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 해츨링과 열 자루의 검(1)
결국 우리는 발할라에 들어서지 못했다.
병사들이 타국인의 출입을 제한한다며 우리를 막아선 것이다.
하기야 드래곤에 뱀파이어, 그리고 흑마법사와 엘프까지.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이 일행의 절반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병사들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겠지.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설마 이런 곳에서 발목이 묶일 줄은 몰랐다.
본래 계획이라면 여관을 잡고 쉴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적당한 숲을 발견해 야영지를 차릴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너희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갈 수가 있어? 포로면 포로 대우를 해줘야 할 거 아니야! 포로더러 알아서 쫓아오라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
프로키온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고기를 굽는다.
우선 먹고 생각하자며 조르디네스가 잡아 온 사슴 고기다.
원래라면 이번에도 스튜를 끓일 작정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벨의 반찬 투정을 해결해 버린 것 같다.
정작 엘리아의 경우엔 떨떠름한 얼굴로 혼자 마른 과일을 먹어야 했지만.
“아니면 뭐야! 내 이제 내 정보는 필요 없다는 거냐!”
그나저나 프로키온 저 녀석은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정보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포로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용케 우리를 쫓아 왔구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진짜 서클만 봉인되지 않았어도 그냥 도망가는 건데..”
글쎄. 과연 서클 때문일까?
프로키온은 한때 8서클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흑마법사다.
그런데 그런 마법사가 고작해야 4서클의 마력에 그렇게 큰 미련이 있을까?
물론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본디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기 마련이다.
한때 높은 곳에 올랐던 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솔직히 네 정보는 이미 필요가 없긴 해.”
“..뭐라고?”
“네 배후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은 하고 있거든. 사실, 거의 확신하고 있지.”
나는 조소를 숨기지 못한 채 쏘아붙였다.
그도 그럴 게 의도가 지나치게 뻔하지 않은가.
하기야 처음부터 마족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 녀석은 이미 쉽게 힘을 얻는 방법을 알아버리고 만 상황이다.
지금만 해도 배신자 놈이 뻗어올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는 거다.
“거, 거짓말하지 마!”
아니나 다를까. 프로키온의 동공이 흔들린다.
“거짓말이라니?”
“정체를 확신하고 있다면 나를 데리고 다닐 리가 없잖아! 너는 아직..!”
“그래, 내가 너를 살려두고 있는 건 고작해야 그 일말의 가능성 때문이지.”
나는 가늘어진 눈으로 프로키온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게 남은 마지막 의혹. 네가 살아있는 이유는 그게 전부다.”
“나, 나는..”
“그러니 어느 쪽 편에 붙는 게 이득일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혹시 아냐? 네 정보가 쓸모 있다면 그래도 살길 정도는 열어줄지도 모르잖아?”
놈이 고개를 숙인다. 채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듯한 모습이다.
아직 그가 흑마법사였던 시절의 영광이라도 떠올리고 있는 거겠지.
나는 그런 프로키온을 뒤로한 채 모닥불로 다가갔다.
‘흑마법사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배신자 놈의 협력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완벽하게 조리된 사슴 고기를 썰어낸다.
나는 일행들의 접시에 고기를 덜어주고는 내 자리로 가 식사를 시작했다.
‘배신자라..’
그런데 영 입맛이 돌지를 않는다.
프로키온과 대화를 하다 보니 자꾸만 배신자에 대한 것이 떠올라서다.
한동안은 그 이름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겠지.’
아마도 배신자는 벨제뷔트의 측근 중에, 사천왕 중에 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의 일들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사천왕 중 두 사람이 사라진 상황.
사실상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명백해진 셈이다.
다만 의문이 있다면 제아무리 사천왕이라 해도 혼자 이 모든 일을 해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 뿐.
내가 범인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괜찮은 거냐?”
조르디네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우선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나는 굳게 닫힌 성문을 바라보았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던가?”
“..그래, 맞아. 레온하트와 티그리스의 전쟁이라더군.”
“역시 벨의 단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나는 과거에 벨에게서 들었던 두 나라의 관계를 떠올렸다.
분명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맞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던가?
“사이가 좋기는 무슨.”
“..이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당황하는 벨의 모습이 보인다.
하기야 그녀로서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본디 두 나라는 하나의 제국에서 갈라진 곳이었으니 더 그럴 테고.
“데이브. 어쩌면 이번에도..”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는 벨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틀림없이.
이번 사건 역시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겠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행동에 경계심을 느낀 파라켈수스의 짓이라고 해야 하나?
“그와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마족의 침공이 시작되었다라..”
“연금술사와 마족이 손을 잡은 게 틀림없는 거 같군.”
“그래,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야.”
“네가 한 일도 아닌데 왜 미안해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기는 하지.
아무래도 조르디네스는 나와 벨제뷔트를 별개의 인물로 여기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런 주제에 둘 모두를 친구라고 여긴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우선 미안하다고 해둘게. 아무래도 마족 측에서는 연금술사들이 해츨링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야.”
“그럴 만도 하지. 연금술사가 어떤 존재인지도 최근에야 알았을 테니.”
“이렇게 되면 마족과의 불가침조약은 깨지는 건가?”
내 질문에 조르디네스가 눈을 마주쳐 온다.
어딘지 모를 안타까움을 담은 눈빛.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되겠지.”
“..곤란해지겠군. 여러모로.”
“어쩔 수 없지. 어쩌면 우리의 조약은 진작부터 깨져버린 건지도 모르니까. 사실 미안한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야. 너에게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를 숨겼잖아.”
“그러고 보니 이유를 묻지 않았군. 연금술사와 조약을 했다고 했던가? 왜 그런 거지?”
조르디네스는 내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조르디네스?”
“…”
말없이 제 눈을 가리키는 조르디네스.
그녀는 그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걸 금지당한 모양이다.
확실히, 용의 약속이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아마 저 행동은 말 대신 행동으로 단서를 주려는 거겠지.
‘눈이라..’
무언가를 알리려 한다기엔 지극히 단순한 단서.
그러나 사건을 전말을 깨닫기엔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신룡의 눈이라. 그렇다면..’
나는 감당키 어려운 진실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생각들.
‘파라켈수스 따위가 어떻게 조르디네스에게 서약을 강요했는지가 의문이었는데.. 그래서였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할라의 국경이 통제되고 있는 건 그래서인가?”
“그래, 혹시라도 용병으로 위장한 흑마법사가 들어올지도 모르니 경계하는 거겠지.”
“그런데 마족이 선공을 해온다는 게 확실하긴 한 건가? 지금까지는 그런 적 없었잖아?”
“그것 말인데..”
내 질문에 답하려던 조르디네스의 입이 다물어진다.
그녀의 경계심 어린 눈이 나의 뒤쪽을 바라본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나는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허.”
그런데 혹시 내가 너무 깊이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걸까?
낯선 얼굴. 그러나 낯익은 기운이 느껴진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명의 기척.
나는 그 모습에서 예이츠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당신들이 그 십검이군.”
“그래, 당대의 용사. 네가 바쁘다기에 직접 만나러 왔다. 선배를 움직이게 하다니 건방진 후배로군.”
패도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용사가 앞으로 나와 소리친다.
알아보지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는, 누가 봐도 천둥검 티타르라고밖에 할 수 없을 남자.
저릿한 기세를 흩뿌리는 그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전에.. 본의 아니게 조금 전의 대화를 조금 엿듣고 말았다만..”
검을 뽑아 든 채 살기를 뿜어대는 그.
푸른 눈빛이 나를 쏘아본다.
“너..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군?”
* * *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다.
날카로운 티타르의 눈이 상대를 쏘아본다.
“너무 무섭게 노려보는 거 아닙니까?”
반면 데이브의 눈은 고요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이다.
티타르는 데이브의 태연한 목소리에 절로 미간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이게 정말로 전장을 겪지 못한 용사라고?’
왜 눈앞의 남자에게서 묘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까.
세간의 소문과 예이츠의 증언에 의하면 상대는 분명 신인 용사일 텐데.
수없는 전장을 넘어선 티타르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나약한 햇병아리에 불과할 남자.
그러나 티타르의 본능은 눈앞의 남자를 결코 얕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연변이인가?’
티타르는 시대를 막론하고 튀어나오던 괴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설 속의 암살자 아라크네나 이름 없는 마법사 무명.
그리고 자신보다는 후배이지만 얕보기 힘든 실력을 가진 예이츠까지.
인류라는 이름의 거대한 집단은 종종, 이렇게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괴물을 낳고야 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녀석도..’
“당신이 그 티타르군요.”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티타르의 눈이 다시 데이브에게로 향했다.
“..그러는 너는 데이브 클락이 맞는 거겠지?”
“물론, 제가 그 데이브 클락이죠. 그런데 그만 좀 노려볼 수 없나요? 이제 좀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티타르는 데이브의 대답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치솟는 살의를 억눌렀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듯 시선을 돌렸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으면 까닭 모를 불쾌함이 올라온다.
“..질문에 답해라. 데이브 클락.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어디까지냐고 하신다면?”
“마족과 연금술사에 대해 묻는 거다.”
데이브는 어딘가 묘한 눈으로 티타르를 바라보다 빙긋 웃음을 터트렸다.
침묵하는 데이브. 아무래도 쉽게 정보를 흘릴 것 같지는 않았다.
티타르는 그런 데이브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그의 일행들을 살폈다.
붉은 머리의 엘프와 금발의 남자가 보인다. 아마 저 남자는 마법사겠지.
‘당대의 용사가 데리고 다니는 동료인가? 실력이 상당하군. 나이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야. 그런데..’
그대로 라나에게로 미끄러지는 시선.
‘어린아이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지? 그리고 저 은발의 여자는 대체..’
티타르는 보면 볼수록 혼란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용사의 재목이라 여겼던 데이브 클락.
그러나 실제로 본 데이브 클락의 모습은 여러모로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그리 정의로운 것 같지도, 그리 헌신적인 것 같지도 않다.
“우선 앉으시죠. 식사 중이었는데 마침 잘됐군요.”
무엇보다 저 뻔뻔함이라니.
티타르가 알고 있는 용사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보통 용사라 하면 조금 더..
‘아니, 예이츠 그놈과는 비슷한가?’
하긴 이유가 뭐건 간에 합석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사실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오히려 이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근거도 없이 후배 용사를 몰아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티타르는 일단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뱀파이어가 있는 거지?”
물론, 얼마 못 가 다시 검을 뽑아 들어야만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