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77)
“정말 멋진 경기였다고 한다면, 실례가 될까요. 하지만 무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저는 멋진 경기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멋진 경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인터뷰어의 과도한 칭찬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까딱 숙인다.
이렇게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칭찬을 받는 일은 언제나 어색한 일이다.
아직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개를 꾸벅이는 것뿐.
“감히 확신하건대, 팬들은 절대 실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되려 이번 시리즈로 팬이 늘어났을 거라고 봅니다. 그만큼 멋진 경기력이었고, 멋진 정신력이었습니다. 이런 경기를 보여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진짜 몸을 어떻게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손만 꼼지락댄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였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도 잠시.
충분히 그럴 정도는 되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이 겸손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뚫고 나온다.
우리는 멋진 경기를 했다.
끝까지 싸웠고, 최선을 다했다.
억울한 것도 없고 후회되는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내 안 좋은 습관도 고개를 들지 않는 듯하다.
듣기 좋은 말은 꼭 한번 꼬아서 듣는 못된 습관 말이다.
평소였다면 의심부터 했을 텐데.
몸을 간질거리는 저 말들이 곧이곧대로 들려온다.
물론 인터뷰어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도 한몫했을 거다.
“맨시티는 강한 팀이었습니다. 그렇죠?”
그 끝이 의문문으로 끝났을 뿐, 질문은 아닌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정도였습니까? 같은 그라운드 안에 서서 마주하고 있을 때,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어가 인상을 찌푸리고,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며 묻는다.
어느 정도였냐··· 글쎄.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뭐라고 표현해야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확 와닿을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본다.
맨시티 같은 팀을 상대하는 압박감···
“···내일이 개학인데 방학 숙제를 하나도 안 한 느낌?”
“···막막하다는 거군요.”
···으음.
조금 이상한 비유였을까.
인터뷰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그럴듯한 비유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세상을 산 기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저게 최선인 게··· 다른 비유로는 뭐 한여름에 겨울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느낌, 도시락을 열었는데 포크가 없는 느낌 같은 유치한 것들밖에 안 떠오르더라.
···앞으로 책 좀 더 많이 읽어야겠다.
어쨌거나, 이제 2차전까지 다 끝난 마당이니.
맨시티를 상대하며 느꼈던 소감을 솔직하게 술술 불어 놓는다.
“그만큼 잘하는 팀이었어요. 사실 16강전을 하기 전에, 맨시티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예. 알고 있죠.”
“···알고 계신다고요?”
“···큰 화제가 됐었잖아요?”
“···뭐, 아무튼. 그때 시합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었어요. 편안한 느낌. 모든 게 제자리에 잘 끼워 맞춰진 퍼즐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니면 완벽하게 그려진 동그라미 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요.”
이 사람, 똑똑한 사람이다.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인터뷰어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솔직히 막막했어요. 저런 팀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나름 답을 떠올려 봐도, 그게 정답일지 아닐지 모르니 불안하기도 했고요. 무섭게 느껴질 만큼 무서운 팀이었어요.”
속이 다 후련할 만큼 모든 걸 다 고백한다.
무서웠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왠지 지금은 딱히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왜인가 하면, 우선은 그렇게 무서웠지만 도망치지는 않았으니 떳떳하기도 했고.
문득 아빠의 말이 떠오른 것도 있다.
최고를 상대하는 사람도 최고라고 했으니까.
상대에 대한 칭찬은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랬군요.”
인터뷰어가 갑자기 씨익 웃는다.
그 웃음에, 뭔가 음흉한 내 속내가 들킨 기분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들킨 게 맞았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팀을 상대로 결국 정답을 찾아내셨잖아요. 그것도 다섯 번이나. 세상에. 맨시티를 상대로 다섯 골을 넣으셨다고요. 맨시티가 조별예선 6경기에서 내준 실점이 고작 두 점인데.”
상대를 치켜세울수록, 그 상대의 상대였던 우리도 치켜세워진다.
그걸 아빠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던지라,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있었던 것인데.
다만 인터뷰어가 짚은 포인트가 내가 의도한 바와는 조금 어긋나, 고개를 젓는다.
“제가 찾아낸 건 아니고 우리 팀이 찾은 거죠. 정확히는.”
“뭐, 그런 걸로 합시다.”
“···?”
뭐지, 저 찜찜한 반응은.
어깨를 으쓱이니 인터뷰어는 그저 웃을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막막하고, 두렵기까지 한 상황 속에서 정말 잘 싸웠지 않습니까. 합산 스코어에서 고작 한 점 차로 밀리긴 했지만,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1승 1패로 동률이기도 했죠.”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다.
“어떤 마음으로 이번 16강전을 준비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기에 이렇게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건 크게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라 곧바로 대답한다.
“후회만 남기지 않는다면 다른 건 필요 없다는 마음으로 하자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음··· 믿음직한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얼마나 더 믿음직해지려구요? 참 욕심이 많기도 하시군요. 그러니까 이렇게 매번 발전하기만 하시는 겁니다.”
···이건 칭찬이야, 욕이야.
“아무튼 좋습니다. 빨리 가서 쉬셔야 되니까, 이제 한 말씀만 더 여쭙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고 하면, 왠지 중요한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만.
웬만한 건 이미 다 한 것 같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왜죠?”
“그러면 우리가 원래 준우승인데, 대진운이 나빴던 걸로 치려구요.”
아무리 그래도, 뱉고 나서보니 진짜 아무 말이긴 했다.
ㆍㆍㆍ
“야. 너 이제 그만 커라.”
“···?”
“놀리는 재미가 없어지잖아. 좀 울고 불고해야 옆에서 놀리는 맛이 있지. 아무렇지도 않아 하니까 재미가 없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몸에서 김을 풀풀 풍기며 식탁에 앉으려는데, 앉기가 무섭게 지우가 또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놀리는 맛은 또 뭐야.
헛소리엔 헛소리로 대응하는 게 제일 좋다.
“잼 저기 냉장고에 있어.”
그러자 지우가 미간을 찌푸리곤 경악하듯 입을 벌리며 날 쳐다본다.
그 표정과 싸해진 공기를 애써 모른 척하곤 밥이나 한술 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경멸할 건 없잖아.
“네가 생각해도 어이없지? 너 얼굴 빨개졌어.”
“···씻고 나와서 그래.”
“뭘 어떻게 씻으면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냐? 너 지금 인간 토마토 됐다니까.”
“···”
···뭐래.
누가 얼굴이 빨개졌다고··· 라기엔 귀가 뜨끈뜨근한 게 느껴져서 할 말이 없다.
때문에 고개를 처박고 밥을 입에 밀어 넣으니,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맛이지. 이 맛이야. 역시 넌 이게 맞다구.”
“···넌 사람 놀리는 게 재밌냐.”
“아니? 재미없어. 근데 너 놀리는 건 재밌어.”
“왜 하필 난데.”
“그야, 그냥 네가 제일 타격감이 좋으니까?”
참나.
어이가 없으려니.
“와, 근데 다시 생각해도 대박이다. 재미없다니까 잼 저기 냉장고에 있대.”
“···그만해줄래.”
“왜? 네가 생각해도 썩은 드립이지? 응?”
“···”
킥킥킥.
얄밉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킹받는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거늘.
애석하게도 딱히 맞받아칠 구석은 없다.
잼 냉장고 얘긴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드립이라···
음.
이럴 땐 차라리 역공으로 가는 게 낫다.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역습이니까.
“···”
근데··· 딱히 공격할 게 없는데.
그러고 보면 얘는 왜 놀릴 거리가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재미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뭐라도 생각해 내봐.
놀릴 거리를.
떠올려라, 이지안···!
“뭘 그렇게 고민하냐? 인간 토마토.”
···아.
토마토 하니까 떠올랐다.
“···너도 아까 얼굴 토마토 색깔이었거든.”
힘겹게 찾아낸 카드를 내미니, 지우가 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내가 언제?”
“아까···”
“그니까 아까 언제.”
···음.
그런데 정작, 내가 말을 꺼내놓고도 대답을 못하겠는 것이.
이런 장난을 치기에 나는 지우처럼 뻔뻔하지 못한 탓.
“내 얼굴이 언제 토마토 색깔이었냐고.”
“아까.”
“아까가 언제냐고!”
하지만 계속되는 지우의 추궁에, 그냥 평소처럼 가만히 있을 걸 괜히 덤볐다는 후회와 함께.
이 상황을 모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야 만다.
“···시합 끝나고.”
“시합 끝나고?”
“안아주니까 얼굴 토마토 색깔 됐잖아.”
“······뭐라고?”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일 뿐.
놀림의 기본은 상대의 행동이나 상태를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 게 아니던가.
어떻게 아냐면 지우한테 당하면서 배워서 아는 거다.
“뭐, 뭔 헛소리야. 어이없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턴 쉽다고.
한번 뻔뻔해지고 나니 용기가 생긴다.
당황하는 지우의 반응이 더욱 그 용기를 증폭시킨다.
역습은 한번 나갈 때 제대로 나가야 하는 법.
“왜 얼굴 빨개졌냐.”
“누가? 내가?”
“어. 뭐, 부끄럽기라도 했냐.”
“···허, 참. 어이가 없네.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고? 왜? 내가 왜?”
···통한다.
통하고 있다.
역습을 올라갈 때 상대의 수비가 대열이 깨지고 무너지는 것처럼.
지우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그 모습에, 나는 아까 지우가 했던 말을 완벽히 이해해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을 놀리는 게 재밌다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 얘는 왠지 재밌다.
“글쎄. 왜일까.”
“아니, 내가 묻잖아. 내가 왜 부끄러워하는데? 너, 설마 혼자 이상한 오해하는 건 아니지?”
아닌 척해보려 하지만, 눈에 다 보인다.
지우는 내 역습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수비 라인이 뒤로 물러나는 게 보인다.
동시에 공격할 생각도 못 하고 있고, 실수도 나오고 있다.
스스로 내준 빈틈을 찌르고 들어간다.
“오해? 무슨 오해?”
“···어?”
“내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건데.”
“그, 그야 네가 알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그랬잖아. 혼자 이상한 오해하는 거 아니냐고. 그 오해라는 게 뭔데. 난 모르겠는데.”
나조차 놀랄 만큼 말이 술술 나온다.
원래 공격이 수비보다 더 재밌거든.
“아니, 몰라. 모르겠고, 일단 애초에 얼굴 빨개진 적이 없는데 무슨.”
“분명히 봤는데.”
“빨개질 이유가 없다니까?”
어이가 없어도 단단히 없는지, 억울해 보이는 지우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고 하나.
웃었다간 폭력 사태로 번질지도 모르니 참아낼 필요는 있다.
다만, 역습이란 건 원래 어설프게 하면 안 되는 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마무리까지 짓고 돌아와야 하는 게 역습이다.
마무리는 지어야지.
“뭐, 나랑 안는 게 부끄러웠나 보지.”
내가 이렇게 뻔뻔할 수도 있었던가.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얘기라, 말을 뱉어놓곤 몸을 긴장시킨다.
당장 숟가락이 날아와도 피할 수 있게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지우가 화를 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왼쪽으로 숙여서 피하고, 적당히 술래잡기를 좀 하다가.
그러니까 너도 사람 그만 좀 놀리고 밥이나 먹자고 해야겠다.
완벽한 계획이다.
혼자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만 흘끗 움직여 지우의 동태를 살폈다.
그런데···
“와, 뭐 잘못 먹었나···”
음.
이건 계획이랑 전혀 다른데.
“진짜 뭐라는 거야···”
지우는 그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중얼거릴 뿐, 숟가락을 집어 던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