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71)
“진짜 괜찮겠어?”
“응.”
“네가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야.”
“안 해.”
쌀쌀한 저녁 공기에 패딩 지퍼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와 숙소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지우와 함께 호텔을 나오는 중이다.
지우가 시내 구경을 하고 싶다 해서.
“근데 오래는 못 있어.”
“알아. 나도 양심이 있지. 한 바퀴만 둘러보고 가자.”
“응.”
지우와 단둘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팀 관계자들께서 같이 나와주셨다. 혹시 모른다고. 마스크도 쓰고 모자도 푹 눌러쓰긴 했는데, 그래도 둘만 외출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근데 저렇게 굳이 멀찍이서 따라오실 필요는 없는데.
“와, 진짜 예쁘다. 진짜 와보고 싶었는데···”
아무튼, 지우는 엄청 신이 났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다.
내 경기를 보러온 게 아니라 밀라노를 구경하고 싶어서 온 게 분명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우의 뒤를 따라 걷는데, 지우가 휙 돌더니 씨익 웃으며 내게 물었다.
“야. 아까 그 인터뷰, 뭐야?”
“···인터뷰?”
“승리의 여신? 내가 승리의 여신이야? 응?”
“···”
“네 눈엔 내가 여신으로 보이는 거야? 그런 거야? 응? 응?”
지우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앞까지 다가와 자꾸 묻는다.
방금 씻고 나와서 그런지 좋은 향기가 코를 훅 파고든다.
나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했잖아. 징크스. 넌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징크스를 얼마나 신경 쓰냐면···”
괜히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는다.
선배들 중엔 징크스 때문에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사람도 있고, 경기장에 들어갈 때 무조건 왼발부터 밟는 사람도 있고, 등등등.
선수들이 얼마나 징크스를 맹신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보지만··· 지우는 딱히 들을 생각이 없는 듯 웃기만 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 내가 여신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지!”
···가끔은 지우의 이런 자신감이 부럽다.
어떻게 스스로를 여신이라 칭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그러자 지우는 쫄래쫄래 쫓아와 내 옆에서 함께 걸었다.
“야, 근데 너 인터뷰 때문에 또 난리 난 거 알아?”
“···왜?”
“왜긴! 찝찝하게 이겼다고, 다음에 제대로 붙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왜···”
“멋있대. 마음에 든대. 그, 상대 팀 팬들까지도 그러더라.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너는 인정하겠다던데?”
음.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러면서 막, 우리 팀으로 오라던데. 그 빨간색에 검정 줄무늬 유니폼 있잖아. 너한텐 그게 더 어울릴 거래. 그래서 내가-”
“···네가?”
“아, 아니. 내가 아니라 다른 팬들이! 너는 절대 못 보낸다고 막 싸웠어. 다 널 갖고 싶나 봐. 웃기지 않아?”
···웃기긴 하다.
나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는 게.
어차피 날 가질 수 있는 건···
“하아- 뭐, 아무튼. 이 승리의 여신님 덕분에 이겼으니까, 좋지? 응? 나 잘 왔지?”
“···어.”
“치, 영혼 하나도 없는 거 봐. 지가 같이 가자고 할 땐 언제고.”
“···영혼 있거든.”
“하나도 없었거든요. 하여튼, 진짜. 우리 둘이 친구인 게 신기하지 않아? 이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친해졌지?”
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길래, 내가 짚어줬다.
“네가 먼저 친구 하자고 했잖아.”
“···뭐래. 안 물어봤거든.”
“물어봤거든.”
“하, 어이없어. 이지안. 그래, 내가 먼저 했다 어쩔래. 이렇게 예쁜 여신님이 먼저 친구 하자고 해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아는데. 고마운 거.
문득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입을 달싹이는데 지우가 앞서 걸어간다.
타이밍을 놓친 나는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들도 멋있고, 사람들도 다 멋있다··· 이래서 패션의 도시라고 하나 봐.”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지우가 빙글빙글 돌면서 말한다.
뭐,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하다.
내가 피렌체 안에서도 좀 외곽에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사람들이 좀 더 세련된 느낌은 있다.
다들 옷도 잘 입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느낌이랄까.
괜히 내 옷을 내려다보게 된다.
트레이닝 바지에 긴 패딩, 그리고 마스크에 모자.
···비교되네.
어깨가 좀 움츠러들려고 하는데, 지우가 말했다.
“그래도 뭐, 피렌체도 꿀리지는 않네? 오올, 이지안.”
뭐라는 건가 싶어서 코웃음을 쳤더니, 지우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칭찬해줬으니까, 네 차례야. 난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
나는 지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예쁘긴 하네.”
“···어?”
그러자 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도시가. 밀라노가 예쁘긴 하다고.”
“···아, 씨. 짜증 나.”
역시 페인팅을 한 번 주고 들어가야 쉽게 상대를 제쳐낼 수 있다.
“그래. 예쁘긴 하다. 좋다─”
지우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고,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으며 도시를 구경했다.
저번에 왔을 땐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밀라노였다. 지우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사진 좀 찍어오라고 했을 때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냥 평범한, 오히려 피렌체보다 별거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오늘은 이 도시가 내게도 아름답게 보였다. 밤이 돼서 그런가.
아니면, 혼자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ㆍㆍㆍ
“젠장, 젠장. 이걸 못 보다니. 나도 가서 라이브로 봤어야 되는데!”
이지안의 아버지, 이원훈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주먹으로 무릎을 콩콩 친다.
핸드폰에선 어제 있었던 피오렌티나와 AC 밀란의 경기 하이라이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이걸 직접 가서 봤어야 하는데.
아들이 무려 AC 밀란을 상대로 두 골을 넣는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하필 요즘 일이 너무 바빠져 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태생이 워커홀릭인 이원훈이었지만, 이럴 때만큼은 바쁜 게 짜증이 난다.
지우, 이 부러운 녀석!
“에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러는데 어떻게 안 바빠질 수가 있겠어.”
AC 밀란의 수비수들을 제쳐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이원훈이 중얼거린다.
이렇게나 멋진데 직접 보러오고 싶은 게 당연할 거다.
이원훈이 일하고 있는 여행사는 이미 한국인들의 문의로 전산이 먹통이 될 정도였다.
피렌체, 물론 원래부터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도시이긴 했다만.
요새 들어 문의가 폭주하기 시작한 건, 지안이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흐음.”
그게 감사하긴 한데···
흐뭇하게 핸드폰을 바라보던 이원훈의 얼굴이 급작스레 어두워진다.
뭐,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일도 많이 들어오고, 아들을 사랑해주시는 건 참 감사한 일이긴 한데···
걱정이 되는 건, 그 관심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받아들이기엔 말이다.
아들에겐 함구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안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이미 예전부터 지대했다.
떠오르는 한국 축구의 희망, 세기의 천재, 그 외에도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아들을 추켜세웠다.
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야 할 선수가 되어있었다.
물론··· 좋게 봐주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걸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아들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원훈 본인이 느끼기에도, 관심과 기대는 너무나 뜨거웠다.
그리고 그걸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들을 통해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물론 90퍼센트 이상의 관광객들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간혹 몇몇.
관심이 지나쳐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패키지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는 것까지가 끝이다. 그런데 간혹 경기 끝나고 한 번 만나게 해달라거나, 이지안이 사는 동네나 집에 가볼 수 없냐는 손님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건 어렵다고 말씀을 드리면, 그런 분들은 꼭 그게 뭐 대수냐며 궁시렁대는 게 레파토리였다.
이런 데서 여행사하면서 그런 연줄 하나 없냐고 하실 땐 진짜··· 아빠라는 걸 절대 밝히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하지만, 뭐··· 그 정도야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
꼭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여행 와서 기분도 좋고 술까지 한 잔 하니 그런 사람이 나오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이해를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 괜찮았는데···
저번 달엔 정말 참기 힘든 일이 있었다.
그게 아마 12월 중순, 겨울 휴가 직전의 경기였을 거다.
피오렌티나와 스페치아라는 팀의 경기가 있던 날로 기억하는데··· 그 날 경기에 지안이가 선발 출전을 안 했었다. 후반 끝날 때쯤 나와서 한 10분 정도 뛰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그 경기를 보면서 손님이 했던 이야기를 이원훈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에에이, 뭐야. 한국 축구의 새 희망이니 어쩌니 하더만. 하필 내가 보러 오니까 꽝이네. 저래가지고 그 뭐야, 제2의 메시 될 수 있겄나? 그 한국 애들 데리고 뭐 할 수 있겠어?”
뭣도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일 뿐이었지만, 이원훈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무서웠다.
이미 기대치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만약 지안이가 그 기대만큼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 미리 듣는 기분이기 때문이었다.
“···”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이미 지안이와 비슷한 기대를 받았던 선수의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아주 어릴 때 바르셀로나라는 클럽으로 간 소년이었다.
지안이와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부터 역대급이다, 바르셀로나의 미래다 라며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다고.
그런데 몇 년 뒤, 사람들은 그 어린 소년에게 손가락질을 했다고 했다.
바르셀로나 1군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자기들 마음대로 기대치를 정해놓고, 거기에 닿지 못했다고 ‘망한 선수’ 취급을 했다는 거다.
그 선수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망한 선수가 되어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물론 지안이와 같은 케이스라고 보긴 힘들지만··· 사람들의 기대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고민이 깊은 요즘이었다.
“휴우우···”
남의 일이었다면 쉽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어떻게 편한 길만 가냐고, 도전도 해보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보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미 아픔을 한 번 겪은 아들이기에, 아빠로서 이 정돈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빠의 마음은 그랬다.
“흐음···”
한 번은 지안이가 있었던 유소년 팀 감독님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때, 그 감독님은 조심스럽게 이런 방법도 생각해 보라며 말씀을 해주셨었다.
꼭 태어난 나라만 대표하라는 법은 없다는 얘기였는데···
문제는 이쪽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무슨 특별법 제정이니 뭐니,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시끄러웠다.
어려운 문제였다.
“이놈의 반도 사람들은 참···”
이원훈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그리고 마른세수를 하는데,
우우우웅-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1군 감독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