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 마약 탐색(1)
나는 아이온으로부터 수십 개의 창을 받아 그림자 속에 보관했다.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창 구실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들이 쓰는 정도는 아니지만 병사들이 쓸만한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할까.
듣자 하니 과거에는 영지에 무기를 납품했었다는 모양이다.
이 창들은 그가 이 숲에 숨어 지내기 전에 만들어 두었던 것들이라는 거다.
“그럼 이제 떠나는 건가?”
“그래, 혹시 모르니 너도 이 마을을 떠나는 게 좋을 거다.”
“..스승님은 무사하시겠지?”
“걱정한다고 해서 뭐 바뀌는 게 있나?”
내 질문에 아이온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이 있는 곳은 어디지? 잠깐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고 싶은데.”
“검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 검을 보고도 매료되지 않는 대장장이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온에게 하르트의 위치를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클로드와 프로키온, 마리아를 데리고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프로키온의 경우는 서클이 봉인되어 있었으니 차마 반항할 생각은 하지 못할 거다.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허튼짓을 하진 못할 테고.
“그, 기사 양반. 혹시 그 빵 안 먹을 건가?”
“..아까 그렇게 먹고도 배가 고픈가?”
“아니.. 혹시 모르는 일이니, 보관해 둘까 싶어서.”
그림자 속에서의 삶이 고단했던 탓일까.
프로키온은 세상 밖에 나온 이후로 지나치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는 흑마법사였을 텐데..’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뽑아 들었다.
프로키온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아, 아니 꼭 달라는 건 아니고.”
“왜 네가 겁을 먹는 거야?”
나는 정색하는 프로키온을 뒤로한 채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 투명한 것이 잘려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염제의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들이 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게 뭐지?”
“뭘 자른 거야?”
“가까이 오지 마라. 클로드. 뭔가가 있다.”
“뭔가라니. 그게 무슨.. 으아악!”
클로드의 몸이 단숨에 솟구친다.
염제의 눈에 그녀의 몸을 사로잡은 실들이 비쳐 보인다.
나는 검기를 쏘아내어 그 실을 잘라낸 후 떨어지는 클로드를 받아냈다.
“이봐, 마리아. 이 친구 좀 지켜줘.”
“..난 네 부하가 아니야.”
마리아는 내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순순히 클로드의 앞에 서 그녀를 지켰다.
아이온에게서 받은 조악한 철검을 든 그녀. 그러나 기세만큼은 여전히 등등해 보였다.
그동안 먹고 마시지 못한 것 정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모습.
그래도 저 정도면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나는 클로드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봐, 나는?”
프로키온의 말을 무시하며 앞으로 나선다.
그나저나 눈에 익은 힘이다.
보이지 않는 실로 이뤄진 결계라니.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름을 더듬었다.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스무 번째 용사. 란.’
용사 주제에 거미 마수의 이름이, 아라크네라는 별명이 붙었던 암살자.
그리고 지금 숲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라크네라고 불리게 된 이유였다.
그녀의 이름처럼 거미줄과 같은 능력을 가진 실타래.
심지어 이것은 바사고의 능력처럼 단순히 감지 능력만을 가진 게 아니었다.
조금 전의 클로드처럼 뭣 모르고 닿았다가는 움직임이 봉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걸 썼다는 건 이미 우리 정체가 들킨 건가?’
예상은 했었지만 허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기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긴, 그랬다간 클로드나 아레스의 신변이 위험해졌으려나.
‘앞으로는 변장 같은 걸 하나 봐라.’
콰광!
괜히 심술이 나 검을 휘두른다.
우선은 눈앞의 거미줄부터 잘라내자.
‘응?’
내가 내지른 검격을 따라 길게 갈라지는 숲.
그런데 어째 운이 좀 따르는 것 같다. 쓰러지는 나무들 사이로 누군가의 옷자락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함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운이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뻔한 위치에 숨은 거지?
“위치가 발각당한 암살자만큼 덧없는 게 있을까.”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
나는 이윽고 적의 모습을 완벽하게 포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이 없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개벽.”
콰아아앙!
거대한 참격이 숲을 양단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검이 암살자의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내 보인다.
휘익!
란은 그런 나를 향해 비도를 던졌다.
오러 블레이드가 깃든 수십 개의 비도가 직선으로 날아든다.
본래라면 거미줄을 이용해 튕기듯 변칙적으로 날아들었을 공격이다.
“혼자야?”
그러나 조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거미줄은 이미 사라져 버린 상황.
그래서일까. 비도들은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것들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공중에서 새벽을 펼쳐 비도들을 지나쳤다.
그 모습을 본 란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진다.
확실히, 파편들에 비하면 인간적인 반응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되살아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란이 살아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했다.
사고방식 자체가 경직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움직임이 지나치게 틀에 박혀 있다고 해야 할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래서야 생전의 움직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거다.
심지어 경지 자체도 소드 마스터 수준에 머무는 상황이 아닌가.
솔직히 맥이 빠질 정도다.
‘주위에는 저 녀석 외에는 없는 건가?’
나는 만약을 대비해 일대를 살폈다.
일이 지나치게 쉬운 나머지 혹시 이 모든 게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건 아닌 모양이네.’
그러나 여전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 혼자 공격해 온 것이 맞는 것 같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 명의 용사가 펼치는 협공을 경계하고 있던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상대의 전력을 줄여둘 작정이었다.
‘용사에게는 오러를 사용하면 안 돼.’
위장용으로 사용하고 있던 여명검을 감춘다.
저무는 태양. 이윽고 찾아오는 황혼이 적의 목을 노리고 붉게 타오른다.
반쯤 남아 있던 검이 완전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번 공격을 마지막으로 더는 쓰지 못할 거다.
“그 붉은 빛은 뭐지?”
나는 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쇄도했다.
휘둘러지는 검.
나는 그대로 어스름을 펼쳐 란의 목을 잘라내려 했다.
‘잠깐.’
의문이 스친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울리는 경종.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쉬운 거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
내 안의 직감이 경고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면 눈앞의 이 용사는 그 보리스라는 놈의 최종병기라 불리는 존재다.
안드라스와 마찬가지로 파라켈수스의 측근이라 할 수 있을 연금술사의 걸작이라는 거다.
심지어 그 보리스라는 놈은 내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까지 했다.
숲에서 나를 보자마자 도망친 것이 우연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고작 소드 마스터로 나를 죽이겠다고?
“햇무리.”
타오르던 마기를 회수한다.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러의 빛이다.
용사들을 상대로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 생각했던 힘.
그러나 지금 내 본능은 황혼검을 접어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나는 기꺼이 본능의 목소리를 따랐다.
이어지는 검격.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란.
이윽고 그녀의 몸은 한 줌의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 * *
지하의 공동. 새하얀 제단 위에 누워 있던 여성이 불현듯 눈을 뜬다.
“헉!”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일어선 여성.
그녀는 분명 조금 전에 데이브에게 목숨을 잃었을 터인 란이었다.
“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 그 데이브라는 녀석이 그렇게 강했어?”
식은땀을 흘리며 몸서리치는 란을 보면서도 태연한 두 사람.
그들은 제각기 다섯 번째와 여덟 번째 용사였다.
무명과 웡 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사와 권사.
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하얗던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창백하게 물들어 있었다.
“강하다고? 아니, 그건 뭔가가 달랐어..”
“..너 좀 달라진 것 같다?”
그런데 란이 원래도 저렇게 감정적이었던가?
웡은 잠깐 사이에 이상해진 란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정작 란 본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달라졌다니? 뭐가?”
“..아니, 그냥 좀 예민해진 것 같아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기는.”
용사가 된 순서로 따지자면 웡은 그녀보다 한참이나 선배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그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
데이브가 란의 모습을 두고 ‘기계적’이라고 평했던 데에는 이런 사정이 숨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어땠는데? 소문만큼 강했어?”
“..그래, 강했어. 어쩌면 분신이 아니라 직접 덤볐어도 이기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 정도라고? 그럼 상대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거잖아?”
“아니, 경지는 소드 마스터인 것 같았어. 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지.”
란은 그렇게 말하며 데이브가 휘두르던 검을 떠올렸다.
반쪽짜리 검을 휘두르면서도 시종일관 그녀를 압도하던 그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빛났던 그 붉은 검.
‘그 검은 뭔가가 달랐어.’
찬란하다 못해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그 검은 이질적이었다.
끈적거린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농밀하다고 해야 할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지는 검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불쾌했지.’
물론 그 불쾌함의 정체는 용사라면 누구나가 품는 마기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그녀가 그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그럼 나나 무명에 비하면 어때? 우리도 못 이길 것 같아?”
“..내가 못 이기는데 너희라고 해서 다를까?”
“에이- 그건 아니지. 솔직히 너는 우리 중에서는 최약체잖아.”
웡의 깔보는 듯한 말에 란이 발끈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감히 그 말을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녀 역시도 자신의 힘이 저 둘에게 밀린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녀의 시선이 두 사람이 가진 무기로 향한다.
각기 물과 바람의 정수를 빚어내어 만들어 낸 세기의 걸작들이었다.
아마도 이것들이 있는 한 란으로서는 무슨 짓을 해도 저 두 사람을 쓰러트리지 못하겠지.
그것은 란이 자랑하는 암살의 영역에서 싸운다 해도 절대 변하지 않을 진실이었다.
‘..아니,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일까.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두터운 벽.
평생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벽이 지금에 와선 종잇장처럼 얇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역시 이상해.’
그러나 패배가 겸손을 알려주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자만심을 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란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든다.
혹시 자신은 지금 세뇌에 걸린 걸까? 이 모든 것이 착각인 걸까?
‘아니, 착각이 아니야.’
하지만 착각이라고 하기엔 일말의 모순도 느껴지질 않는다.
지금까지의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던 창의적인 암살 방법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마음만 먹으면 상대가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란, 진짜 상태가 이상한 거 같은데?”
“..아니, 괜찮아.”
일변하려는 표정을 바로 잡는다. 평정을 유지한다.
란은 태연한 얼굴로 거짓을 내뱉었다.
“아무리 분신이라도 죽는 건 좀 무리였나 봐.”
“음. 미안하군. 다음부터는 동화율을 조금 더 낮추도록 하겠다.”
다행히 두 사람은 그런 란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명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녀에게 사과까지 할 정도였다.
“아니, 괜찮아.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그보다 그 남자 말이야. 그 데이브라는 녀석.”
“응? 아, 그래. 그 남자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고 있었지?”
“그래, 아무래도 조금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아마 너희 둘이 나선다면 어렵지 않게 이기겠지만 세상에는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지 않겠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럴 것까진 없는데.”
이쯤 되니 웡 역시도 란의 상태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란의 태도는 단호했다.
“괜찮아. 이번에는 멀리서 관찰만 하고 올 거니까.”
그녀는 자신이 변한 이유가 데이브에게 있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이브와 다시 만나봐야 했다.
“그래도 보험은 좀 들어놔야겠다. 혹시 남는 무기 있어?”
아마 란 본인은 알지 못하겠지만, 데이브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로 그 선택이었다.
죽음이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