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3)
토리노의 그 팀 -2
결전의 날이 밝았다.
평소보다 일찍 맞춰둔 알람보다도 먼저 일어나 이불을 개고, 깨끗이 씻고 나와 짐을 챙겼다.
아마 내가 1등이 아닐까 생각하며 로비로 나왔더니 이미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확실히, 오늘 시합은 내게만 중요한 시합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그룹 2위. 1위가 토리노의 그 팀이다.
1위가 되기 위해서 1위를 잡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 물론 지금 유소년 시기에 팀 성적은 크게 중요치 않다지만, 그래도 1위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
또한, 피오렌티나와 그 팀은 더비 관계다.
어제부터 그 팀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고 감독님이 몇 번이나 얘기하셨다.
감독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건 처음이어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나도 더비는 더비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다들 장난기 하나 없이 결연한 얼굴들이었다.
나 역시 그 아이들 사이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가자.”
시간이 되고, 우리는 감독님을 따라 숙소를 나섰다. 경기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갔는데, 익숙한 거리의 풍경이 딱히 반갑진 않았다.
나는 최대한 하늘만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나는 멀리서 경기장을 발견했을 때부터 속이 울렁이는 느낌이었다.
저 팀은 자신들의 훈련장을 곧 경기장으로 쓴다. 시설이 경기장으로 써도 충분할 만큼 좋은 편이라.
즉, 오늘 내가 뛰어야 할 경기장이 내가 매일 아침마다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훈련장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단 하나의 좋은 추억도 없는 곳.
그곳에 발을 들이자 안 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당당히 폈다.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아니니까.
이젠 이곳의 누구도 날 건드릴 수 없을 거고, 건드린다 해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그러한 생각을 되뇌며 라커룸에 들러, 쓰레기가 가득했던 라커에 짐을 보관한 뒤 옷을 갈아입고 필드 위로 나섰다.
코치님의 구령에 따라 몸을 풀고, 슈팅 연습을 하면서 감각을 깨웠다. 그렇게 적당히 몸이 달궈졌을 때쯤, 상대 팀 아이들이 하나, 둘 필드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나한테만 패스 안 주던 놈, 훈련인데도 거칠게 태클을 하던 놈, 날 제일 지독하게 괴롭히던 놈, 그 옆에서 제일 크게 웃던 놈.
여전한 얼굴들이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마음 약해질 필요 없이, 나만의 복수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포르자-!”
“비올라-!!”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오늘, 우리의 포메이션은 평소와 약간 다르다.
4-2-3-1 포메이션이 우리의 기본 포메이션이나, 오늘은 4-4-2의 형태로 나선다.
양쪽 윙어들이 좀 더 수비적으로 내려서고, 나와 파트너 엔조 역시 1차 수비에 더 신경 써 줄 것을 지시받았다.
나폴리를 상대할 때도 쉽지 않았지만, 오늘 상대는 나폴리보다도 강한 상대다.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원정 경기인 만큼.
단단하게 수비를 서면서 역습 찬스를 노리는 것이 감독님의 지시.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베스트였다.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상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파아앙-
파아앙-
여유롭게 공을 돌리며 경기를 시작하는 상대.
우리는 압박을 올라가는 대신 자리를 지키며 상대가 먼저 들어오길 기다린다.
상대의 포메이션은··· 4-3-3인 듯하다.
양쪽 윙들은 넓게 벌려 사이드 공간으로 향하고, 중앙의 미드필더들은 우리들 사이로 스며들어 온다.
어떤 식으로 공략해 올까.
어쨌든 나도 저쪽에서 축구를 배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큰 틀은 알고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하지만 무작정 그것들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다. 축구라는 건 변수가 엄청나게 많은 스포츠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일 좋은 건 눈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그에 따른 최적의 판단을 내려 대처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경기장 한가운데 서서, 쉴 틈 없이 주변을 살피며 흐름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은 오늘 내게 평소 역할에 더해 1차 수비 상황에서의 지휘권까지 맡기셨다.
어떨 때는 기다리고 어떨 때는 압박을 나갈지에 대한 판단, 라인 컨트롤, 좌우 밸런스를 잡는 역할까지.
내가 맡은 역할이 커진 만큼, 집중력을 발휘하며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다.
“라인 유지!”
아직 아무런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밸런스를 잘 잡고 있었다.
덕분에 상대도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공을 빙글빙글 돌릴 뿐이다.
우리의 밸런스를 깨뜨리기 위한 상대의 선택은 무엇일까.
“···.”
이쯤에서 잠깐 발상을 바꿔서, 만약 내가 상대라면 어떤 식으로 이 상황을 풀어갈지 생각해 본다.
음······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나는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외쳤다.
“간격 좁혀!”
결국은 사이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왼쪽에서 움직임이 감지됐다.
상대 윙어가 안쪽으로 들어와 중앙 미드필더처럼 서고, 녀석의 원래 자리엔 풀백이 올라가고 있었다.
한쪽에서 순간적으로 수적 우위를 만들어 볼을 전진시키려는 움직임이다. 내가 왼쪽으로 움직인 건 그걸 통제하기 위함.
타타탓-!
내가 움직이자 마치 자석이 끌려오듯, 내 주변의 동료들 역시 위치를 옮긴다.
순식간에 왼쪽 공간이 좁아지고, 이쪽으로 공을 전개하려던 상대는 포기하는 듯 이내 백 패스를 선택했다.
좋아. 일단은 몰아냈다.
“위치!”
다시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며 아이들에게 외친다. 우리는 금세 전열을 재정비했고, 다시금 밸런스를 맞췄다.
그러자 또다시 주변을 빙빙 맴도는 상대의 공 돌리기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
그걸 눈으로 쫓던 나는, 순간 터치 라인 밖의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상대 팀 벤치 쪽의 대머리 아저씨.
잊을 수 없는 대머리 코치다. 괴롭힘을 당하는 건 내 잘못도 있다고 했던 그 코치가 저 사람이니까.
그 코치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잘 하고 있다!”
그 눈빛이 굉장히 기분 좋았다.
*
상대는 신중했다.
아니, 어쩌면 신중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가 만든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점유하면서 상대의 전진을 저지했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먹히고 있었다.
단순히 기다리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역습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상대가 무리하게 올라왔을 때, 우리는 과감히 붙어 수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공을 빼앗아낸 뒤엔 점유를 하기보다 곧장 역습을 시도하며 상대 진영을 노렸다.
그 편이 상대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 거라는 게 감독님의 지시였다.
우린 그걸 착실히 수행했고, 그것이 꽤 잘 먹혀들고 있었다.
이것이 대략 전반 20분까지의 상황.
“집중력 놓치면 안 돼!”
벤치의 사인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며 아이들에게 외친다.
아이들을 향해 외치는 말이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씩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대가 다가온다. 나 역시 20분 내내 온 집중을 다 하고 있었기에 조금씩 놓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상대 역시도 집중력이 떨어질 시기라는 거다.
나는 이쯤에서 템포에 변주를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당황할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과감히.
“···.”
조용히 상대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타이밍을 잰다. 우리가 워낙 낮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보니, 상대는 후방이 아닌 중원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고 있다.
그렇게 높은 위치에서 천천히 공을 돌린다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인데도, 상대는 그런 자각이 없는 듯 느슨하게 공을 돌릴 뿐이다.
이런 걸 안전불감증이라고 하나.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놔뒀으니, 그렇게 해도 위험하지 않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원하던 바다.
나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게끔 가볍게 뛰면서 공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면서 안일한 패스가 나올 때만을 기다리다가······
지금.
타타탓-!
전방을 향해 튀어나간다.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보내는 횡 패스가 느리게 굴러가는 순간이었다.
그 패스를 중간에서 끊겠다는 생각으로 달린다.
“올라가!”
등 뒤에서 주장의 외침이 들려온다.
동시에 양옆에서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소리가 들린다.
“붙어!”
이제부터는 압박이다.
압박이란 팀 적인 움직임이다. 혼자서 하는 압박은 헛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올라가야 의미가 있는 게 압박이다.
때문에 내가 올라가자 다들 따라서 올라오기 시작한 건데, 상당히 든든했다.
마치 나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인 올려!”
소리까지 지르면서 맹렬하게 달려드니, 지금껏 유유자적하던 상대도 주춤주춤하면서 당황하는 게 보인다.
“뒤로!”
횡 패스를 끊을 수는 없었으나, 공을 잡은 녀석에게 달려들자 녀석이 다급히 백 패스를 넘긴다.
타타탓-!
그 녀석을 지나쳐 계속해서 공을 쫓는다.
끝까지 따라가서 압박할 생각이다. 감정적인 판단은 아니다. 지금껏 공격만 생각하던 상대라, 후방의 포지셔닝이 엉성한 게 보여서다.
“붙는다! 뒤로 줘!”
빠르게 다가가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려는 듯, 도미노처럼 백 패스가 이어진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다. 상대 입장에선 그게 안전하다고 느낄 테니까. 본능적인 거다.
하지만 골대와 가까운 쪽에서 공을 빼앗길수록 위험하다는 건 상식이다.
상대가 공을 뒤로 무를수록, 빼앗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득점 확률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좁혀!”
물론 상대가 정말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경우 우리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긴 하다.
멀리 걷어내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저쪽에서 축구를 배울 때, 이런 상황에서 걷어내는 건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만 선택하라고 배웠었다.
그보다 먼저 패스나 탈압박을 통해 빌드업하는 게 먼저고, 그걸 할 줄 알아야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배웠었지.
그러니 지금도 상대는 어떻게든 이 압박을 뚫고 나오려는 시도를 할 거라는 게 내 생각.
그런 상대의 움직임을 읽으며, 나는 박스를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놓치면 안 돼!”
어쨌든 상대는 강팀이다. 어설픈 압박 정도는 풀어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다.
그러니 적당한 압박으론 간담을 서늘케 할 수도 없을 거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다행히 나는 원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공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특히, 공이 상대 최종 수비수인 센터백의 발에 들어가는 순간.
거의 부스터를 켠 것처럼 내 발이 움직였다.
저 친구가 훈련 때마다 나한테만 거친 태클을 하던 그 친구거든.
이름이 뭐였더라.
제롬이었나.
타타탓-!
제롬을 향해 달려든다.
순간 녀석의 눈빛에서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 보인다. 생각보다 나의 압박이 빠르게 다가왔는지, 아직 줄 곳을 못 찾은 모양.
그렇다면 쉽게 키퍼에게 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녀석을 향해 달려드는 게, 고작 나였으니까.
파아앙-!
녀석이 패스를 시도한다.
백 패스가 아니라 오히려 전진 패스다.
그 패스가 내 왼쪽으로 향하는데, 발을 뻗는다고 해도 닿을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왼쪽엔 분명 브루노가 있다.
나에게 벗어날 수는 있어도 우리가 펼쳐놓은 그물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파아앙-!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브루노다. 브루노가 수비 뒤에서 튀어나오며 패스를 가로채는 게 보였다.
“앞으로!”
나는 그대로 제롬을 등지면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패스가 온다.
발밑으로 오는 정직한 패스.
타탓-!
이걸 지켜보고만 있을 제롬이 아니다.
등 뒤에서 녀석이 달려드는 게 느껴진다.
내 위치가 박스 안은 아니라서··· 강하게 부딪쳐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
두렵다.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녀석과 강하게 부딪혀 넘어져도 난 별말을 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겨내야 한다. 그때에 비해 나는 몸도 더 커졌고, 루카 코치님과의 특훈으로 몸싸움도 늘었다.
뭣보다, 이젠 나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무지 두렵지만 한 편으론 녀석이 예전처럼 강하게 부딪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 내가 발전했는지, 아님 그대로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퍼어억-!
“큭···!”
등 뒤로 충격이 전해져 온다.
녀석이 어깨로 내 등을 들이박았다.
하지만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 엉덩이로 녀석의 무게 중심을 밀어내며 버텼다.
이상한 기분이다.
제롬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파아앙-!
그렇게 버티면서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내게 오는 패스를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받아내며 방향만 살짝 튼다.
그리고,
타탓-!
제롬을 축으로 삼아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동시에 왼발로 공을 직선으로 차놓으며 박스 안을 향해 치고 들어간다.
뚫었···
“···큭?”
뚫었다고 생각한 순간, 발목에서 충격이 느껴지며 세상이 빙글 돈다.
콰당-!
땅이 얼굴을 향해 다가오길래 간신히 팔로 막았다. 태클을 당해 넘어진 건가.
이거··· 익숙한 경험이다. 제롬의 거친 태클에 넘어지던 나. 수십 번도 더 당해서 그런지, 그때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날 파고든다.
“레프리-!!”
“파울이요!”
우리 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주심이 반칙을 선언할지 말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공을 깔고 앉은 제롬이 팔로 땅을 짚으며 일어나는 게 보인다.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멈춰 세웠던 모양이다.
재빨리 일어난 녀석이 공을 갈무리해 박스 안에서 벗어나려는데···
타타탓-!
이번엔 내가 녀석의 뒤를 향해 달려든다.
이젠 태클을 당하고 넘어져도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으니까.
퍼어억-!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을 향해 뒤에서 다리를 뻗었다.
그 과정에서 내 발에 제롬의 다리가 차인 모양인데, 상관하지 않고 삐져나온 공을 쏙 빼 왔다.
타탓-!
그리고 다시 골대를 향해 돌아서, 발바닥으로 공을 앞으로 굴린 뒤 큰 보폭으로 달려든다.
딱히 구석을 노릴 필요도 없을 만큼, 골대에 빈 공간이 많이 보였다.
뻐어어어어엉-!
최대한 빠르고 강하게 처리한 그 슈팅은,
슈우우우우웅-
철썩-!!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
출렁이는 골망을 보는 순간.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슬쩍 주심을 바라보자 하프라인을 가리키는 게 보인다. 득점 선언이다.
하지만 오늘은 세레머니를 할 필요가 없다.
지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세레머니 대신 뒤로 돌았다.
“···.”
그리고 제롬을 쳐다봤다.
내가 녀석을 노골적으로 쳐다보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제롬이 일어나 나를 마주 바라본다.
이 상황이 웃겼는지, 녀석이 한쪽 입꼬리를 들며 말했다.
“이 새끼, 많이 컸네?”
나는 그게 무서웠지만, 겉으로 티는 내지 않고 오히려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을 내려다보면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러게. 내가 많이 컸나 봐. 너가 이렇게 작았나?”
눈앞의 제롬은 내 기억 속 제롬보다 훨씬 작았다.
“이···”
내 말에 제롬이 인상을 찡그리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와아아아아-!”
“예에에에-!”
우리 팀 아이들이 나를 덮쳐들었다.
그 탓에 제롬은 입도 다 떼기 전에 아이들에게 밀려나며 우스운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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