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 시간축의 용사(2)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놈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마의 근원, 고대의 외신이라는 사실을.
“회색여명.”
검을 휘두른 것은 그야말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단숨에 검 끝으로 모여드는 에테르의 힘이 느껴진다.
나의 검은 그대로 여명을 흩뿌리며 놈의 심장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클라리스의 검과는 달리 보다 일점 돌파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광범위한 범위에 흩어진 적을 쓰러트리기엔 부족하지만 단독으로 존재하는 적을 쓰러트리기엔 더할 나위가 없는 공격.
“쯧.”
허나 그런 나의 검조차 외신의 힘 앞에서는 맥없이 튕겨 나갈 뿐이었다.
가공할 반탄력이 느껴진다. 자칫하면 검을 놓쳐버릴 뻔했을 정도다.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물러서며 놈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젠장.”
그런데 저 거대한 몸으로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걸까.
어느샌가 내 앞으로 쇄도한 드래곤이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끔찍하리만치 농밀한 마기가 느껴진다.
‘저거였군.’
나는 그걸 보고서야 왜 지금까지 태양신이 부활하지 못했던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태양신은 분명 외신을 쓰러트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외신 역시 그냥 죽지는 않았다는 거다.
아마도 외신이 남긴 저주가 태양신의 몸을 적셔 타락시킨 거겠지.
그렇게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의 영혼을 윤회하게 만든 것이다.
태양신은 물론, 그를 따랐던 호루스족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윤회한 영혼이 나에게로 이어진 건가. 왜곡점이 될 만도 하네.”
나를 향해 덮쳐드는 마기의 파도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아마 보통의 호루스족이었다면 저 마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느꼈을 거다.
용사와 마왕의 힘처럼. 에테르와 마기는 서로 상극으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너, 이래도 되는 건가?”
하지만 외신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비록 내 안에 마기가 없다고 해서 지난 세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나도 한때는 마왕이라 불렸던 몸이거든?”
놈의 마기가 방향을 바꾼다.
그대로 나의 검 위에 감겨드는 마기의 뭉텅이.
후욱!
주의해야 할 것은 혹시라도 마기가 내 몸에 닿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마기를 다뤄내는 것과는 별개로, 이 힘이 나와 상극이라는 사실까지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놀랍군.”
외신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해볼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황혼검의 이름이었다.
아직 부족한 오러의 힘과는 달리 마기의 양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상황.
솔직히 말해 힘의 균형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보자.”
물론, 서로 상극인 두 개의 힘을 뒤섞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루스족의 육신이 단단하다고는 하지만 자칫하면 붕괴를 부를 수도 있는 일.
“황혼명멸.”
그러나 그사이에 오러라는 이름의 완충재가 끼어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굳이 말하자면 섞었다기보다는 태극에 가까운 힘.
서로 다른 두 개의 힘이 원을 그리며 놈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콰직!
다행히 이번에는 공격이 먹혀들었다.
반쯤 잘린 놈의 목에서부터 격류와도 같은 피가 쏟아져 내린다.
그와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악취.
아무래도 저 녀석의 피는 맹독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물러서! 괜히 말려들어서 죽지 말고!”
나는 호루스족들을 향해 소리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것은 남아 있는 두 개의 머리였다.
사아아악!
나를 향해 산성의 브레스가 쏟아진다.
나는 그대로 날개를 접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머리 위를 스치는 브레스.
나는 일부러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공격을 피하며 기회를 엿봤다.
“도망치지 않는 거냐? 오만하구나.”
그런데 어째서일까. 놈의 몸은 어느덧 나의 뒤에 서 있었다.
이번에도 놈의 움직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지금 내 속도가 솔레이에 필적한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놈을 떨쳐내기 위해 빠르게 날개를 펼쳤다.
“가소롭구나.”
그러나 이번에도 따라잡힌다.
나는 그제야 놈의 이 비정상적인 속도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야. 시간..아니면 공간. 어쩌면 그 둘 모두를 다루는 거겠지.’
왜곡점. 아무래도 외신은 스스로의 힘을 이용해 세계의 규칙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세계의 섭리로부터 거절당할 만한 권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놈 역시 신으로써의 권능을 온전히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
하기야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다.
‘타이밍을 맞추는 게 관건이겠네.’
아무래도 눈으로 보고 쫓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뒤늦게 비껴냈는데도 불구하고 몸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맞았다가는 그대로 숨통이 끊어져 버릴 테지.
터엉!
감각을 세우고 마기의 흔적을 뒤쫓는다.
때마침 느껴지는 공격. 다행히 이번에는 늦지 않게 대처할 수 있었다.
“크헉.”
그러나 맞받아치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외신과 나 사이의 격차는 여전했고, 단순히 맞부딪히는 것만으로는 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요령은 파악했어.’
그래도 정보를 얻어낸 만큼 이번엔 손해보다는 이득이 컸다.
문제가 있다면 칼날에 맺힌 마기의 양이 에테르를 넘어섰다는 점이겠지.
아무래도 마기를 묶어두는 데에도 슬슬 한계가 온 것 같다.
“중요한 건 힘의 균형.”
고개를 들어보면, 일찍이 내가 잘라냈던 놈의 목이 재생을 마치고 있었다.
세 개의 머리가 일제히 숨결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것은 산성과 마기가 뒤섞인 브레스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날개를 펼쳤다.
“그랜드 크로스.”
솟구치는 몸에서부터 터져 나온 것은 반격기였다.
내찌른 검과 맞부딪히는 거대한 마기.
끈적이는 기운이 나의 전신을 뒤덮는다. 심장이 죄어드는 듯한 감각.
나는 몸 위로 오러를 둘러 시간을 벌었다.
“개벽.”
몰아치는 폭풍을 가까스로 견뎌 낸 상황이다.
당연하게도, 내 검에 남아 있는 것은 고작해야 한 줌의 에테르가 전부였다.
콰직!
물론,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놈의 몸을 내리쳤다.
“고작 그게 전부더냐?”
그러나 놈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멈춰서는 검.
역시 에테르만으로는 신의 화신을 쓰러트리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까.
나는 놈과 맞닿아 있는 검날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내 칼날이 낸 아주 미세한 흠집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그거 알고 있나? 네가 미트라와 한 계약이 먼 훗날에도 전해지고 있다는 걸.”
“..너!”
세 개의 머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아마도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거겠지.
“이미 늦었어.”
계약 해제의 주술.
본래라면 시전자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주술이 펼쳐진다.
“참 우습지 않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계약 해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외신의 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영혼이 외신에 의해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지금 나의 손에는 놈의 마기가 쥐어져 있기까지 하다.
사실상 계약을 풀어 헤칠 열쇠가 내 손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태양신의 용사로 선택된 자가 언젠가 너의 후계가 되다니.”
나는 그대로 손을 내밀어 미트라와 외신 간의 계약을 파기했다.
그 결과 외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겠지.
“..기다려라. 내가 다시 너를 찾을 테니.”
외신의 정신이 미트라의 몸에서부터 밀려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싱거운 결말이었다.
“그보다는 내가 너를 찾아 가는 게 빠를 걸?”
물론, 놈과 다시 만났을 땐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다.
놈이 나를 노리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놈에게 물을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를 이 시간대로 부른 것도 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때는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준비를 마친 상황일 테니까.
“이, 이게 대체..”
이윽고 드래곤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미트라의 얼이 빠진 목소리였다.
공포에 질린 눈이 나를 바라본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네가 알 필요 없는 사람.”
나는 그대로 놈의 몸을 반으로 잘라냈다.
* * *
다시 돌아온 현재.
릴리스의 공격에 바알이 쓰러진다.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라나와 데이브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지금이었죠?”
“너라면 참을 수 있었을까?”
라나의 물음에도 릴리스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그녀에겐 벨제고트의 원한을 갚는 것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당신의 그 행동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어요.”
“벨제고트가 없는 이 세상 따윈 내 알 바 아니야.”
“하지만..”
쿵!
그 순간 들려오는 굉음.
라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마왕성을 바라본다.
저 멀리서부터 파라켈수스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우러 가야겠어요.”
“잘 해봐. 나는 갈 생각이 없으니까.”
라나의 말에도 릴리스는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라나는 그 모습에 포기한 듯 벨을 바라보았다.
“벨, 당신은요?”
“..미안, 라나. 나는 더 이상 너희와 함께 갈 수 없어.”
“..아저씨가 없어서인가요?”
“..그래.”
아리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나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눈빛에 가득한 미안함이 라나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미안해. 라나. 나는 다시 신계로 가야만 해.”
“..미안해하지 마세요. 벨도 노력했잖아요.”
“하지만 라나..”
“그보다는 지켜봐 주세요. 보세요. 제 손에 들린 성검을.”
라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자신의 손에 들린 던 브레이커를 보였다.
“저는 벨이 고른 용사에요. 쉽게 지지는 않을 거에요.”
아리벨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라나는 그런 아리벨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가죠. 데이브 씨.”
“..그래.”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라나.
그녀는 곧 데이브를 데리고 첨탑의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첨탑에는 아리벨과 릴리스만이 남게 되었다.
“왜 말하지 않은 거지?”
이어지는 침묵 속, 입을 연 것은 의외로 릴리스였다.
“그 녀석이 돌아올 방법이 아직 하나 남았잖아?”
“..그 녀석은 태양신이 되기를 거부했어. 무엇보다 그 녀석을 데리고 오려던 바알을 죽인 건 너였잖아?”
“봐놓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내가 죽인 건 껍데기뿐이야. 바알의 영혼은 이미 떠나버렸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릴리스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를 후련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절망감에 젖어있는 아리벨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뭐든 간에 세계는 곧 구원받는 거 아닌가?”
릴리스의 물음에 아리벨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리벨이 창밖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조만간 이 세계를 덮치게 될 거대한 재앙이 보이고 있었다.
“녀석은 과거로 갔어. 녀석이 성공했다면 이미 이 세상은 구원받았어야 했겠지.”
“그럼 실패했다는 건가?”
릴리스의 물음에 아리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도박에 실패했어.”
감당하기 어려운 죄악감이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곧 닥쳐올 멸망이 그녀의 눈을 뒤덮고 있었다.
멸망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그런가?”
릴리스는 그런 아리벨을 향해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 너무 한 가지 답만 정해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내가 아는 벨제뷔트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건..”
릴리스의 물음에 아리벨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만약..그 녀석이 내가 모르는 답을 찾으려는 거라면..?”
그 순간 아리벨의 머릿속을 스치는 건 한가지 가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여신인 그녀가 아는 방법은 결국 뻔했다.
세계의 섭리를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손을 뻗는 게 한계라는 거다.
그런데 그녀가 아는 그는 어땠지?
그런 수단 따위에 국한되는 사람이었나?
“문은 닫고 가. 이래 봬도 유폐된 몸이거든.”
아리벨은 대답 없이 첨탑을 달려 내려갔다.
당연하게도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하여간 신이라는 것들은..”
홀로 남은 릴리스의 목소리가 맴돈다.
첨탑의 벽에 등을 기댄 릴리스.
그녀를 붙잡고 있던 모든 구속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기색이다.
하기야, 이런 감옥 따위는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릴리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 그 어떤 감옥도 악몽의 여왕을 가둘 수는 없을 테니까..
릴리스가 이 첨탑에 갇혀 있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는 거다.
“서둘러. 설마 이번에도 늦으려는 건 아니겠지?”
릴리스가 바알의 시체를 바라본다.
정확히는 그의 영혼이 향한 곳에 서 있는 남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