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60)
쉴새 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부산한 느낌의 복도.
파란 줄의 목걸이를 찬 사람들과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나는 마치 아빠와 함께 교무실 앞에 선 학생처럼 복도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를 어림짐작해보고 있었다.
아빠 역할은 빈첸초 감독님.
감독님과 나는 내일 있을 경기의 사전 인터뷰를 위해 복도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다.
“···”
그 기다림의 시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히 감독님과 단둘이 있는 게 어색해서만은 아니고.
보통의 사전 인터뷰는 주장이 도맡아 했었기 때문인 게 더 크다.
시합이 끝난 뒤의 인터뷰야 많이 해봤다지만, 이렇게 경기 전 인터뷰를 해본 건 몇 번 되지 않는지라.
주장이라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참 힘든 역할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덕분에 나처럼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은 주장도 못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슬슬 하품까지 나오려 하고 있던 와중.
벌컥-
복도 한쪽의 문이 열리고,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그 뒤로 사뭇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발의 군인 같은 머리에, 오늘은 홍조가 피어오르지 않은 얼굴을 한 케빈 데 브라이너와··· 우리 감독님과 같은 헤어스타일의 맨시티 감독이었다.
우리에 앞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것이었다.
“···”
왠지는 모르겠으나, 그 얼굴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이미 시합이 시작된 느낌이라.
괜히 눈에 힘을 주고 복도를 걸어오는 그들을 바라본다.
다만 이내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들 역시 나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가왔을 때.
나도 모르게 슬쩍 눈을 피하려는 찰나, 예상치 못하게도··· 내 눈앞에 보인 건 하얀 손이었다.
이건··· 악수 요청인가.
“···”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서서 그 손을 어물쩍 마주 잡으니, 데 브라이너가 내 손을 두어 번 흔들곤 한쪽 눈을 찡긋인 뒤 나를 지나친다.
이어선 익숙한 헤어스타일의 감독 역시도 내 손을 붙잡더니, 한술 더 떠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지나쳐 간다.
그 손길이 꽤나 다정하게 느껴져 누가 보면 원래 친분이 있던 사이처럼 보였겠으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
덕분에 조금 어리둥절한 채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으니, 옆에서 혀를 튕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빈첸초 감독님이 혀를 차며, 멀어져 가는 상대 감독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완전히 피부에 가까운 우리 감독님의 두상과 달리, 상대 감독은 면도를 한 듯 거뭇거뭇한 두상이어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공기가 불편했다.
*
“······팀으로서는 첫 토너먼트 경기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예. 우선은···”
마치 햄버거 가게에서 주는 빨대처럼 기다라면서도 끝이 휘어진 마이크 앞에 앉아.
정면으로 드리워진 카메라들과 기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감독님의 인터뷰를 가만히 듣는다.
모든 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건 카메라와 마이크도 마찬가지인지라.
딱히 긴장할 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생각대로 잘 되진 않는 것 같다.
책상 위론 어울리지 않게 의젓한 척을 하고 있으면서도, 책상 밑으론 계속해서 손톱을 뜯어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도 팀을 대표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인터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책임지면 끝날 일이지만, 이거는 그렇지가 않으니까.
선수단 대표로 나온 이상 내가 한 말들은 곧 우리 팀의 말이 된다.
그러니 새삼스럽게도 처음 인터뷰를 해보는 사람인 것 마냥 신경이 곤두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주장은 대체 왜 이 자리에 날 내보낸 건지.
맨시티 상대로 안 꿀리려면 네가 나가야 한다고 하던데, 그게 뭔 소리인진 모르겠고 그냥 귀찮았던 거 아니냐고.
“······그런 만큼 이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어쨌거나, 그런 와중에도 술술 대답을 이어나가는 감독님이 새삼 어른처럼 느껴지는 와중.
이젠 내 차례가 온 듯싶다.
“리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미루어보건대, 기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선수 타입은 예민한 선수일 것이 분명하다.
예민한 선수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쓸만한 소스들을 술술 뱉어내기 때문인데.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태라는 걸 들킨 것일까.
첫 질문부터 혀가 알싸해질 만큼 맵기가 그지없다.
“이번 피오렌티나와 맨시티의 16강전을 두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만큼 객관적인 전력 차가 크다는 얘기인데, 딱 한 포지션만을 제외하면 상대가 안 될 만큼 맨시티의 압승이라고요. 그 제외된 한 포지션은 역시 당신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이걸 맨시티도 모를 리 없을 겁니다. 경기에 들어가면 엄청난 견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준비를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나름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해왔던지라, 대충 어떤 질문인지 알아들을 순 있었다만.
통역을 통해 긴 질문을 한 번 더 걸러 듣는다.
대답을 생각할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으니까.
어쨌든, 잠자코 통역을 들으며 문득 왜 기자들이 예민한 선수를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을 들으며 드는 지금의 생각을 그대로 뱉어버리면, 그걸 내가 기사로 써도 수천 개의 조회수 정도는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에, 뇌와 입이 이어지는 통로 사이사이 설치된 몇 개의 필터를 통해 최대한 거르고 걸러낸 뒤 입을 연다.
“딱히 그거에 대해서 준비를 한 건 없어요. 왜냐면, 그렇게 해준다면 반가운 일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고 보면 웃긴 게, 이왕 통역을 준비해 줄 거면 한국어 통역으로 앉혀주지 이탈리아어 통역이다.
뭐, 어쩌면 그게 더 좋은 거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만.
“저에게 견제가 쏠리면 다른 선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항상 그래 왔거든요. 그러니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줄줄이 말을 내뱉은 뒤 의자에 등을 기대는 것으로 대답은 여기까지라는 의사 표현을 보낸다.
그러자 통역이 그 말을 전달하고, 기자회견장엔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질문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날아든다.
“많은 전문가가 말하길, 현실적으로 피오렌티나가 1차전에서 노려야 할 건 최소한의 실점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최대한 틀어막고, 2차전에서 희망을 거는 게 좋을 거라는 얘기인데요. 결국 1차전에선 수비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될 텐데, 당신도 수비 훈련을 평소보다 더 많이 했나요?”
···음.
그러고 보면 기자들은 꼭 전문가들이 말하길, 이라는 말을 좋아하던데.
그 전문가들이라는 존재의 실체가 있긴 한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가상의 존재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너무 꼬아서 보는 걸까.
어쨌거나, 이번에도 충분히 시간을 가진 뒤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훈련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평소대로 했어요. 저는 팀에서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고, 수비로 따지면 팀에 민폐가 될 뿐이에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할 거고요. 저는 팀을 이기게 하는 역할이지, 지지 않게 하는 역할은 아니거든요.”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이기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곤 하지만, 그걸 남의 입으로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최대한 잘지는 게 너희 목표 아니냐는 말을 어떻게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문득 몸에서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져, 숙소로 돌아가면 주장 방부터 쳐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눈에 힘을 더 준다.
나 화났다는 나름의 표시인데··· 기자들은 눈도 깜빡 안 하고 다음 질문을 이어가더라.
“방금 전 인터뷰에서,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피오렌티나는 송곳 같은 팀이라고요. 굉장히 좁지만 그만큼 날카로우니 조심해야 하는 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꽤 자신이 있어 보이시는데, 내일 상대를 찌를 자신이 있으신가요?”
흐음··· 글쎄.
그냥 받은 질문만큼만 대답을 돌려줬을 뿐이지, 딱히 자신감을 표출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솔직히 큰 자신이 있는 건 아니다만, 팀을 대표해 앉은 자리다.
없어도 있는 척을 해야 한다는 뜻.
“꽤 아플 거예요.”
송곳에 찔리면 당연히 아프겠지.
물론··· 안 찔리면 안 아픈 거고.
“얘기가 나와서 이어가자면, 케빈 데 브라이너 선수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같이 뛰어보고 싶은 선수’라고 대답했는데요. 언젠간 그의 바람이 이뤄질 수도 있을까요?”
···음.
이건 좀 많이 당황스러운 질문인데.
저렇게 당연한 걸 묻는 것에 자기 차례를 써버리다니, 저 기자는 크게 욕심이 없는 성격인가 보다.
“···내일 같이 뛰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ㆍㆍㆍ
2023년 2월 11일.
잉글랜드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
이탈리아에서 온 손님들의 눈엔 우중충한, 그러나 집주인들에겐 화창하게만 보이는 하늘이 스타디움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긴 팔에 장갑, 비니까지 둘러쓴 선수들이 하나, 둘 그라운드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향보다 춥게 느껴지는 날씨 때문에 충분한 웜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탓인지,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피오렌티나 선수들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다들 긴장된 얼굴들에, 그 어깨가 사뭇 경직되어있는 게 단순 추위 때문만은 아닐 터.
그 긴장을 풀기 위해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가운데, 이어서 반대편으로 홈팀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쪽은 역시나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들인데.
그것이 오늘 홈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단순한 이유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이자, 올 시즌 트레블에 도전하는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그냥 세리에에서 조금 잘나가는 중인 피오렌티나.
아무리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전반기까지, 피오렌티나의 기세가 오를 대로 올라있다고는 하나.
이 양 팀 간의 매치업에서 피오렌티나의 우세를 예측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었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길,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 팀 선수단의 몸값만 봐도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세리에와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돈이 오가는 리그인데, 맨시티는 그런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가장 높은 구단 가치를 자랑하는 팀인 반면.
피오렌티나는 세리에에서조차 어중간한 위치에 올라있는 팀.
조금 잔인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이슈 만들기를 좋아하는 한 일간지에서 낸 기사에 따르면.
맨시티 선수 한 명의 몸값으로 피오렌티나 선수들 십수 명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판국인지라.
이번에도 돈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까보지 않아도 결과는 어느 정도 정해진 느낌이라고까지 볼 수 있었다.
지금, 한쪽에서 몸을 풀고 있는 피오렌티나 선수들이 유독 긴장한 듯 보이는 것도.
맨시티 선수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기 때문일 터.
그러나, 그런 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귀신처럼 짚은 게 맨시티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피오렌티나 입장에서 가장 절망적인 건 몸값의 차이가 아닐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비유하던데.”
웜업을 모두 마치고 라커룸으로 돌아와, 경기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한다.
“착각해선 안 돼. 진짜 골리앗은 저쪽에 있으니까. 지금 이 경기장에서 가장 비싼 선수는 상대 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돈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맨시티도 마냥 여유로울 순 없어야 했다.
그것이 아직은 예상에 불과할지라도, 현재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는 선수는 분명 맨시티가 아니라 피오렌티나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너희가 다윗이고, 도전자의 마음으로 임하길 바란다. 승리자는 다윗이었다.”
완벽주의자의 손길로 탄생한 이 하늘색 유니폼의 팀은, 그답게 참으로 지독한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