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44)
144. 어깨에 힘 팍 -4
보여줘.
대표팀에 온 뒤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보여줘’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로 많이 들었냐면, 보여줘 라는 말이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추임새 같은 걸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냥 뭐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착각을 할 만큼, 훈련장에서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다들 보여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그 앞엔 항상 최연소 국대니, 세리에 득점왕이니,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니 하는 것들이 붙었고.
그러다 보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불편했다.
안 그래도 편할 수가 없는 곳인데, 다들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냥 걸을 때조차 신경이 쓰였다.
왠지 흐느적거리면 안 될 것 같고, 걷는 것도 멋있게 걸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어쨌거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목이 간질거리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애당초 내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했던 각오를 되새기며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게 무슨 각오였냐고 한다면··· 글쎄.
유치해서 아무한테도 말해주지 않을 거다만, 그냥 간단했다.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자는 거.
맨날 겁먹고, 피하고, 숨고, 미루기만 하는 내 모습엔 나도 진절머리가 났던지라.
이젠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숨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나.
솔직히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왔고,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팬들의 환호에··· 감사함을 느끼긴커녕 그대로 뒤로 돌아 로마행 비행기에 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 이 정돈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아낼 뿐이었다.
그렇기에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 한국의 팬들이 내게 기대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그건 싫어할 일이 아니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기도 했다.
근데··· 사람이란 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는 동물인가 보다.
막상 이렇게 터치 라인 근처를 서성이며 몸을 풀고 있자니, 다음 시합엔 나가도 좋으니 오늘은 들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와아아아아아-!
전반전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후반전도 20분여가 지나고 있는 무렵.
코치님의 부름에 몸을 풀기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경기를 지켜보던 중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전광판을 바라봤다가···
“···”
곧바로 고개를 돌리곤 못 본 척한다.
···왜 자꾸 경기장 밖에 있는 나를 전광판에 띄우는 건지 모르겠다.
내 옆에도 선배들이 많은데.
굳이 날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전원을 꺼버리고 싶은 심정이나, 생각만 그렇게 할 뿐 실천할 용기는 당연히 없다.
사실 뭐, 이런 환호성을 받아본 게 처음은 아닌데 지금은 유독 얼굴이 붉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탈리아에서와 달리 환호성이 높은 하이톤이여서 그럴까.
마치 수천 명의 김지우가 다 함께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고 보면 조금 신기한 일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축구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스포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여성 팬들이 많이 온 건지 이해하기 힘들 따름이다.
이탈리아에 가 있는 사이 꽤 많은 게 바뀐 걸까.
뭐, 어쨌거나 좋은 일이라고 생가은 든다만.
아저씨 팬들보다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있다.
으음···
자꾸만 어깨에 힘을 주게 된달까.
표정에도 신경 쓰게 되고.
“지안아!”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던 와중,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안 좋은 예감을 받으며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설마···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날 부른 게 코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다.
코치님이 내게 손짓을 하고 있어, 일단은 벤치로 돌아간다.
어차피 1대0으로 이기고 있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아서 쉬게 해주시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와 함께다.
그러나, 인생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다.
혹시···? 하면 아니고.
설마···? 하면 그게 맞다.
“들어갈 준비 하자. 자, 어디로 들어갈 거냐면······”
지금도 그런 걸 보면, 하나의 법칙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다.
*
참으로 어색하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게.
코치님께 불려와 간단한 전술 설명과 내 역할에 대해 들은 뒤.
상의를 경기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교체 라인에 선다.
“···”
···함성은 뭐, 아까부터 계속해서 귀가 따가울 만큼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체 내가 뭐라고,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저렇게까지 소리를 내주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게 내 자의식과잉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돌아가는 정황이 그렇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여겨지는 바.
심장이 두근댄다.
문득 이탈리아로 온 지우 앞에서 처음 시합을 했을 때, 그리고 1군 데뷔전을 치렀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와 모든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한 명, 혹은 수만 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터치 라인 근처에 서서 교체를 기다리고 있는 거 말이다.
···여러모로 어차피 뛸 거라면 선발로 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차라리 빨리 들어갔으면 싶을 정도로 긴장이 되는데, 한편으론 경기가 늦게 멈췄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이 상대 선수의 발에 맞고 터치 라인을 나가는 순간.
일 처리가 확실한 주심은 휘슬을 입에 물더니 내 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와아아아아아아-
여기서 더 커질 수 있을까 싶던 함성 소리가 더욱 커지고, 10번 유니폼을 입은 선배가 박수를 치며 터치 라인을 향해 터덜터덜 뛰어온다.
“휴우, 보여줘.”
또 그 소리.
지겨운 소리를 하며 손을 내미는 선배와 손을 마주친 뒤, 온몸에 가득 찬 긴장감을 숨기기 위해 전력으로 뛰어나간다.
이쯤 됐으면, 뭐라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마치 세뇌당하는 기분이었다.
*
함께 훈련하며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넉넉한 건 아니었으나, 전술이 바뀌고 동료가 바뀐다 해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공격수는 골을 만들어내야 하는 역할이니, 그것에 충실하면 될 뿐.
귀가 먹먹한 함성에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동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불편하긴 하나,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기본적인 우리의 포메이션은 4-2-3-1.
선수 교체는 하지만 포메이션과 전술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란 코치님의 말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내 자리는 4-2-3-1에서 3의 중앙.
코치님의 말대로 원래 이 자리의 주인이었던 선배의 플레이를 따라가되, 내 나름대로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본다.
상대인 아이슬란드는 4-3-3의 전형을 갖추고 있으나, 거의 전원이 수비에 가담하고 있는 터라 포메이션이 크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공간이 좁고 수비는 촘촘하다.
특히 왼쪽이 더 그런 것이, 아무래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의식하는 모양.
득점왕께선 같은 득점왕 후배가 왔다며, 넌 밥 먹을 때 같은 테이블을 써도 된다고 너스레를 떠셨으나.
상대 수비의 배분만 봐도 영국의 득점왕과 이탈리아의 득점왕은 동급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자존심 상하기보단,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타타탓-!
미리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던지라, 구도 파악에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 대충 끝내고 일단 움직인다.
상대가 최전방 공격수조차 공격수가 아닌, 최전방 수비수로 사용하고 있어 가만히 서 있다간 공도 못 받고 질식당할 상황.
방금까지도 좀처럼 전진 패스가 나오지 못하고 공이 후방에서만 빙빙 돌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간이 없다고 한들, 정식 그라운드의 규격은 사람 열한 명으로 채울 수 없을 만큼 큰지라.
움직이다 보면 결국 공간은 나오게 되어 있다.
타탓-!
그렇게 빈 곳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며 움직이자 나폴리의 괴물과 시선이 맞닿는다.
파아앙-!
곧 내게 정확하게 패스가 깔려 온다.
적으로 상대할 땐 그렇게 무섭더니 같은 팀이 되자 저렇게 든든할 수 없다.
피오렌티나 동료들이 알면 뭐라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임시 동맹인 만큼 나폴리의 괴물이 보낸 패스를 반품하지 않고 받아낸다.
타탓-!
그리고 곧바로 돌아선다.
그러자 보기만 해도 숨이 콱 막히는, 서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채 벽을 세우고 있는 상대 선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 한번 들어와 봐라 수준이 아니라 제발 들어와 달라고 하는 듯한 노골적인 그 모습에, 괜히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려 하나.
그런 마음은 잠시 넣어두고 공을 몰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타타탓-!
해볼 만해 보였기도 했거니와, 이쯤 됐으면 뭐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
“골··· 골 언제 넣어···”
“쪼오금 답답한 것 같은데?”
국가대표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 소년이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기 전, 후반 20분 무렵.
머리에 놀이공원에서나 쓸 법한 머리띠를 한 몇몇 팬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전반전 일찍 골이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 골 파티가 벌어지겠구나 싶었건만.
그 뒤로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고 있었고, 골은커녕 제대로 된 공격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고구마를 10개는 먹은 듯, 답답한 마음에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던 와중.
카메라도 딱히 잡을 만한 장면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그라운드 안이 아닌 밖, 터치 라인 근처에서 몸을 풀고 있던 선수에게 카메라가 갔을 때.
그 순간 터져 나온 함성은 마치 골이라도 터진 듯했다.
“꺄아아아악!”
“와, 존잘···”
“아, 귀여워!”
특히나 그 함성의 혼합률에 있어 바리톤보단 소프라노의 비율이 더 높았던 것이, 전광판에 잡힌 게 단순한 17세 소년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
축구선수를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아이돌을 보는 듯한 반응에, 사이사이 앉은 남자 관중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법도 하건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았다.
“워어어어어!”
“우리 형! 우리 형!”
“아 우리 형 뛰는 거 보러 왔다고! 교체시키라고!”
하이 톤처럼 튀지만 않을 뿐, 오히려 열성적인 것으로 따지자면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직장에서도 꽤 연차가 됐을 법한 사내들이 17세 소년을 향해 우리 형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사뭇 기이해 보였으나, 뭐든 잘하면 형이라는, 유교 사상 따위 개나 줘버린 문화가 한국에 자리 잡은지도 꽤 오래된 일이라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관중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소년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한 걸까.
소년은 곧 유니폼을 갈아입기 시작했고, 터치 라인 근처에 서서 툭툭 다리를 털기 시작했다.
이 순간 경기장에 모인, 아니 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수백만 명의 기대가 최고조에 달한 건 당연한 일.
뭘 해도 만족 시키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기대가 오로지 한 명에게 쏠리는 가운데, 이내 소년은 그라운드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갔다.
그리고 고작 1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오, 오! 공 잡았다!”
“와, 터치! 움직임!”
“다르다! 저건 김치가 아냐!”
소년이 공을 잡고 돌아섰다.
그러더니, 앞을 슬쩍 한번 바라보곤 공을 몰고 겁도 없이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 앞에 수비가 몇 명인데.
다른 선수들은 바보라서 그 사이로 뚫을 생각을 안 했을까.
다 이유가 있는 것이건만, 지금이 대표팀 데뷔인 소년은 그런 거 모른다는 듯 그저 공을 몰고 올라갈 뿐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패스를 뿌린다.
파아앙-!
간만에 마음에 드는 패스가 왔다는 듯,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이 그 공을 받아내고···
파아앙-!
공은 이내 소년에게 되돌아간다.
자신에게 공이 없던 그 잠깐 사이, 어느새 페널티 박스 앞에서 나타나 공을 잡은 소년은, 거기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타타탓-!
“와아악!”
“어어!”
자리에서 일어난 관중들의 입에서 단말마 비슷한 것이 터지는 사이, 공을 발에 붙인 소년은 점멸한다.
마치 없어졌다 사라진 것처럼, 다리를 휘젓는가 싶더니 수비수 등 뒤에서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그다음도 눈 깜빡할 새였다.
뻐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철썩-!!
박스 안 우측면 부근에서 오른발로 때린 슈팅이 박스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그대로 골대 왼쪽 상단에 꽂혀 들어간다.
동시에 관중석에선 지진과 화산이 동시에 폭발하고, 모든 선수가 소년에게 달려간다.
이어 조금은 과격한 축하가 이어지고, 이내 소년은 주장에게 어깨동무를 당한 채 카메라 앞으로 끌려 나온다.
그 카메라가 찍고 있는 모습은 곧 전광판에 흘러나오고, 주장이 먼저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자.
소년 역시 엉성하게 하트를 따라 만들어낸다.
“꺄아아아아!”
“으아아아, 우리 형!”
그 모습에 여성 팬들은 뒤로 쓰러졌고, 남성 팬들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