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22
◈ 광예결 (2)
마광익 대연무장.
족히 오백 명은 수용할 수 있을 법한 넓이에, 다종다양한 병장기들이 대리석 거치대에 늘어서 있었다.
광활한 땅바닥은 몹시 단단하게 닦였다. 무수히 많은 진각을 견딘 까닭이다.
스아악! 파앙!
온갖 무인들이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무질서한 대열 사이로 날카로운 경파를 연신 터뜨려댔다.
남녀를 불문하고 강력했다. 고수 아닌 자가 없는 자리였다.
“원평일검장 쪽에 난리가 났다던데?”
“낮 벼락이 내리꽂혔다는 얘기가 있어. 안위가 염려스러운데. 우리 대주 말이야.”
“아서라. 흑색을 염려할 주제냐.”
“중견 대주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흑색들의 호신강기쯤 되면 천벌을 견딘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내가공부가 못해도 삼화취정이니, 마음먹는 순간 진기 방패가 일어나는 지경일 테지.”
“우리 대주가 조금 불안하지만…… 그 감각이면 어떻게든 대응했을 거다. 선배들도 있고. 애초에 원평일검장은 명족들의 비전 진법으로 보위 받지 않나.”
“벼락 같은 게 아니라 침입자라면?”
“그놈의 불행이지. 지금 원평일검장에 자리한 대주가 여섯이다. 대총관의 내가공부도 삼화취정에 이르렀다 했으니, 족히 일곱으로 봐도 될 터. 드물게도 많이 모였다.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곳 아닌가?”
“정말로 큰일이었다면 성주께서 현현하셨겠지.”
“타종도 울리지 않았어. 다시 집중해.”
분위기가 자유롭고 정갈했다. 갖춰 입은 무명과 청백의 무복들부터 그랬다.
고풍스럽게 펄럭이는 옷자락이 매끄럽게 다려져 있는데, 어느 것 하나도 무인들의 의복답지 않았다.
인두질. 하인들로 말미암아 외관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입황성의 위세를 방증하는 광경이었다.
“거기선 후위로 빠져야지.”
“바꿔 보는 게 어때? 네 경파가 강하긴 한데, 선공으로 삼기에는 쾌검만 못한 듯싶다.”
집단전을 대비해 합을 맞추는 이들이 많았다. 가까이 붙어 절초를 연마했다.
지붕 위에 선 채 팔짱을 끼고 있거나, 멀찍이 대충 주저앉아 운기조식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도 내상을 염려하지 않았다. 암암리에 주변을 훑으며 경계해 줄 뿐이었다.
“마광익의 기풍은 자유롭군요.”
민소매의 청색 무복을 걸친 여인이 말했다.
검첨처럼 솟은 귀를 지녔다. 차분하게 팔짱을 낀 모습이 고고했다.
궁사로서 연마된 목 아래 승모근이 유려한 곡선을 맺고 있다.
사월궁귀 위예령으로, 선목령의 후방을 받쳐 온 궁술 고수였다. 천소소의 비무 패배로 소속이 바뀌었다.
곁에 선 백미려가 새까만 귀밑 머리칼을 거칠게 넘겼다.
“무력대의 기질은 대주에게 달렸지. 신임 대주와 함께 임무를 뛰지 않은 탓에 이 모양이다. 후배가 상관이 되었으니, 양쪽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지. 조만간 기강이 잡힐 거다.”
“일련검매께서 어린 대주님을 많이 아끼는가 봅니다.”
위예령이 말했다. 입매에 맺힌 미소가 흐린 초승달 같았다.
그녀를 힐끗 본 백미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어 무심히 입술을 뗐다.
“어폐가 있는 얘기다. 대주께서 나를 아껴주시는 거지. 그리고…….”
일련검매 백미려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어린 대주라. 내 귀에 같은 말이 다시 들리지 않게 해라. 거슬리는 수식이다. 네 활, 귀한 흑단나무로 만든 게 아닌가? 동강나게 되면 아주 아까울 텐데.”
“실언을 했군요.”
위예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뿐이었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푸른 옷의 위계에 명족 혈통이다.
일련검매가 청안마검과 더불어 청색 최강을 논한다 해도 크게 쳐지지 않았다.
입황성 정예 고수들.
끝도 없이 광활한 대지에서 청색의 무위를 갖췄다. 실질적으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의미다.
사도 십삼천이니, 구파와 팔가니 하는 강호의 상층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방파의 정예라면 뚜렷한 개성과 드높은 자존감을 가질 만했다.
백미려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주가 다스릴 일이다. 정연신의 몫이었다.
선목령과 보혈대, 천림대에서 새로이 들어온 중견 신예들과 마광익 고수들은 섬예의 북명검 아래 질서를 지키리라.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저마다 지닌 과제가 있다. 백미려도 그랬다.
‘섬예의 숨이 조금 트인다면…… 그때는 전대 대주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지.’
그녀는 가라앉은 눈매로 생각에 잠겼다.
―일련검매 백미려가 실전된 천마신결을 홀로 익히고 있다? 그런 게 섬예를 멀리 할 만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녀석은 명실상부한 입황성의 미래야. 섬예를 보지 못한 다른 놈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녀석의 말을 하수의 조언이라 폄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 자질은 들은 적도 없어.
마진의 이야기는 오래된 난제였다. 생각해 볼 만한 화두로서 긴 시간 섬예를 지켜보게 만들었다.
대주가 되어 일문에 가까운 전력을 이끌게 된 지금, 백미려는 그를 온전히 상관으로 받들게 됐다.
부담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광익을 어찌 정리하는지 보는 것으로 그릇을 헤아려야 했다.
그 뒤에 도움을 구할 셈이었다. 구결의 완전한 공개를 전제로, 오직 그녀의 대주에게만.
침묵도 잠시였다. 고절한 무인들이 원체 많았다.
“패도적이군. 제대로 연마된 마광결은 상당한 위협이라더니.”
“철저한 실전 무공이다. 감각도에 가까워.”
“병립이 힘들겠는걸. 섬예 무맥과 마광결…… 양쪽 모두 상승 무학이니, 하나에 온전히 몰두해야 해. 어정쩡하게 익혔다간 이도 저도 안 되는 수가 있겠어.”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목도하고 보니 더욱 실감이 날 뿐이지. 이래서 무력대를 옮기는 게 경원시되는 거였어.”
소속을 옮긴 고수들이 난색을 띠고 얘기했다. 청색고수 여섯에 백색무인이 둘이었다. 마광익 고수들의 수련을 지켜보던 차였다.
원래 쌓아둔 무학을 등지고 섬예의 기예를 취했다.
한 번은 괜찮았다. 본신 무공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숫제 주력 무공을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어도 견딜 만했다. 연마가 고되다 해도 그들의 선택이었다.
추구해 온 무학의 이치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상위에 있는 무맥. 알아갈수록 수련이 즐거웠다.
허나 마광결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집단전에 임한 마광익을 한 자루 보검으로 변화시키는 힘.
투로의 성격이 같다. 적의 빈틈을 똑같이 보고, 동료들과 비슷한 결을 탄다. 그로써 방비할 틈이 없는 궤적으로 적들을 섬멸해 왔다.
합공의 효용이 엄청났다. 마광결은 그런 무공이었다. 마광익이 매화검수들과 곧잘 비교되곤 하는 이유다.
매화검진과 같은 절진이 없음에도 집단전에서 동격의 위용을 보였다.
“이거 해결 못 하면, 기껏 청색을 여럿 흡수한 보람이 없긴 하지. 단독 임무나 보내야 할 거야.”
그들 한켠의 담장에 몸을 누인 청명이 중얼거렸다.
북적임이 이어졌다. 누구도 청안마검의 독백에 끼어들지 않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과제라 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치인 까닭이었다.
“동료들과 광야를 질주하는 쾌감은 엄청나지. 함께 적들을 쓸어낼 때의 환희가 덜해지는 거야 익히 예상하고 오지 않았나? 가르침이나 좀 구하고 싶은데, 대주께서 도통 모습을 비추지 않으니.”
효수검 강창무가 불퉁히 말했다.
천림대에서 온 검객이었다. 본래 대주로 모신 천권용력신마냥 체구가 컸다. 등에 맨 검갑도 그랬다.
전신에서 농밀하고도 압도적인 기도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상시 두른 기세가 그 정도면, 축기량이 엄청나다는 의미였다.
“글쎄. 댁 정도의 오성(悟性:사고 능력)으로는 어차피 거기까지가 한계일 텐데.”
무명 옷을 대충 걸친 청년이 그를 지나치며 말했다. 양팔을 뒷머리에 얹은 채였다.
입으로 웬 풀잎을 질겅이는 모양새가 뒷골목 왈패와 다르지 않다.
“보아하니 광화검류를 어설피 익혔군. 애석한 일이구랴.”
“뭐?”
“그게 겉보기로만 본새가 나지, 실상은 무지막지하게 배려 없이 짜인 검법이거든. 구 성쯤에서 막히지 않을까 싶은데. 웬만한 감각으로는 검로를 발전시키기 힘들 거외다.”
밑으로 그늘진 눈매가 나른해 보였다. 태염룡은 눈짓으로만 위예령을 가리켰다.
보혈대에서 온 나일천에게도 이어지는 품행이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는 모습이 몹시 귀족적인 게, 제남 지방을 제패한 호족의 소가주다운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당신도, 당신도. 환익보랑 시극경은 또 아무나 건드릴 게 아닌데. 나 정도 되면 모를까.”
마광익의 무명제자는 죽을 날을 받아뒀다. 눈에 거슬리는 광경을 참지 못했다.
마광익주의 무공과 직결된 일이라면 더욱 그랬다. 생애 마지막 흥밋거리로 삼은 인물의 무공 세계인 까닭이었다.
태염룡은 생각했다. 이 반푼이들이, 주제도 모르고.
“황보세가의 망나니로군. 익히 들었다.”
강창무의 기질은 천림대주를 닮았다. 더 얘기하지 않았다.
하극상에 대한 징치는 입황성의 율법을 범하는 일이 아니다. 등 뒤의 검갑을 끌러내고 곧장 거검을 뽑아들었다.
사건이 벌어졌다.
* * *
정연신은 원평일검장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외조부가 목놓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곧장 입황성의 대로를 가로질러 걸었다.
발걸음마다 삭여야 하는 부끄러움이 엄청났다. 어느샌가 입황신가의 문지방을 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할 정도였다.
회색빛의 대문부터 아주 컸다. 입황마가에 버금갔다.
안쪽으로 펼쳐진 수목까지 아름답게 조경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핀 겨울 군자란의 붉은 꽃잎들이 햇살을 핥았다.
“마광익주께서 친히……!”
문지기들이 기겁했다.
정연신은 여러 차례 본성의 행사를 치렀다. 식전에 따라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성년 관례식과 청색 승단, 흑색 승단과 선목령주와의 비무까지.
본성 내에서는 얼굴을 모르는 자가 드물게 됐다. 입황성이 넓이와 무관하게 그랬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청색이 안내역으로 나올 정도였다. 난명검(亂鳴劍) 신백(申帛)이라 했다.
신소빈의 사촌 오라비 되는 사람이란 소개와 함께였다.
신소빈은 정연신의 수하다. 명문가 출신으로서 보기 드문 자질을 지녔다 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출가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마광익의 소속으로서 정연신의 품에 안긴 인사였다.
입황신가 역시 마광익주의 심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소빈이의 내 보호하에 있는 게 마땅해. 대주로서 데려가면 되지. 그보다…….’
앞으로 흑색 선배들을 무슨 낯으로 볼까. 정연신의 마음은 끝도 없이 아래로 파고들어갔다.
심연 속에 심연이 있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성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가주에게 안내하라.”
신가의 고수들은 지레 흠칫했다. 그들의 전각에는 흑색 초고수의 진노를 받아낼 인물이 없다.
원로원주는 기력이 다했고, 멸섬대주는 임무에 나가 있는 까닭이었다.
누구도 마광익주를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신임 대주가 올곧은 인품으로 유명하다 해도 그랬다.
숨죽인 분위기 속에서, 빈 왼팔 소매의 맨살이 인상적인 마광익주가 가주전으로 들어섰다.
신설하가 상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게 허리를 펴고 앉은 채였다.
좌정한 모습에서 품격이 흘렀다.
“딸아이를 맡기고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부덕을 용서하시오. 가업이 공사다망하여 미처 마광익주를 접대하지 못하였소.”
“신소빈의 신변을 인도받고자 하는데.”
정연신이 단정한 몸가짐으로 앉으며 말했다.
언행이 신검단 흑색고수의 위계에 어긋나지 않는다.
입황성 대주의 위에 설 수 있는 자는 자색고수들과 성주뿐이다. 본성 산하의 가주가 무어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신임 마광익주의 품행에는 자연스러운 데가 있었다. 몹시 오연했다.
신설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거두절미라. 섬예 무맥의 무공 기질도 그렇다더니. 하인에게 일러 용정을 준비했거늘, 허사가 되었구려. 귀히 들여온 찻잎이었는데.”
“차를 마시기에는 안건이 무겁지. 그대가 본 대주를 존중했다면 하대하지 않았을 터다. 신검단 산하의 고수를 대주의 허락없이 빼냈지. 당장 하극상으로 다스려도 될 일이다.”
정연신이 조용히 얘기했다. 신설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이미 그대를 한량없이 존중하던 바였소. 그간 세운 공적들만 봐도 마땅히 그리해야 하오. 허나, 소빈이의 어미로서 부탁하건대, 이 몸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실 수는 없겠소?”
“말해라.”
“딸아이의 무공이 문제였소.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더구려. 섬예 무맥 말이오. 본가에는 제천무경이라는 걸출한 절학이 있건만.”
신설하가 말했다. 주황빛 옷소매를 가다듬으면서다. 또렷한 음성이 신소빈을 연상케 했다.
“까마귀가 맹금처럼 발톱을 갈았다 하여 독수리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오. 그대의 자질이 출중한 것과 별개인 이치지. 정 대주의 무공은 오직 정 대주에게만 어울리는 절기요. 제천무경은 신씨 혈족에게 맞춰진 무공이외다. 소빈이에게는 제 자신만의 책무가 있소. 가문의 이름을 떨치는 일…… 명가의 직계가 응당 짊어져야 하는 업(業)이오.”
“딸을 낮춰 보는군. 소빈이는 맹금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본 가주의 말에 힘이 실리지. 제천무경을 익혀도 흑색에 오를 아이란 얘기요. 대주의 이야기는 내게 와닿지 않소.”
신설하가 굳은 입매로 말을 맺었다.
이미 마음을 정하고 정연신을 대면한 것이다. 혈족의 도리와 대주의 권위가 부딪친다.
고즈넉한 가주전에 침묵이 흘렀다. 무겁고도 깊은 공기였다.
정연신은 무심코 입황마가를 떠올렸다.
첫 대면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던, 신설하와 유사한 논리를 펼치던…….
콰아아앙―!
돌연 천장이 산산조각났다. 불현듯 위에서 내리꽂힌 일격이 채 닿기도 전이었다. 분홍빛 벼락이 천벌처럼 질주해 들어왔다.
웅웅거리는 파공음이 엄청나게 격렬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항거불능의 태풍이 사람의 형상으로 화한 듯했다. 그대로 신설하를 향해 짓쳐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채 맺히기도 전에.
쩌어어엉―!
신설하의 몸을 둘러치고 있던 호신강기가 산산이 흩어졌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뒤늦게 불어닥친 역풍이 무색의 경파를 거울 조각마냥 휩쓸어 올렸다. 경력의 파편들이 태양빛을 받아 먼지처럼 아롱졌다.
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맥을 짚어 보지 않아도 알겠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겨우 즉사를 면한 듯했다.
“하찮은 것이.”
서른 줄의 사내가 냉엄한 얼굴로 말했다. 신설하의 머리맡에 오연히 선 채였다.
홀연히 현현하여, 분홍색 소맷자락을 툭툭 털어내는 모습이 굉장히 신비로웠다.
정연신은 더 참지 않았다.
“할아버지!”
패협의 고개가 곧장 돌아갔다.
“할아버지……?”
젊은 마연적이 되묻는다. 다소 느릿한 반문이었다.
정연신은 실례를 깨달았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짐짓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소손이 대주로 행세할 때 끼어드시면, 도리어 저의 체면이 상합니다. 원평일검장에서도 그리하셨지요. 몹시 곤란했음을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옳다. 네 말이 맞지.”
수긍이 빨랐다. 외조부의 말이 곧장 이어졌다.
“이 할아버지의 과실이다. 아주 미안하구나.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어. 할아버지의 성질머리가 앞선 탓이다. 네 깨우침이 할아버지에게 부끄러움을 안기는구나.”
마연적은 웃고 있었다. 심기가 몹시 좋아진 듯했다. 전에 없던 표정으로, 입매부터 커다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 할애비가 다음부터는 두 번 세 번 생각하마. 용서해 다오.”
동시에 마연적의 신형이 사라졌다. 인자한 목소리만 남아 잠시간 울리더니, 그마저도 점차 멀어졌다.
절세의 보신경으로 솟아올았다. 기척이 끝도 없이 위로 질주했다. 능공허도의 경지였다.
“…….”
정연신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입황신가주를 멀뚱히 내려다봤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늦게 소란을 인식한 가솔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흑색의 이름이 무거운 탓에 감히 난입하지 못할 뿐이었다. 허나 오래 가지 않을 터였다.
곳곳에서 병장기를 뽑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서늘한 질감이 겨울 바람과 함께 문 틈새로 끼쳐 왔다.
‘내가 출수한 걸로 해야겠다.’
신임 마광익주는 담담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