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42)
142. 어깨에 힘 팍 -2
“···안 피곤해?”
“어? 음, 조금?”
“···아, 그래? 피곤하긴 해?”
“피곤하긴 하지. 아침부터 나와서 벌써 몇 시간째 공항에만 있는데. 근데 갑자기 왜?”
“음··· 아냐.”
“뭐야. 너 땜에 더 피곤해진다.”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피곤하긴 하다는 지우의 말에 감탄하며 마른 세수를 한다.
지우 말대로 아침부터 이동에 대기만 벌써 몇 시간째인데,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재잘거리길래 신기해서 물어본 건데.
이게 피곤한 사람의 텐션이었구나.
피곤하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 몇 시간 내내 1분도 쉬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옆에서 지우를 봐온 게 몇 년째인데 아직도 가끔 적응이 안 된다.
지우가 만약 축구선수를 했다면 두 개의 심장, 혹은 세 개의 폐 따위로 불리지 않았을까.
“아아, 빨리 가구 싶다. 겨우겨우 비행기 타도 또 13시간을 날아가야 되네.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어요.”
“···그러게 누가 따라오래.”
“따라오긴 누가 따라온대!? 나 우리 집 가는 거거든? 너 따라가는 게 아니고.”
“···굳이 학교까지 빼먹고?”
“아니, 뭐. 어차피 실습 다 끝나서 맨날 자습한단 말이야. 며칠 안 가도 돼.”
어떻게 승인이 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지우는 학교까지 빼먹고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로 했다.
덕분에 긴 비행이 지루할 걱정은 없을 듯했으나···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우선 피렌체에서 인천 공항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는지라.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로마까지 와야 했고, 여기 로마에서부터 인천까지. 다시 13시간을 날아가야 한다고 했다.
13시간이 말이 13시간이지··· 사실상 하루를 하늘 위에서 보내는 셈이 아닌가.
시간이 가긴 갈까 싶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곤한 것이, 괜히 한국 간다고 했나 후회가 생기기도 한다만.
“응, 엄마! 나 좀 있으면 비행기 타! 응! 응!”
···그새 또 전화를 하고 있는, 왠지 상당히 신이 난 듯한 지우의 모습을 보니 잠깐의 후회는 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사실 내가 한국에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 그 얘기를 들은 지우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됐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그럼 그동안 자긴 여기 혼자 있어야 되는 거냐고 그러더라.
그 모습이 왠지 웃겨서, 농담 삼아 집 좀 잘 지키고 있어 달라 했었는데.
정말 당황스럽게도 지우는 거의 울려고 했다.
무슨 아기도 아니고, 자기 혼자 여기 어떻게 있냐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기세였다.
그래서 급하게 알겠다고, 같이 갈 거면 같이 가자고 했더니 그제야 뚝 그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에 간다는 게 좋은 건지, 학교를 빼먹는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 날부터 되게 들뜬 채로 오늘만 기다리던 지우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들뜬 지우의 모습을 보니 괜히 내 기분도 좋아지는 느낌인데··· 한 편으론 조금 긴장이 되는 감도 있다.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우네 부모님께.
한국에서의 시합이 끝나면 다 같이 식사를 하자며 초대를 해 주신 건데··· 음.
사실 긴장될 거야 없다.
지우네 집엔 어릴 때 자주 놀러 갔었고, 덕분에 지우 어머니도 자주 뵀던 터라.
조금 어색하긴 하겠지만 긴장될 것까지는 전혀 없는데.
근데··· 왜 긴장이 되는 건진 나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국가대표팀에 간다는 사실보다도 그게 더 신경 쓰이고 긴장이 됐다.
뭐라 설명은 못 하겠지만 지금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때가 4년 전, 공개 테스트를 볼 때의 느낌이 지금이랑 비슷했다.
그거랑 이거랑 왜 같은 기분이냐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니까.
“응? 지안이 뭘 제일 좋아하냐고? 글쎄? 얜 그냥 다 잘 먹는데 왜?”
스읍.
진짜 모르겠네.
ㆍㆍㆍ
“···그, 지금 얼굴에 뭘 바르는 거야, 아니면 얼굴을 부수는 거야.”
“뭐래. 쳐다보지 마.”
동그란 거울을 들여다보며 손바닥만 한 쿠션으로 얼굴을 팡, 팡 두드리는 지우의 모습이 사뭇 전투적이다.
···안 아픈가.
화장품을 피부에 바르는 게 아니라 처먹으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게 하품을 하며 빙빙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로 시선을 돌린다.
회전 초밥집에 앉아 좋아하는 초밥을 기다리듯 우리 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
행여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지나가는 짐들을 눈으로 노려본다.
영원히 하늘 위에 떠 있을 것 같았건만, 결국은 도착을 했다.
시간이 안 갈 줄 알았는데, 진짜 안 가더라.
13시간이라는 시간은··· 각오를 단단히 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한숨 푹 자는 건 당연하고, 지우랑 이어폰 한쪽씩 나눠 낀 채 영화도 보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구름의 패턴을 분석해 보기도 하고.
아마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거다.
그런데도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딱 5시간 정도가 더 남아 있더라.
어쨌거나 뭐, 꾸역꾸역 버텨내다 보니 결국 비행기가 먼저 포기하곤 땅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맡은 공기는 한국의 공기였다.
으음.
그러고 보면 4년 만에 돌아온 거라, 뭔가 되게 많이 바뀌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감회도 남다를 것 같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고.
정신이 멍해서 그런지 실감조차 잘 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보이는, 반가운 한글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가 한국인 줄도 몰랐을 거다.
밖으로 나가 봐야 실감이 좀 날 것 같은데.
내 캐리어는 언제······
“아, 우리 거다. 저거 아저씨 거 맞죠? 그 옆에 네 거고.”
“어, 맞네. 비즈니스라 그런가 금방 나오네.”
그래도 한국에 왔다 이건지, 바로 한국 속담의 위력을 체험한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곧바로 도착한 캐리어를 낚아 올려 우리 것이 맞는지 확인한 뒤.
“자, 갑시다.”
드디어 출구로 향한다.
으음.
이제 좀 실감이 날랑말랑 하는 것 같기도 하다.
13살에 이곳을 떠난 그 꼬맹이가··· 17살이 되어서 돌아왔네.
그래도 공항은 그때 그대로인 것 같은데.
딱히 바뀐 게 없는 것 같은······
“어, 어! 나왔다!”
“와아아아!”
“이지안 선수! 이지안 선수!”
“와아아아아!”
···잠깐만.
뭐지.
이거··· 꿈인가.
“여기 한 번 봐주세요!”
“이지안 선수!”
출구로 나서자마자 눈을 찡그리게 만드는 카메라 세례와, 정신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옴에.
“···”
나는 잠시 멍청하게 서서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
“···”
도로 위를 달리는 승용차 안.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4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까닭이었다.
분명 고향에 돌아온 건데, 왜 이리 낯선 곳에 온 외국인이 된 기분일까.
자꾸만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게 된다.
공항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온 뒤, 나는 따로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목적지는 파주.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신 대표팀 관계자라는 분의 차로 달려가고 있었다.
비행기 스케쥴 때문에 내가 제일 늦은 터라 곧바로 합류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해 컨디션을 관리 중이라고.
덕분에 아빠와 지우와는 시합이 끝난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야 했다.
그렇게 혼자 떨어지고 나니, 그제서야 심장이 마구 두근대기 시작하더라.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에 왔다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 온 이유가 무려 국가대표팀 합류를 위해서라는 것도 그렇고.
다만 아직도 그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알아보는 걸로 모자라 날 보기 위해 공항에까지 몰려들었다는 사실은 현실 같지가 않았다.
아니, 무슨 내가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많은 카메라가 내게 초점을 맞추고.
지우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들 목소리가 날 불러대는데, 어찌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얼마 전 나폴리의 괴물에게 들었던, 내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가 거짓말이 아니었던 거다.
어쨌거나, 아직도 심장이 뛴다.
그동안 몇 번이나 불렀음에도 밀고 당기기를 해대며 쉽게 오지 않은 탓일까.
다들 나에 대한 기대가 커 보였다.
이에 솔직히 말하면, 당장 지금이라도 내 결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드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럴 수는 없으므로.
마음을 다잡는 수밖엔 없다.
뭐, 설마··· 당장 이번 시합부터 뛸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것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이번이 처음인데.
아마 벤치를 지키며 대표팀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배우는 게 다가 아닐까.
“···”
으음.
간만에 시합을 뛰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ㆍㆍㆍ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가 위치한 파주라는 곳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시차의 문제인지 차에서 정신없이 자다 보니 어느새 도착을 해 있더라.
덕분에 차에서 내려 짐을 챙길 때까지도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관계자님을 따라 센터에 입소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센터 입구에도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과 카메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아니면 잠이 부족해서인지.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한데 무엇보다 제일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던 순간은 그다음이었다.
정신없이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와, 안내에 따라 방 배정을 받고.
방에 잠깐 있으니 관계자님께서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주셨다.
뭐 물이나 간식 같은 먹을거리들과, 운동할 때 입을 훈련복과 유니폼들이었는데···
어릴 때 티비로만 보던, 그 빨간색 유니폼에 쓰여 있는 내 이름을 보니 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이건 꿈이 맞다고 말이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왠지 첫날, 잠에 들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눈을 떴을 때 내 방 천장이 날 맞이해줄 것 같다고.
이 모든 게 조금은 긴, 그리고 기묘한 꿈일 뿐일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나를 맞이한 건 내 방 천장이 아니라 낯선 천장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한국이었고, 내가 있는 곳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트레이닝 센터였다.
깨지 않는 꿈이라니, 결국은 현실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어나 쭈뼛쭈뼛 아침을 먹으러 가고, 왠지 좀 무서워 보이는 선배님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아무도 날 막지 않는데, 왠지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금방이라도 쫓겨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들 내 이름을 알고, 처음 보는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 걸 보면 내가 정식으로 불려왔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어쨌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훈련장이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 잔디의 색깔이 이탈리아와는 사뭇 달랐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배들이 말하길, 이 잔디에 적응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천천히 선배들과 함께 뛰면서 잔디의 촉감을 익혔다.
뭐, 애초에 축구를 시작한 게 이 잔디에서였으니 감각은 금세 돌아왔다.
땀이 날 때까지 뛰다 보니 느껴지던 쌀쌀함도 금세 달아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표팀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제서야, 내가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