 신호를 눈으로 보낸다.
타탓-
이에 보나벤투라 선배의 눈과 몸동작에서 잠시 멈칫하는 듯한 낌새가 느껴진다.
평소라면 바로 줬을 선배인데, 감독님의 지시가 떠올라 망설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축구는 변수가 많은 운동이고, 실시간으로 상황이 변하는 스포츠다.
90분 내내 한 가지 원칙만 고수하기엔 어렵다는 뜻.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한 게 축구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파아아앙-!
보나벤투라 선배의 발이 뒤에서 앞으로 움직인다.
전진 패스.
그 패스가 상대 미드필더들 사이를 지나쳐 곧장 나에게로 전해져 온다.
타타탓-!
당연하게도 상대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패스가 빠르게 오는 그 잠깐 사이, 사방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수비수들의 살벌한 기세가 느껴짐에, 공을 여유롭게 가지고 있을 시간은 없겠다는 감이 곧바로 온다.
촤아아아아-
최후방 수비와 3선 미드필더의 그사이.
그 사이 공간은 공격수가 수시로 공략해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반대로, 수비에게 공을 빼앗기기 가장 쉬운 공간이 이곳이기도 하다.
상대 선수들 사이 공간이라는 게 결국 상대에게 포위당하는, 고립된 위치라는 뜻이니까.
특히나 사이드가 아닌 중앙 공간은 사방에서 압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기까지 해서, 빼앗기지 않는 것보다 빼앗는 게 더 쉽기도 하다.
뺏은 이후에 역습으로 이어나가기도 좋고.
그러나, 그럼에도 공격수가 이 공간을 자주 노려줘야 한다는 데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수비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라면, 아무리 수비가 약한 팀이라고 해도 뚫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비 대열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흐트러진 순간이라면, 아무리 수비가 뛰어난 팀도 빈틈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게 지금인 셈이다.
모두가 날 향해 압박을 온다는 건, 제 위치를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니까.
수비 대열이 흐트러지는 순간이라는 얘기다.
파아앙-!
퍼스트 터치를 길게 잡아두는 동시에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러자 날 향해 달려오던 수비들이 순간 멈칫하며 방향을 바꾸는 게 보인다.
의도적으로 길게 터치했다.
타타탓-!
모두가 내게 시선을 둔 채 쫓아 온다.
그 덕에 그 너머의 뒷공간을 바라보는 건 나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뿐인 듯하다.
수비 시야의 사각, 뒷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로메로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런 로메로의 속도와 진행 방향에 맞춰, 공을 툭 찍어 올린다.
파아아앙-!
그 감각이 산뜻하다.
수비수 키를 넘어가는 패스를 눈으로 좇는데, 그 방향이나 세기, 심지어 회전마저도 생각했던 그대로 완벽하게 날아간다.
희열이 느껴진다.
의도한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펼쳐질 때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경기 전의 예감이 맞았다.
오늘은 되는 날이 분명하다.
파아앙-!
그러나 그런 내 느낌과는 별개로, 로메로의 터치는 그리 좋지 못했다. 발 앞에 떨어뜨려 놓았다면 곧바로 슈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길게 튀었다.
그 길게 튄 방향이 하필 중앙이라 수비수가 몸을 날려 걷어낼 수 있는 위치.
뻐어어어엉-!
검은 머리의 수비수가 득달같이 몸을 날려 사이드 쪽으로 공을 걷어낸다.
아쉬운 기회가 터치 라인 밖으로 날아간다.
“아아아!”
본인도 실수임을 느꼈는지 로메로가 땅을 차며 아쉬워한다.
물론 그렇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로메로가 아님을 알기에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는 중, 문득 그렇게 터치가 길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터치이긴 했으나, 그게 그렇게 길었냐고 한다면··· 충분히 슈팅까지 가져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슈팅조차 때리지 못했다는 건, 상대 수비의 커버가 그만큼 빨랐다는 얘기가 되지 않나.
그러고 보면 김··· 아니, Kim은 내가 공을 받고 움직일 때 날 따라오던 수비수 중 하나였기도 했는데.
어느새 박스 안까지 달려가 공을 걷어낸 건지 모르겠다.
얼마나 발이 빠르고, 상황 판단이 빨라야 그게 가능한 걸까.
뛰어난 수비수임이 분명하다.
이에, 우리의 스로인이 진행되는 와중.
불쑥 이상한 경쟁심이 튀어나오는 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잔뜩 경계심을 느끼고 어떻게 저 수비를 뚫어낼지 머리를 싸맸겠으나, 오늘은 왠지 한번 붙어보자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같은 검은 머리여서 그런가.
아니면 그저 잘하는 상대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
전반이 중반을 향해 가는 무렵, 오늘은 생각을 줄이고 몸에게 맡기자는 선택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중이다.
워낙 경기 템포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역시 상대는 공격적이었다.
일단 공을 잡으면 무조건 전진 패스부터 시도하는 것이,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몇 번의 위협적인 슈팅이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것으로 증명이 되더라.
감독님이 왜 그렇게 경계를 하셨던 건지 이해가 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니, 나를 포함한 우리 공격진도 조금씩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했다간 선제골을 빼앗길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때문에 우린 빠르게 움직이며 수시로 패스를 요구했고, 동료들도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꼈는지 전진 패스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덕분에 경험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경기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축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탁구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따름.
그런 와중··· 슬쩍 바라본 전광판의 시계가 30분에 조금 못 미칠 때였다.
왼쪽 사이드에서 공을 잡았다.
파아앙-!
공을 잡음과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러자 상대 풀백이 잡아먹을 듯한 자세를 취하며 앞을 막아서는데, 피해갈 생각은 없으므로 공을 몰고 다가선다.
드리블이라는 건 수비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치는 것이 기본이나, 이쯤되면 응용이 필요한 단계라.
가끔은 기본을 어겨야 할 때도 있다.
툭-
타탓-!
수비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낸 뒤, 수비가 몸을 돌리는 틈에 빠르게 달려가 자리를 선점한다.
그리고 그대로 공을 몰고 중앙으로 향한다.
정면에는 Kim.
저 괴물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그런 경고가 머리에서 자동으로 울린다.
처음 공격 상황에서 단번에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듯이, 그 이후에도 그는 번번이 우리의 공격을 헛되게 만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 수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수준이라, 지금도 그와 직접 상대하기보단··· 멀리 반대쪽.
박스 안을 침투하는 로메로를 보고 패스를 찔러넣는 게 좋아 보이는 상황.
혹은 공을 뒤로 돌려 너무 빨라진 템포를 한 박자 늦추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고개를 젓고 싶다.
오늘은 나도 내 발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지금은 누가 와도 막을 수 없을 거라며 몸이 외치는 탓에, 한 번만 믿어보기로 한다.
타타탓-!
좌측 하프 스페이스에 진입하며 박스 모서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올라간다.
이에 괴물 수비수가 몸을 반쯤 열어두는 수비 자세를 취한다.
내가 이미 속도가 붙어 있는 상황이라, 가만히 서서 막기보단 돌파하는 방향에 맞춰 따라오겠다는 생각이 엿보이는 자세.
그 자세 하나만으로 내 생각이 읽힌 기분이 드나··· 그렇다고 우회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다고 해서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타타탓-!
한국과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두 검은 머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같은 검은 머리여서 마음이 약해지면 어쩌나 했었는데, 그 반대였다.
오히려 더 지고 싶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