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0)
40막, 썩은 동아줄이더라 (1)
40막, 썩은 동아줄이더라 (1)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달싹이던 차지윤의 입술이 가까스로 움직임을 멎은 건.
“···.”
그럼에도 방 안 가득 맴도는 서늘한 냉기는 그대로였다.
아니,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모두의 숨결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깨부순 건 냉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끝났습니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관계자들이 깨달았다.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봐버린 것인지.
개중 메인피디가 스윽 김한성의 눈치를 살폈다.
‘···느낀 건 똑같나보군.’
내내 비웃음을 입꼬리에 걸고 있던 얼굴이 처참하게 망가져있었다.
핏기가 싹 가신 김한성은 무어라 반응도 하지 못한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무조건 자신의 아래일 거라 여겼던 한 신인배우를.
뿌득.
그 턱이 비틀리는 걸 보며 메인피디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휴우.’
사실상 부국장에게 은근한 언질을 들었던 그는 김한성의 승리를 점쳤다.
이제 막 겨우 각광받기 시작한 신인과 이미 더 높은 수상 경력이 있는 김한성?
결과는 불 보듯이 빤했고 결국 부국장의 언질은 무의미할 거라 여겼다.
설마.
‘저런 배우를 상대로··· 김한성 손을 들어주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연기력을 보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꼬여도 단단히 꼬였군, 젠장.’
가벼운 격차라면 몰라도 이건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 차이였다.
부국장 김용수의 언질이 아니라 국장님의 언질이라 해도 힘들 터.
하지만 이곳은 방송국.
까라면 까는 게 당연한 집단에 속해있는 자신이었다.
심지어 그게 부국장의 직접적인 언질이라면.
저 배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떡하겠어, 든든한 빽 하나 없는 스스로를 탓해야지.’
물론 웬만한 빽으로도 부국장의 입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메인피디가 입을 떼려던 참이었다.
여태 가만히 있던 차지윤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까요?”
“···네, 넷?”
그것도 아주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의견을.
“저는 딱 마음이 선 거 같은데, 어때요?”
일순간 신세현과 메인피디가 서로의 시선을 바라봤다.
서로 무슨 생각을 품은 건지 살펴보려는 것처럼.
지극히 차지윤 그녀다운 직선적인 제안에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의견을 꺼냈다.
“안 됩니다.”
“좋습니다.”
전자는 메인피디의 것이었고 후자는 캐스팅 디렉터의 것이었다.
자연스레 메인피디에게로 시선이 몰리길.
그는 곧바로 조곤조곤 반론을 펼쳤다.
“재촬영을 결정한 것부터 상부의 도움이 있지 않았습니까? 배역 교체 건도 일단 상부의 확인은 받아봐야 합니다.”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를 꺼내는 것도 잊지 않고.
“부국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항이에요.”
“···.”
그 말에 신세현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메인피디도 쾌재를 불렀다.
‘···됐다!’
부국장 김용수.
딱 그에게 닿기만 한다면.
그 동아줄에 김한성을 매달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알아서 끌어올려 줄 테니까.
김한성의 뒤에 자신이 있음을 주지시켰던 김용수에게 바톤을 넘기려던 참.
아니, 넘긴 줄 알고 작은 희열마저 느끼려던 참이었다.
“제가 왜요?”
퉁명스러운 차지윤 작가의 물음이 회의실의 공기를 꽈악 주름잡았다.
“네···?”
“제 작품에 넣고 싶은 인물을 왜 거기까지 확인받아야 하냐구요.”
주저 없이 제 확고한 뜻을 주절거린 그녀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녀가 생각하는 권지혁 역의 주인이 서있었다.
곧 꺾을 수 없는 고집처럼 차지윤이 읊조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정할 거예요.”
동시에 표정을 왁 구기는 김한성과 퍽 시원해보이는 신세현.
그리고 당황한 메인피디를 두고.
“제가 먼저 말할까요? 저는 김한성씨랑 이신우씨 둘 중에···.”
먼저 입을 뗀 차지윤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배역의 주인.
그 주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로 할게요.”
신세현은 처음으로 차지윤의 태도에서 개운함을 맛본 듯 미소지어보였다.
어찌나 속이 통쾌하던지.
* * *
씩씩거리며 회의실을 나선 김한성이 사라지고 차지윤 작가도 다음으로 일어나 사라지길.
떨떠름한 내게로 신세현이 다가왔다.
“신우씨.”
“···네.”
메인피디의 이견이 있었으나 어찌 됐든 배역의 주인은 나로 정해진 분위기였다.
차지윤의 태도가 너무도 완강했으니까.
그럼에도 메인피디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래도··· 보고는 일단 해둘 겁니다』
아마도 마지막 여지를 둔 것으로 보아 상부에 이야기야 하겠지만······.
“걱정마세요. 오늘 보여주신 연기는 절대 탈락할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하하.”
진심이 듬뿍 묻어나는 그 응원에 탈력감 섞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간 읽고 또 읽어온 대본에 맞춰 한 몸을 불살랐기에 어지간히도 기운이 없었다.
기분은 더없이 유쾌했지만.
“근데.”
한편 로비까지 나를 배웅하던 신세현이 물었다. 공교롭게도 다시금 엘리베이터였다.
“정말 궁금해서 말인데··· 예전엔 왜 거절하셨던 겁니까?”
띵.
드르르륵.
역시나 한 번쯤은 물어볼 만했던 질문. 답 또한 생각해둔 지 오래였다.
‘이렇게 엎어질 줄 알았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사실 내게 꾸준히 관심을 보내준 신세현에게는 고마운 마음도 함께 있었다.
어찌 보면 짧은 인연을 이어준 그이니까.
“그게, 신캐디님 덕분이에요.”
“···제 덕분이라구요?”
조금은 금칠을 해주어도 되겠지.
“네, 캐디님께서 계속 설득해주신 것도 있고··· 저도 처음과 달리 조금 용기가 났거든요.”
물론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만약 극단에 들어가고 독립영화를 찬찬히 해보는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그 수준이었을 테니까.
겨우 막 새로운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오늘처럼 차지윤 작가의 확고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
소문이 와전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그 까다로운 안목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명성이 자자했다.
“신, 우씨······.”
한편 조그마한 금칠에 대번에 신세현의 얼굴로 감동이 넘실거렸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감사는 안하셔도 돼요, 제 역할인 걸요.”
이내 그게 보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신우씨같은 묻혀서는 안 될 배우들을 모셔보는 게.”
“······그런 말씀까지 해주시면 더 감사 안 할 수가 없는데.”
“큭, 그런가요?”
퍽 훈훈한 분위기를 가득 실은 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에 도착하길.
“그래도 감사합니다 신우씨, 여기까지 와주셔서.”
저런 배우가 함께 촬영을 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너무나 안타까워 곱씹혔던 그 고뇌가 해소된 신세현은 짐짓 개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전해드릴게요.”
“풋, 기대할게요.”
막 메인피디의 보고를 전해들은 부국장 김용수.
그가 벌릴 일은 예상치도 못한 채로.
* * *
독종의 메인피디 윤형섭과 김한성은 함께 같은 장소를 찾았다.
그곳은 KBC 드라마제작국의 부국장실.
보는 이가 없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부국장실을 찾은 두 사람을 김용수가 소파로 안내했다.
“그래서, 차지윤 작가가 그 이신우인지 뭔지 하는 놈을 골랐다는 거지?”
“예, 부국장님. 그렇습니다······.”
권력에 저항하기보단 순응해버린 메인피디가 복종적으로 대꾸했다.
‘후우.’
양심의 가책이 이는 와중에도 원망의 잣대는 다행히 이신우를 향하지 않았다.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그 연기가 다시금 뇌리를 떠다녔다.
아무리 빽이니 뭐니하며 합리화하려 해도 결국 틀린 쪽은 정해져있다고.
그 거북스런 현실을 윤형섭은 구태여 외면하지 않았다.
‘윤형섭 이 못난 새끼··· 너도 결국 똑같구나. 저만한 배우를···.’
나쁜 건 힘없는 신인배우가 아니라 그릇된 권력을 지닌 부국장과 그에 순응하는 자신일 테니.
······그래, 권력의 개라는 말이면 딱 어울리겠지.
그리 자조하는 메인피디를 향해 부국장 김용수는 느긋하게 말문을 뗐다.
“걱정할 게 뭐 있나, 윤피디?”
“예?”
마치 제갈량의 묘안이라도 빌려온 듯 시원스러운 말에 메인피디 윤형섭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 차지윤 작가가 그리 확고하게 구는데 대체 무슨 수를 쓰려고?
“제아무리 작가가 대단해도 결국 메인피디는 윤피디잖아.”
그 말에 윤형섭은 등골에서 찌릿하며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꼈다.
“···잘못 들었습···.”
“어허허, 윤피디! 이해했으면서 왜 그래?”
교활한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김용수가 방금 전 했던 말을 다시금 설명해보였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치장하여서.
“윤피디도 라인 하나 정도는 타야할 거 아니야. 지금 국장 자리, 몇 년 지나면 누가 먹을 거 같아?”
“···.”
“좋은 게 좋은 거다. 눈앞에 작은 게 아니라 멀리 있는 큰 걸 봐야지.”
제멋대로 윤형섭의 결정을 재단한 김용수는 문득 제 조카를 불렀다.
“한성아.”
“네, 삼촌.”
“나중에 너 잘 되면 여기 윤피디, 잊을 거냐?”
아주 죽이 잘 맞는 두 친척을 바라보며 윤형섭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만 갔다.
쓴 웃음을 지어내볼 수도 없었다.
“그럴 리가요, 절대 못 잊죠.”
능청스레 미소 짓는 김한성을 보며 괜스레 다급해졌다.
“···부국장님.”
“들었지 윤피디? 오히려 자네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부국장님!”
“후우 참.”
다급하게 부르는 윤형섭과 달리 나직한 김용수의 음성이 그의 심장 근처를 파고들었다.
“이봐 윤피디.”
푹.
찔러넣는 한 마디가 절로 앞날을 예상케 했다.
“당신 말고도 피디할 사람 많아.”
자신에게 선택지 따위는 이미 없었다고.
국장이나 다른 이에게 고해본들 자신은 어떻게든 파멸을 면치 못할 거라고.
그보다 더 거대한 힘이 뜬금없이 나타나지라도 않는 이상.
“······알겠습니다, 무조건 김한성 배우로 밀겠습니다.”
“그래, 이 모든 건 윤피디 개인의 결정이고. 알고 있겠지?”
부들부들 떨리는 윤형섭의 손아귀에는 무력감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그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예.”
권지혁 역.
이미 그 배역의 주인으로 김한성으로 정해져있던 거였다.
설령 그 사이에서 네임드 작가와 홀로 척을 지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제 입지가 불안정해진다고 해도.
이미 자신의 목줄을 쥔 건 눈앞의 김용수라는 사실에 그의 자조는 더더욱 깊어졌다.
김용수 부국장.
저 든든한 동아줄을 쥐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김한성 한 사람에 불과할 테니.
* * *
새장을 박차고 나간 막내아들.
그 아들에게 눈과 귀를 붙여놓은 비서실장은 고스란히 그 소식을 이철호 회장에게 전했다.
어찌 보면 이미 그룹과는 상관없는 일임에도 한건호는 막중한 사명처럼 이신우에 대한 근황을 관리했다.
그건 이철호 회장의 노파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자신의 막내아들이 배우가 되는 길을 막았던 이유이기도 한 노파심을.
“차지윤이라고···.”
“예, 친언니도 작가인데다 타고난 재능으로 그 언니 이상의 유명세를 얻은 젊은 작가라고 합니다.”
MBS 드라마계의 스타작가 박하은과 KBC 드라마계의 양대산맥으로 존재하는 그녀.
차지윤에 대한 보고를 전해들은 이철호 회장은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 인물과 엮였나보군.”
“드라마 또한 스캔들로 엎어지기 전까지는 꽤나 유망주로 각광받던 모양입니다.”
어쩐지 그 얼굴이 꼭 웃음기를 품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너무 옅은 기색 탓에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가······.”
이윽고 이철호 회장은 감추고 있던 노파심을 꺼내들었다.
이미 정상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슬슬 방송국과 직접적으로 닿았다면 괜한 알력 싸움에 엮일 수도 있을 터.”
“예, 회장님.”
너무 높은 곳에 있기에 도리어 그 추악한 면모들을 수도 없이 봐온 이철호 회장으로서는 연예계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낭만적인 세계인 동시에 가장 더러운 뒷면을 지닌 세계.
하여 딴따라라며 괜스레 그 낭만을 짓밟기도 한 이철호였지만.
“현 KBC 드라마국의 국장이라면··· 구명석이었나.”
“그렇습니다.”
그 마음은 이미 바뀌어버린 지 오래였다.
제 막내의 길을 묵묵히 지켜봐야겠노라고.
어디 그 날갯짓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닿을지 지켜보겠노라고.
결심하게 된 이철호 회장은 구명석 국장과의 기억을 가볍게 되뇌었다.
그리고 비서실장에게 은밀히 지시했다.
“한실장.”
“예, 회장님.”
행여라도 일이 틀어지지 않도록.
“자네가 신경 좀 써주게.”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그 가여운 새의 비행이 얼토당토 않는 압력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구명석 국장에게 연락해보게나.”
구명석 국장.
방송국에 한하여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궤도에 오른 한 신인배우의 고공행진을 막을 그 어떠한 압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