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2
◈ 중단전 (2)
이를 악 물며 달려든 유현을 향해 손을 뻗는다.
좌수에 기묘한 기파가 감돌았다. 다음 순간 천주를 비롯한 화산파 고수들의 눈이 커졌다.
스아악-!
왼손을 따라 무형의 진기 파동이 만발했다.
줄지어 개화하는 꽃송이들처럼 뭉텅거리며 피어난 경력이었다.
힘이 힘을 때리며 또 다른 기파를 만들어내는 모습. 존재하지도 않는 낙영장법의 상위 무공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준 자체가 다른 상승무공이 즉각 나왔기에 오히려 연관성을 찾기 힘든 권장법이 쏟아졌다.
퍼퍼퍽!
두 번째 초식인 진벽 못지않게 강력한 충격이 무더기로 내리꽂혔다.
유현의 무복에 묻어있던 먼지들을 털어내듯이.
“커, 허헉!”
유현이 검조차 뽑지 못하고 나동그라진다. 얕은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손을 내린 정연신은 생각에 잠겼다.
‘구파 무공은 완성도가 높구나. 명문 정파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할 만해.’
훌륭한 영감이었다. 그런 종류의 진기 운용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세 번째 초식으로 정해도 되겠어.’
정연신은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따로 다듬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시화무극권 제삼초, 권화(拳花)라 이름 지었다.
“······.”
장내는 적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간에서 잠룡이라 불리는 소년 도장을 상대했다.
화산파에서 가장 유망하다는 장문인의 막내 제자가 세 초식에 쓰러진 것이다.
정연신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수준이 달랐다.
입황성 제자가 아니라 백색무사 중에서도 수위에 꼽힐 섬예를 상대하자면, 적어도 매화검수가 되기 직전인 고수가 나서야 했다.
입황성 자색은 구파 장문인 못지 않다고 했다.
정연신은 자신의 상황을 유현에 빗대어 보았다.
저놈이 화산파 장문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얼마나 수련을 쌓아야 할까.
정연신에게 남은 오 년 남짓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것이다. 삶의 기준에서부터 아득한 차이가 났다.
“······데려오라.”
침중하게 굳은 천주의 말에 화산파 무인 한 명이 유현을 들쳐맸다.
돌아가며 정연신을 훑는 시선에 경악이 묻어있었다.
마침내 구경꾼들이 동요했다.
“무슨, 무슨 일이야 저게?”
“삼 초식 아니었나? 화산의 기재가 어찌······.”
“삼초지적이라니! 저 소년이 누구길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천주가 입을 열었다.
“입황성이 용을 키우고 있었군. 앞으로도 무림을 얼마나 옥죌 셈이기에.”
“비약이 심하구려. 백성을 건드리지 않으면 입황성도 움직이지 않소.”
“그럴 듯한 명분은 변하지 않는군.”
고개를 저은 천주가 정연신을 바라보았다.
“정연신이라 했나.”
“예.”
“좋은 무공을 견식했다. 화산파 무학의 인연이 네게 닿았을 리 없을 터. 천하에 그런 무공이 있는 줄 몰랐다. 나태한 장문제자에게도 자극이 되었겠지. 피치 못하게 입황성을 나올 일이 생긴다면, 화산이 빈객으로 대우하리란 걸 알아두어라.”
“검절! 우습지도 않은 소리를. 선을 넘었소.”
마진이 정연신을 뒤로 끌며 앞으로 나섰다.
“탐욕이 앞섰음을 인정하지. 추태를 보였군. 천하에 이를 정도로 빛나는 자질이 눈앞에 있기에.”
순순히 인정하는 천주를 본 화산파 고수들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동시에 납득한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정연신은 그저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버티기 힘든 듯하구나.
백미려의 전음이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모든 진기를 소모한 까닭이었다. 단전의 부담이 컸다.
시화무극권은 강한 경력을 만드는 데 드는 진기의 비중이 높았다.
모든 자세로 발경을 가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자세에 구애받지 않는 반면, 소모되는 내공의 양 또한 부담인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주된 무공으로 활용하기 힘들 듯했다.
‘실전에서는 검으로 돌아가야겠어.’
생각을 정리하며 객잔의 방을 잡았다.
우르르 따라들어온 이들은 물론 화산파의 고수들까지 바뀐 시선을 보냈다.
경이로운 영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별 감흥은 없었다. 그들과는 사는 시간이 달랐기에.
방을 잡자마자 백미려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자상하면서도 거침없는 성격답게 청명까지 뒷덜미를 끌고 와 앉혔다.
“너는 특히나 빨리 중단전을 열어야겠다. 내공이 부족하면 지구력이라도 보충해야겠지.”
백미려가 정좌하며 말했다. 따라온 청명은 퍼질러져서 반쯤 누웠다.
“중단전이라 하셨습니까?”
“공능을 몰랐나보군. 머리에 신을 담는다는 상단전조차 줄 수 없는 효능이 있어. 중단을 개방하는 순간 느낄 텐데, 내공이 조금 더 단단해질 거다. 소림의 금강부동신공이 중단전을 연마하는 대표적인 무공이라지.”
“내공이 단단해진다?”
무심코 되묻자 청명이 끼어들었다.
“효율이 좋아진다는 의미야. 칠주야를 싸워도 지치지 않았다는 고수들 이야기 들어봤지? 중단전을 수련한 거야. 진기의 흐름이 굳건해지고 커다란 초식도 몇 번이고 펼칠 수 있지. 웬만큼 강력한 일격을 맞아도 쉽사리 내공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
“청명이 남궁제일검과 검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일 거다.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이놈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백미려가 늘어지게 하품하는 청명을 가리켰다. 싱그럽게 웃은 청명이 비스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힐끗 본 정연신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중단전. 어떻게 개방합니까?”
“하단전을 오래 연마하다 보면 저절로 열려. 상체를 중심으로 운기조식 하는 게 좋을 거야.”
“더 빠른 방법은 없습니까? 누님.”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강해질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빠르게 손에 넣어야 했다.
무학과 공적에 있어서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어 되는 대로 나온 호칭이다.
스스로 말하고도 흠칫했을 만큼.
“누님······?”
백미려의 차가운 눈매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뺨이 살짝 붉어졌다.
순간적으로 입술도 흐물거린 듯했다.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일련검매가?
그녀는 내가고수답게 곧장 길게 호흡하며 안색을 회복했다.
이 순간 정연신은 백미려에게 사별한 동생이라도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그는 마광익 무인들 중 누구의 삶도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난 아직 아무도 모르는구나.’
백미려가 헛기침을 했다.
“우선 강력한 기운을 몸 안에 담아두고 있어야······”
설명이 이어졌다. 문제는 결국 진기였다.
오랜 토납으로 자연스럽게 열리는 게 하단전인 바, 중단전 역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설픈 사술은 독이 될 뿐이라 했다.
다른 일이지만, 정연신이 날 때부터 상단전을 개방하고 있었듯이. 망할 체질.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일층으로 내려갔다. 중단전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공을 쌓는 데 집중하자. 그거 없이 강해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객잔이 바글거렸다. 온통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데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서안은 온갖 무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했다. 밖으로 나다니는 민초들은 어지간히도 겁이 없다는 유별난 도시.
화산파 도장의 비무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더욱더 몰려든 듯 보였다.
“그 소년 검객이다!”
“화산잠룡을 삼초지적으로 무찔렀다는?”
“동년배로 보이는데 그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일세!”
정연신이 내려오자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비무를 본 사람들인 듯했다.
“섬예는 금방 명성을 얻겠는걸. 신분이 밝혀지면 난리가 나겠어.”
“당연한 일이다. 본성의 미래니까.”
청명과 백미려였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싶었다.
연배와 엮인 칭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자신의 무를 평가 받은 자리였지만, 정연신은 모든 말을 한귀로 흘리며 마진을 찾았다.
헌원창과 더불어 마광익주가 앉은 자리만 텅 비어있어 금방 눈에 띄었다.
소름끼치는 흉터에 강인한 기도는 주변의 접근을 불허했다. 감히 동석하고자 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인파를 뚫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임무를 논해야 할 자리에.”
청명, 백미려와 함께 착석한 정연신의 물음에 마진이 웃었다.
“화산이 눈을 부릅뜨고 범인을 수색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무릇 명문대파의 무인들이란 행선지가 낱낱이 파악될 수밖에 없지. 오히려 이렇게 해 두어야 예상 못 한 민초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확실히.”
“성동격서(聲東擊西)란 말 들어봤나?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화산의 무력 행사를 때에 따라 막는 것만이 아니었군요. 적극적으로 도와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겁니까?”
“그래. 조사는 이미 끝나 있어. 범인은 투귀(偸鬼)다. 장강 이북에서는 익히 알려진 도둑놈이지.”
“투귀라 했습니까?”
백미려가 벌떡 일어섰다. 몸으로 검을 벼리는 듯한 기운이 서리서리 뻗쳐 올랐다. 날카로워진 눈매는 언뜻 살기까지 비칠 정도였다.
“그래. 네 비급을 훔쳐갔던 그놈이 맞다. 잘 된 일 아닌가.”
“무공 비급을 도둑맞으신 겁니까?”
헌원창이 식사를 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입황성 청색고수는 구파와 같은 거대 방파가 아닌 한 적수를 찾기 힘든 무인.
도둑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무위가 아닌 것이다.
“사정이 있다.”
짧게 대답한 백미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기세는 달랐다.
타오르는 들불처럼 피부로 다가왔다. 잡아서 목을 베겠다는 의지가 기파에서부터 느껴졌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친 일행은 마진이 묵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의 몸집에 맞게 상당히 큰 방이었다.
둘러앉은 일행과 한 번씩 일일이 눈을 마주한 마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동격서의 의미를 설명하겠다. 우선, 화산의 무공은 이곳 섬서에서 모르는 이가 드물다. 너무 눈에 띄지.”
“그럼?”
”지금부터 투귀와 연이 있는 섬서 사파의 현판을 하나씩 박살낼 거다. 우리가 한다. 싸움터는 절대 밖으로 가져가지 않고.”
“그동안 화산파는 뭘 합니까?”
“암향표는 보법과 신법을 겸한다. 우리가 주의를 끌 때 몰래 잠입해 문파 내부를 살필 거다.”
마진이 무심하게 말했다. 무엇이 기분 좋은지 헌원창의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사파의 현판을 내릴 만한 명분은 있습니까?”
정연신의 물음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청명.
“사파 무림인을 잘 모르는 모양이네. 황실이 인정한 적도 없는 자릿세를 거두고 다니는 것들이야. 대명제국의 관점에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은 간단해. 민초들이 스스로 헌금하느냐, 칼 앞에 금전을 뜯기느냐.”
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잡아죽여도 새로운 벌레가 무리를 짓는 까닭에 내버려둘 뿐, 놈들을 치는 데 명분은 필요하지 않아. 제 놈들끼리도 멸문과 개파를 반복하지.”
“방파 몇 곳이 목표입니까?”
“우선 다섯이다. 내가 둘을 맡는다.”
“저도 혼자 하겠습니다.”
정연신의 말에 누구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진이 물었다.
“단독 공적을 원하는가? 위험부담이 크다.”
“감당하겠습니다.”
“집단을 혼자 감당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다. 무공을 지닌 방파라면 더욱 그렇지. 검격을 내칠 때마다 시체가 쌓인다고 생각해라. 혈향은 고수의 이성도 앗아가는 법이다. 변수가 가장 많은 게 집단전이야. 일대일 비무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 역시 경험해야 할 일입니다.”
“좋아. 이 자리에서 배분하겠다. 섬예, 네 목표는 서안 연호현(莲湖縣)에 있는 당랑파(蟷螂派)다. 알아보니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야. 아녀자 납치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임무 내용은.”
똑바로 바라보는 정연신과 눈을 마주한 마진이 말을 이었다.
“일문 단독 격파다. 멸문시키고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