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9
9화 4억만 땡겨주실래요?
아무리 나이가 많은 대기업의 회장이라지만 자신의 뒷조사를 했다는데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동방수의 싸늘한 태도에 고성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히 변명했다.
“동방수 씨. 이 일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됐습니다. 굳이 어른을 배려할 필요도 없었네요. 전 가 보겠습니다.”
힘과 자금을 믿고 사람 한 명을 우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동방수는 그들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갑질을 참는 비굴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이 생겼으니 이런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동방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선미를 생각해서라도 엉킨 매듭을 잘 풀어 보려 했지만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러면 곤란한데.’
고성표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 잠시만요.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왜요?”
“이건 동방수 씨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예요.”
지금껏 평정심을 유지하던 고성표가 다급한 티를 감추지 못하고 동방수를 붙잡았다.
도대체 무슨 제안이길래 저러나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흐음. 일단 들어나 보죠.”
동방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얘기 먼저 들어 보고 그때 연을 정리해도 늦지는 않을 테니 말할 기회는 주기로 했다.
“동방수 씨가 저를 치료해 주셨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 보시죠.”
부인하지 않는 동방수를 보며, 고성표는 본인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너무 신기한 일이었기에 확신하면서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정말이었군요. 어쨌든 그날 저에게 새로운 빛을 찾아 주셨어요.”
“그래서요?”
“꼭! 보답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락을 안 하시더군요.”
사실 동방수는 이미 고성표의 존재에 대해 잊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무간계에서의 생 덕분인지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찰나의 순간 스쳐 가며 만난 현실의 인연을 어떻게 일일이 염두에 두고 있겠는가.
그런 사소한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많았다.
무간계에서 익힌 약간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선미와 평화롭게 사는 것.
그 간절한 바람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한 원동력이었고, 그것이 현재 동방수의 유일한 바람이다.
이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출발선에 선 상태인데, 이 소소한 인연이 뭐라고.
거기다 상식적으로 평범한 서민이 괜히 재벌과 얽혀서 좋을 게 하나 없지 않겠는가.
동방수의 심드렁한 표정이 고성표를 더욱 초조하게 했다.
“딱히 연락할 이유가 없었어요. 저로서는 별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동방수 씨에게는 가벼운 일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아주 큰 일이었어요. 연락을 아주 애타게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서 무례하게도 뒷조사를 했습니다. 그 부분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성표는 진심을 보여 주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대한민국에서 돈이 많은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자였다.
그런 사람이 동방수에게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는 중이다.
‘소문대로 진짜 겸손한 사람이네.’
GK의 기부 활동 그리고 직원들과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기부만 아니었다면 재계 순위가 달라졌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얼마나 기부를 많이 하는지는 알 만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저에게 연락하지 않은 게 의아하더군요. GK 그룹을 모르나 싶기도 했어요.”
“설마요. 대한민국에서 GK 그룹을 모르면 간첩 아니겠습니까? 아니지. 간첩도 GK 그룹을 모르면 간첩 짓 못 할 것 같네요.”
“허허허. 노인네를 앞에 두고 금칠을 하시는군요. 정말 궁금했어요. 왜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고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이 노인네가 제법 돈이 있답니다.”
제법 돈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순수 재산만으로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고, 기업의 영향력까지 생각하면 수십조는 될 법한 수준이 아니던가.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구먼.’
고성표야 겸손의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능욕이라 느낄 정도였다.
“돈 자랑은 됐어요. 아무튼 전 딱히 받을 게 없어요. 정말 별일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이래 봬도 지금까지 봐 온 사람이 얼마인데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보겠습니까. 편하게 요청하세요. 원하는 것은 대부분 도와드릴 수 있을 거예요.”
고성표는 진지했다.
재산의 절반을 달라고 해도 선뜻 줄 수 있을 만큼.
동방수가 대답하지 않자 고성표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고 싶답니다. 기회를 주세요.”
‘진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호의였다.
이쯤 되니 거절하기도 민망한 지경에 이르렀다.
“흐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아까와는 달리 동방수가 부드럽게 나오자 고성표의 눈빛이 반짝였다.
“좋아요. 좋아.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럼…….”
잠시 뜸을 들이던 동방수가 고성표를 똑바로 바라봤다.
‘에라이. 모르겠다.’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4억만 땡겨 주실래요?”
동방수의 말을 들은 고성표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3억도 아니고 5억도 아니고 10억도 아닌 4억이라니 너무 애매했던 것이었다.
“하하하. 정말 그 정도면 되겠어요? 임대료를 받을 만한 건물을 하나 드려도 되는데요. 아니면 회사에 자리 하나 드릴까요?”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박한(?) 규모에 고성표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주겠노라고 했다.
“아니요. 주신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제가 빚이 좀 많아서 일단 대환 대출하는 기분으로 빌리려고요. 꼭 갚을 겁니다.”
고성표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냈다.
분명 동방수의 형편에서 4억은 큰돈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을뿐더러 갚겠다고까지 했다.
23세의 저소득층 청년이 4억 원을 가볍게 여긴다?
얼마나 큰 액수인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고성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요. 4억을 원하니 딱 4억만 보내 줄게요. 혹시라도 더 필요하면 말씀하시고, 갚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요. 꼭 갚을게요. 아마 1년도 안 걸릴 것 같네요.”
자신만만한 동방수의 태도를 보자 문득 머릿속에 누군가가 한 명 떠올랐다.
젊은이의 패기를 보자 연상이 된 것이다.
고성표는 잠시 그 얼굴을 떠올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운을 한번 띄워 보았다.
“상환은 동방수 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대신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그냥 줄 것처럼 말했지만, 역시 이야기가 한번 풀리고 나니 제 뱃속을 차린다고 생각을 한 동방수.
재벌은 어쩔 수 없는 족속들이라 생각하고는 동방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부탁이요? 혹시 무조건 해야 하는 의무인가요? 그럼 4억은 안 빌릴게요.”
“아니에요. 전혀요. 그저 늙은이의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주시면 됩니다.”
‘푸념?’
동방수는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 동방수 씨 또래의 손자가 하나 있어요.”
올해로 76세인 고성표였다.
그런 고성표가 20대 손자가 있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요.”
“혹시 그 아이를 만나 주실 수 있을까요?”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다.
어떤 사연이길래 자신에게 만나 달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이었지만 고성표는 용기를 내었다.
왠지 동방수라면 해결해 줄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동방수 씨에게는 비밀을 하나 알려 드리죠. 사실 그 아이는 제 막내아들의 숨겨진 아이입니다.”
“숨겨진 아이라고요?”
“네. 이놈이 아랫도리를 잘못 놀린 게죠.”
재벌가에서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그래서요?”
“그런데 이놈의 성이 강씨예요. 강씨. 죽어도 고씨 성은 못 받겠답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아버지 성 대신 어머니 성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러는지 동방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고성표의 얼굴은 꽤 씁쓸해 보였다.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요. 만난 지도 오래됐는데, 동방수 씨를 보니 그 녀석 걱정이 되네요.”
얼마나 답답한지 고성표는 가슴까지 두드리며 말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냥 만나서 상처라도 아물게 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제가요?”
재벌가에서도 케어하지 못하는 걸 맡기다니 고성표도 정상은 아니었다.
“동방수 씨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요. 그냥 늙은이의 감입니다.”
‘진실.’
기연을 경험해서인지 고성표는 동방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손자에 대한 애틋함 또한 느껴지니 이를 모른 척하고 돈 4억만 받아 가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죠. 그런데 그 손자분 이름이 뭐죠?”
“강지훈입니다. 어릴 때 레슬링을 해서 몸 하나는 기가 막힌답니다. 그 녀석이 대회에 많이 참석했는데도 저는 한 번도 못 가 본 것이 지금껏 미안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성표는 이 말을 시작으로 얼마 없는 손자와의 추억을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돈놀이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는데, 어쩐지 고성표의 낯빛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강지훈이라. 기억은 하고 있을게요.”
‘뭔가 감이 좋은데?’
동방수는 대화를 마무리하며 무간계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 * *
무간계에서 동방수가 배운 재주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이 세상에서 당장은 쓸데없는 재주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예를 들면 림보라든지 저글링이라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도대체 이런 건 왜 배워야 하는 거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런 것들을 배운 시기가 무공을 익힌 후였기에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빨리 배울 수는 없었다.
어떤 것들은 무공만큼이나 긴 시간을 쏟아야 배울 수 있었다.
“수야.”
“네. 할아버지.”
“이제 저글링은 다 됐으니 다른 걸 배워 보도록 하자꾸나.”
“다… 다른 거요? 인제 그만 배우고 집에 가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 배운 것만으로 충분히 인생을 바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지금 배운 것들이야 고작 몸 쓰는 재주들 아니냐. 그리고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서 온전히 다 사용하기도 힘들 것이니라.”
동방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적인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발휘하기에 지구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또한 그런 힘을 발휘한다면 나선미의 안전도 보장하기 힘들 듯했다.
‘아니지. 엄마까지 강하게 만들면 되긴 할 텐데.’
총이나 폭탄 정도까지는 충분히 막아 낼 정도로 강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명인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듯싶었다.
“알았어요. 그래서 뭘 배우면 되는데요?”
“육감(六感)이란다.”
“육감이요? 설마 식스 센스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도 하더구나.”
사람은 원래 눈, 코, 입, 귀, 피부를 통해 느끼는 오감을 타고난다.
그런데 지금 노인은 여섯 번째 감각을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뭐예요?”
“쉽게 얘기해서 어떤 느낌이란다.”
전혀 쉽게 느껴지지 않는 설명이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요.”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느니라. 지금부터 노부와 너는 홀짝을 할 것이다.”
“홀짝이요? 홀수인지 짝수인지 때려 맞추는 거요?”
“잘 알고 있으니 바로 시작하면 되겠느니라.”
노인이 손을 휘두르자 여러 차례 만나 봤던 바로 그 마네킹이 다시 등장했다.
– 홀짝 게임을 시작합니다. 골라 주세요.
짤랑짤랑!
마네킹은 정신없이 손을 흔들며 동전을 섞었다.
– 홀? 짝?
“홀!”
– 제 손을 잡고 말씀해 주세요.
동방수는 뭔가 꺼림직한 기분을 느꼈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노인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사실 동방수도 처음부터 이렇게 순종적인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무공을 익힌 후 반항해 봤지만, 그럴 때마다 노인 특유의 태연한 표정으로 정신적 고통을 가해 왔다.
오감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혈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끝없이 간지럽힌다거나.
혹은 외워지지 않는다고 투덜대니 그 부분만 따로 뇌에 새겨지도록 반복시켜 준다거나.
직접적인 구타를 하진 않았지만, 구타 이상의 효과를 내는 방법들로 괴롭혔다.
“홀!”
다시 마네킹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소리쳤다.
– 짝입니다.
퍽!
“왜… 왜 때려?”
– 틀리면 맞습니다. 이 과정은 100번 연속 정답이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식한 수련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련될 대로 단련된 동방수조차 피하지 못하고, 충격을 주는 마네킹을 보면 도대체 저 노인의 능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짜증 나는 것은 그렇게 맞고, 또 맞다 보니 정말 육감이란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상대의 표정을 보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옳은 방향을 찾는 능력 또한 얻게 되었다.
이걸 어디에 쓸진 몰라도 분명 도움이 되리란 생각은 들었다.
“수고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하겠구나. 허허.”
“그럼 이제 끝인가요?”
“설마 벌써 끝이겠느냐. 그럼 이제 다음 수련으로 넘어가자꾸나.”
가르치는 데 환장한 노인의 말이었다.
* * *
GK 그룹에서 나와 집에 도착한 동방수였다.
“실장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고성표의 언질이 있었는지 김용태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김용태와 헤어진 동방수는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언제나 어려운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값비싼(?) 물건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구나. 진짜 돈을 벌긴 해야겠네.’
불편하게 살아온 23년과 그 이상으로 불편하게 살아온 길고 긴 무간계에서의 삶.
이제는 평화를 찾을 때도 된 듯싶었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겠지.’
뚜루루루루루.
– 무슨 일이야?
“일단 좀 만나자.”
용건부터 말하는 동방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