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 밤의 귀족(1)
다행히도 계약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으윽..”
보리스의 몸이 바닥을 구른다.
사실, 이번 전투의 가장 큰 소득은 이놈을 붙잡은 거였다.
설마 살아있는 연금술사를 사로잡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이쪽은 마리아 같은 떨거지가 아니라 진짜배기.
무려 파라켈수스의 종자라 불리는 놈인데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알고 있는 것도 많을 거다.
어쩌면 그간의 의문을 상당수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저주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군. 어지간히도 신뢰받고 있었던 모양이야.”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무서워하는 걸까.
이쯤 되면 좀 억울해지려고 하는데..
“이봐, 데이브. 대체 뭘 했기에 이래?”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니콜라스의 질문을 뒤로한 채 나는 보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왜 나를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그 공포를 철저하게 이용할 작정이었다.
“으, 으아아악!”
그런데 어째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달까.
금방에라도 기절할 것처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라니.
이래서야 질문에 답을 하기는커녕 혼절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네가 해야겠다.”
“음. 그래야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어차피 뭘 물어야 할지는 니콜라스 역시 알고 있을 테니까.
만약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내 이름을 팔아먹으면 될 테고.
“그나저나 잘도 만들었군. 요정 여왕의 장갑이라니.”
그런데 어느 틈에 이런 걸 만든 걸까.
나는 새삼 드모어가 만들어 놓은 장갑을 살피며 감탄했다.
지그문트가 발두르를 만드는 동안 옆에서 이걸 만들어 냈다고 했던가?
수제자라 하더니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게.. 사실 제가 만들었다고 하긴 힘듭니다. 데이브 님이 주고 가셨던 불꽃에 대보니 알아서 녹았거든요, 마치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요,”
그런데 어째 드모어 역시도 얼떨떨하다는 눈치다.
자신이 이런 걸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한 태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네가 만든 건 맞잖아. 그 정도면 너도 장인이라 불릴 수준에 오른 거 아닌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겸손을 부리는 건가?”
나는 드모어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진지했다.
“믿기 힘드신 건 압니다. 하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당신의 불꽃을 보는 순간, 날개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마치 날개 자체가 모종의 의지를 품고 있는 것 같았죠. 제가 한 일은 사실상 형태를 잡는 것뿐이었습니다.”
“재료가 멋대로 장인의 손을 빌렸다는 건가?”
“네, 마치 오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요.”
드모어는 그렇게 답하며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내가 이 장갑의 주인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다.
‘글쎄. 과연 그럴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은데.’
그러나 바람의 결정이라는 선례를 본 이상, 나로서는 별 기대감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나는 우선 드모어에게서 장갑을 받아들었다.
“쯧.”
그런데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받아 들자마자 손에서 반발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모어는 실망하겠지만 아마도 이런 거였겠지.
이 장갑은 드모어의 장인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나의 불꽃까지도 이용했다는 것.
한낱 재료가 벌였다기엔 오만한 판단이다.
“아무래도 이 물건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 같은데.”
“네? 그럼 대체 이 장갑의 주인은 누구라는 거죠?”
“..대충 짐작은 가는데.”
나는 염제의 눈으로 장갑을 살폈지만 어째 평소와는 달리 보이는 게 없었다.
장갑 자체가 가지고 있는 환영의 힘이 나의 통찰을 방해하는 것이다.
마치 짙은 안개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그러나 딱 하나,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라나.”
“..네?”
나는 한 가지 시험해 볼 게 있어 라나를 불렀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쭈뼛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내 말을 어기고 공장에 들어간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하긴, 좀 놀라긴 했지.’
나는 란의 목을 잘라내려던 순간, 라나가 누군가의 손에 살해당하는 환영을 목격했다.
그러나 용사가 아닌 내가 어떻게 예지를 할 수 있었던 건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용사 시스템이 가진 힘이 나에게도 힘을 준 건지도 모를 일이지.
이유가 뭐든 간에 나는 즉각적인 대처에 나섰다. 란을 되살린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렸고.
“신경 쓰지 마라. 전에 말한 것처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테니.”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틀렸어요. 만약에 제가 붙잡히기라도 했다면..”
“안 잡혔으면 된 거지. 어떻게든 수습했잖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란을 가리켰다.
벨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란의 모습이 보인다.
새삼 란을 부활시키면서 벨을 보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 선택이 없었다면 아마도 란은 나를 적대하려 들었겠지.
“우선 이것부터 받아봐라. 보니까 네 것 같은데.”
“이건..”
그런데 어째 라나도 장갑에서부터 무언가를 느낀 것 같다.
말없이 장갑을 받아 든 라나가 조심스레 제 손에 장갑을 끼운다.
“억!”
그 순간 일어나는 환한 빛.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정도다.
눈이 불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음..’
그런데 이 빛에서 묘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
장갑 자체에는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장갑이.. 사라졌잖아?”
이윽고 사라지는 빛. 그리고 사라져 버린 장갑.
라나가 당황한 듯 제 손을 더듬는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장갑은 분명 그 자리에 있다. 그저 투명해진 것뿐이다.
필시, 아직 라나가 정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직감이지만, 아무래도 네가 소드 마스터에 오르기 전까지는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저, 상급 익스퍼트에 올랐어요.”
“그래, 축하한다.”
나는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것 같은 건 어째서일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다.
“정말로.”
뭐든 간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물러나 있어라. 또 뭐가 오는 것 같다.”
그 순간, 하늘에서부터 날아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확히 보리스를 향해 날아드는 기척.
나는 그 기척에서부터 란과 용사들에게서 느꼈던 힘을 느꼈다.
“뱀파이어인가?”
의혹을 품는 것도 잠시.
나는 그대로 달려가 검을 들었다.
* * *
“에휴.”
니콜라스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대화에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꼴이란 말인가.
덜덜 떨리는 시선. 창백해진 얼굴.
그런 상황에서조차 보리스의 눈은 여전히 데이브를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데이브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정작 데이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던데.
“데이브가 그렇게 무서워? 솔직히 눈매가 사나워서 그렇지 생긴 건 평범하지 않나?”
“네 눈에는 저게 안 보여?”
“뭐라고?”
“저건 인간이 아니야.. 너는 속고 있는 거라고! 어쩌면 그분조차도..!”
니콜라스는 보리스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 녀석의 눈에는 데이브의 정체가 보이는 건가?
그가 하프 데몬이자 전직 마왕이라는 사실이?
“그걸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너무 겁먹는 거 아니냐? 너희는 마왕을 죽이려는 놈들이잖아.”
“마왕을 죽여? 그 말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내 말은 마왕을 보고 겁을 먹을 이유가 있냐는 거야.”
“..마왕.”
니콜라스의 대답을 들은 보리스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눈이 기묘한 빛을 흩뿌린다.
처음으로 니콜라스와 눈을 마주하는 그.
알 수 없는 힘을 품은 시선이 니콜라스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어째 소름이 끼치는 눈빛이다.
니콜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아켈루스로 손을 가져갔다.
묶여 있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술렁이는 걸까.
“..역시 그랬군. 데이브 클락. 그자가 마왕이었어.”
“..뭐라고?”
덤덤히 내뱉어진 말이 니콜라스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보리스의 반응은 태연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가 없겠지.”
“너, 누구냐.”
니콜라스는 그제야 보리스의 안에 다른 누군가가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 무명이라는 용사가 쓰던 분신과 비슷한 기술인 걸까?
보아하니 저 문신이 매개인 것 같긴 한데..
하지만 타인의 몸에 자신의 의식을 깃들게 하다니, 이게 대체..
“그럼 아리벨은 이미 시간을 되감은 건가? 뭐든 간에 여신의 권능은 곤란하군. 시급히 처리해야겠어.”
“너, 파라켈수스냐?”
니콜라스는 비로소 보리스의 별명이 검성의 종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검성의 측근을 일컫는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던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별명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거라면..
“왔군. 조금 늦은 건가?”
“뭐가 왔다는 거지?”
“너만큼이나 멍청한 친구지. 이만 가봐야겠어. 정보 고마웠네. 니콜라스. 역시 자네는 최고의 인형이야.”
“인형? 이봐, 그게 무슨..!”
니콜라스의 다급한 외침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보리스가 고개를 떨군다. 니콜라스는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인형? 인형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니콜라스! 물러나!”
데이브가 니콜라스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 순간의 일이었다.
니콜라스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아켈루스를 뽑아 들며 뒤돌아섰다.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거대한 어둠의 구체.
‘이건 또 뭐야?’
아켈루스의 검신 위로 뇌전이 일어난다.
니콜라스는 반사적으로 샌드 드래곤을 소환했다.
마법을 사용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피하라고 했잖아. 멍청아!”
그런데 데이브는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마법사가 장벽을 세우는 건 당연한 일인데.
“..샌드 드래곤?”
그러나 니콜라스는 알지 못했다.
데이브가 니콜라스에게 피하라고 외친 진짜 이유를.
“크롸아아아아!”
거대한 포효와 함께 샌드 드래곤의 몸이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말라비틀어지는 몸 위로 거대한 비늘들이 떨어져 나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뽑혀 나가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이게.. 이게 무슨..”
“뱀파이어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물러서!”
뱀파이어라고? 니콜라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이윽고 혀를 차는 니콜라스.
아무래도 지금은 충격에 빠져있을 때가 아닌 모양이다.
그는 곧바로 샌드 드래곤을 다시 집어넣으려 했다.
펼쳐지는 그림자.
“먹을 게 많군.”
그러나 그 판단 역시 실수였다.
하긴 실수를 하는 게 당연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게 뱀파이어는 이미 멸종한 종족이었고, 그만큼 알려진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니콜라스는 알지 못했다.
왜 뱀파이어가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지.
그리고 뱀파이어에게 있어 어둠이라는 게, 그림자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도.
“그림자가..!”
다음 순간, 니콜라스는 그림자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그림자를 닫아보려는 니콜라스.
그러나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그림자에서는 이미 수많은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수들을 향해 뻗어지는 뱀파이어의 손.
“물결빛.”
그 순간 니콜라스를 구해낸 것은 데이브였다.
환한 빛을 휘감은 검이 어둠을 밀어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바닥을 나뒹구는 건 창백한 피부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붉은 눈을 가진 중년의 미남자.
시대와 동떨어진 고풍스러운 옷이 휘날린다.
먼지를 뒤집어쓴 망토를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그.
“어리석군. 그렇게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전사가 고작 연금술사 놈들의 하수인이나 하고 있단 말이냐!”
뱀파이어 로드가 데이브를 향해 소리친다.
그런데 어째 말하는 내용이 좀 이상하다.
연금술사의 하수인이라니?
“이봐, 당신.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
“흥. 너희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 썩어 빠진 놈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군.”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니콜라스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 뱀파이어는 사람의 말을 듣질 않는다.
“나는 이미 목적을 완수했다! 봐라! 그 처참한 몰골을!”
“뭐라고?”
“두려운가? 하지만 너희 역시 곧 그렇게 될 거다. 기다려라! 밤이 너희를 지켜볼 것이다!”
요란하게 망토를 휘저은 박쥐로 변한 뱀파이어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쫓아야 할까? 아니, 그보다는 상황의 확인이 먼저다.
“목적을 이뤘다니. 대체 무슨 뜻이지?”
“보면 알잖아. 보리스 그놈. 이미 죽었어.”
의아해하는 니콜라스의 질문에 답한 것은 데이브였다.
시큰둥한 태도. 그러나 그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니콜라스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어느 틈에 이런 거지?”
“나도 몰라.”
보리스의 머리에는 거대한 말뚝이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