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65)
어릴 때, 지우와 나눴던 수천 가지의 쓸데없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만약에 내가 신이 되어 이 세상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
지우는 재밌을 거라고 했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인데 재미없을 리가 있냐고.
신이 되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위장을 리셋해가며 맛있는 걸 실컷 먹을 거라고 했던가.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헤헤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반면 나는 재미없을 거라고 했었다.
물론 잠깐, 며칠 몇 달은 재밌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재미없게 될 거라는 게 내 생각.
축구로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나.
골을 넣을 때 왜 기쁘겠어.
넣기가 어려우니까 넣었을 때 기쁜 거지.
내 마음대로 골을 넣을 수 있다고 하면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게 아닌가.
그래서 지우는 될 수 있다면 신이 될 거라고 얘기했고, 나는 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까는 생각이 바뀌었었다.
신이 되고 싶었다.
신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우리 팀이 이기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쪽으로···”
“···”
하지만 되고 싶다고 될 수는 없는 거더라.
신은커녕 한낱 인간, 그것도 모자라디 모자란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모자란 인간의 억지는 세상에 통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이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막내가 되고 싶다는 어리광 하나론 맨시티를 이길 수 없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지만, 이 역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귀에 보청기 같은 걸 낀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프레스 코너로 향한다.
그러고 보면 시합에서 지고 난 후 인터뷰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매번 이겼을 때나 했지.
영국에선 원래 이러나.
무슨 법정에 끌려가는 범죄자가 된 기분.
덕분에 조금 걱정이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부터 해서,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튀어나올까 까지.
시합 전에 자신 있다는 듯 인터뷰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렇게 자신 있다면서 왜 졌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인터뷰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나.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복도 몇 개를 지나, 오늘따라 더욱 꼴 보기 싫은 카메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터뷰장에 들어선다.
벌써부터 날 놀릴 생각에 신이 난 건지, 마이크를 든 채 기다리고 있던 인터뷰어는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올 첫마디는 뭘까.
거짓말쟁이를 모셨습니다, 일까.
그러나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오늘 모두가 깜짝 놀랄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리를 모시고 인터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놀리는 건가.
“일단,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분전에도 불과하고 아쉽게 패배했는데, 그래도 2득점으로 2차전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두셨습니다. 맨시티라는 팀을 상대한 소감은 어떠셨는지요.”
소감이라.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한다.
“배울 게 많은 상대였다고 생각해요. 쉬운 상대는 아니었어요.”
“그렇군요. 다만, 경기 결과는 아쉽게 되었어도 본인의 활약은 대단했는데요. 첫 번째 골과 두 번째 골 모두 압권이었습니다. 본인의 오늘 플레이를 평가해본다면요?”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못했어요.”
“예? 하지만 오늘 그 어떤 선수보다 빛나셨는데요.”
놀리는 것도 좀 적당히 해주면 안 되나.
인터뷰어를 슬쩍 바라보는데, 정말로 이해가 안 돼서 묻는 듯한 표정이길래 한숨을 내쉰다.
진심인가.
“···졌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팀의 패배에도 당신의 활약은 분명···”
“아니요.”
안 그러려고 했건만, 결국엔 예민함이 폭발하고 만다.
내가 말하고도 깜짝 놀랄 만큼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간다.
“잘했으면 이겼겠죠. 못하니까 진 거고. 거기에 다른 건 없어요. 이기고 싶었는데··· 부족해서 졌어요. 그게 다예요.”
그래도 역시 뭐든 솔직한 게 좋은 걸까.
한바탕 쏘아붙이고 나니 마음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
인터뷰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팀의 승리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문득, 왜 당신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어린 나이부터 훌륭한 선수가 된 건지 새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팀의 승리보다 중요한 게 없다는 건 정말 당연한 얘기다.
“그래도 아직 2차전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상황이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아직 포기하진 않으신 것 같은데요. 2차전에 대한 각오 한마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으음··· 각오라.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거짓말쟁이란 걸 들켜버린 뒤라, 또 거짓말을 해봤자 누가 믿어주겠냐 싶다.
다만 다르게 말할 방법도 없다.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보단, 그저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을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2차전은 홈이니까, 홈 팬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시합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스스로도 후회 없는 그런 시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바엔··· 이게 낫겠지.
이건 그냥 내 바람인 거니까.
물론 저게 제일 어려운 거긴 하지만 말이다.
“예.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피오렌티나의 지안 리 선수를 모시고 인터뷰 나눠봤습니다.”
어쨌든, 생각보다 빠르게 끝난 심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터덜터덜, 인터뷰장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데.
인터뷰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잉글랜드에도 당신의 팬들이 엄청 많다는 거 알아주세요.”
···음.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아까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게 미안해지잖아···
“감사해요. 아, 그리고 아까는···”
그래서 그에 대해 죄송했다고 하니, 인터뷰어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제가 책임지고 좋은 기사 써드리겠습니다.”
···꼭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다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고, 그냥 고개를 숙인 뒤 인터뷰장을 빠져나왔다.
*
“미안하다!”
“우리가 미안해!”
“면목이 없다!”
···당황스럽다.
그냥 당황스러운 것도 아니고 심각하게 당황스러워, 내가 무슨 광경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끝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온 라커룸.
선배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어 조용히, 쥐 죽은 듯 들어와 짐을 챙기려고 했는데···
“한 대씩 때려줘!”
“난 한 대로 안 될 것 같으니까 두 대 맞을게.”
“아니, 넌 세 대 맞아야지.”
그런 내가 마주한 광경은, 라커룸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려뻗쳐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아, 아니.
다들 뭐 하는 거야.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무 당황스러워 일단 나도 무릎부터 꿇고 본다.
“다, 다들 뭐 하세요. 일어나요.”
“아니. 우린 편하게 앉아 있을 자격도 없어.”
“선배들이 할 말이 없다, 막내야. 아니, 우린 선배도 아니지. 이제부턴 네가 최고참 해라.”
“감히 우리가 어떻게 같은 눈높이로 앉아 있을 수 있겠냐.”
아니··· 머리 박고 사과해야 할 건 나인데.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 일어나라니까요.”
“안 돼. 그럴 수 없어.”
일어나라고 잡아당겨 봐도 다들 버텨대는 통에, 어찌할 바를 몰라 감독님을 쳐다본다.
보고만 계시지 말고 좀 도와 달라는 뜻으로.
“가, 감독님.”
“···”
그러자 감독님이 나와 선수들을 번갈아 쳐다보시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끄덕이신다.
“알았다.”
그리고는···
“······감독님?”
“미안하다.”
아니, 진짜 다 왜 이러시는 거야.
감독님은 또 왜 그런 표정으로 엎드리시는 건데.
“···하.”
진짜 정신 나가버리겠네.
*
“프로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그랬어. 벽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할까···”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주장이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뭔가 다른 차원의 축구인 것 같더라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전반 5분쯤에 이미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거 어렵겠다고.”
그 힘없는 목소리에 무어라 대답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저 듣고만 있는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네 덕분에 버텼지. 전반은. 우린 훈련 때 널 상대하잖아. 그거에 비하면 쟤넨 아무것도 아니다, 어떻게든 틀어막기만 하자. 그럼 막내가 해줄 거다. 실제로 꽤 버텼잖아? 게다가 네가 먼저 골까지 넣어줬지.”
피식 웃은 주장이 이내 한숨을 내쉬곤 말을 잇는다.
“와, 근데 후반엔 애들이 표정부터 싹 바뀌어서 달려드는데. 죽을 힘을 다해도 안 되는 게 있긴 하더라. 역전 골 먹혔을 때 이미 정신이 꺾였어. 덕분에 세 번째, 네 번째 골은 허무하게 먹혔지. 그러면 안 됐는데. 솔직히 반쯤 포기했거든. 이런 애들을 어떻게 이기겠냐고, 토너먼트 올라와 봤으면 된 거지, 하면서.”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동료들도 꺾이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주장은 아까부터 계속 그랬듯, 이번에도 내가 해야 할 사과를 자기가 대신 한다.
“미안하다. 네가 소리치기 전까지 우리 마음이 그랬어. 근데 정신이 팍 들더라. 막내는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저러고 있는데. 우린 하는 것도 없으면서 포기까지 빠르게 하고 있었으니.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더라고.”
“···”
“애초에 뭐, 그릇이 다른 거지. 우린 딱 거기까지였던 거고, 너는 우리보다 훨씬 높이 갈 그릇인 거고.”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왠지 듣기가 힘들어 한마디 하니, 주장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 채 피식 웃는다.
“인마,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야. 아무튼 미안하다. 못난 주장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 좀 더 좋은 주장 만났으면 너도 편하고 좋았을 텐데.”
···이건 듣기 힘든 걸 넘어 화가 날 정도인데.
덕분에 입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그런 말 하지 마시라니까요. 주장이 그러면 팀원들이 뭐가 돼요.”
“···응?”
“주장이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주장을 믿고 따르는 팀원들이 뭐가 되냐고요. 팀원들까지 볼품없어지잖아요.”
“···맞네. 그렇네.”
···씨이.
이게 건방지게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고 꾸중이라도 하지.
인정을 해버리면 내가 뭐가 돼.
내가 한숨을 내쉬니, 주장은 슬쩍 날 바라보곤 미소를 지었다.
“하아. 주장이 되어서 보듬어주진 못할망정, 막내한테 위로나 받고 있다니. 난 주장 자격이 없다. 다음 경기부턴 네가 완장 차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구요.”
“아냐. 감독님한테 말씀드릴래. 주장 너 주라고. 감독님도 바로 오케이 하실 거다.”
“싫다고 했어요. 만약 그러면 주장 권한으로 훈련장 100바퀴 돌릴 거예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하자 주장이 낄낄 웃는다.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게, 그래도 웃는 게 좋은 것 같다.
주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무튼, 다음 경기는 적어도 네 발목을 잡진 않게끔 해볼게. 적어도 후회 남는 경기는 하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저도요.”
주장이 손을 내밀기에 그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그걸 끝으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결국 억지로라도 웃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자고 마음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래놓고 한 경기 졌다고 바로 침울해지는 거 보면, 마음먹은 대로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보다.
···그래.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부었노라 자부할 수만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시합에서 져놓고 이런 소리를 하니 그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결국 시합에서 이기는 게 아니던가.
2차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고 싶다.
다만, 결과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어떤 결과든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만 가슴에 담고 있자.
“자아. 내립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버스가 멈춰 선다. 숙소에 도착한 모양.
복도 쪽에 앉았기에 서둘러 일어나 짐을 챙기고 터덜터덜 앞문으로 향한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우릴 보고 이야기하셨다.
“어깨 펴, 이것들아. 패배자들처럼 굴래? 적진 한복판일수록 당당하게 행동해야 상대도 만만히 안 볼 거 아니야. 우리 아직 안 졌으니까 어깨들 펴고 내려.”
“···예.”“예.”
“목소리들 봐라.”
“예!”
이에 고개를 끄덕이곤, 어깨에 힘을 주고 버스에서 내린다.
그러자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몇몇 팬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드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앞을 지나는 대신 당당히 걸었다.
그리고 유니폼을 내미는 팬들에겐 사인까지 해주고 숙소로 들어왔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아직 안 졌다.
< 고개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