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아! 김봉섭 씨
강지훈을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해 내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나이 어린 형님.
처음에는 반강제로 따랐지만, 지금에 와선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형님! 오늘은 왜 이리 일찍 나오셨어요?”
“됐고, 따라와라.”
동방수의 말을 거절할 명분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이유라도 알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네? 갑자기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오라면 와!”
“이제 시합도 잡혔는데 형님 연습하셔야죠!”
“넌 내가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냐?”
잠시 생각하던 강지훈은 뒤늦게 그럴 필요가 없단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제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 훈련을 하긴 했지만, 딱히 훈련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계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알면 됐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내가 가자는 데로 가자.”
“어… 어디로 가시는데요?”
믿고 의지한다지만 막무가내로 가자고 하니 불안감이 들었다.
“별건 아니고, 고 영감님 좀 만나려고.”
“고 영감님이라면…….”
짚이는 게 있었지만, 확인이 우선이었다.
“네 할아버지.”
“저… 저에게 거부권 같은 건 없는 건가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지나치게 빨리 왔다.
“훗. 거절은 거절하지.”
“하아.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았지만, 동방수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쪼잔했다.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본인의 말이 먹히지 않으면 어떻게든 복수하는.
괜히 거절했다가는 후에 벌어질 일이 두려웠던 강지훈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음을 굳힌 강지훈은 결연한 표정으로 동방수를 따랐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GK 본사로 향했고, 곧 고성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강지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사실 고성표와 동방수의 인연에 대해서도 정확히 몰랐고, 대기업의 회장이 왜 저런 백수 같은 동방수에게 자신을 부탁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고성표를 만나고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비록 다른 성을 쓰고 있긴 했지만, 잃었던 가족을 찾은 것 같은 느낌.
지금의 느낌은 아버지인 고준태를 만났을 때보다 더욱 강렬했다.
고성표는 손자와 이렇게 한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동방수에게 어떤 식으로든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했다.
돈이든 주식이든 원하는 것은 다 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늙은이에게 살날이 남아 봤자 얼마나 남아 있다고 노욕을 부리겠는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했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동방수가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냈다.
“할아버지. 저랑 사업 좀 같이하실래요?”
강지훈은 빠릿빠릿하게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상 아무래도 자신은 동방수와 고 회장 사이의 교두보 역할쯤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업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갑작스러운 사업 이야기였지만 강지훈이 있으니 우선 여유 있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흐음. 조금 복잡한 얘기가 될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저도 뭐라도 들어야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인자한 모습으로 대꾸하는 고성표.
반면 동방수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아. 이것도 귀찮은데, 춘래가 이건 대신 안 하나.’
그렇다고 노인을 앞에 두고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다.
분명 동방수가 기회를 주는 것이기는 해도, 막무가내로 접근하는 건 협박밖에 되지 않았다.
귀찮긴 해도 하나씩 천천히 풀어내 보기로 했다.
“이번에 제가 배터리를 하나 개발했거든요.”
“동방수 씨가 말입니까? 그런 쪽에 재주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군요.”
고성표도 나름 뒷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춘래가 진행하는 일을 알 방법 따위는 없었다.
“가볍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농담이 아니거든요. 일단 생산 비용은 지금의 절반 이하고 효율은 두 배 이상입니다.”
“네?”
고성표는 순간 자신이 나이를 먹어 헛것을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시는 걸 보니 제대로 들은 게 맞으시네요.”
“흐음.”
고성표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직접 겪은 동방수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장 믿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었다.
배터리라는 것이 일반 청년이 혼자 뚝딱한다고 나오는 것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크기 조절이 용이하고요. 만드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설비를 추가할 필요도 없고요.”
“흐음. 자세히 들어 볼 필요가 있겠군요.”
때마침 김용태가 몇 잔의 음료를 들고 방에 나타났다.
‘응? 분위기가 왜 이러지?’
분명 나갈 때만 해도 약간의 어색함이 있긴 했지만,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나갔다 온 사이 고성표의 표정이 사업가의 그것으로 달라져 있었다.
“김 실장님.”
“네. 회장님.”
“에너지 쪽 배터리 연구소장이 누구죠?”
“대니얼 킴입니다.”
“아! 김봉섭 씨.”
“본인은 대니얼 킴으로 불리길 원합니다.”
“전 이 이름이 정감이 가서요. 하하. 김봉섭 씨 좀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성표의 지시를 받은 김용태는 빠르게 밖으로 나가 연구소장에게 연락했다.
“일단 다음 이야기는 김 소장님이 오신 후에 이어 가죠.”
“편하신 대로요.”
김 소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시간이 생겼다.
중요한 사업 얘기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고성표는 본인의 손자인 강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아, 내가 네 할애비다. 알고 있니?”
“아,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그거면 됐다. 지훈이는 잘 지냈니?”
“아……. 네……. 뭐, 그냥저냥이요.”
“그래그래.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예전에 네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단다.”
“아……. 네…….”
부상으로 괴로워할 때 아무도 자신을 챙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부상이 계기가 되어 운동을 접긴 했지만, 그럼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던 것도 그 도움 덕분이었다.
그 배경에 GK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결국 고성표가 힘쓴 것 같았다.
“그래. 혹시 하고 싶은 게 있니?”
“…생각 안 해 봤어요.”
그동안은 그저 가족 같은 동생들만 신경 쓰며 살았다.
어차피 세상에 그들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동생들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긴. 운영이가 그런 부분은 알아서 잘하겠지. 이제 운영이라고 부르기도 좀 그런가? 나이도 훨씬 많은데.’
문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느낌이랄까.
그때 고성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할애비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 아니에요. 제가 거절했던 거였는데요. 뭐.”
고성표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강지훈은 살아오면서 실질적으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모든 것에 GK 그룹의, 아니 구체적으로 고성표의 손이 닿았던 것 같았다.
‘그러니 김 실장님이 움직였겠지.’
이렇게 가까이서 고성표를 모시는 사람일 줄이야.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몰랐던 일이었다.
“지훈아.”
“네.”
“할아버지라고 한번 불러 주지 않겠니?”
“하… 할아버지.”
힘겹게 입을 떼는 순간 강지훈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고씨임에도 강씨로 살아온 세월이 떠올랐다.
큰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평생 고준태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고성표는 그런 강지훈에게 다가와 가만히 포옹하며 달래 주었다.
“그래그래. 정말 고생 많았다.”
“저… 정말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강지훈은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었고, 고성표는 가만히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강지훈의 표정이 조금 안정되는 듯하자 고성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훈아. 할애비가 이제 살아 봤자 얼마나 살겠니. 지금부터라도 할애비 옆에서 회사 일 좀 같이 거들어 주지 않겠니?”
“네?”
강지훈도 기업을 이끈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조직과 관련된 아주 작은 기업이긴 했지만.
하지만 그건 거의 의리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특별히 관리할 것도 없었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큰 대기업의 경영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듣게 되니 이전에 하던 것과는 부담감부터가 달랐다.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아무리 자신이 고씨 집안의 손자라고 하더라도 이런 날을 꿈꾸거나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늘 선을 긋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겠지. 그럴 거야.”
고성표가 씁쓸하게 말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잊고 있었다.
대기업 회장치고는 가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이 경영이란 게 생각보다 재미있단다.”
“그… 그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한데 저는…….”
경영이라고 하니 뭔가 감당하기 어려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동방수가 끼어들었다.
“경영이라. 그거 괜찮은 것 같지 않아?”
“네?”
“왜. 어차피 너도 고씨 핏줄 아니야?”
“그… 그렇긴 하죠?”
강지훈은 자신이 부정하긴 했지만 고씨 집안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고성표에게로 향했다.
과연 이게 가능하긴 한 거냔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고성표는 그 눈빛을 금방 읽어 냈다.
“지훈이 네가 싫지만 않다면 언제라도 고씨가 될 수 있단다. 필요하다면 어떤 교육이든 받게 할 생각도 있고.”
“느… 늦지 않았을까요?”
강지훈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물었다.
그간 제대로 된 공부라곤 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미 나이는 25세이지 않는가.
인제 와서 무슨 공부를 하고, 무슨 경영을 한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경영이란 말을 내뱉자마자 뭔가 알 수 없는 두근거림 또한 느껴졌다.
‘경영이라. 경영.’
운동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설렘이었다.
그동안은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일이었지만, 막상 고성표를 통해 듣고 나니 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마음이면 됐다. 할애비가 경영 수업을 시켜 주마. 대신 미국으로 가거라.”
“미… 미국이요?”
“괜히 이곳에서 분란을 조장하고 싶진 않구나. 미국에서 충분한 힘을 갖도록 도와주도록 하마. 어떠니? 괜찮겠니?”
“그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벌어진 일이었으나, 강지훈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고성표가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모습에 고씨 집안에 대한 불신과 서운함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 집안의 피를 받기는 했구나.’
안도감뿐만 아니라 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한편 고성표는 오랜 세월 동안 남아 있던 숙제를 이제야 풀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강지훈도 그리고 GK도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할 계획이었다.
비록 2위라지만 1년 매출이 수십조 원을 오가는 대기업의 자손, 강지훈이었다.
고성표는 그런 그에게 장사꾼의 DNA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김 실장에게 말해 놓을 테니 절차를 밟도록 해라. 영어는 할 줄 아니?”
“영어라면 조금…….”
다행히 어머니의 강권으로 영어만큼은 수준급으로 공부해 둔 강지훈이었기에 그 절차가 그리 힘들 것 같진 않았다.
이렇게 해서 강지훈은 경영이란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고지훈이란 이름으로.
* * *
대니얼 킴.
한국명 김봉섭.
현재 나이 47세로 GK 에너지의 연구소를 총괄하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런 김봉섭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전화야.”
투덜대는 것도 잠시.
[김용태 실장님]“응? 이분이 웬일이지?”
입사할 때 몇 차례 만나 보긴 했지만, 자주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니얼 킴입니다.”
– 네. 소장님. 저 김 실장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 지금 즉시 본사로 들어오라십니다.
“네? 갑자기요?”
지난 8년간 단 한 번도 본사에 들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논공행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연구를 핑계로 거절하던 자신을 부른다니.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네. 회장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 바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30분 내로 가는 걸로 하죠.”
오늘은 특별히 재택근무 중이었기에 금방 갈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시지?’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고성표가 불렀다니, 호기심이 들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학자니만큼 그의 움직임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