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 순환과 역순환(5)
외신의 눈이 눈앞의 적들을 바라본다.
비로소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든 두 명의 신이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외신의 손에 자신의 세계를 잃어야만 했던 기계신.
그리고 외신에게 속아 친구를 죽음 속에 방치해야만 했던 신룡.
본래라면 계약이라는 미명하에 외신에게 속박되어 있었을 터인 그들이다.
“설마.. 진심으로 나와 싸우겠다는 거냐? 고작 너희 따위가?”
외신은 그런 두 신들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들이 자신에게 가진 분노는 이해했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덤벼드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견뎌내지 못할 위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지 못할 이유는 뭐지? 설마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그러나 신룡은 그 분위기 따위에 굴복하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외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기야 힘의 차이가 어쨌단 말인가. 고작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애초부터 이 세계를 부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신룡의 살의가 폭풍처럼 들이치기 시작했다.
“쯧.”
그런 신룡의 모습에 외신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겁을 주는 방식으로는 설득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두 신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칫 마왕을 놓쳐버릴 우려가 있었다.
외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마왕을 처리하고 싶었다.
“기계신.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너의 세계는 아직 내 손에..”
“기긱. 긱.”
“..그래, 그랬었지.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러나 기계신 역시 쉽사리 물러서려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눈을 빛내며 전에 없던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쉴새 없이 움직이는 엔진이 회백색의 연기를 뿜어낸다.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는 건가?’
외신의 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분명 저들은 태양신의 외신의 손에 무력하게 쓰러지던 모습을 보았을 거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도 자신에게 덤벼온단 말인가?
설마 고작 숫자 따위를 믿고 그를 얕보는 건 아니겠지?
“너희 따위가 나를 이기겠다고?”
무너져 내리는 자존심. 이윽고 외신의 눈이 분노와 증오에 물들어 번득이기 시작했다.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신답게 기존의 목적 따위는 진작에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세 명의 신이 마주한다.
“할 수 있다면 해 봐라!”
이윽고 펼쳐지는 것은 신화적인 광경이었다.
격돌하는 세 명의 신과 터져나가는 거대한 폭발.
원영신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 여파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어버렸을 위력의 공격이었다.
마왕은 질린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이윽고 두 개의 구멍 앞에 섰다.
그는 저 세 명의 신들이 부딪히는 순간 하계에 쏟아지게 될 여파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싸움을 붙여놓긴 했지만 자칫하면 이 여파만으로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조금 가감하며 싸워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그나마 저 두 신이 신경을 써준다면야 조금은 상황이 낫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계가 멸망하고 말고는 신들의 관심 밖이었다.
하기야 신룡만 해도 한 때는 이 세계를 그의 손으로 부수려던 작자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 세계 출신이 아닌 기계신과 외신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말이다.
“걱정하지 마라. 너에게만 맡길 생각은 없으니까.”
긴장하는 순간, 줄곧 모습을 감추고 있던 태양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남과 동시에 마왕을 밀어내며 그 위를 대신 덮어가는 태양신.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꽤 신나 보이는군.”
지나치게 신이 난 그 모습에 마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어째 그가 생각했던 태양신과는 인상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라면 어땠을까. 바라마지 않았던 희망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희망 속에 너는 없어. 그런데도 즐겁나? 네가 죽어버린다는데도?”
“겨우 삼천 년만으로도 지쳐버린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내가 몇억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또 그렇네.”
아무래도 두 사람이 같은 존재이긴 한 모양이다.
비록 양극단에 서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닮아있음을 알아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를 일이지.
파직.
그 순간 마왕과 태양신은 알 수 없는 기억들이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보아하니 서로의 기억이 섞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사실 그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들은 육체 없이 정신만이 부유하고 있었고, 같은 영혼을 가진 만큼 기억이 새어나갈 곳도 많았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흘러 나간 기억 중에는 마왕이 외신을 어떻게 쓰러트리려는 지에 대한 기억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방법이라고?”
그것을 확인한 태양신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진심으로 이런 정신 나간 계획을 실행시킬 작정인가?
희망 운운하며 즐거워했던 기분이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두고 참신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만용을 부린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게 내 환생이라니..”
“너도 정신 나간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내가 생각한 계획보다는 나은 것 같군.”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마왕의 물음에 태양신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생각이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가능하긴 할 거다. 하지만.. 신룡에게는 안된 일이군.”
아마도 그의 권능으로 미래를 본 거겠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결말을 본 것일까. 태양신의 얼굴이 흐려졌다.
콰아앙!
폭발이 일어난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면 외신의 팔이 기계신의 몸을 박살 내고 있었다.
단숨에 우그러지는 외피와 드러나는 코어.
“사라져라..!”
이윽고 외신의 눈에서부터 쏟아진 광선이 두 신의 몸을 꿰뚫는다.
예상은 했지만, 외신은 두 명의 신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단숨에 신룡의 턱을 벌려 그 입 안으로 광선을 뿜어대는 모습.
아마 이대로 가면 두 신 역시 태양신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보를 얻어내기엔 이만한 것도 없겠지.’
절체절명의 순간, 마왕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듯 시선을 움직였다.
“정보는 충분히 얻었나?”
이어지는 태양신의 물음에 마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태양신으로부터 얻어낸 전투 경험.
사실상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고 보아야겠지.
“아직 자신이 없나 보지?”
“..그래.”
문제가 있다면 힘의 차이에 있었다.
물론 마왕이 외신과 그 사이의 격차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에 온 이유부터가 그 격차를 뒤집을 방법을 알아내기 위함이 아니던가.
“..힘의 차이가 너무 심해.”
그러나 책략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적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 이하일 경우에나 통하는 법이다.
개미가 아무리 책략을 세워도 코끼리를 이길 수는 없다는 거다.
마왕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외신의 힘이 강하다는 사실에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원영신을 이룬 만큼 어느 정도는 통할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네가 신격을 얻는다면 상황이 바뀐다.”
“..신격?”
태양신은 마왕과 외신의 차이가 격에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두 사람 사이에는 사실상 노력이나 재능 따위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 지금 내가 여기에 와서 한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야?”
“그렇지는 않다. 신격이 얻었다고 무조건 전투에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게 가능했다면 당장 나부터가 이러고 있진 않겠지.”
“둘 다 해야 한다는 거군.. 하지만 신이 되어버리면 하계로 돌아가지 못하잖아?”
“신좌에만 오르지 않으면 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울 테니까.”
“..돕는다고?”
“지금은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돌아온 이후로 미루도록 하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마왕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오도록 할게.”
“역순환을 잊지 마라. 그곳에 모든 답이 있다.”
마왕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하계로 내려갔다.
그 사이 하계의 시간은 벌써 3년이 흘러 있었다.
* * *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어.’
아무래도 균열과 하계 사이의 괴리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기계신에 의해 끌려갔을 때는 그래도 3개월이었는데 설마 3년이 흘러버렸을 줄이야.
“두 사람은 무사한 건가?”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하계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 하계의 시간보다도 한참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꿈속의 시간.
어쩌면 그곳에서는 이미 수백 년이.. 어쩌면 수천 년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나는 곧바로 흐름을 타고 릴리스와 사마연의 세계로 이동했다.
“..붉어졌군.”
예상했던 대로 꿈속의 세계는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하늘은 노을이 지는 듯한 붉은 빛이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걸음을 옮겼다.
꿈속 가장 깊은 곳에는 두 명의 영혼이 손을 맞잡은 채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스스로를 잠들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견디기 힘든 미안함을 느끼며 그녀들을 향해 걸었다.
“..릴리스. 사마연.”
문제는 그녀들이 깨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깊게 잠든 거지?’
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상함을 느낀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릴리스?”
두 사람의 몸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 손에 닿기가 무섭게 바스러지고 말았다.
“..사마연.”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로 두 사람이 죽은 거라면, 이 세계는 어떻게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의 핵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거지?
‘..순환.’
아니, 모른 척은 그만하자. 나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릴리스와 사마연의 사이를 순환하던 흐름이 이토록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젠장.”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느꼈다.
빨리 오라고 말하며 웃었던 릴리스와 까닭 모를 미소를 짓고 있던 사마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억누른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의지를 따라 변하는 세계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그녀들이 나에게 남긴 유산이겠지.
이 순간, 이 세계의 통제권은 나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래, 모조리 되찾아 버리면 그만이야.”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나의 눈앞에는 외신이 서 있었다.
꿈속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분노를 참아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사라져 버려!”
놈을 향해 휘둘러지는 검.
퍼억!
그러나 죽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부활을 마치며 고개를 휘저었다.
흥분해서는 안 된다.
아니, 흥분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놈을 상대함에 있어 냉정함을 잊는 건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며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퍼억!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아무래도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저릿해지는 마음을 삼켜가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퍼억!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이어진 죽음.
내가 침착함을 갖게 된 건 그로부터 수백 번을 더 죽은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