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
4화 – 데이브 클락(2)
나는 사방에서 덮쳐드는 불꽃의 파도를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는 불꽃.
본래라면 살점이 녹고 피부가 떨어져 내리고도 남았을 온도다.
“..뜨겁지 않아.”
그러나 기묘하게도, 지금 내 손에서는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불 자체가 붙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물이나 바람처럼 흘러가 버리는 불꽃.
나는 그것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 가호가 없나 했더니..’
확실히 이건 마족의 권능이었다.
필시 상태창이 열리지 않은 건 바로 이 권능 때문이었던 거겠지.
상반되는 두 개의 힘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거다.
말하자면 권능이 가호를 튕겨내 버린 꼴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권능에도 제약이 생긴 것 같긴 하지만.’
문제는 상대를 밀어내는 건 권능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리벨의 가호가 내 권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거다.
화염 내성은 최소 하급 마족 이상인 것 같지만 나머지는 글쎄..
‘진짜 도움이 안 되는구나. 아리벨.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과거에 비하면 채 한 줌도 되지 않을 권능.
그러나 하급 마수와 싸우기엔 차고 넘치는 힘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체 무슨 권능이 있냐는 건데.”
때마침 얼굴 위로 덮쳐드는 연기가 눈을 찌른다.
나는 연기 속에 몸을 숨긴 채 청각에 감각을 집중했다.
놈들의 호흡을 읽고 움직이는 거다.
파앗!
이윽고 들려오는 것은 무언가가 뛰어드는 듯한 소리다.
바닥의 무르기로 판단하건대 꽤 높게 뛰어오른 것 같다.
‘대충 여기쯤인가?’
귓가를 찔러 드는 소리의 파도.
나는 눈을 감은 채 놈들의 움직임을 추측했다.
콰직!
어림짐작으로 휘두른 칼날이 적중했다.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이어지는 것은 검날을 적시는 피의 끈적함이다.
가볍게 거둔 목숨. 그러나 이런 걸 권능이라 보기엔 어렵다.
방향이야 어떻게 맞아떨어졌지만 사실상 감지보다는 예측에 가까웠으니까.
만약 권능이 있었다면 조금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을 거다.
‘감지 계통의 권능은 없는 것 같고.’
그러나 조급할 필요는 없다. 나는 차근차근 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만약 상태창이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나았을까.
솔직히 ‘마왕의 눈’이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권능이 수백 개가 넘었던 만큼 제법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아리벨한테 좀 따져야겠다!”
“케에엑!”
그러던 중 일제히 덤벼들기 시작하는 호롱 여우들.
나는 무심코 물러서려던 발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 보니 굳이 물러설 필요가 있나?
‘만약 그 권능이 있다면..’
바닥을 뒹굴고도 생채기 하나 없는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였다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만 생각했을 일.
허나 그런 것치고는 가슴의 고동이 거세다.
나는 모종의 확신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터엉!
그리고 내 판단은 옳았다.
격돌의 순간. 쇠가 부딪히는 것만 같은 울림이 귓가를 찔러 든다.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바닥을 나뒹구는 호롱 여우의 모습.
‘에테리얼 바디!’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 드디어 써먹을 만한 권능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기의 운용과 재생의 권능, 에테리얼 바디는 그것만으로도 마족의 상징과도 같았으니까.
강철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강인함과 고무 같은 유연함.
그 활용도는 일반적인 갑옷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도망칠 이유가 없지.”
확신을 가지는 순간, 나는 내 안의 마기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검은빛의 마기가 피부를 타고 뻗어 나온다.
나는 당황한 여우들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잠시 당황하던 여우들이 발톱을 휘두르며 내게 맞선다.
터엉!
그러나 마족의 권능을 상대로 하급 마수 따위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야말로 전차와도 같은 기세로 여우들의 무리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몸을 두드리는 주먹과 다리. 휘둘러지는 칼날.
“후우..”
널브러진 여우들의 사체가 발에 챈다.
시작이 어렵지 막상 힘을 써보니 순식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하는 몸 상태.
아무래도 재생의 권능도 있는 것 같다.
‘그럼 혹시 이것도 있나?’
이쯤 되니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쩌면 아리벨의 상태창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는 마족의 권능.
전투가 종료된 후, 나는 곧장 근처의 물가로 다가가 수면 위로 나를 비춰 보았다.
잿빛의 머리칼과 군청색의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보인다.
벨제뷔트와는 다르지만 기억 속에 존재하는 데이브 클락 그대로의 모습이다.
‘..오픈.’
그러나 시야에 집중하는 순간, 나는 군청색의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마왕이었을 적 가지고 있었던 권능, ‘마왕의 눈’이 발현이었다.
띠링!
[신규 유저가 시스템에 접속하였습니다. 경고. 정규 루트가 아닙니다. 관리자 아리벨에게 버그 리포트를 송신합니다. 오류 발생. 버그 리포트가 손상되었습니다. 재전송을 시도합니다..]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오류 발생. 관리자와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아리벨이 부재중에 있습니다. 새로운 관리자 ‘벨’을 파견합니다.]그 순간, 허공에서부터 금빛의 구멍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은빛의 날개를 가진 페어리였다.
“..아리벨?”
그런데 저 페어리. 어째 얼굴이 익숙하다.
* * *
그래, 솔직히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게 페어리라니? 옛 저녁에 멸종한 종족이 아닌가.
‘애초에 저 불쾌한 얼굴은 뭐지?’
물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 외견일 것이다.
몸 크기가 꽤 줄어들긴 했지만 저건 분명 아리벨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낱 필멸자가 여신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심지어 같은 것은 얼굴만이 아닌 것 같은데.
“..너.”
다른 때라면 모를까. 마왕의 눈을 사용하고 있는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게 진짜 아리벨이라는 것을.
“몸이 줄어들어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이네.”
“그 말을 들어보니 정말 아리벨이 맞긴 한 것 같은데.. 대체 언제부터 종족을 바꾼 거지?”
“전에도 말했잖아. 내가 가진 여신의 직위를 걸고 너를 회귀시키겠다고. 그냥 말한 대로 된 것뿐이야. 내가 일으킨 기적에 대한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라는 거지.”
“..그거 그냥 비유로 말한 거 아니었나? 아니면 여신이라는 게 그리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거였나?”
“그럴 리가 없잖아. 오히려 그 반대라는 생각은 안 들어? 내가 여신이라는 직위를 일시적으로나마 포기해야 할 정도로 회귀의 대가가 크다는 생각이라던가.”
“..그렇군.”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신의 역할은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것.
그러나 아리벨은 마왕인 나를 인간으로 전생시킨 것도 모자라 시간을 역행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여신의 본분에서 벗어난 일을 저질렀으니 대가를 치를 수밖에.
물론, 나로서도 이렇게까지 큰 대가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지만.
“그런데 왜 네가 직접 나타난 거냐. 굳이 네가 나서지 않더라도 천사들이 있을 텐데.. 천계라는 게 원래 그렇게 인력난이 심했던가?”
“버그가 발생해서 그런 거야. 전에도 말했잖아. 회귀라는 건 용사를 위해 준비한 최종 단계 같은 거라고. 그런 걸 마왕에게 사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그런 걸 내가 알 도리가 있나.. 하지만 말하는 꼴을 보니 좋은 일은 안 생기나 보지?”
“그냥 안 좋은 일 정도면 다행이게? 잘못하면 마족만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이었단 말이야. 그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천사들에게 맡겨놓고 있을 수 있겠어? 잘못하면 인과에 구멍이 나 버릴지도 모른다고. 상급자인 내가 나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무래도 회귀의 기적은 여신에게조차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인 것 같다.
말하자면 얼음 호수 위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호수에 말뚝을 박아 넣는 꼴이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하기 전에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거다.
“가만.. 그럼 앞으로 날 쫓아다니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럴 건데? 혹시 문제 있어?”
“미친.. 내가 왜 너 같은 거랑..”
“나는 뭐 좋은 줄 알아? 이 일에 세계의 운명이 걸려있지 않았다면 나도 안 나섰다고!”
이럴 거면 진작 알려주던가. 자기가 설명을 안 한 주제에 이제 와서 뻔뻔하게 굴다니.
“조금 전의 그 메시지는 뭐지? 나와 뭘 연결한다고?”
“너도 알겠지만 지금의 넌 내 가호를 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어. 아무리 인간이 되었다고는 해도 영혼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건 나도 확인했어. 말로는 가호든 상태창이든 전부 준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던데?”
“나는 거짓말한 적 없어. 애초에 내가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부터가 네가 가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야. 단지 그 힘이 너무 약해져서 느껴지지 않는 것뿐이지.”
그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마왕이었을 무렵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약해져 버린 권능의 힘.
“그럼 나는 권능도 가호도 반쪽밖에 못 쓴다는 뜻이야?”
“그나마도 네 육체 자체가 인간의 것이어서 가능한 일이야. 굳이 말하자면 너는 지금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일종의 하프 데몬이 된 거지.”
“..설마 그 이름을 너한테서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안.”
“됐으니까. 계속 설명해.”
“..더 정확히 말하면 네가 전생을 각성하는 순간 너와 데이브 클락의 영혼이 융합되기 시작된 거야. 그 전의 너는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마왕의 눈을 사용한 순간 신의 가호와 마족의 권능이 혼선을 일으켰다는 건가?”
“바로 그거야. 일종의 부작용인 셈이지.”
그리고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전직 여신이 직접 행차하셨다는 거군.
“그럼 이제부터 뭘 어쩌면 되는 거지?”
“기다려 봐. 지금부터 네가 가진 마왕의 눈과 ‘성찰의 가호’를 동기화시킬 테니까.”
아리벨. 아니, 이제는 벨이 되어버린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에 있는 무언가와 연결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건..’
떠오르는 것은 데이브 클락의 기억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격이라고 해야 할까?
벨제뷔트로서의 자아에 비하면 여전히 작고 미약한 정신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존재감이 분명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데이브의 과거나 감정들이 떠오를 정도다.
연인에의 사랑이나 스승에의 존경심.
어제 만난 주정뱅이에 대한 짜증과 처음으로 다른 마을에 간다는 것에 느낀 경계심까지도.
“이게 무슨..”
[동기화되었습니다. 사용자 벨제뷔트가 ‘용사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이제부터 ‘마왕의 눈’을 통해 상태창을 볼 수 있습니다.]따지려던 것도 잠시, 나는 이어지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뭘 하기 전에 설명부터 해주면 안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