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66)
어릴 때, 그러니까 축구를 시작한 지 1, 2년도 안 되었을 때쯤.
당시 축구부 코치님의 초청으로 외부 강사님이 강연을 오신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분이 누구셨는지, 얼굴이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유명한 분은 아니셨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분이 하셨던 말씀 중 한 가지 만큼은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뭐냐면,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선 착하고 순진해선 안 된다는 얘기였다.
축구라는 게 어쨌든 기록 스포츠가 아니라 경쟁 스포츠인 만큼,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인정을 받게 되는 구조이다 보니.
착하다는 게 인간으로서는 좋은 거지만 프로 선수에겐 칭찬으로 쓰일 수 없다는 게 그분의 말씀.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들 혀가 내둘러질 만큼 독기가 있고, 승부욕이 미친 듯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게 왜 아직도 기억이 날 만큼 인상 깊었냐면, 우선은 착한 게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그렇다면 난 훌륭한 선수가 되기에 좋은 조건을 타고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내가 착하고 순진하다는 게 아니라.
승부욕 말이다.
스스로를 평가해 봤을 때, 나는 내가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언제나 잘 해야 한다, 못 하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이야 가득하긴 했다만.
그건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을 뿐, 이기는 것 자체로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든가 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 는 느낌은 아니었으니.
승부욕이라는 걸 게임 능력치처럼 수치화시킨다면, 내 점수는 꽤 낮을 게 분명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근데 실은 아니었나 보다.
“얼굴 좀 펴. 말 걸기도 무섭다, 야. 아직도 분이 안 풀려?”
“···아. 아니요.”
“그러게 다 한 대씩 치라니까.”
“···”
피렌체 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향하는 길.
사포나라 선배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리곤 창문에 얼굴을 비춰본다.
···내가 봐도 입이 좀 튀어나온 게 아직까지 뚱해 있다.
여러모로 좋게 생각해보려 노력해봤건만, 패배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져본 게 당연히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까지 아쉬움이 오래 가는 건 처음이라 나도 놀라울 따름이다.
자괴감이 든 적은 있어도 졌다는 사실 자체에 분한 적은 딱히 없었건만.
어젯밤엔 자꾸 경기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뭐 이유야 당연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거.
동료들이든 팬들이든 이기고 싶었을 텐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다.
승리 소식을 가지고 동료들과 웃으며 당당히 피렌체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제일 아쉽고 실망스럽다.
다만, 이게 자괴감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조금 신기할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욕할까 봐 무섭다기보단,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거니까.
그 둘의 차이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게 뭐냐면, 2차전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숨거나 도망치고 싶었을 거다.
무서운 게 너무 많아서 2차전은 어떻게든 안 나가려고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게, 빨리 2차전을 하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복수하고, 만회하고 싶다.
진다는 건··· 너무나 싫은 경험이었다.
“다들 돌아가서 컨디션 조절 잘 하고. 주말 경기 땐 원래 분위기 대로 다시 끌어올려서 가보자고. 그래야 1차전은 잊고 2차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예-”
지금은 시간이 빨리 흘러 2차전의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잠깐 침대에 누워 쉬고 있다가.
괜찮으면 같이 장 보러 가자는 지우의 문자를 받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온 길.
간단히 세수만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보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문득 놀라고 만다.
“···.”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뚱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져 있다.
···뭐지.
아깐 승부욕이 어쩌니, 지는 게 죽기보다 싫으니 어쩌니 해놓고.
고작 몇십 분짜리에 불과한 것뿐이었나.
으음.
그렇다기엔 시합이 끝난 순간부터 집에 올 때까지 내내 그랬는데.
금세 풀려버린 기분에 나조차 나를 모르겠을 따름이다.
“···흠흠.”
어라라.
이젠 콧노래까지···?
···뭐 하는 놈이냐, 너.
“푸우-”
어쨌거나 간단히, 아니 꼼꼼히 세수를 마친 뒤.
거울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머리도 만지고 나서 욕실을 나온다.
그리고 외투를 챙겨입은 뒤 집을 나선다.
지우네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겁던 발걸음이 새삼 가볍게 느껴진다.
뭐··· 공기가 상쾌해서 그렇다.
맨체스터는 하늘부터가 좀 칙칙했는데.
피렌체는 하늘도 파랗고 공기도 상쾌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그래서.
역시 기분 전환엔 바깥바람을 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
···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웃긴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실은 지금이라도 돌아가, 내 방 침대에 틀어박혀 한숨 자고 싶을 만큼 피곤한 상태다.
그런데도 만나자는 지우의 말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온 내가 웃겼다.
세상에.
수면욕을 이기는 게 있을 줄이야···
“흐음.”
뭐 어쨌든.
지우네 집 앞에 도착해선 괜히 입을 삐죽 내밀며 얼굴 근육을 다잡는다.
그래도 지고 돌아온 주제에 헬렐레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나름 울적 모드로 전환을 하고,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어이어이, 왔는가.”
요상한 인사 소리에 고개를 드니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나타나는 지우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할아버지들이나 할법한 그 인사말과,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에··· 간신히 잡았던 울적 모드는 너무도 쉽게 깨져버리고 만다.
“뭐야? 왜 사람 얼굴 보고 웃냐? 내가 웃기게 생겼어!?”
“···그걸 지금 안 건 아니지?”
“와, 네가 안 맞은 지 오래되긴 했구나. 오랜만에 맛 좀 보여줘?”
까불까불.
지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주먹을 들이대는데, 그 탓에 광대는 더욱 올라가 버리고 만다.
오늘따라 머리는 또 왜 이렇게 하고 나와가지고··· 진짜 철없는 애처럼 보인다.
“그 머리는 뭐냐···”
“뭐가.”
“애들이나 하는 머리잖아.”
“뭐래. 요즘 양 갈래 유행이거든? 봐봐, 솔직히 예쁘잖아.”
“···유행도 나이에 맞춰서 따라가는 거지. 그런 머리할 때는 지난 것 같은데.”
“너 오늘따라 용감하다? 어디서 목숨이라도 하나 주웠니? 에휴, 됐다. 옷이라곤 선물 받은 거만 입고 다니는 애랑 무슨 얘길 하겠니. 됐다, 됐어. 가기나 하자.”
끝까지 인정을 안 해주니 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린다.
그리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곤 또 이빨이 쏟아질 듯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걸을 때마다 촐랑촐랑거리는, 양쪽으로 땋아서 묶은 머리 때문에.
오늘따라 진짜 왜 저렇게 어린애 같지.
“빨리 와!”
“···어.”
그 탓인지, 나도 덩달아 애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
저 땋은 머리를··· 괜히 잡아 당겨보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 시작한 것.
그러나 그랬다간 진짜 죽는 수가 있으니 간신히 참아낸다.
뒤에서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당길 것 같아 얼른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러자 지우는 흘끔 날 보더니, 이내 앞을 보곤 말했다.
“뭐냐. 되게 울상일 줄 알았더니. 그래도 그렇진 않아 보이네.”
“···울상일 게 뭐 있어.”
“뭐, 그렇긴 한데. 난 또 상대가 너무 강했다고, 그래서 졌다고 막 울고 있을 줄 알았지.”
“···내가 애냐. 울게.”
아픈 곳을 찌르네.
그래도 태연한 척을 하며 대답하니, 지우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본다.
“애 아니었어? 오구, 우리 지안이 다 컸네?”
“···뭐래. 애는 그런 머리 하는 너···”
“죽는다, 진짜.”
···머리 얘기는 그만해야겠다.
살기가 감지됐다.
“아무튼, 뭐. 누나 얼굴 보니까 바로 기분 풀리지? 다 알아, 짜샤.”
“···”
“방금 한숨 쉬었냐?”
“아, 아니. 날이 추워서···”
“그치? 그런 거지? 잘 하자?”
“응···”
어깨를 두드리는 지우의 손길에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꼬맹이 머리를 한 애한테 기강을 잡히다니 기분이 묘하기는 하다만.
은근히 나쁘지는 않은 게, 나도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싶다.
“···흐음. 근데 춥긴 춥네. 손 시려. 하아아-”
속으로 혀를 차며 걷는데, 옆에서 지우가 손을 모으고 호호 분다.
음. 그 정도로 추운 것 같진 않은데.
“장갑 끼고 나오지 그랬어.”
“장갑 끼는 거 안 좋아해.”
“···그럼 주머니에 손을 넣든가.”
“야, 바보냐. 눈길에선 손 빼고 걸어야 하는 거 몰라?”
“···”
“에휴, 됐다. 빨리 가기나 하자. 너한테 얘기해서 뭐 하겠니. 바보야.”
···음.
얘가 뭐 언제는 이유 있어서 날 갈군 건 아니다만.
지금은 왜 욕먹은 건지 진짜 알 수가 없다.
왜 저래.
“빨리 오라구!”
“아, 알았어.”
물론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저런 지우의 모습에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려 하는 나고.
ㆍㆍㆍ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음, 아니지.
간사한 건 나인데.
그걸 사람이 간사한 거라고 하면 안 되지.
아무튼, 나는 간사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빡빡한 경기 일정에 혼자 불평을 토로했으면서.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
“내립시다.”
맨체스터에서 돌아온 지 불과 4일 차.
주말 리그 경기를 위해 버스를 타고 홈구장에 도착했는데, 내리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짐을 챙긴다.
오늘따라 빨리 시합이 하고 싶다.
그 이유야 당연히, 저번 경기 패배로 실망해 있을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만회하고픈 마음 때문.
물론 오늘의 상대가 맨시티인 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실 조금 걱정이 돼서 그랬다.
우리 팬들이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난 경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지라.
행여나 우리에 대한 기대를 접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
이젠 나도 알지 않나.
나는 기대를 받아야 잘하는 타입이라는 걸.
앞으로도 계속 기대를 받으려면 오늘 시합에서 만회하는 수밖엔 없는 거다.
푸슈우-
버스 문이 열리고, 왠지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내릴 차례를 기다린다.
버스에서 내려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까지, 보통 우릴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팬들이 계시곤 한다.
오늘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팬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조금 욕심일까.
욕심이겠지.
그건 시합이 끝난 뒤에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다 내가 하기 나름에 달린 일.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비우고 버스에서 내린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나는 평소보다도 훨씬 큰 목소리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쟌-! 쟈아아안-!”
“리! 리! 리!”
“오늘 경기도 힘내줘!”
“포르자! 리!”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에 당황하길 잠깐.
이내 한 팬의 목소리가 귓가에 때려 박히듯 꽂혀 들어온다.
“리!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줘서 고마워!”
전혀 예상치 못한 그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 든다.
경기에서 지고 돌아왔을 뿐인데 자존심을 지켜줬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 홀린 듯 팬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사인 한 번만 해줘!”
“사진 부탁해!”
“꺄아악! 잘생겼어!”
···음.
일단은 정신없이 내미는 유니폼이며, 내 사진에 여전히 어설프기 그지없는 사인을 그려 넣는다.
안타깝지만 시간 관계상 사진은 찍을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사인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사인을 해주다가.
아까 말로 내 뒤통수를 친 팬을 마주한다.
우리 아빠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아저씨 팬이었는데, 그 역시 유니폼을 내밀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번 경기 정말 멋있었어! 감동이었다고!”
이에 나 역시 되묻고 만다.
“···졌는데도요.”
그러자 아저씨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윽박을 지른다.
“고작 1차전 가지고 뭘!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이길 거라고 기대한 사람도 없어!”
그 윽박에··· 가슴이 철렁하길 잠깐.
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우리조차 그랬어! 그래서 자네 인터뷰를 보고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어찌나 아쉬워하는 게 눈에 보이는지, 진심으로 이길 생각이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 맞지?”
···으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아저씨가 또 감동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 가슴팍에 달린 우리 팀의 엠블럼을 두드린다.
“우리 자존심을 세워준 거야. 우리조차 안 될 거라고 지레 우리 급을 낮추고 있었는데, 자네가 우리 자존심을 세워준 거라고. 우리가 16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팀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거니까!”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난 그저 내 기분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거기까진 생각 못 한 터라, 잠시 아저씨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얼굴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워 보인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에 고개를 꾸벅 숙이곤, 마저 사인을 한 뒤 유니폼을 다시 건넨다.
그러자 아저씨는 유니폼을 소중히 끌어안더니 말했다.
“오늘 기대할게! 잘해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를 세워 보이며 답한다.
“기대해 주세요.”
그 대답을 끝으로, 이제 가야 한다는 코치님 손에 붙잡혀 경기장으로 끌려간다.
그런 내 뒤로 팬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일일이 대답할 순 없어도 모든 말들이 마음에 콕콕 들어와 박혔다.
문득, 오늘 상대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운이 안 좋다.
기대를 받는 이지안은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거든.
“···”
···기분에 너무 취했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얼른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곤 라커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