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제가 원하는 건…
* * *
김봉섭이 회장실로 향하는 동안 동방수와 고성표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동방수 씨가 아니었다면, 지훈이가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덕도 물론 있었겠지만 핏줄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허허허. 역시 젊은 사람답게 동방수 씨 덕이 아니라곤 안 하시는군요.”
“제가 또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이라서요.”
처음 만났을 때 강지훈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동방수를 만나 몇 대 맞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깊어졌는지 이전보다는 더 진중해졌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계획해 보면서 아마 사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고씨 집안에 대한 생각도 많았던 것 같았다.
어렵지 않게 고성표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치열한 고민을 해 왔단 증거일 터였다.
고성표 입장에서는 좀 더 일찍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강지훈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감격스러운지 강지훈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회장님. 지금 에너지 연구소장이 도착했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곧 한 중년 사내가 회장실로 들어왔다.
반 대머리에 한없이 두꺼운 안경을 쓴, 누가 봐도 공붓벌레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회장님,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는 확실히 해외에서 유학을 해서 그런지 거침없이 대뜸 용건부터 물었다.
“허허허. 김봉섭 씨는 여전하시군요. 그래, 일단 앉아요.”
“흠흠. 앉긴 앉겠는데, 대니얼이라고 불러 주시죠.”
“알았어요. 알았어. 대니얼. 어서 앉아요.”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짓던 김봉섭은 먼저 앉아 있던 동방수를 슬쩍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네요. 잘 지내시죠?”
“잘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고성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온 지 8년이나 됐는데 아직 세계 1위는커녕 한국 1위도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부는 됐으니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회장을 대하는 직원의 자세라고 볼 수 없었으나, 고성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GK 그룹에서 연구소장을 하고 있었지만, 김봉섭은 그 자리가 전혀 아쉽지 않았다.
미국 프린스턴에서 신소재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계의 수많은 대기업에서 러브 콜을 받았던 김봉섭이었다.
그럼에도 GK에 오게 된 것은 고성표의 진심 어린 한마디 덕분이었다.
“나와 함께 세계 최고의 배터리를 만들어 봅시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지원해 줄 테니.”
“보통 돈이 깨지는 게 아닐 텐데요.”
“그거야 GK가 감수할 일이지요.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다른 기업에서는 잘해야 부사장 정도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 직접 나서서 실무진을 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GK는 그룹의 회장이 움직일 정도로 이 배터리 시장에 진심이었고, 김봉섭은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감복해서 GK로 왔고, 실제로 연봉 이상의 성과를 올려 주었다.
김봉섭 덕분에 국내에서 5위권에 머물던 에너지 사업이 이제는 2위로 올라왔다.
그럼에도 김봉섭은 만족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47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는데, 그 또한 특권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허허. 성취욕은 여전하시네요.”
“그나저나 회장님.”
“네, 말씀하시죠.”
“배터리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더니 근래에는 발걸음은커녕 연락도 너무 뜸하신 거 아닙니까?”
고성표가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하는 말이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허허.”
고성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정중한 사과로 대신했다.
이에 김봉섭도 마음이 좀 풀렸는지 얼굴 표정도 이전보다는 온화해졌다.
이때다 싶었는지 고성표는 얼른 동방수를 등판시켰다.
“일단 이 청년과 인사부터 나누시죠.”
“이 청년은 또 누군가요?”
김봉섭이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방수라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저에게 소개해 주시는 거죠?”
김봉섭은 바빠죽겠는데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의 없이 물었다.
“바쁜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 청년이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한번 확인해 줄 수 있겠습니까?”
“네? 배터리요?”
김봉섭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동방수를 쳐다봤다.
잘해 봐야 20대 중반이나 될까 말까 한 어린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이 배터리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배터리를 개발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단순하게 건전지를 만드는 정도라면 집에서 몇 가지 실험 도구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는 배터리를 일개 개인이, 그것도 이제 20대에 불과한 청년이 개발해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흠흠. 회장님 말씀이라 한번 살펴는 보겠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드리자면 배터리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닙니다.”
김봉섭은 불쾌하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동방수 씨, 이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고 말 것도 없죠. 원래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동방수는 김봉섭의 기에 전혀 눌리지 않고 가볍게 그를 도발했다.
“뭐라고? 젊은 사람이 너무 예의가 없구먼. 회장님 앞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나?”
과격하게 말하는 듯했으나 김봉섭 입장에서는 최대한 말을 가려 한 것이었다.
만약 고성표의 앞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 버렸을 것이다.
“예의가 없다니요. 그쪽이 머리숱만큼이나 예의가 없어 보이는데.”
유식한 것은 인정하나 그것을 무기 삼아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족속들은 딱 질색이었던 동방수.
“뭐… 뭐라고? 어디서 이런 호X잡놈이…….”
“어허! 대니얼. 잠시만 진정하시죠. 이 동방수란 청년은 저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네? 어떻게 회장님의 생명을 구했는진 모르겠지만, 그것 하나만 믿고 사기 치는 게 분명합니다. 이건 볼 것도 없어요. 어디서 뭘 배운지도 확인도 안 되는 놈이 개발은 무슨 놈의 개발입니까?”
김봉섭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네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거나 챙겨 가요. 어차피 지금 얘기해 봐야 믿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말이 길어져 봤자 시끄럽게만 될 것이라고 판단한 동방수는 준비해 둔 USB를 꺼내 건넸다.
김봉섭은 물끄러미 동방수의 손을 쳐다봤다.
“대니얼.”
“네. 회장님.”
김봉섭이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대니얼이 기분 나쁜 거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이건 회사 일이에요. 지금은 감정은 배제하고 제 지시라고 생각하고 확인만 해 줘요. 저도 공돈을 줄지언정 사기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휴우. 회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알겠습니다. 다만 가치가 없다면 제 시간을 빼앗은 대가는 꼭 치러야 할 겁니다.”
“아~ 이 아저씨, 말 참 많네. 대가를 치르든 욕을 하든 알아서 하시고요. 일단 확인이나 해 보세요. 괜히 확인하고 후회하지 마시고요.”
“아오. 진짜 어디서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지금 뱉은 말 내일 분명히 후회할 테니까 말조심하시고요. 만약 아저씨가 이걸 보고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으면 내가 이거 그냥 공짜로 줄게요.”
김봉섭이 머리에서 광선을 쏘아 가며, 동방수를 노려봤다.
‘오우. 저건 좀 위협적이네. 눈을 못 뜨겠어.’
반만 대머리이면서도 벗겨진 쪽이 유독 빛나는 김봉섭의 머리였다.
김봉섭은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은 채 USB를 챙겨 슬쩍 방을 빠져나갔다.
예의 없는 모습에 한마디 할 법도 하건만 고성표는 별다른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할아버지. 사람 좋은 것도 좋은 건데, 너무 만만해 보이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저 사람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 이해해 줘야 해요.”
“뭐, 그렇다면야.”
고성표가 괜찮다는데 동방수가 마음 쓸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자신 있는 건가요?”
“뭐가요?”
“저 자료 말입니다.”
“왜요? 혹시 저 사람이 산업 스파이라도 되나요?”
“설마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용에 대한 자신을 묻는 거랍니다.”
고성표 입장에서는 동방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고작 20대 초반의 사람이 가져온 자료를 연구소장에게 넘겨주는 것.
공과 사 구분이 확실한 고성표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성표가 망설임 없이 김봉섭을 부른 것은 그만큼 동방수를 믿고 있다는 의미도 있었고, 아직 갚지 못한 부채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믿음을 저버리신다면, 저도 더 이상 사업과 관련된 배려는 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다른 도움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생각이 있었지만.
“내용이라. 전 그 대니얼이라는 사람이 그 내용을 이해나 할까 걱정이네요.”
김봉섭이 신소재 공학 분야에서라면 세계적인 인재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얘기였다.
지금 저 배터리의 수식과 이론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초고도 인공 지능 춘래였다.
분명 만들기는 동방수가 만들었지만, 동방수조차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존재.
‘진짜 인공 지능인지조차 의문이긴 하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세계의 인터넷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끝 모를 정보를 뽑아내고 있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지는 만든 사람도 알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무언가 노인의 신비로운 안배가 있는 것도 같은데, 당장 동방수에게 나쁠 것이 없으니 활용할 따름이었다.
“허허. 그렇게 자신을 한다니 일단 믿고 기다려 봐야겠군요. 그럼 이제 동방수 씨가 말한 내용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계약 조건에 대해 의논을 나눠 보죠. 원하는 것이 있을까요?”
“제가 원하는 건…….”
동방수는 준비했던 말을 하나하나 전달하기 시작했다.
* * *
김봉섭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불쾌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미친놈이 하나 나타나서 그렇게 건방진 말을…….’
신소재 공학이란 학문은 단순히 에너지에만 국한된 분야가 아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산업에 동력이 될 수 있는.
과장해서 말한다면 미래의 먹거리 그 자체라고 자부하는 학문이었다.
그런 학문의 최정점 중 하나가 자신이라 확신하는 김봉섭이었다.
김봉섭의 입장에서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나 그렇게 자신을 무시하고 깔아뭉갰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받은 USB를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디 인터넷 한구석에서 짜깁기한 것들이겠지. 하나하나 제대로 반박해 주마.’
시간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분노라는 감정을 덜어 내는 것도 연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노트북에 USB를 끼워 넣었다.
“넌 만약 아니기만 하면 완전 개망신당할 줄 알아. 아니지. 아예 회사를 관둬 버려야겠다. 회장님이 노망난 게 분명하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저런 놈을…….”
구시렁구시렁 끊임없이 투덜대던 사이 마침내 익숙한 노트북 바탕 화면이 나타났다.
딸깍딸깍!
당장 USB의 폴더를 열었다.
폴더명을 본 김봉섭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대를 초월한 명품 배터리 ‘트렌센드 버전 1.0.’이라고. 쳇. 어디서 단어 하나 주워들어서 ‘transcend’라니.”
‘transcend’는 ‘초월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였다.
굳이 동사를 사용한 것을 보니 계속해서 진보함을 강조한 듯 보였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습관처럼 혼잣말을 내뱉은 김봉섭이 문서 파일을 클릭했다.
문서 파일은 클릭과 동시에 열리더니 순식간에 김봉섭의 시선을 빼앗았다.
탁탁탁탁!
간간이 들리는 스크롤을 내리는 소리.
그것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한 번 읽고.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한 번 읽고.
또다시 한 시간 동안 한 번 읽고.
“이… 이게 무슨.”
여러 시간 동안 정신없이 문서를 읽던 김봉섭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을 정신이 나간 듯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입은 크게 벌어진 채였다.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이게 무슨.”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김봉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