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47)
일편단심 -3
아무리 내가 겁이 좀 많은 편이라고 해도 공포로 몸이 굳는 경험은 많이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방금은 진짜 몸이 굳어버렸다.
“야아아아아아!”
그렇게 빨리 뛰는 주장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을 하고, 나에게 달려들고 있었으니 진짜 무서웠다.
이, 일단 흥분을 좀 가라앉···
“어어-”
“예에에! 예에에!”
으악.
주장이 날 등에 들쳐멘다.
그리고 요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관중석 앞을 보란 듯이 걷는다.
그··· 지금 기분이 좋으신 건 알겠는데.
저는 좀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관중들이 죽일 것처럼 쳐다보는데···
도저히 고개를 못 들겠네.
“나이스! 나이스!”
“좋았다, 지안!”
다행히 다른 동료들이 덮쳐들며 날 주장의 등에서 끌어내린다.
곧 수많은 손들이 내 머리를 헤집어 놓고, 동시에 주장에게도 무수한 축하의 손길이 향한다.
퍽! 퍽!
···때리는 거 아니고 축하하는 거 맞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막내라는 내 위치에 감사해진다. 나도 3살 정도만 더 많았으면 저렇게 맞았을 것 같다···
“슬슬 돌아가 줘. 분위기 더 험악해지기 전에.”
세레머니가 길어지자 심판이 다가와 우리를 말린다. 덕분에 주장도 약간은 이성을 되찾는 듯했으나···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걸 보니 아직은 아닌가 보다.
“포르자! 비올라!!”
“어윽···”
내 어깨를 과격히 흔들며 한 번 더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주장은 하프 라인을 향해 돌아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기뻐하는 걸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가슴앓이를 했길래, 고작 1골을 넣은 것만으로 저렇게 기뻐하는 걸까.
나로선 그저 짐작만 할 뿐, 저 기쁨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아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대수냐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자기의 아픔은 자기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남이 함부로 이해한다, 이해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주장에게도 저렇게 기뻐할 만큼 상처가 된 기억이 있었다는 거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보고 느꼈던 주장의 첫인상은, 되게 단단해 보인다는 거였다.
마치 인생에 아무런 위기가 없었던 사람처럼, 주장은 그저 평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게도 이렇게 아픔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세상에 아픔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왠지 그렇게 생각하니 좀 위안이 되는 기분이다.
나 혼자가 아닌 기분이랄까.
“이야, 다리 길어서 좋겠다. 나였으면 그거 안 닿았을 텐데.”
토레이라 선배가 내게 축하를 건넨다.
나는 웃으며 농담으로 답했다.
“확실히 그랬을 것 같긴 해요.”
“이 자식이?”
이젠 나도 경기장에서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야, 인마!”
나는 내 등을 찌르려는 선배에게서 도망가며 우리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
선제 득점에 성공했으나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우리의 홈이고 상대가 리그 최하위 팀이라고 해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
하물며 이곳은 주세페 메아차고 상대는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는 인테르다.
공이 그라운드 위를 굴러다니고 있는 한, 부릴 여유 따위는 없다.
뻐어어어엉-!
“읏··· 휴우.”
상대의 슈팅에 숨을 참았다가, 빗나가는 걸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쉰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
우리가 득점을 올린 이후 10분이 지났고, 그 10분 동안 벌써 네 번의 슈팅을 허용했다.
아, 방금 것까지 포함하면 이제 다섯 번이다.
그동안 우린 한 번의 슈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힘든 시합이 될 거란 건 당연히 예상한 일이었고, 약팀과 경기를 해도 90분 내내 우리의 흐름만으로 경기를 끌어갈 순 없다.
밀리는 순간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최대한 버틸 뿐인데···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 적절치 못해 보인다는 거다.
“위치 잡아! 위치!”
상대는 선제 실점을 허용한 뒤 경기 방식을 약간 바꿨다. 전반이 가기 전에 무조건 동점을 만들겠다는 듯 훨씬 더 과감해졌다.
특히 후방에서 단번에 넘어오는 롱 패스의 비율이 늘었다.
상대 수비수들은 다들 공을 잡으면 일단 박스 근처로 길게 킥을 붙였다.
그 킥의 정확성보다, 상대 9번 공격수의 공중 장악 능력이 문제였다.
우리 수비진도 높이론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높이인데··· 상대 9번의 제공권이 너무 좋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에딘 제코라고 했던 것 같다.
일단 공중볼이 뜨면 거의 5번 중 4번은 제코의 머리에 닿았다.
그렇게 제코가 떨궈준 공을··· 미친 듯이 뛰는 상대 선수들이 쓸어 담아가는 식이다.
“자리 지켜!”
특히 위협적인 건 다부진 몸에 전사 같은 외모를 가진 상대 10번이다. 이름이 라우타로라고 했는데, 그는 상당히 저돌적이었다. 나와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 느낌이랄까. 끊임없이 움직이며 우리 수비수들과 시도 때도 없이 몸으로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라는 걸 못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세컨 볼이 떨어지면 일단 몸으로 들이박는 것도 그렇고, 공을 잡으면 무조건 전진을 시도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 전진에 실패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이 나로선 좀 신기했다. 그니까, 패스가 끊기거나 드리블이 막혀도 전혀 자책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책은커녕 딱히 동료들에게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훨씬 더 좋은 위치에 동료가 있던 상황에서, 패스 대신 드리블을 시도하다 실패해 공격이 무산됐는데도 뻔뻔하게 엄지를 세울 뿐이었다.
문제는··· 그게 우리 입장에선 되게 까다롭게 느껴진다는 거다.
막아도 막아도 굴하지 않고 뻔뻔하게 계속 밀고 들어오니 질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저렇게 못 한다.
저돌적인 것도 저돌적인 건데, 그보단 저리 뻔뻔하게 할 자신이 없다.
내 실수로 공격이 실패하면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뭣보다 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와아아아아아앗-!!
전반이 끝나기 직전, 경기장이 지진을 일으켰다.
결국 상대 10번에게 실점을 내주고 만 것이다. 잘 막아내다가 딱 한 번 돌파를 허용한 게 실점으로 이어졌다.
“──!!”
거의 일곱, 여덟 번을 시도해 한 번을 성공한 그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 상대 팬들은 그를 향해 환호를 보낸다.
그 모습이 내겐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
동점을 허용한 시점이 전반 막판이었다는 건 어쩌면 다행인 일일 수도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역전을 허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집중해! 자!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네가 이쪽 공간을 먹히게 되면······”
하프 타임 내내 감독님은 토레이라 선배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그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해 수비가 전체적으로 흔들렸다는 건데···
듣다 보니 몇 번 흠칫할 때가 있었다.
감독님이 지적한 문제점들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해서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경기 중에 얘기하지 않았던 건, 그냥 선배들도 다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난 수비수도 아니고, 선배들보다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약간 이해는 안 돼도, 그냥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거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근데 감독님이 내가 했던 생각들을 말씀하시는 걸 보니, 뭐랄까.
약간은 혼란스러운 기분도 든다.
“그리고, 공수 전환할 땐 좀 더 과감히 올라가! 안전하게만 하지 말고! 왜 다 공을 잡으면 지안부터 찾는 거야? 떠넘길 생각만 하지 말라고!”
한참 토레이라 선배를 갈구던 감독님이 이번엔 우리 전부에게 말한다.
내 이름도 나와서 조용히 눈치를 살핀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막내에게만 의지하는 꼴 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말라고! 네가 해도 되겠다 싶으면 네가 해! 앞으로 과감하게 질러! 그럼 두샨이 공 지켜 놓고, 그다음에 다시 만들어가도 되잖아! 알아서 해주겠지, 이딴 생각은 버리란 말이다!”
머리가 벌개진 채로 화를 내신 감독님은 이후 박수를 치며 우리를 독려한 뒤 라커룸을 빠져나가셨다.
그리고 주장이 우릴 모았다.
“감독님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다들 알 거라고 믿는다. 밀라노 원정에서 1대1,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손 들고 나가라. 이길 수 있는 경기다. 좀 더 집중해서 후반전 가보자.”
“가자, 가자!”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치고 라커룸을 나섰다.
*
전반 막판의 분위기는 후반전이 시작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롱 패스 전개, 제공권 싸움, 세컨 볼 경합.
이 간단한 공격으로 재미를 본 상대는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우릴 공략했다.
하프 타임 동안 호되게 혼난 우리 수비가 그에 대응을 하고 있긴 했으나,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일단 우리 진영으로 롱 볼이 올라오면, 거기서부터 이미 우리가 불리한 싸움이라··· 아무리 대비를 해도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나왔다.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던 난 잠시 공이 밖으로 나갔을 때, 블라호비치에게 다가가 말했다.
“감독님이 그러셨는데, 자리를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제가 앞에서 압박하는 식으로.”
“음. 알겠어.”
블라호비치는 최전방 공격수고 나는 그 아래에 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다.
따라서 수비 시에도 내가 그의 뒤에 서는데, 지금은 서로 자리를 바꾸자는 거다.
내가 더 앞에서 수비를 하겠다는 얘기였다.
블라호비치는 공격에 집중하기 위해 수비 때 체력을 아끼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상대 수비수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롱 패스를 뿌리는 감이 있었다.
그걸 내가 대신 방해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방금 말한 것처럼 감독님이 지시하신 건 아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 내가 먼저 감독님께 이런 건 어떨지 물었다. 물론 감독님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으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냥 감히 내가 선배들에게 전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웃긴 일인 것 같아 감독님의 입을 빌린 거다.
파아앙-
파아앙-
상대 수비수들이 꽤 높은 위치에서 천천히 공을 주고받으며 우리 진영을 노린다.
관중석에선 상대의 응원가가 더욱더 크게 울려퍼지며 골을 바라고 있다.
Pazza Inter──!!
역전에 대한 기대감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당장 골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이 상대에게도 가장 무서운 순간이란 걸 말이다. 높게 쌓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그때가 가장 아픈 법이다.
기회와 위기는 언제나 손을 잡고 함께 다닌다.
타타탓-!
공을 주고받는 상대 수비수들을 향해 달려간다.
사실 나 혼자 압박을 해봤자 공을 빼앗기는 힘들다. 하지만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빼앗으면 좋은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적당히 압박감만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된다.
후방으로 찌르는 패스의 정확도를 낮추는 게 압박의 목적이니까.
파아앙-
파아앙-!
주고받는 패스의 템포가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내 압박이 거슬리는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모기 한 마리가 얼쩡거리면 상당히 거슬릴 거다.
뻐어어어어엉-!
결국 약간은 급하게 롱 패스가 우리의 진영으로 향한다.
고개를 돌려 공중을 떠가는 그 패스를 바라보다가··· 상대 수비 라인 사이에 자리를 잡기 위해 뛴다.
역습 준비를 해야 했다.
파아아앙-!
밀렌코비치 선배가 공중에서 공을 따낸다.
제코가 점프를 뛰지도 못할 만큼 패스가 부정확했다.
파아앙-
밀렌코비치는 곧바로 토레이라에게 공을 넘기고,
뻐어어어엉-!
토레이라는 전방으로 패스를 띄워 보낸다.
확실히 우리 감독님이 무섭기는 하다. 혼내니까 선수들이 말을 잘 듣는다.
타아앗-!
공중으로 띄워져 오는 공을 향해 블라호비치가 힘껏 뛰어오른다. 동시에 수비 하나가 붙어서 뛰는데, 나는 그 뒤로 조용히 돌아 들어간다.
내가 상대 10번처럼 못해서 그렇지, 9번은 우리도 상대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파아앙-!
블라호비치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공을 이마에 맞췄다.
동시에 나는 ㄴ자로 움직임을 가져간다.
횡으로 움직인 건 오프사이드를 피하기 위함이었고, 그다음 앞으로 움직인 건 블라호비치가 떨군 헤더가 앞쪽이었기 때문이었다.
파아앙-!
공을 주워 앞쪽으로 차 놓은 뒤 달린다.
타타탓-!
뻥 뚫린 공간을 향해 달려간다.
정말, 내 앞에 아무도 없다. 골키퍼를 제외하곤.
가슴이 시원해질 만한 광경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뒤에서 수비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걸 못 넣는 게 이상한 찬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 10번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더 집중할 뿐이다.
완벽을 흉내낼 수 있도록.
타타탓-!
박스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 걸까.
수비가 거의 내 바로 뒤까지 따라붙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 가다간 박스 근처에서 붙잡힐 것 같은데···
“···!”
상대 골키퍼도 주춤거리면서 앞으로 나오는 게 보인다. 슈팅 각도를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다.
그게 정석이긴 한데, 나는 오히려 마중을 나오는 키퍼가 반갑게 느껴진다.
굳이 박스 안까지 가지 않고도 슈팅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뒤로는 수비에게 따라잡히기 일보직전.
앞에선 골키퍼가 튀어나오는 상황.
그리고 박스 근처까지 도달한 내가 더 뛸 수 없을 만큼 숨이 차올랐을 때.
보폭을 살짝 조절한 뒤, 오른발로 공의 밑둥을 살짝 찍어 찬다.
투우웅-!
공이 두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키퍼의 머리 위를 넘겨, 아무도 없는 골대를 향해 천천히 날아간다.
슈우우우웅-
그렇게 천천히 날아간 공은,
투우웅-
출렁-!
텅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 예상이 되어, 꽤 기분이 좋았다.
*
75분쯤이 됐을 때 나는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나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가 들어가는 수비적인 교체였다.
상대의 공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으나, 이전처럼 위협이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내 두 번째 득점이 들어간 이후부터 그랬다.
물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득점을 기대하던 때에 실점을 했으니, 힘이 많이 빠졌을 거다.
“──!!”
저 멀리서 비라기 주장이 악을 지르며 수비 라인을 컨트롤하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기고 싶은 의지가 우리 쪽이 더 강해 보였다.
“3분···”
추가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올라왔을 땐 나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3분이 없었다.
완전히 급해진 상대는 계속해서 롱 볼을 붙였고, 우리는 몸을 아끼지 않으며 어떻게든 공을 밖으로 튕겨냈다.
우리는 축구가 아니라 그저 수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나, 이미 1점을 앞서고 있었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피 말리는 3분이 지나갔다.
“삐익, 삐익, 삐이익-!”
우리가 인테르를 2대1로 잡았다.
“와아아아아!”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휘슬이 울리는 순간 벤치 모두가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나갔고, 선수들 모두 주장에게 달려가 끌어안으며 승리를 기뻐했다.
나도 가야 하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다친다고 못 가게 했다.
“으헤헤헤헤!”
정신을 차렸을 땐 라커룸 파티가 슬슬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라커룸은 난장판이었고 온통 살색이었다.
그 사이에서 조용히 구석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팬티 차림의 주장이 가운데로 나오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경기와 승리에 대해,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주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진정한 사랑은 내가 잘 나갈 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려울 때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라고. 그래서 난 오늘 비올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뛰었고, 너희들 덕분에 승리를 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정말 좋은 말인데 야유가 쏟아진다.
아까부터 말이 너무 길다는 이유다.
나는 그런 선배들을 보며 피식 웃다가, 문득 주장의 말을 곱씹어 봤다.
내가 어려울 때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라···
문득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동시에 아빠에게 미안해진다.
떠오른 그 얼굴이 아빠부터는 아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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