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저 혼자서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흑흑……. 훈 오라버니!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셨어요! 무려 50년이에요. 50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동방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임유선을 쳐다봤다.
70대에 이른 얼굴임에도 고운 티가 나는 젊었을 적 꽤나 미인이었을 여인이었다.
이내 마음을 정리한 동방수는 조심스럽게 임유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 * *
동방수는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두 노인을 쳐다봤다.
두 노인도 뭔가 지금의 상황이 어색한지 입을 닫고 있었다.
“흠흠. 그래. 유선아, 잘 있었어?”
“미안해요, 오라버니. 부끄러운 짓을 했네요.”
“아니, 아니. 그런 얘길 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너무 오랜만에 와서 궁금해서 그런 거지. 그런데 진짜 여기 동방수 씨가 누군가를 그렇게 닮았어?”
“도… 동방수요? 성이 동방이란 말이에요?”
임유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동방수요.”
“호… 혹시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동방, 훈 자를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아…….”
진정되었던 임유선의 눈에서는 다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모습을 두 사람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10분이나 울었을까.
진정됐는지 임유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성표 오라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셨어요? 찾아오신 지 3년도 넘은 것 같은데.”
“나도 지난번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 많은 일이 있었지.”
고성표는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임유선이 반가웠는지 그동안의 일을 천천히 풀어 나갔다.
임유선은 고성표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도 다 늙어서 고생이 많으셨네요.”
“허허. 다 지난 일이지. 유선이 넌 어떻게 지냈어? 아직도 서울로 올 생각은 없는 거냐?”
“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성씨를 갈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직도 말해 줄 생각이 없어?”
“하아. 이것도 운명인 것 같네요.”
깊은 한숨을 내쉰 임유선이 아련한 눈빛으로 입술을 떼었다.
* * *
고성표와 임유선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었다.
당시 고성표는 GK 그룹의 장손이었고, 임유선은 오성 그룹의 막내였다.
그룹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미흡한 상황이었지만, 어찌 됐든 전후 한국에서는 손꼽히게 큰 기업이었다.
정경 유착이 극심하던 시기였기에 기업인들은 힘을 합치지 않고선 정치인들의 등쌀에 휩쓸려 살아남기 힘든 시대였다.
당연히 GK와 오성 또한 서로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고성표는 똘똘하면서도 귀여웠던 임유선을 마치 친동생처럼 돌봤고, 그것이 양가 어른들의 눈에는 마냥 좋게 보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일 것만 같던 임유선도 스무 살이 되어 여러 곳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좋은 혼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임유선은 그 어떤 혼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동방훈.
가난한 서민이었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기개가 흐르는 남자였다.
조심스럽게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격의 차이를 극복해 낼 수는 없었다.
“현우 오라버니가 우리의 관계를 알게 되었어요.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했던 현우 오라버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워낙에 딸인 임유선을 총애하던 오성의 초대 회장이었다.
그 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임유선에게서 동방훈을 떨어뜨리려고 두 사람에게 여러 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워낙에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런 기회를 틈타 임현우는 동네 왈패를 보내 동방훈을 초주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임유선에게 임현우는 조건을 내걸었다.
“상속을 포기하라더군요.”
“허어. 저런. 임형이 그렇게 욕심을 부렸구나.”
“저에게 돈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냥 두고 보진 않으셨거든요. 저와 현우 오라버니를 불러 담판을 지으셨죠. 훈 오라버니를 살려 주는 대신 재산을 주진 않겠다고. 대신 평생 먹고살 것은 있어야 하니 오성 생명의 지분 조금과 최 선생님을 붙여 주셨어요.”
“그럼 동방훈이란 분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다른 분을 만나 잘 살다가 가셨다는 정도밖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죠. 훈 오라버니 덕분에 그나마 편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비록 혼자였지만요.”
하지만 편하다는 말과 달리 임유선은 그리 편한 삶을 살지 못했다.
떠나는 임유선에게 던진 임현우의 말 때문이었다.
혹여라도 동방훈을 계속 찾는다면 어떻게든 그를 없애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리고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말라는 말 또한 건넸다.
잔인한 임현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임유선은 평창에서 죽은 듯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생활의 불편함은 없었지만, 평생 한 남자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여인의 삶이 행복했을 리가 없었다.
“후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찌 나에게도 숨겼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오라버니. 하지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요. 혹여라도 저로 인해 훈 오라버니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가는 건 싫었거든요.”
“그래. 너라면 그럴 수 있지.”
동방수는 놀란 눈으로 임유선을 바라보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고운 자태였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아름다웠겠는가.
게다가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돈이 많은 집안이었다.
그런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아무것도 없는 동방훈을 사랑했단 말인가.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떻게 이곳에 오신 거예요?”
질문을 하면서도 시선은 온통 동방수에게 향해 있었다.
사랑했던 그와 너무나도 닮은 청년이었기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임 여사님…….”
동방수가 운을 떼려고 할 때였다.
“그게 아니에요.”
“네?”
“할머니라고 불러 줄 수 있나요?”
“아, 네. 그럼요. 당연하죠. 할머니.”
동방수에게 가족이란 엄마인 나선미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무간계의 노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유선을 보며 마음이 녹는 것을 느꼈다.
“그래요. 좋아요,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 줘요. 그런데 아직 왜 찾아왔는지 이유를 못 들었네요.”
“아! 원래 용건이 있었는데……. 할머니에게 그런 요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곳에서 오성 생명의 지분을 얻어 가면 앞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훨씬 편할 것이다.
하지만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며, 그의 행복만을 빌어 온 지고지순한 여인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싶진 않았다.
“혹시 오성 생명의 지분이 필요한 건가요?”
“아니에요. 저 혼자서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 훈 오라버니의 말이 맞았군요.”
“네?”
“믿을지 모르겠지만, 훈 오라버니에게는 미래를 보는 눈이 있었어요. 가끔 툭툭 던지는 말로 핵심을 찌르곤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들이 모두 이루어지곤 하더라고요.”
“그… 그게 무슨.”
동방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임유선이 말하고 있는 능력은 어찌 보면 육감의 다른 형태로 볼 수 있었다.
본인의 할아버지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니.
춘래와 함께 알아본 결과 분명 신비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통천의 문과 동방훈의 능력까지.
동방수가 무간계를 포함해 세 가지의 신비를 겪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냥 지나가며 한 말이긴 했어요. ‘훗날 우리가 늙었을 때, 아마 나를 닮은 누군가가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 아이가 바라는 게 있으면, 제가 보냈다고 생각하고 도와줘요.’ 분명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날이 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죠. 그런데 지금 제 눈앞에 훈 오라버니를 쏙 빼닮은 동방수 씨가 앉아 있네요.”
“아무리 그래도…….”
“오성 생명의 지분은 넘겨 드릴게요. 동방수 씨는 그게 저에게 중요하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평생의 짐이었어요. 차라리 가져가는 게 저를 도와주는 방법이에요.”
임유선은 진심 어린 미소로 동방수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유선아. 정말 괜찮겠니?”
“그럼요. 오래전부터 그게 없었으면 싶었어요. 하지만 현우 오라버니 때문에 처분도 할 수 없었죠. 이제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훈 오라버니도 어디선가 기뻐하겠죠?”
동방수는 임유선의 결연한 눈빛을 보았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오성 생명 지분을 받도록 하죠.”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임유선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산을 넘기겠다고 말하려는데,
“대신. DBS 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을 드릴게요. 오성 생명 지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가치가 있을 거예요.”
동방수의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진…….”
“제 할아버지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으시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해요. 할머니.”
“아…….”
50년간 말랐던 임유선의 눈물샘에서는 다시 한번 기쁨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 *
“이… 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임현우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강하게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가 동방씨와 관련되어 일이 진행될 때면 되는 일이 없었다.
아니, 처음 동방씨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행운을 가져다주는 성씨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불행을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막냇동생의 지분을 대부분 빼앗아 올 수 있었고, 더불어 둘째인 임철우에게도 제대로 된 힘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알게 된 동방씨에게선 지금의 오성을 있게 만들어 준 기술의 초석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부자일 게 분명한 두 사람의 관계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개돼지로서 주인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것 자체가 기특했을 뿐.
그 기특함의 선물로 세 번째 동방씨를 제거하려고 한 때부터 많은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통해 낳은 딸이 미쳤고, 힘들게 키워 왔던 계열사 여러 곳을 빼앗겼다.
그뿐 아니라 그룹의 핵심이 되는 전자는 하루가 다르게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위기가 있어 왔지만, 지금처럼 치명적인 위기는 독재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임시 주총을 열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다야! 뭐 이렇게 항상 아는 게 없어! 그러고서도 비서실장이야!”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임현우도 당장의 대책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공권력으로도, 조폭으로도, 청부로도 막을 수 없었던 동방수였다.
나날이 힘이 꺾이고 있는 지금에 와선 무슨 짓을 해도 당할 자신이 없었다.
“헉헉……. 수… 순환 출자는 풀 수 있나?”
“그…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게다가 그때 당시와는 법이 많이 달라진 상황이기도 합니다.”
정일출의 대답에 임현우의 호흡은 더욱 거칠어져만 갔다.
“바… 방법을 생각해 봐! 방법을!”
“차라리 주가가 올랐을 때 지분을 파는 것이…….”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인해 두 배 이상 오른 오성 생명의 주가였다.
주식을 들고 있는 것이 개인이었다면 최고의 매도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머지 지분의 주인은 오성이었으며, 복잡한 순환 출자로 인해 생명에서만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관련된 계열사가 몇 개가 되는 줄 알아! 내가 너한테……. 억!”
소리를 지르던 임현우가 목덜미를 잡고 다시 한번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