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4)
토리노의 그 팀 -3
“올라가!”
“막자!”
내 골을 기점으로 경기는 불이 붙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 입장에선 20분 넘게 경기를 주도했는데,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는 바람에 스코어를 끌려가게 됐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테고.
우리는 그런 상대의 공세를 막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한편, 우리의 압박이 충분히 통한다는 걸 확인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걸 다 떠나서.
서로가 감정적으로 흥분한 느낌이었다.
나를 포함해 지금 필드 위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17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묘하게 팽팽했던 긴장감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면서 필드의 열기가 화르륵 타올랐다.
뭐랄까.
이때부터는 서로 배운 대로, 두 번 세 번씩 생각하며 플레이하기 보단 충동적인 플레이가 늘었달까.
경기가 전보다 훨씬 난잡해지면서, 그 사이에서 난 냉정을 유지하고 판단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더 집중을 해야 했다.
특히 더 감정적으로 변한 건 상대였다.
나 따위에게 골을 먹혔다는 게 분명 자존심이 상했을 터.
득점한 뒤 우리 진영으로 돌아가 경기가 재개되길 기다리는데, 녀석들이 모여서 무어라 얘기를 하는 게 보였었다.
그중에서도 제롬이 막 열을 내는 게 보였다. 아마 나를 괴롭혀서 기를 죽여놓자는 말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예전처럼 말이다.
내가 피해의식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경기가 재개된 뒤, 나를 향한 압박이 훨씬 더 거세졌으니까.
지금처럼 말이다.
“뒤에 간다! 조심!”
봐라. 내가 공을 잡자마자 조심하라는 외침이 들려 올 정도다.
파아앙-!
공을 잡기가 무섭게 재빨리 패스를 넘기면서 움직인다.
그러자 내가 원래 서 있던 자리로 거칠게 달려든 녀석이 아쉽다는 듯 나를 한 번 바라본 뒤 제자리로 돌아간다.
가만히 있었으면 부딪혔겠네.
“···.”
솔직히 모두가 날 이렇게 노린다고 생각하니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티 낼 수는 더더욱 없다. 그게 저 녀석들이 원하는 것일 테니까. 상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면 시합은 어려워질 뿐이다.
때로는 아닌 척 허세를 부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걸 나는 지우 덕분에 배웠다. 그리고, 내가 연기에 꽤 소질이 있다는 것도.
축구 천재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 놓고도 아직 들키지 않은 내가 아니던가.
나는 무서운 티를 내는 대신,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이며 볼 터치 횟수를 늘렸다. 우리가 공을 잡을 때, 상대는 강하게 압박했고 우리는 그 압박으로부터 소유권을 지켜야 했다. 내가 그걸 해줘야 했다.
우리 팀 아이들도 날 적극적으로 도왔다.
파아앙-!
중앙에서 내가 공을 잡자 사방에서 상대가 달려든다.
순간 멈칫하면서 어느 쪽으로 빠져나가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뚫어!”
“막아!”
우리 팀 아이들이 합세하여 몸으로 상대를 저지한다. 마치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넌 먼저 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모습에 괜히 코끝이 시린 건 내가 너무 감성적인 탓일까? 이제는 나도 혼자가 아니다. 내 편이 있다.
타타탓-!
아이들이 비집어낸 틈으로 공을 몰고 빠져 나온다. 좁은 공간을 벗어나자 곧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축구는 11대 11의 싸움이다. 나에게 2명 이상이 달라 붙는다면 다른 쪽이 빌 수밖에 없다. 지금은 오른쪽 사이드가 그랬다.
뻐어어어엉-!
그 공간을 향해 길게 전환 패스를 때려 놓고 전방을 향해 달린다.
전반 막판이라 호흡이 무거웠지만 신나게 달렸다.
오늘만큼 경기가 재밌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
“파이팅, 파이팅! 조금만 더 힘내자! 할 수 있다!”
루카 코치가 후반전을 위해 필드로 나서는 아이들에게 외친다.
그런 뒤 벤치로 돌아와 토니 감독 옆에 앉은 루카 코치는, 이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떻게, 바로 연락할까요?”
“···뭘?”
“빈첸초 감독님한테요. 여기 피오렌티나의 미래가 있으니 빨리 와서 데려가라고!”
“아직 경기 안 끝났다.”
“그게 뭐요! 결과가 중요합니까? 지안이 유벤투스 애들을 상대로 하나도 안 쫄고 오히려 압도를 해버렸는데? 극복! 극뽀오옥!”
“···넌 이탈리아 남자치고도 성격이 너무 급해.”
루카 코치의 호들갑에 핀잔을 주면서도, 토니 감독 역시 입가의 미소를 숨길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어떤 때보다 긴장을 많이 했던 토니 감독이었다.
물론 유벤투스는 만날 때마다 긴장이 되는 상대였지만, 오늘은 궤를 달리 했다.
승점 3점이나 그룹 1위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오늘 경기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별수 없는 이탈리아 남자긴 하지만.”
사실 이번 유벤투스 원정 명단을 짜면서.
토니 감독은 과장 없이 수십 번 이상의 고민을 했었다.
이지안을 데려갈 지, 말 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훈련 때도 녀석은 열의를 보였고, 루카 코치에게 이번 경기를 꼭 잘 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번 원정에 이지안을 데려가고, 경기를 뛰게 만드는 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긴 어려웠다.
이지안이 적응에 실패해 유벤투스에서 나온 것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얼마 전의 일.
그것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팀을 옮긴 이후로도 쉽게 회복하지 못하던 게 이지안이었다.
그런 녀석을, 불과 16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랍시고 경기에 내보낸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부담감에 시달려 숨어들었던 아이를 다시 그 부담감 앞에 세우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토니 감독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전반전을 잘 뛰어준 이지안에게.
단순히 경기 운영을 완벽히 이끌었고, 매 순간 최고의 판단을 했으며, 거기에 골까지 넣는 활약을 했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순 기량이야 유벤투스 아이들도 이지안에게 상대가 안 되리란 건 애초부터 확신이 있던 거니까.
토니 감독이 고마웠던 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어 갔던 이지안의 얼굴이었다.
경기가 시작될 때, 그리고 전반 초중반까지.
꽤나 긴장되어 보였던 이지안의 얼굴은 득점이 터진 뒤 무언가 꺼풀이 벗겨진 듯 선명해졌었다. 마치 흑백 사진이 컬러 사진이 된 느낌이랄까.
그래, 생기 있는 얼굴이 되었었다.
부담감에 시달려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 된,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해 숨어버린 어린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축구를 즐기는, 딱 그 나이 때 소년의 얼굴이었다.
“잘 생겼어···”
“예?”
“응? 아. 원래도 잘 생겼었는데, 표정이 밝아지니 더 잘 생겼다고.”
“인물이야 뭐. 1군 올라가면 난리 나겠죠.”
토니 감독이 피식 웃었다.
“아, 근데 여자친구는 있는 것 같던데요?”
“···여자친구?”
“예. 얘기 들어보니까 한국에서부터 알던 친구 같던데. 주급으로 밥이랑 선물 사줬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잘 생긴 게 최고로구만.”
저 성격에 여자친구는 있다니.
이탈리아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어,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
“알아보게.”
“예?”
“저 친구, 정보 좀 알아보라고.”
“저 친구라면… 누구 말씀이십니까?”
관중석 한 켠.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다.
남자는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 먹는 부하 직원을 쏘아보더니, 필드 위로 친절히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20번 말이야. 뭐 하는 친구인지 알아보란 말이다.”
“아… 저쪽 20번이요.”
남자의 말에 피오렌티나의 20번 얼굴을 확인한 부하 직원이 머리를 긁적인다.
팀에 부임한지도, 이탈리아에 온 지도 얼마 안 된 신임 디렉터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구나.
부하 직원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 원래는 우리 팀에 있었던 아이입니다.”
“···뭐라고?”
“올해 초에 계약을 해지했던 아이예요. 그 뒤에 피오렌티나로···”
“왜?”
“어··· 제가 알기론 팀 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팀 생활에 적응?”
남자가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자 부하 직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부하 직원은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을 들은 남자는 탄식을 흘렸다.
“음···”
세상에.
현재 유벤투스의 상태가 개판이란 건 남자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독일 축구인인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뭔가.
명색이 세리에를 대표하는 팀이라는 게 1군 스쿼드엔 유스 출신 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호구처럼 어디서 비싼 돈 주고 사와 꾸린 스쿼드로, 그 절반 값에 불과한 인테르에게 리그 우승이나 내주고.
이번 시즌도 출발이 영 시원치 않고.
그런 개판 상태의 유벤투스를 수술하기 위한 집도의로서 온 것이 아닌가.
그러니 개판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이 정도로 감들이 없을 줄은 몰랐다.
아니, 어떻게 저런 재능을 몰라보고 그렇게 쉽게 놔줄 수 있단 말인가?
적응을 못 해? 그럼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도와줬어야지.
24시간 붙어서라도 케어를 해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싹 다 치워버렸어야 할 것 아닌가.
저 봐라.
저 피오렌티나 20번 한 명 때문에 경기가 아무것도 안 되고 있지 않나.
당연한 일이다.
재능이 남다르니까. 이미 U17 레벨을 벗어난 재능이니까.
근데 저 재능을 못 알아봐?
그럼 피오렌티나는 뭔데? 뭘 보고 쟤를 냉큼 데려간 건데?
세리에 최고 클럽의 유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눈은 뒀다 어디에 써먹은 거냐 이거다.
뭐, 그냥 허전하니까 달고 다니는 건가?
“하아···”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다.
원래도 간단한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고루한 클럽을 뜯어고치기 위해선 대수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라고 했나.”
남자가 중얼거린다.
저 아이를 놓친 게 올해 초라고.
흐음.
자신이 1년만 더 일찍 왔다면 팀의 미래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
뭐, 이제 와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있었던 지도자들부터 물갈이하는 수밖에.
*
시합은 상당히 힘들었다.
아직 풀타임을 소화해본 적이 없는 나라, 후반 중반부터는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체력 훈련을 그렇게 해도 모자란 건가. 하긴, 꾸준히 훈련을 해왔던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있는 걸 보면 건방진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뛸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나 생각해 봤더니, 상대 팀 아이들의 표정 덕분이었다.
경기가 제 뜻대로 안 풀린다는 표정, 화는 나는데 할 수 있는 건 없을 때 나오는 그런 표정.
그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힘이 났다.
물론 그게 진짜 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힘이 난다는 게 중요하지.
덕분에, 경기 중간중간 몇 번이나 벤치에서 내게 더 뛸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뛸 수 있다 대답할 수 있었다.
그냥 오늘은 끝까지 뛰고 싶었다.
이곳에 한 줌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 모든 걸 털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라, 후반 막판엔 지우를 생각하면서 버텼다.
그 메시지··· 지웠어야 되는데.
걔는 왜 항상 핸드폰을 손에서 떼질 않는 거야.
하여튼 다 죽여버리겠다고 해놓고 정작 죽는 게 나면 쪽팔리니까.
돌아가서 지우의 얼굴을 당당히 볼 수 있도록, 끝까지 있는 힘을 다했다.
그래서인가.
시합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오늘따라 힘차게 들렸다.
“삑, 삑, 삐이익-!”
경기가 끝나자 상대 팀 아이들을 허리를 숙이며 무릎을 짚었고, 우리는 손을 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우리가 이겼다.
토리노의 그 팀, 아니 유벤투스를!
“양 팀, 인사!”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하프 라인에 도열 해 상대와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을 줬던 아이들과 악수를 했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나보다 축구도 못 하는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농담이다.
“···”
그렇게 인사까지 마친 후 돌아가는데, 저쪽 대머리 코치가 날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루카 코치님과 토니 감독님에게 향했다.
“지안!!”
“잘했다! 최고였어!”
나는 날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계시는 두 분을 향해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품에 안겼다.
ㆍㆍㆍ
부우웅-
스무 명의 아이들과 몇 명의 어른들을 태운 버스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다.
시합에 모든 걸 쏟아부은 아이들은 모두 곤히 잠에 들어있는데.
“···.”
토니 감독은 핸드폰을 두들기고 있다.
누군가에게 긴밀히 전할 메시지를 작성 중이었다.
수신자는 빈첸초 이탈리아노.
피오렌티나의 1군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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