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196
◈ 검뢰섬릉식 (4)
마광익주 섬예의 손끝이 유려하게 움직인다.
여섯 명의 검격 경파가 옷자락을 헤집기 직전, 정연신의 손짓이 강철 꽃비를 일으켰다.
다섯 손가락이 장심을 가리고 드러내길 반복하며 흡착과 발산 경파를 조율했다. 광채를 머금은 검의 파편들이 꿈결처럼 좌우로 퍼졌다.
퍼퍼퍽!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금을 연주하는 것마냥 미려하게 움직인 손가락 끝에 핏물이 터진다.
현천대 여섯 고수들의 몸이 짧게 덜컥거렸다. 검을 뻗어오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큭.”
“음…….”
저마다 충혈된 눈으로 비틀거린다.
즉사에 이르지 않았다. 광역 비기로 한 수에 쓸어낼 만한 하수들이 아니었다.
정종무공이라 하나 세가 특유의 실전적인 기질로, 전신에 상당히 견고한 호신강기를 둘렀다.
급하게 일으킨 만천화우의 경력에 격살당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맹회의 무인들 입장에서는 지금 드러난 광경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제갈청아를 따라, 담이 크게도 세가의 영역까지 들어온 구경꾼들 사이에서 헛바람이 터졌다.
마광익주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악수림 덕에 놈들의 진신 절기를 미연에 차단했다.
본신 무공만으로 신검단 정도의 무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아닌 만큼, 파훼법을 지녔으면 돌파할 만했다.
“사안의 경중을 논하자면.”
정연신은 오른손을 천천히 내리며 통보했다.
“본 대주는 금일 받은 제보를 무엇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귀가에 정식으로 사죄할 테니, 더는 앞을 막지 마라. 선룡을 봐서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이다.”
선법을 놀랍도록 잘 연마한 제갈현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연신은 다시금 걸음을 디뎠다.
종종거리며 따라온 제갈청아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녀와 섬예를 멍하게 바라보는 세가 무인들을 뒤로하고.
“이들의 상세는…….”
“호신강기로 혈관까지 둘러친 게, 제대로 배운 무인들이야. 염려할 바가 못 돼.”
“아.”
무심한 대꾸에 멍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제갈청아는 자신의 인지를 넘어선 무공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상흔을 보고 추산할 때와는 달랐다. 마광익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었다.
‘현천대는 마광익에 비할 만한 집단이야.’
정연신은 생각했다.
대방파 정예란 그런 자들이었다.
무맥의 종류에 따라 무위를 발휘하는 방법이 갈릴 뿐, 근본적으로 역사와 함께 쌓인 세가 무공은 일부 십삼천보다도 탄탄했다.
검진을 제대로 펼쳤다면 정연신을 감당했을지도 모른다. 선배인 악수림의 조언이 컸다.
시간을 걱정할 때였다.
앞으로 늘어선 무인들을 바라봤다. 진벽과 만천화우에 당한 이들의 후열에서 달려들던 자들이었다.
여섯 명. 멈춰선 채 검세를 벼리는 게, 진용을 바꾼 듯했다.
정연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쾅!
양손 시화무극수가 병장기를 몇 개나 박살 냈다. 끊임없이 내달렸다.
환익보는 현천대의 상극 무공이었다. 초고수가 상성에서부터 유리하니, 제갈세가 정예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곳이 맹회라는 특수성도 한몫했다. 무림맹이 요지라 해도 본가의 전력을 끌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방파의 기량은, 특히 술법무공을 연성한 자들의 역량은, 그들이 힘을 쌓은 근거지에서 극대화되는 법이었다.
문득 종착지에 있을 청기린을 생각했다. 삼 년이 채 남지 않은 수명도 떠올렸다.
환멸이 일었다.
뇌리에 근본적인 질문이 새겨졌다.
―지금 진정으로 남궁세진을 위해 분노하고 있는가?
반만 맞다. 절반은 공적 때문이다.
흑색의 영역은 전에 없이 광대했다.
격 높은 초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적수를 쉽게 찾기 힘든 무력을 지닌 악수림과 멸섬대주도 아직 자색에 닿지 못했다.
그들이 나서서 해결한 사건이라면 하나같이 보통 일이 아닐 텐데도 그랬다.
공훈을 얼마나 쌓아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넓어진 백회혈을 실감할 때마다 새삼스러운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지금 정연신은, 살기 위해서 화내고 있다.
자신 역시 남궁세진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죄스러워서 손발에 분노를 둘렀다.
맹회의 주축인 제갈세가에 극심한 타격을 줌으로써 추가적인 공적을 취하기 위해, 소년은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서.
제갈청아는 지금뿐이라 했다.
상단전의 공능으로 진실을 확인했다. 호기였다. 놓칠 수 없었다.
“건괘를 확인해라! 방위를 제대로 밟아!”
“기파를 뜻대로 다룬다! 정도 이상의 타격을 상정하고 대비해!”
“출검!”
녹색 무복을 입고 출중한 기파를 뿌리는 남녀가 십수 명. 더 보내선 안 된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운백참절진을 아예 포기하고 검격 경파를 벼린 자들도 존재했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제갈청아도 어려움을 느꼈다.
마광익주가 전후좌우를 방비하는 걸로는 모자랐다. 머리 위에서 도약해 오는 자들의 검이 빛을 품었다.
일격만 가하면 된다는 듯, 뒤를 생각하지 않는 보신경이었다.
강력한 내공을 머금고 햇볕을 일그러뜨린 보검들이 정연신을 향해 질주했다.
온전히 검법에 집중한 세가 고수들의 기도가 철벽처럼 다가왔다.
순간, 제갈청아의 눈이 커졌다. 뒤편에 몰려온 구경꾼들의 기척이 기감에서 사라질 만큼 놀랐다.
스윽.
소년의 흑색 장포가 잔잔하게 펄럭였다.
일 보를 디딘 순간, 마광익주의 몸이 흐릿해졌다. 전신이 바람으로 화한 듯했다. 한걸음에 모든 검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든 적들의 검격보다 한 수 빠른 반응이었다.
현천대 고수들의 동선이 뒤엉키면서 자신들끼리 부딪치고 회피하는 가운데, 정연신은 또 한 번 전방으로 도약했다.
스윽.
뒤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른손만 후방으로 겨눴다.
시화무극수 제사초의 단점은 동격의 고수들에게나 통용된다. 하수들 앞에서는 시전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움튼 술법진의 묘리가 능법광륜기에 내재된 두 줄기 기운을 한데 엮었다.
혈공과 법력이 벼락처럼 부딪쳤다. 곧장 환강의 폭발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일곱 걸음 간격에서 터졌다. 박살 난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크게 솟구치고, 주변의 전각군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뒤에서 추격해 오던 이들이 경파에 휩쓸려 물수제비처럼 튕겨 나갔다.
어마어마한 폭음이 골목골목을 뒤집어놓고도 잔향으로 맴돌았다.
신위였다. 무시무시하게 고절했다. 신법 회피와 장법 공격초가 일체되어 믿을 수 없는 초고수를 만들었다.
제갈청아는 속눈썹을 잘게 떨며 정연신을 뒤따랐다. 본래 칠 할의 승산을 봤는데, 지금 와서는 구 할로 격상됐다.
소녀는 생각했다. 동년배가 어떻게 이만큼 강할 수 있지? 역시 청기린의 상흔에서 느꼈던 절박함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저벅.
정연신의 새까만 등은 무심히 나아갔다.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야말로 신들린 돌파가 이어졌다.
바람을 닮은 몸놀림으로 벼락같은 손속을 내쳤다.
구경꾼들의 입마저 다물게 하는 무위. 고수들의 무공이란 일대다의 전투에서 두드러지는 법이었다.
“저기예요!”
어느 순간 제갈청아가 외쳤다. 새하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소담스러운 전각 한 채. 그 측면에서 제갈세가의 무인 세 명이 전각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두 사람보다 가까운 거리다. 목표가 뚜렷해 보였다. 정연신과 경주하는 듯했다.
저 문만 열면.
필생의 호적수가 당문의 실험체마냥 누워있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빼앗길 수 없다. 훼손되어서도 안 된다. 정연신은 오른손 세맥에 광륜기를 채웠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장심의 일직선 세 가지 혈도에서 흡착과 발산 구결이 교차했다.
“어앗?!”
묘한 탄성이었다. 손도 대지 않고 제갈청아의 검집을 통째로 뽑아내서, 손짓만으로 투척했다.
흙먼지가 일었다. 밑에서 위로 이지러진 만천화우의 경파가 땅바닥을 긁어냈다.
스아악!
발산 경파에 무지막지한 광륜기가 실렸다. 하얀색 검갑이 빛살처럼 쇄도했다.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두 놈의 머리를 후려치고 한 놈의 등허리에 꽂히듯 작렬했다.
퍼어어억!
둔탁한 소리가 컸다. 호신강기에 강력한 타격을 주고도 본신까지 충격을 가한 듯했다.
널브러지는 세 놈 틈으로 길이 열렸다. 초고수가 가한 불시의 기습이었기에 제갈세가에서 제대로 방비하지 못했다.
초고수의 위용이었다. 방파대전에서 전략병기로 활약할 만했다.
“가자.”
정연신이 말했다. 어딘지 우울한 목소리였다.
제갈청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오므렸다. 작은 입술에 마른침이 묻는다.
믿기 힘든 광경, 벅차오르는 마음.
이제 부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권위적인 압제를 물리치고, 자신과 오라비의 뜻대로 세가를 바꿀 것이다.
세가라 해도 백도의 무맥이다. 정당한 명분이야말로 무엇보다 강력한 신검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졌다.
이르게 땅거미가 드리웠다. 낮게 뜬 구름이 모종의 기운에 이끌려 다가온다.
현실일까. 천천히 사라지는 햇볕이 절대적인 존재의 현현을 말하는 듯했다.
정연신은 문득 옆을 돌아봤다. 서까래에서부터 푸른 기와가 유려하게 올라간 전각.
가장 높은 지붕 위였다. 백색 유삼을 걸친 사내가 고고하게 서 있었다.
“어린 맹수 우리에, 몇 번이고 겁 없이 발을 들였다 하더니.”
제갈청아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왼손에는 감청색 수실이 달린 백학선을 쥐고 있다.
백설 같은 옷자락이 흰 피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데다, 가느다란 얼굴선에 짙은 눈썹을 지녔다.
학사 같은 인상인데 유약해 보이지 않았다. 전신에 묘한 초월성을 둘러치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세상이 저 사내로 가득 찼다. 자유롭게 불어오던 바람마저 불현듯 느릿해진 느낌.
“가주!”
뒤쫓아오던 제갈세가 고수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신음 같은 목소리였다. 엄벌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무위로 천하를 논하는 절대자가 그들의 가주다. 아주 당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현 제갈가주의 별칭은 복룡환생(伏龍還生)이다.
지모가 뛰어나서 무후 제갈량의 이름을 얻은 게 아니었다. 신기묘산의 지략보다는 비상한 눈치를 지녔다.
그 덕에 촉나라 제갈무후를 논해 볼 외양과 품격이 두드러졌다. 호풍환우. 바람을 부리고 비마저 내린다는 절세의 술법무공과 함께였다.
제갈청아의 묘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주다운 신중함으로 청기린의 시신이 불러올 파장을 무겁게 생각했다. 중요한 용무가 있어도 맹회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덕에 이 시간, 이 자리에 강림했다. 천하에 비할 자가 드문 보신경으로 젊은이들의 허를 찔렀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정연신을 향해 옮겨졌다.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부채를 든 절대자가 말했다.
“대환단을 받고 물러났으면, 그걸로 족했을 것을.”
“…….”
“과욕이 네 명을 단축했다.”
정연신은 잠시 침묵했다.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헌원창이라면, 태염룡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승산이 희미하다고 속삭이는 상단전의 기감을 느끼면서, 어린 마광익주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수치를 알아야지. 일가의 가주라는 자가.”
“패악무도한 침입자에게 들을 말이 아니거늘.”
제갈가주의 입매가 느릿하게 호선을 그렸다.
“네 머리를 입황성주에게 보내마. 그녀가 드물게 노하여 날아온다면, 무림맹의 결집도 그만큼 빨라지리라. 명분이 본가에 있는 까닭이다. 그리되면 맹회의 힘은 입황성을 능가하게 될 터.”
담담한 선언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움직인 부채와 함께였다.
콰아아앙!
느닷없이 태풍이 불어닥쳤다. 신검이 실린 것마냥 날카로운 칼바람이었다. 정연신은 미처 발검하지 못했다.
속도가 모자랐다. 양손에 능법광륜기를 억지로 둘러치고는, 정면으로 교차하면서 삭풍을 견뎠다.
제갈가주의 움직임을 훑을 새가 없었다. 공력 운용이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시야가 흐려진 가운데 팔뚝의 통증을 느꼈다. 군데군데에서 핏줄기가 터지고 있었다.
신공 초식을 받아내려면 호신강기도 신공의 영역에 있어야 할 터였다.
지금 지닌 내공방벽의 얼개는 약했다. 한 수를 받아내면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접근 불가.
정연신이 두셋은 더 있어야 필살초를 가해 볼 만하다. 없으면 여기서 죽는다.
곧.
콰아아악!
기다란 천을 찢어내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흑포 소년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날았다.
그러면서도 몸을 휘돌리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 광경이 놀랍다.
어떤 신법을 익힌 걸까. 저 감각은 또 무엇인가. 제갈가주의 흰자위가 하얗게 번뜩였다.
“역시.”
우아한 손짓으로 부채를 접은 그가 말했다.
“살려둬선 안 될 놈이다.”
먼발치에서 명교의 소교주를 보고 떠올린 생각이었다. 지금 똑같이 하게 될 줄 몰랐다.
천하 무림의 정세를 논하는 자로서, 저 소년의 자질은 몹시 위험했다. 장차 어떤 검로를 그리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왜 저런 아이가 제갈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절세고수에게도 경각심을 새겼다.
여기서 죽이는 게 맞다. 또 다른 신검단주가 나와선 안 된다.
‘또 다른 입황성주는 더더욱…….’
결심을 굳혔다. 죽인다. 입황성과 완전히 척을 지더라도.
스윽.
제갈가주의 부채가 초월적인 잔상을 그릴 때였다.
후우우웅―!
멀리서.
아주 멀리서부터 대기가 웅웅거렸다. 굉음이 찰나마다 곱절로 커졌다.
뒤쪽이라고 인식한 순간, 어둠을 길게 빚어낸 듯한 무언가가 술법진의 방벽을 모조리 꿰뚫고 날아왔다.
빛살처럼 도달한 파공성이 정연신의 옆자리에 꽂혔다.
콰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진동과 함께 누군가가 착지했다. 지진 같은 울림이 사방으로 번진다. 어디서부터 도약해 온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해일처럼 일어난 기파에 흑색 옷자락이 펄럭인다. 정연신의 것이 아니라, 지금 막 내려선 소녀의 장포였다.
익숙한 옆태다.
예법과 격식을 넘어선 새까만 단발머리. 햇볕이 투명하게 스민 뺨에 벼락처럼 번뜩이는 기파가 있었다.
상아를 다듬어 세운 듯한 콧날도 낯이 익다. 태어날 때부터 입황성 흑색 장포를 입었던 것마냥 자유분방한 무색 공력이 전신에 넘쳐 흘렀다.
몸에 맞지 않을 만큼 품이 넓은 소맷자락이 선녀의 옷처럼 넘실거린다.
입황신창 악수림.
정연신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린 그녀가 생긋 웃었다.
쿵! 쿵! 쿵!
더 있었다. 측면이었다.
콰콰콰쾅―!
전각이 하나둘씩 허물어졌다. 큼지막한 신형이 벽을 부수고 나올 때마다 퍼지는 파동이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다.
잎사귀처럼 뾰족한 귀를 지닌 거구의 흑포 사내였다. 벽면을 통째로 뚫고, 으깨고, 무너뜨리며 질주해 왔다.
발바닥에 실린 패력이 자국마다 연기를 피워올린다. 진기의 격렬한 운동이 화력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하― 등― 한― 놈들―!”
포효가 터졌다. 사자후마냥 팔방을 거세게 울려댔다.
몇 년을 축기한 건지 헤아리기 힘들 만큼 폭발적인 음성. 목청에 실린 공력이 벽력탄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문지방이 제 스스로 산산조각 날 정도였다.
“적도가 침입했다!”
“황 자! 입황성이다!”
“지급(至急:매우 급함)이다! 검진으로 방비하라!”
멀리서 아스라이 들리는 외침이었다. 소녀와 사내 말고도 더 있는 것이다. 절세의 보신경을 지니지 않은 이들이 정문으로 침입한 걸까.
그나마도 보통 무위가 아닌 듯했다. 강호 어떤 곳에서든 강자로 행세할 맹회 무인들이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범상한 대비로 맞이하기 힘든 상대란 의미였다.
입황성은.
애초부터 최강에 버금가는 패들을 꺼내뒀다. 불상사를 대비하여, 오로지 그들의 초월적인 후기지수를 지키기 위해.
‘소수가 아니지 않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안도하는 한편, 정연신은 작지 않게 당황했다. 얼굴로만 티 내지 않을 뿐이었다. 전쟁하자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