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9)
39화 – 복수의 끝.
카드낙의 오른팔이 바닥을 뒹군다.
데이브의 칼날이 어깨를 스치며 살점을 짓이긴다. 이어지는 것은 불꽃의 잔흔이다.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냄새와 끔찍한 격통.
그리고 사라져 버린 오른팔에 대한 지독한 상실감이 자리 잡는다.
“으아아악!”
카드낙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숨 막히는 격통이 척수를 타고 흘러가 뇌리를 꿰뚫는다.
그러나 이 순간, 카드낙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비현실성.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숨통을 틀어쥐는 것이다.
“데, 데이브 클락!”
한편, 토트는 갑작스레 등장한 데이브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자식은 또 언제 여기에 온 거지?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지금 이 장소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리고 라나?”
무엇보다 저기 데이브의 팔 사이에 끼워져 있는 건 그의 딸 아닌가?
“너 자식을 끼고 싸우러 온 거야? 이거 완전 미친놈..”
“입이 멀쩡한 걸 보니 무사한가 보군.”
그러나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치는 토트의 모습에도 데이브는 마냥 시큰둥한 기색이었다.
라나를 둔 채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
그와 동시에 데이브의 검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아무래도 카드낙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끝장을 내려는 것 같았다.
“세이르! 당장 나와서 나를 지켜!”
그러나 이번에는 카드낙의 반응이 더 빨랐다.
하긴,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고 있는 놈을 상대로 어떻게 더 빠를 수 있겠냐마는..
콰앙!
데이브의 검날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굉음과 함께 몸을 두드리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반탄력이다.
결과적으로는 라나의 걱정이 적중한 셈이다.
결국 데이브는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마족과 적으로서 재회하고 만 것이다.
“..너, 낯이 익군. 나와 만난 적이 있던가?”
그 순간, 세이르의 눈이 빠르게 데이브의 모습을 살폈다.
어딘지 모르게 그 모습이 낯이 익었던 탓이다.
회색 머리카락과 군청색의 눈동자. 인간의 나이로 아마 스물 중반쯤 되었을 테지.
그런데 저 모습을 어디서 본 거지?
“글쎄.. 굳이 따져보면 만났다기보다는 들어봤다고 해야겠지.”
사실 데이브로서는 여기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봤자 딱히 득이 될 만한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데이브는 오히려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정체를 암시하고 있었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제 정체를 숨길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정확히는 마족들이 자신을 용사라고 오해하게끔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마족들이 가지고 있는 용사에 대한 집착을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을 앞세워 라나에 대한 주목을 낮추려는 것이다.
“들어봤다고? 그게 무슨..”
“설마 모르는 거야?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하지. 아마 곧 생각이 날 테니까.”
화르륵!
그 말과 함께 데이브의 검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윽.. 이게 대체.”
뜨겁다. 세이르는 그 생소한 감각에 눈을 부릅떴다.
마족의 권능을 가진 자신이 불을 뜨겁다고 느끼다니?
설마 저 남자는 성직자라도 된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용사! 그래,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용사의 모습이 분명..!’
세이르는 그제야 데이브의 정체를 깨달은 듯 기겁했다.
대체 왜 여기에 용사가 있단 말인가!
‘지금 나더러 맨몸으로 용사와 싸우라고?’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상대가 정말로 용사라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 마족으로서의 도리겠지.
그러나 그게 말만큼 쉬웠다면 세상에 용사의 손에 죽은 마족은 없었을 거다.
‘내가 듣기로 이번 용사의 능력은 분명..’
무엇보다 세이르는 당대의 용사가 마족의 마기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뻣뻣한 긴장감이 그의 전신을 훑어내린다.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얼마 전 녹초가 되어 간신히 돌아왔던 단탈리안의 모습이다.
‘이건 미친 짓이야..’
물론 적과 싸우다가 죽는 것은 세이르로서도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하지만 용기와 만용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 아닌가.
겁이 없기로 유명한 세이르 역시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살해당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는 거다.
하다못해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애초에 마족에게 있어 마기라는 건 인간으로 치자면 혈액과도 같은 것이다.
마기 없이 싸운다는 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빈혈을 동반한 채 격렬한 춤을 추는 것보다 멍청한 짓이라는 거다.
아무리 충성심이 강한 마족이라도 망설여질 수밖에.
‘하지만..’
그런데 이런 걸 두고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세이르에게는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계약자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대가를 이용한다면, 마기 없이도 한동안은 싸울 수 있어.’
마기가 사라지는 게 문제인 거라면, 마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쓰면 되는 게 아닐까?
계약자의 존재가 세이르의 마음에 덧없는 용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다.
‘시도할 가치는 있을 것 같은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후퇴를 고민할 명분은 가늠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빈약했지만, 싸워야만 하는 이유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용사라는 족속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놈들이 아닌가.
훗날 용사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용사에게 있어 가장 약한 시절은 바로 지금이라는 거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이 있지 않은 이상 지금보다 약한 용사를 만날 수는 없을 테니까.
“..계약자. 저 남자는 위험하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네 힘으로도 이길 수 없단 말이야?”
결국, 세이르는 목숨을 걸어보기로 했다.
설령 이곳에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족다운 최후를 맞이하겠노라. 그리 다짐하는 것이다.
“저 자식이 그렇게 강하단 말이야?”
그러나 카드낙은 아무래도 그런 세이르의 각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당연히 이길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게 아무리 하급 마족이라고는 하지만 마족은 마족이지 않은가.
설령 크리스 팔레아스라 하더라도 손쉽게 쓰러트릴 강자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세이르보다도 데이브가 강하다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오늘 대련의 결과를 듣긴 했었지만..’
하긴, 고작 용병 여섯으로 저들을 죽이려고 했던 카드낙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겠지.
애초에 그런 강자가 지금까지 C랭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 그럼 설마 날 버리고 도망칠 작정이야?”
그러나 눈앞에 닥친 것은 현실이다.
카드낙은 비로소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세이르의 입장에선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그가 겁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뜯어낼 수 있을 테니까.
“안심해라. 우리 마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으니까.”
“그, 그럼..”
“하지만 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승리를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대가가 말이야.”
그러나 세이르는 카드낙을 꼬드기고 있는 와중에도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수작질을 벌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데이브는 어째선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데이브의 입장이었다면 진작 달려들어 그들의 목을 잘라버렸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마치 그들이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줄게! 얼마든지 줄게! 내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아! 설령 내 수명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넘겨주마!”
뭐든 간에 세이르로서는 좋은 이야기였다.
퉁!
카드낙의 확답을 들은 세이르의 손이 그의 심장을 두드린다.
세이르의 마기가 부풀어 오른다. 구체의 형태로 휘몰아친다.
그렇게 형성된 마기의 구체는 회전이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거대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오..! 세이르! 그것이 너의 본체냐?”
이어지는 것은 카드낙의 감탄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세이르의 진신.
등 뒤에서부터 뻗어 나온 것은 상아색의 거대한 날개다. 그리고 조류의 것을 닮은 다리.
맹금류처럼 찢어진 눈과 전신에서 돋아나온 깃털들이 어느 명검 부럽지 않은 예기를 뽐내며 빛난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마기의 양과 질이었다.
이쯤 되면 이 일대의 모든 이들이 마족의 출현을 감지했겠지.
콰드드득!
그러나 세이르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처럼 굽이치는 마기의 흐름.
세이르의 마기가 세상 만물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윽..”
그 기세를 견디지 못한 라나가 물러선다.
치밀어오르는 적대감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설령 네가 정말 용사라 하더라도 이 상태의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거다!”
“오? 정말로 그럴까?”
그런데 어째서일까. 완전체로 변모한 세이르를 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까닭은.
오히려 안심하기까지 한 것 같은 건 어째서지?
“..너는 대체.”
“그럼 어디 한번 견뎌봐라.”
그러나 세이르의 의문은 채 날개를 펴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화르륵!
데이브의 검이 다시 한번 붉은 광채를 흩뿌린다.
끓어오르는 오러의 열기에 대기가 말라붙는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유화처럼 번져나간다.
입술이 갈라지고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변해가는 것만 같다.
지독한 열기다.
결국, 토트는 그 열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 이봐. .좀 적당히.. 으아악!”
그러나 단순히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등이 불타는 것만 같다.
토트는 이제 비명을 내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다가는 전신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화르륵!
반면, 데이브의 검은 이제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불꽃에 휘감겨 있었다.
이 정도면 지난날 던전에서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비록 단숨에 최고 화력까지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시간만 있다면 이전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 여러 번 쓰는 건 무리겠어.’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러홀이 뻐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격한 오러의 사용량이겠지.
이래서야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고갈되어 버릴 것이다.
하긴, 애초에 속성 오러라는 것이 소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왜 마기를 없애지 않는 거지?’
그러나 세이르 역시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기가 지워지는 것에 대비해 힘을 끌어모았는데 저 불꽃은 대체 뭐지?
막상 경계했던 일이 일어나질 않으니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저것도 보통 불꽃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마기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도 아닌 것 같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조금 전에 받았던 공격보다도 훨씬 더 위력이 클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던 건가? 굳이 공격까지 참아가면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세이르가 공격에 나섰다.
쿠웅!
마기의 탄환이 쏘아진다.
데이브의 힘도 인간치고는 대단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중급 익스퍼트 수준이다.
무슨 짓을 해도 저 탄환을 막아낼 수는 없을 테지.
결국 힘이라는 것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세이르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어?”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여겼던 검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하는 까닭은.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찬란한 광채를 흩뿌리고 있는 까닭은.
‘이건 설마..’
그 순간, 세이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의 전설이었다.
이제는 마족들 사이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몇 없는 오래된 전설이다.
첫 번째 용사가 사용하던 빛나는 검.
세상 모든 이를 절망에서 건져내는 희망의 검.
“설마.. 진짜 여명검이라고?”
죽었던 전설이 되살아난다. 망각의 강을 불사르며 환하게 타오른다.
광명과 함께 나타난 것은 잊힌 역사였다.
인간의 기억으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오랜 시간을 건너 역사의 부둣가에 도착한 전설이.
마를 멸하고 구세의 뜻을 흩뿌리던 여명이.
저 이름 모를 용사의 검 끝을 타고 다시 한번 그 영광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