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2)
토리노의 그 팀 -1
“오케이, 여기까지. 잠깐 쉬자.”
“후우, 넵.”
“뭐야. 호흡이 멀쩡한데? 훈련이 별로 안 힘들었나?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이어야 되는데?”
“네? 아, 아.”
“하하! 농담이다. 농담.”
루카 코치님의 말에 실없이 웃는다.
에고고.
오늘도 나는 팀 훈련을 마치고 루카 코치님과 함께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코치님과 드리블과 슈팅을 훈련했고, 이어서 체력 훈련까지 마쳤다.
그래도 훈련을 시작한 지 좀 됐다 이건지, 이제는 예전처럼 막 죽을 것 같고 그렇지는 않다.
갈수록 훈련 세션이 추가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몸이 적응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여름이 지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젠 이러고 있으면 좀 시원하네요.”
“그러게. 선선해지네.”
확실히 날이 좀 선선해지긴 했다.
여전히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이렇게 개인 훈련을 할 때쯤이 되면 태양의 각도가 확연히 낮아진 게 느껴진다.
벌써 가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처음엔 여름이었는데. 그 흐른 시간 만큼 열심히 훈련해온 날이 하루하루 쌓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시간은 흐르는구나. 나도 바뀌고 있고.
“아 참.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첫 주급 들어왔겠네?”
“아, 네.”
“어땠어, 기분이?”
“음··· 감사했죠. 코치님한테도 감사하고, 감독님이나 친구들, 팀한테도 그렇고···”
“나한테 감사할 게 뭐 있어?”
“코치님 아니었으면 계약 자체를 못 했을지도 모르잖아요.”
“하하. 내가 뭘 했다고. 네가 열심히 해서 따낸 거지.”
코치님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땀이 식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날씨나 태양의 높낮이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체감케 하는 건 지금 같은 순간이다.
코치님과 이렇게 개인적인 얘기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나를 발견할 때 말이다.
처음엔 어색했었는데.
아니, 어색하다기보단 코치님이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 코치님뿐만이 아니라 모두 다. 난 그저 투명인간이었으니까.
훈련장에 왔다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한 날이 더 많았었지, 아마.
같이 훈련하던 아이들이 내 이름도 잘 모를 정도였으니.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코치님과 잡담도 나누고, 팀 훈련 땐 말도 많이 한다. 라커룸에선 가끔 아이들이 내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나는 웃으면서 그 장난을 받아줄 줄 알게 되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전의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그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게 오히려 편하고 좋다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하지만 훨씬 즐거운 건 지금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난 그게 진짜 편하고 좋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필요한 건 약간의 용기였을 뿐인데. 아주 약간의 용기를 내서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내가 먼저 해보겠다고 말을 하고. 그럼 됐을 텐데.
지금처럼 말이다.
이 작은 용기를 내기가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나만의 외딴 섬에 숨어 지냈던 걸까. 그저 하루, 하루 굶어 죽지 않는 것에 만족하기만 했지, 다시 바다로 나설 용기는 왜 내지 못했던 걸까.
그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는 걸 알지도 못하고.
정말 바보 같았었네, 나.
“뭐, 주급 받으면 해보고 싶었던 건 있나? 코치님은 프로 계약하자마자 술 먹으러 갔었는데.”
“···술이요?”
“난 스무 살에 계약했었어, 인마.”
“아··· 전 아빠랑,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랑 밥 먹었어요. 선물도 좀 사주고.”
“···나랑 완전 비교 되는구만. 친구는 여자?”
“네. 여자인데 그냥 친구예요.”
“여자친구네.”
“···그냥 친구요.”
“그냥 친구한테 첫 주급으로 선물을 사줘?”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서 그래요.”
“그걸 여자친구라고 하는 거야.”
“그냥 친구라니까요.”
“알았다, 알았다. 화내진 말고.”
코치님의 장난에 내가 입을 삐죽 내밀자 코치님이 껄껄 웃으신다.
“어쨌든 뭐, 소중한 친구인가 보네.”
“···그렇죠.”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소중한 친구이긴 하지.
이유야 어찌 됐든, 외딴 섬에 숨어 있던 내가 용기를 내게 된 게 지우 때문인 건 사실이니까.
나만의 왕국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외딴 섬이라는 걸 들키기 싫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배에 오르는 용기를 내어야만 했었다.
지우에게 더 크고 좋은 섬이 내 섬이라고 소개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두렵지만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갔고.
근데, 그러면서 느꼈다.
바다가 생각보다 잔잔하다는 걸. 분명 내 기억 속 바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무서운 곳이었는데. 막상 다시 용기를 내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충분히 갈 만했다.
“뿌듯하고,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가고 그랬겠네. 막 자랑스럽고. 그치?”
“뭐··· 하하.”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안 그래?”
“···맞아요. 들었습니다. 엄청.”
코치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많이 들었다.
어쨌든 난 아직 그 섬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은 운 좋게 잔잔한 바다 위를 가고 있지만, 언제 또 큰 파도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단순히 거짓말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이제는 내가 외딴 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노를 젓는 수밖엔 없다. 나는 이제 폭풍우를 만나도 외딴 섬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꼭 크고 아름다운 섬에 도착할 것이다.
“코치님.”
“응?”
“저, 이번 주 경기 잘하고 싶어요.”
“···응?”
“그래야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응. 그렇구나. 잘할 거다.”
이번 주말, 우리 팀은 토리노로 원정을 간다.
토리노의 그 팀이 우리의 상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무섭긴 하다.
가기 싫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나는 피렌체가 좋고 토리노가 싫다. 거기서 만난 파도에 휩쓸려 외딴 섬까지 표류했던 나였으니까. 다시 거길 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고 싶다.
여기서 또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더 큰 바다를 향해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용기를 내면, 그 뒤론 그렇게 어려울 게 없다는 걸.
그래서 이번에도 용기를 내려 한다.
지난 월요일, 아빠랑 지우와 함께 밥을 먹고 쇼핑을 했던 것도 그 용기를 낼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날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빛들을 보니 없던 용기도 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재밌게 경기해보자고.”
“네.”
“별거 없어, 걔네. 알잖니?”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덧 주황색이 된 태양을 바라봤다.
“···.”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런 똥폼을 잡고 있는 거지?
외딴 섬은 뭐고 폭풍우는 또 뭔데.
우웩, 오글거려.
하··· 이걸 생각으로만 해서 다행이다. 만약 일기 같은 거라도 썼으면, 나중에 보고 이불을 찼겠네. 중2병 올 나이도 지났는데 왜 이러지.
남자는 가을을 탄다더니.
가을 햇살이 이렇게나 무섭다.
ㆍㆍㆍ
“짐 빠뜨린 사람 없지?”
“없습니다!”
“좋아. 출발합시다.”
부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출발한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어른 몇 명을 태운 이 버스의 목적지는 토리노.
느린 속도로 시내를 빠져나와, 창밖으로 드넓은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버스는 제법 빠른 속도를 내며 나아간다.
그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만 천천히 가면 안 되나.
천천히 갔으면 좋겠는데.
굳이 빨리 갈 필요 있나?
“···.”
사실 토리노는 피렌체에서 꽤 멀다.
아니, 상당히 멀다. 차로 5시간 이상을 가야 하니까.
말이 5시간이지, 좁은 버스 안에서 보내는 5시간은 거의 10시간과도 같다.
심지어 잘 수도 없다. 지금 자면 밤에 잠을 못 자서 내일 경기에 영향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 천천히 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조금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용기를 내니 어쩌니 했다지만, 여전히 나는 무섭기 때문일까.
“···.”
처음 토리노에 도착했을 때가 떠오른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공항에 딱 내리는 순간 느껴지는 낯섦.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외국인이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공기의 냄새마저 달라서 정말 모든 게 낯설었다.
그래서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탈 때까지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라고 해봐야 13살 때인데. 무슨 5살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내겐 낯설음이 곧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
첫 훈련을 앞뒀을 땐 더 심했다.
처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막 긴장이 되었던 것처럼 떨렸었다.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잘 정도였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섭다는 얘길 하기엔 이미 멀리 와버렸으니.
배가 아픈 것도 꾹 참고 훈련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곳의 아이들에겐 내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을 거다.
이해한다. 걔들이 먼저 말을 거는데, 난 한마디도 대답을 하지 못했으니까.
통역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긴 했지만, 그분이 항상 내 곁에 계시는 건 아니었다.
라커룸에서나, 식당에서나··· 아이들은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쳤다. 뭘 막 던지기도 하고, 내 음식을 집어 먹기도 하고.
한데 내가 그걸 받아주지 않자, 장난은 점점 괴롭힘으로 바뀌어갔다.
하루는 라커를 열었는데 쓰레기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먹다 남은 과자 봉지나 우유갑, 바나나 껍질 등으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내가 그 라커를 여는 순간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쯤 되니 나도 참을 수 없어서 통역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었나.
코치님이 아이들을 혼냈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냥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로 끝.
나에게 준 해결책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빨리 적응할 생각을 하라고,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 건 내 문제도 있다고 했었다.
결국 축구만 잘 하면 다 해결될까 싶었는데··· 그것도 잘 안 됐다.
안 그래도 별거 없던 실력마저 잘 안 나오기도 했고, 아이들도 도와주지 않았다.
훈련 때 나에게만 세게 몸싸움을 부딪치던 녀석도 있었고, 내게는 죽어도 패스를 주지 않는 녀석도 있었다.
실수인 척 공을 차서 나를 맞추는 건 매일 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았다.
그렇게 당했으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든지, 아빠에게 일찍 말이라도 하든지 했어야 했는데.
나는 양쪽 모두가 무서웠다.
“···.”
사실, 그때의 날 바보 같다 하기엔··· 지금의 나도 크게 바뀐 건 없는 듯하다.
아직도 무서워서 버스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까.
과연 내가 경기에 나서, 그 아이들에게 맞서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까.
지금도 모르겠기는 하다.
하지만··· 어차피 다 마찬가지였다.
나폴리와의 경기는 뭐 내가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뛰었었나. 그저 용기를 내어서, 간절하게 뛰었을 뿐이었잖아.
이번에도 똑같은 거다.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서워도 하는 것.
이것만큼은··· 나도 이젠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 후회를 하고 있다.
그땐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 모든 걸 외면하고만 있었을까.
왜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후회를 없애고 싶다.
이번 기회에 말이다.
우우우웅-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지우의 메시지였다.
지우: 학교 끝났당
지우: 넌 가는 중?? 버스 타고??
그렇다고 답장을 보내니 곧바로 답장이 또 온다.
지우: 이번에 전에 있던 팀이랑 한다며
지우: 잘 안 맞아서 나왔다고 했던
지우: 빠이팅하고 오셈!!
지우: 누나 없다고 잉잉 울지 말고
지우: 아랐지???
···잉잉 울긴 누가 운다고.
좀 창밖 풍경 보면서 무게 좀 잡으려고 했더니만. 지우는 가만히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지.
깊고 어두운 생각에 빠질 때마다 지우가 말을 걸었고, 지우와 말을 하다 보면 그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지우가 환기를 시켜줬기 때문이었겠지.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나: 다 죽여버리고 올게
그렇게 보냈다가··· 문득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메시지를 삭제하려는데, 이미 1이 사라져있었다.
“···.”
나는 화면 가득 ‘ㅋ’자가 올라오는 걸 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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