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72)
밀라노가 아름다운 도시라는 건 취소다.
피렌체로 돌아오고 나서 보니 역시 여기가 더 아름답다.
지우도 동의했다.
“잘 들어가!”
“응. 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려 지우와 인사한다. 구단 관계자분께서 데려다주셨는데, 지우도 집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했다.
오면서 들은 얘긴데, 어제 경기 때문에 동네가 꽤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라이벌 팀과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위를 이겼으니 다들 기뻤나 보다.
관계자분께선 나 때문이라고 했는데, 글쎄.
그 모습이 상상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정작 어둠이 깔린 동네를 걷고 있자면 묘한 괴리감이 든다.
어젠 나 때문에 이 동네가 떠들썩해질 정도였다는데, 지금의 나는 그저 으슥한 골목을 걸으며 가방에서 열쇠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릴 뿐이다.
철컥-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부엌에만 불이 켜진 걸 보니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들어 나보다 더 바빠진 아빠다.
지우처럼 아빠도 함께 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내 주급으로는 무리인가.
여기서 두 배만 더 뛰면 좋을 것 같은데.
뭐,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며 짐을 정리하고, 적당히 찬물로 샤워를 하며 피곤한 몸을 달랬다.
“으···”
왜 찬물 샤워는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될까.
겨울이라서 적당히 미지근한 수준으로 틀었는데도 뼛속까지 시리다.
내가 축구 선수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찬물로 샤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세상엔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휴우-”
전투적인 샤워를 마치고 나와 옷을 입고, 야채 주스 하나를 챙겨 소파에 앉는다.
불을 켤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적당히 어두운 게 좋다. 얼마 전 거실등이 나가서 전구를 새로 갈아 끼웠는데,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독일 제품이라고 들었는데.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전구가 너무 밝아도 문제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쪼옥···
맛없는 야채 주스를 의무감으로 쪽쪽 빨며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래도 이 시간이 좋다.
예전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가끔 아이들이 교실 불을 꺼놓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너희가 어둠의 자식들이냐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렇게 어두운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난 어둠의 자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잠깐만.
내가 어둠의 자식이면, 우리 아빠가 어둠이 되는 거잖아.
그건 아닌데.
···그럼 그때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을 건드렸던 거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곤 티비를 틀었다.
집이 너무 조용해서 적당한 소음이 필요했다.
옛날엔 완전히 어둡고, 고요할 정도로 조용한 걸 좋아하던 나였지만 이젠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조용한 게 좋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너무 어둡거나 조용하면 이제는 어색하다. 그, 공허하다고 표현하던가.
마음이 허해지고 불필요한 잡생각이 드는데,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경기를 마치고 집에 오거나 숙소에 돌아간 직후엔 더더욱 그랬다.
경기장과 경기장까지 향하는 길이 워낙 밝고 시끄러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축구를 하고, 환호를 받다가···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놓이게 되면.
가끔은 이게 꿈인지, 아니면 경기장에 있을 때가 꿈이었는지 헷갈릴 때도 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한 주를 달궜던 뉴스들을 모아······
그래서 냉탕도, 열탕도 아닌 온탕이 좋다.
굳이 따지면 아직까진 냉탕에 가까운 온탕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면 나는 내가 욕심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욕심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냉탕은 너무 차가워서 싫고, 열탕은 너무 뜨거워서 싫고.
축구를 잘하고 싶지만, 너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다.
천재는 되고 싶은데, 천재라는 소리는 듣기 싫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욕심일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욕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다 가질 수는 없다.
무언가,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경기는 AC 밀란과 피오렌티나의······
“···!”
순간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곧장 리모콘을 쥔다. 그리고 채널을 돌리려다, 문득 드는 생각에 잠시 손가락을 멈춘다.
-21라운드, 리그 선두 AC 밀란과 엄청난 기세로 3위에 올라있는 피오렌티나의 대결. 이 경기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피오렌티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는 건 내 얘기도 나올 거라는 거고.
내 얼굴과 내 이야기, 그리고 나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건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오그라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무서운 느낌도 있다.
온몸에 힘이 쫙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그걸 외면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한 사람만을 위한 축구 천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젠 확실히 안다. 불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하지 않는 것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배웠다.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한다.
그럼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고르기 어렵다.
질문을 바꿔 본다.
나는 무엇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가.
“···”
그렇게 생각하니,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역시나 리였습니다. 피오렌티나의 에이스죠. 최근 유럽의 무수한 구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구요. 이날도 리는 왜 자신이 그러한 주목을 받고 있는지 증명을······
온몸에 힘을 꽉 주고 티비를 노려 보았다.
내 이름과 내 모습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하지만, 꾹 참고 버텨냈다.
축구 천재가 되고 싶은 욕심을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포기해야만 한다.
나는 내게 쏟아지는 관심을 이겨낼 줄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티비 속의 나를,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이 드럽게 맛없는 야채 주스를 참고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렇게 피오렌티나는 3대0, 예상외의 완승을 거두며 2위 인테르를 바짝 추격했는데요. 경기 후 이어진 리의 인터뷰를 보시-
삑-!
“······후아!”
그렇게 버티다가, 내 인터뷰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 도저히 못 참고 채널을 돌렸다.
다른 건 그나마 참고 버티겠는데 저건 도저히 못 참겠다.
후아.
숨을 헐떡거리고 있으니 등이 축축한 게 느껴진다. 그 짧은 사이에 식은땀을 흘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데 브라이너가 앞으로, 실바가 이어받습니다. 실바, 그대로 슛-!!
한숨을 내쉬며 채널을 돌리는데, 공교롭게도 또 축구 채널에서 멈춘다.
들리는 해설도 영어고, 딱 봐도 우리 리그는 아닌 것 같아 그대로 틀어두었다.
내가 뛰는 경기만 아니면, 축구를 보는 건 재밌다.
“······푸마, 이겨라.”
선수들 모습이 크게 잡히고, 문득 양 팀 유니폼에 그려진 마크를 보며 중얼거린다.
하늘색 유니폼은 푸마고, 빨간색 유니폼은 아디다스였다.
둘 다 나와 상관없는 팀이긴 하지만, 내가 신는 축구화가 푸마 거라서.
게다가 아디다스는 싫으니 하늘색 팀에게 마음이 간다.
유벤투스 유니폼이 아디다스 거라서 그렇다.
-고오오올! 러블리한 골입니다!
오, 내 응원이 통한 건가.
내가 응원하자마자 하늘색 팀이 골을 넣었다.
엄청나게 멋진 골이다.
-맨체스터 시티가 2대0으로 앞서갑니다! 표정이 어두워지는 맨유의 홈팬들!
···어라?
익숙한 이름이 들려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보기는 많이 들어본 이름들이다.
엄청나게 유명한 팀들이잖아.
어쩐지, 다들 되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유명한 팀들끼리의 시합이었구나.
저런 팀들이라면, 지금 경기에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들 모두가 천재 중의 천재겠지···?
“······와.”
어느새 나는 빠져들어 경기를 지켜봤고, 10초마다 한 번씩 감탄사를 내뱉었다.
잘한다. 다들 정말 잘한다···
어떻게 저렇게 축구를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수준이 높다.
특히 하늘색, 그러니까 맨시티 선수들의 플레이가 내겐 인상적이었다.
다들 정말 공을 잘 찼다. 간단한 터치와 패스 등의 기본기부터 남다르다는 게 느껴졌고, 이따금씩 터지는 창의적인 패스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축구를 할 수 있을까.
순간,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들이잖아.
나는 진짜 천재들에게 궁금한 게 많다.
그렇게 몰입해서 축구를 보고 있을 때였다.
철컥-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더니 아빠가 들어오셨다.
“어, 지안이 벌써 와 있었구나.”
“네. 다녀오셨어요.”
“이런,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밥은?”
“먹고 왔어요.”
당연히 일하고 돌아오신 건 줄 알았는데, 가방도 없이 들어오시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친구라도 만나고 오시나?
아빠도 나만큼 친구 없는데.
“축구 보고 있었네?”
“네.”
“보자. 오, 맨더비잖아. 그제 한 건데, 이거. 누가 이겼는지 가르쳐줄까?”
“···아뇨.”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아빠가 껄껄 웃으신다. 하는 축구 말고, 보는 축구는 아빠가 나보다 한 수 위일 거다.
아빠는 아는 게 정말 많다.
어릴 땐 아빠가 슈퍼맨인 줄 알았는데,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크, 데 브라이너. 참 잘해.”
“유명한 선수죠?”
“그럼. 유명하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저기 다요.”
“그렇지 않을까?”
티비 화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문득 이런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와 함께, 이렇게 편하게 축구를 보면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혼자 어깨를 으쓱이고는 화면에 집중하는데, 아빠가 말했다.
“그, 있잖아.”
“네.”
“음··· 그 왜, 축구화 만드는 브랜드들 있잖니?”
“네.”
“그중에 뭐가 제일 좋아?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중에.”
음?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에 아빠를 쳐다본다.
안 그래도 아까 푸마와 아디다스의 대결이라면서 혼자 그랬었는데.
“카파요.”
“···카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팀 유니폼이 카파라는 브랜드에서 만든 거다.
내가 우리 팀을 이렇게 많이 생각한다.
“근데 지금 신는 건 푸마 아냐?”
“···맞아요.”
“카파가 좋은데 왜 푸마 걸 신니?”
···음.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자, 아빠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아무튼, 그··· 혹시 말이다. 그냥 편하게 듣거라. 그 브랜드들이 우리 지안이를 후원하고 싶다고··· 그런 연락을 받았거든.”
“···후원이요?”
“응. 그 왜, 그런 게 있다고들 하더라고. 용품이나 이런 것들도 후원해주고, 뭐 그런 거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쳐다봤다.
그러자 아빠가 말을 이었다.
“푸마랑 아디다스, 나이키에서 연락이 왔다는데··· 세 곳 모두에게서 말이다.”
좀 얼떨떨했다.
아니, 그 세 브랜드라면 꼭 축구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브랜드들 아닐까.
그런 유명한 회사에서 나에게 후원을 해주겠다니, 얼떨떨하면서도··· 그럼 어쨌든 감사한 일인 게 분명한데.
아빠가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지가 궁금했다.
아빠가 말했다.
“이것도 뭐 계약 같은 건가 보더구나. 그냥 물건 몇 개만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한 브랜드랑만 계약을 맺는 거지. 거기서 후원을 받고, 계약에 따라 뭔가를 해야 될 수도 있을 거다.”
“뭘 해야 된다는데요?”
“뭐··· 계약 동안엔 그쪽 제품만 써야 되기도 하고. 어쩌면 광고 같은 걸 찍게 될 수도 있고···”
광고라는 얘기에 나는 쪽쪽거리던 야채 주스를 뿜을 뻔했다.
내가 광고를 찍는다니,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그냥 그런 얘기가 있었다 정도만 얘기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말 거라. 어쨌든 내가 아니라 너한테 제안이 온 거니까, 알려는 줘야 해서.”
내 반응이 격했는지, 아빠가 다급히 말했다.
나는 얼떨떨한 와중에도, 그 모습에서 아빠가 내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느꼈다.
듣기만 하면 분명 좋은 일인데, 내가 관심을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심스럽게 얘기하시는 것 아닐까.
나는 왠지 미안했다.
지금뿐만 아니라, 아빠는 항상 많은 걸 신경 쓰고 계셨을 거다.
내 눈치를 보느라 기쁜 일에도 마음대로 기뻐하지 못하셨던 적이 많으셨겠지.
나는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감사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응? 아니, 뭐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지. 굳이-”
“해야죠. 이런 기회가 어디 있다고. 축구화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거 맞죠? 계약이라고 했으니까 계약금도 줘요?”
“그렇긴 한데··· 돈이 중요한 건···”
“중요하죠.”
아빠가 나를 쳐다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중요하지 않으면 아빠는 왜 그렇게 바쁘게 일하세요.”
“···”
“전 아빠가 좀 더 일찍 퇴근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마치 5살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럼, 나중에 시간 될 때 한 번 얘기해볼래?”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따뜻했다.
그 순간에도 한 편으론 지우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긴 것 같아 웃음이 나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