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 한계 돌파(2)
쿵!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강철의 거인이 검을 내지른다.
“으아아악!”
“피, 피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개한다. 그러나 피하기엔 늦어버렸다.
거인의 속도는 일반인의 것을 아득하게 상회하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휘둘러지는 검.
콰아앙!
다행히 그것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크리스 팔레아스. 이 영지의 기사였다.
“후퇴해라! 후퇴!”
크리스가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힘껏 내지른 목소리에서는 이제 쇳소리가 나고 있었다.
평소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에게도 감정은 있었던 거겠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침착할 수는 없었다는 거다.
“부상자를 챙겨서 안전한 곳으로 가라!”
안드로이드들에게 깔려 죽은 병사들의 시신들.
무너진 건물과 조각난 평화가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눈앞이 새하얗다. 머릿속에 작은 태풍이 이는 것만 같다.
슈욱!
그런 크리스의 감정에 반응한 듯, 푸른 오러가 거칠게 치솟기 시작했다.
“타핫!”
내질러지는 것은 팔레아스 검술의 비기였다.
쾌속하기 이를 데 없는 검기의 비.
삽시간에 이뤄진 연격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크리스는 내심 승리를 자신했다.
-기긱. 긱.
“..이게 대체.”
그러나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적의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급 익스퍼트의 오러조차 적의 외피를 꿰뚫기엔 부족했다는 거겠지.
크리스는 새삼 자신의 상식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자신조차 이놈 하나를 이기질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저런 괴물이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상황이라니.
‘이게 그 왕립 연구소의 산물인가?’
그 순간, 크리스가 떠올린 것은 데이브로부터 들었던 ‘세계의 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
그 말에서부터 경각심을 느끼기는커녕 그런 게 어디 있냐며 헛웃음을 지었던 망언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나 이 순간, 그가 망언이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후회가 드는 순간이다. 왜 자신은 그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어째서 대비하지 않았던 걸까.
하다못해 데이브를 쫓아내기라도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크아악!”
허나 후회가 날아드는 주먹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안드로이드의 철권이 크리스의 몸을 후려친다.
순식간에 튕겨 나간 몸이 민가를 꿰뚫고 바닥에 꽂힌다.
“쿨럭..”
움푹 팬 갑옷이 폐부를 짓누른다.
크리스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러나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시야가 흔들린다.
-기긱..긱..
반면,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기이잉.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이 푸른 빛을 내뿜는다. 심상치 않은 빛이다.
작열하는 공기.
크리스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고맙구나. 제이슨.”
“할아버지!”
그러나 위기의 순간, 크리스를 죽음에서 건져내는 이가 있었다.
“내 아들을 노리기엔 지나치게 이르다. 쇳덩어리!”
제이슨의 부축을 받으며 이곳에 도달한 오테 팔레아스.
오직 검 솜씨만으로 남작의 작위를 쟁취해 낸 기사가 노구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러서라. 크리스!”
오테의 의족이 부서질 듯 바닥을 내디딘다.
크리스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렬한 오러가 안드로이드의 몸을 가로지른다.
쿠웅!
쏟아지는 검. 안드로이드의 몸이 반으로 쪼개져 떨어진다.
팔레아스 령이 거둔 첫 번째 승전보였다.
“쯧. 내가 늙긴 했군.”
균형을 잃어버린 오테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한다.
크리스는 그런 오테를 보며 소리쳤다.
“아버지!”
“이럴 때가 되어서야 아버지라 부르는구나. 평소에는 그렇게 부르라 해도 꼬박꼬박 남작님이라 부르던 놈이.”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다리도 불편하신 분이!”
“그러는 너는 다리가 불편하신 남작님보다도 못하구나. 어찌 된 게 전보다 더 약해진 것 같으니 원. 그러게. 서류만 보지 말고 수련도 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아버지는 전투를 할 만한 몸이..!”
“됐다.”
오테는 크리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앞으로 나섰다.
“날 막으려 하지 마라.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을 아비가 세상 어디에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
“그만해라 크리스. 이곳은 나의 영지다. 책임을 진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져야 옳다.”
“..데이브는. 데이브 클락은 어디에 있습니까?”
크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최소한 데이브만이라도 이곳에 있다면..
“그놈의 도움을 기대하지 마라. 즉시 이 영지를 떠나라고 연락해 두었으니까.”
“네? 하지만 아버지!”
그러나 오테는 그런 크리스의 기대를 무너트렸다.
크리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오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너도 그날의 대화를 들었으면 알 것 아니냐. 그놈은 이런 곳에 멈춰있어선 안 될 녀석이야.”
“그건 그렇지만..”
“제이슨과 네 아내를 데리고 떠나라. 토트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데이브에게 보냈으니 알아서 제 앞가림하겠지.”
“그럼.. 아버지는요?”
오테는 그 말에 말없이 웃었다.
휘청거리던 그의 몸이 바로 선다.
검 끝이 향하는 곳은 적들의 한복판이다.
“내 걱정을 하려거든 백 년은 이르다. 어서 가라. 제이슨을 지켜야지.”
그 순간, 열 기의 안드로이드가 오테를 향해 달려들었다.
늙은 기사를 상대하기엔 과할 정도의 전력이다.
“아..”
그래서일까. 크리스는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전장에서는 항상 냉정함을 유지했던 그조차, 막상 제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니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 아버지?”
제이슨이 그런 크리스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들에게로 쏟아지는 푸른 광선을 목도한 탓이다.
콰아앙!
“북쪽으로 가라. 제이슨.”
“스승님!”
때마침 그들을 구해낸 붉은 화염이 없었더라면, 그들 일가는 그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르지.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전신에 화염을 휘감은 기사였다.
그와 동시에 팔레아스 일가를 포위하던 안드로이드들이 무너져 내린다.
“데이브 클락! 내가 이 영지를 떠나라고 했을 텐데?”
“난 당신 부하가 아니야.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내가 왜 이런 희생을 감수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게 다 이 세상을 위해서..!”
“틀렸어. 이 세상을 위한 거라면 차라리 이게 나아.”
울분을 토하는 오테를 향해 데이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라나 그 아이가 이곳을 집처럼 생각하는 것 같거든.”
“..네 딸을 이야기하는 거냐?”
“그래, 지금이야 도망이나 다니는 처지지만, 언젠가는 라나에게도 정착할 땅이 필요하겠지.”
데이브가 검을 들어 올렸다.
“알아들었으면 궁상 그만 떨고 떠나. 남의 영지를 전장으로 만든 건 미안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싸움이야. 너는 네 사람 목숨이나 챙겨.”
“..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반말이나 하기는.”
다행히 오테의 반항은 짧았다.
강철같았던 그의 맹세조차 그의 옷소매를 당기는 손자의 모습에는 무너지고 만 것이다.
“..죽지 마라.”
“남 걱정 말고 자기 몸이나 챙겨. 눈먼 총알에 당하지 말고.”
할 말은 많았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데이브가 앞으로 나아간다.
카각!
휘몰아치는 검. 그러나 사용하는 것은 황혼검이 아닌 여명검이다.
아무래도 영지 안에 남아 있는 성직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 같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릴 시선이겠지만.
“더럽게 많구만.”
그나저나 적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숫자만 보아서는 팔레아스 령이 아니라 이 왕국을 멸하러 온 게 아닐까 싶은 정도다.
“마법소녀를 데려오지 않길 잘했군.”
라나는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데이브가 준비한 피난처로 이동하고 있었다.
벨이 피난을 돕고 있었다.
숲의 마법을 이용하여 추격을 따돌리고, 환영 마법을 이용하여 피난 행렬의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데이브의 몫이었다.
“..그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어느샌가 데이브의 주위를 둘러싼 인영들.
형태로 보아 안드로이드나 키메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낯이 익군.”
다섯 용사가 그를 향해 검을 겨눈다.
과거의 예이츠와 마찬가지로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시신들.
옛 망령들이 죽음을 거슬러, 다시 한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르카나로 만들고 남은 것은 병사로 삼았다는 거냐? 참 알뜰하기도 하지.”
화륵!
데이브의 몸 위로 붉은 오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그 모습은 마치 작은 태양을 보는 것 같았다.
파앗!
응축되는 불꽃.
다음 순간,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던 화염의 오러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화염의 탄환이 유성처럼 쏟아져 내리며 적들을 휩쓴다.
화르륵!
세상이 불탄다. 데이브를 향해 총구를 겨누던 안드로이드들이, 바닥을 기며 먹잇감을 찾던 키메라들이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하기야 지면이 이글거릴 정도의 화염이다.
보통의 강도로는 견딜 수 없는 것도 당연하겠지.
-기긱. 긱..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안드로이드들이었다.
제아무리 안드로이드라 한들 이 정도의 열기 속에서는 기능 고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물론 데이브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저지른 건 아니겠지만.
“이제 너희 차례야.”
데이브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야를 가리는 화염의 장막.
그와 동시에 그의 검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여명검의 그늘 안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검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스름.”
그것이 황혼검의 시작이었다.
지면을 가로지르며 땅거미처럼 내려앉는 검.
해질녘의 태양이 저문다. 빛이 사라진다.
타오르는 화염이 그 빛을 잃고 사그라진다.
파아악!
열 줄기의 손톱이 옛 용사들의 몸을 할퀸다. 갈라낸다.
“쯧.”
터엉!
그런데 예이츠와 싸웠을 때처럼은 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어쩌면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데이브의 검을 막아낸 다섯의 용사가 반격을 시작했다.
화르륵!
푸른 오러가 타오른다. 눈부신 빛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 저들의 연계일 테지.
“빌어먹을 놈들. 죽어서까지 이러기냐?”
칼날이 굽이친다. 시대를 풍미했던 검들이 쏟아져 내린다.
물결을 타고 굽이치는 물고기처럼 파고드는 검.
분분한 낙화처럼 흐드러진 검.
바위처럼 단단하고 번개처럼 강맹한 검.
그리고 하늘을 닮은 검에 이르기까지.
“상도덕도 없는 놈들.”
서로 간의 실력 차이가 분명했다면 모를까.
현재 데이브의 역량으로는 저 다섯 검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물러선다.
그의 몸이 난도질당한다.
재생의 권능이 진화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듯한 상처였다.
“젠장..”
물론, 목숨을 잃지만 않았다 뿐이지 상태가 심각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팔이었다. 가까스로 붙어만 있는 오른팔.
데이브는 이를 악물며 물러섰다.
혹여나 팔이 떨어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재생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좀 알겠어.”
물론, 데이브 역시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이 붉게 달아오른다.
자신을 향해 겨눠지는 검들을 파헤치고, 그 원리를 이해한다.
적의 강함에서 성장의 단서를 찾아 움켜쥐는 것이다.
“결론은 검술을 성장시키라는 거잖아. 안 그래?”
왜 그의 경지가 제자리에 멈춰 있었는지. 사실 그 해답은 간단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결국, 검이었으니까.
소드 익스퍼트. 소드 마스터.
그 구분 지음에서도 알 수 있듯,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경지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익히고 통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의 성장은 오러가 아니라 검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되었을 때 비로소 이뤄지는 법이니까.
“마침 좋은 교본도 눈앞에 있군.”
때마침 오른팔의 재생도 끝난 상황이다.
그렇다는 건 조금 더 거칠게 싸워도 괜찮다는 거겠지.
각오를 다진 데이브의 검이 다시 한번 세차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