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36
◈ 보검 (9)
과운객잔의 소담스러운 방 안.
“귀백신검 여소향(呂素香). 패검종의 원로원주입니다. 서안을 장악한 패검종 산하의 사파들을 관리하고 있지요. 개방과의 합작으로 조사된 바에 따르면, 신야현 정가장 멸문을 주도한 자…… 이기도 합니다.”
제갈현이 말했다.
둥근 다탁을 두고 정연신과 마주한 채였다. 찻잔을 둘만 올려뒀다.
쌀알이 없어도 차는 끓여 마시는 세태였다. 은은하게 피어오른 다향이 방 안을 맴돌았다.
“본가의 멸문을?”
눈동자에 반가움을 띠고 있던 마광익주의 표정이 사라졌다.
“혈염교의 삼사도가 명했던 걸로 안다.”
정연신은 조용히 말했다. 혈염교 본단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다.
―주제에 맞지 않게 비옥한 땅을 누렸지.
칠사도와 대립한 삼사도의 말이었다. 스스로 고했다. 정가장 멸문을 명했노라고.
그리고 입황성주의 검에 머리가 떨어졌다.
남은 원수는 하나뿐이었다. 정가동공을 창안했던 때의 마음으로, 천륜을 지키고자 정가장 멸문의 원흉을 손에 꼽던 차였다.
패검종주 외에는 달리 생각하지 못했다.
제갈현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서안 사파를 관할하는 귀백신검은…… 패검종주의 유모였던 자로, 노쇠한 명족 검객입니다.”
그새 길어진 정연신의 팔다리가 신기한 듯 힐끔거리며 말을 잇는다.
“한때 십삼천주와도 겨룰 무위를 지녔으나, 패도 무공을 익혀 쇠락했다고 알려졌지요. 그렇다 해도 고강합니다. 대방파의 문주들 외에 여소향을 상대할 만한 자는 화산검절 천주진인뿐이었으니…….”
“정가장의 일을 말해 줬으면 하는데.”
“어검비행으로 땅 살피길 즐기는 기인인데, 신야현의 지기(地氣)를 훑어 패검종주에게 고했다 하더군요. 자신이 키운 절세고수를 수시로 자랑해대는 자입니다. 종주가 입황성에 무수히 타격을 입혔노라 말하던 중에 드러낸 사실이라고…….”
“귀백신검 여소향.”
정연신이 작게 뇌까렸다.
패검종 원로원주. 종남파를 밀어내고 들어선 사파 무림의 총책임자.
상단전 기감이 제갈현에게서 거짓을 훑어내지 못했다. 어떤 절학보다도 인상적인 선법을 연성한 자다.
굳이 의심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연신의 친형제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지닌 협사였다.
“당면한 일에 집중하지.”
정연신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뜻밖의 사실에 일어난 상념을 접었다.
어차피 서안 사파를 밀어내다 보면 만나게 되리라.
“정오에 대월협에서 결판을 보기로 했다. 숭여지문주의 서찰이었지.”
“당장 귀백신검이 내려오지는 않을 겁니다.”
“이유는?”
“패검종주 외의 모든 것을 하찮게 보는 자입니다. 산하 문파들의 드잡이질에 초장부터 끼어들 리가 없지요. 그 전력이 얼마나 막대하든지.”
“맞아. 이곳 사파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더군. 흑도 무뢰배 수준이 아니라, 중견 문파에 가까웠어.”
“놈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는 첩보를 받고 왔습니다. 민초들의 목숨을 주머니 속 당과로 여기는 수준이라 했지요. 실황을 확인하자면 직접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연신이 본 것도 그와 같았다. 성문을 넘어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체를 목도했다.
흉년 탓에 약탈당한 이들의 주검인데, 사도무공 경파의 잔재가 남아 투명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머릿수가 압도적입니다. 하나같이 사마외도의 무공을 제대로 배운 놈들이지요. 퇴각도 생각해 봄 직합니다. 도시 전체가 정 대주께 적대적이던데…….”
제갈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맹회에서 익히 조사해 왔다. 사파 무림은 정파 연맹체와 다르다.
사업을 떳떳이 운영하거나 공양 따위의 기부를 후하게 받지도 못한다. 다른 점포에 손을 얹거나 노골적으로 자릿세를 걷을 따름이었다.
당연히 자리에 몹시 민감했다.
저들끼리 싸우다가도 바깥의 침습을 대하는 순간 뭉쳤다. 대방파가 아니라서다. 중견 문파와 뒷골목 흑도의 기질이 섞인 까닭이었다.
정파의 호사가들이 괴이하다 평할 정도로 일사불란했다. 기존 종남파의 질서를 빠르게 찢어낸 단결력이다. 삽시간에 자신들끼리 이권을 나눴다.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형제에 가깝다.
적대적인 초고수의 출현에 대한 대응이 벼락같을 수밖에.
태염룡이 겪은 바와 같이 식량을 수급하는 데 제한을 걸고, 문주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췄다.
각개격파를 염려한 것이다. 결전 전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셈으로 보였다.
강자를 알아보는 안목이 출중했다.
“사파 강호는 약육강식의 이치를 철저히 따르지요. 강대한 사파의 문주들은 초고수의 현현을 상시 경계합니다. 밥그릇을 지키자면 상대가 초고수라도 요격해야 하는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제갈현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안에서부터 조금씩 격멸하는 방도도 있습니다. 굳이 전면전으로 일거에 쓸어내는 방식은…… 걸리는 시일이 짧을지언정 막대한 위험을 안아야 하지요. 정 대주께 일단 후퇴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절세고수도 만 명의 무공 병졸을 감당하기 힘든 세상이기에…….”
어느새 품 안에서 꺼낸 부채를 매만지며 얘기한다. 습관으로 보였다.
찻잔의 증기가 흩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다향만 가득했다. 고즈넉한 방 안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연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 * *
드넓은 관중평야(關中平原)를 한쪽에 둔 대월협.
온갖 거리에서 요사스러운 기파를 지닌 무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마외도의 저력이라 할 만했다.
어쭙잖은 무공으로 강호인을 흉내 내는 왈패들과 달랐다. 온몸을 삼엄하게 두른 살기부터 그랬다.
수백 명이 도시 바깥의 산맥으로 향했다. 모종의 일로 대월협이라 이름 붙여진 장소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옳은 말이야. 칠주야 전만 해도 칼질한 사이인데.”
“서안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놈이 초고수랜다. 도심에서 싸웠다간 오만 게 풍비박산 날 텐데, 그거 다 우리 재산 아니냐?”
“초고수라… 정말일까?”
“찬마검 위 문주의 안법은 우리 가주께서도 인정하신다. 만약에 거짓부렁이면 숭여지문이 멸문당하는 거지. 우리가 아니라 여령의 고인들께.”
온갖 행색을 띤 이들이 산을 올랐다. 머리칼을 발밑까지 기른 자부터 대머리까지, 기문병기를 걸친 자들이 많았다.
날이 기이하게 휘어진 곡도, 중앙이 원형으로 뚫린 대검, 손등에 날을 이어붙인 권갑, 사슬을 매단 낫, 검신이 낭창낭창 휘어지는 연검도 있었다.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며 산을 탔다.
아무도 긴장하지 않았다. 구름마냥 한데 모여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기파를 대한다면 누구라도 그럴 터였다.
사도 무공을 제대로 배운 자들이 수백이었다. 일부는 유희를 나온 것마냥 희희덕거렸다.
“이쯤 되면 다른 비옥한 땅을 노려 볼 만도 한데.”
“양양은 어때?”
“미친놈아, 입황성을 치자고?”
“거기 땅이 그렇게 기름지다더라고. 이만한 전력이면 천하무적 아닌가?”
‘두령’ 일행의 객잔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인원 수용에 한계가 있는 관도보다, 넓은 광야를 낀 대월협의 산맥이 힘을 과시하기 용이했다.
강력하다는 초고수를 본보기 삼아 서안의 사파 질서를 완전히 다지려는 셈이다. 인내가 결전 당일에 이르렀다.
그보다 많은 민초들과 상인들, 낭인들이 멀찍이서 따라갔다.
“그럼, 공개적인 참형을 가하는 격인가?”
“두문불출했다던데. 그 두령이란 자도, 뭇 문주들도.”
“두려워서 피하는 쪽이 패자 아니겠나. 문주들 쪽에 걸겠네. 일개 이방인이 서안 사파의 텃세를 어찌 견딜까.”
“그렇다 해도 방파대전의 규모라니…….”
“종종 있는 일일세.”
서안 사람들의 기질은 양면적이었다. 숙여야 할 때 숙이다가도, 호기심을 채우는 데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예로부터 종남파와 화산파가 사마외도와 싸워 온 대도시다. 담량이 큰 토박이들의 머릿수가 엄청났다.
광활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협곡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서안 사파의 문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녀 일곱이었다. 제자 혹은 수하들을 뒤로 두고, 협곡 아래의 평야에 발을 디뎠다.
저마다 비범한 기도를 뿜어내면서였다. 화려하게 펼쳐진 산세가 숨을 죽이는 듯했다.
숭여지문, 소백문, 참절각, 대령위진파, 검마문, 종천도문, 휘월가.
뭇 사파의 종주들이 모두 왕림한 것이다.
불패를 논할 만했다. 웬만한 지역에서는 능히 그럴 수 있었다.
“얼마나 고강할지 궁금하군. 천하의 위 문주가 이렇게나 판을 차리다니.”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을 지닌 사내가 말했다.
뺨을 가로지른 상흔이 길었다. 고풍스러운 묵빛 삿갓을 머리에 썼는데, 백발의 상당 부분이 가려졌다.
순백의 장포 위로 발산하는 기세가 흙바닥에서부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신비롭고도 삼엄했다.
휘월가주(輝月家主) 백무량(白無量).
위일화, 장기일과 더불어 서안 사파의 삼대고수로 꼽힌다.
“혹시 입황성의 흑색이 단독으로 온 게 아닌가? 위 문주가 그토록 호들갑을 떨 정도면 말일세. 진실로 그렇다면 노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칠 용의가 있네만.”
백무량이 말했다. 백색 수염 양 끝의 입매가 유들거렸다.
가운데 선 위일화는 코웃음을 쳤다. 휘월가주를 잘 안다.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음험한 자다. 마냥 농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도발로 받아쳐야 했다.
“구태여 말리지 않겠소. 스스로 강호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다는데 어쩌겠나.”
“위 문주는 여전히 정이 없군.”
주변을 훑어본 백무량은 빙그레 웃었다. 협곡 아래의 평원을 채운 사마외도의 기파가 엄청났다.
십삼천 심무련의 무공 군세를 조금이라도 논해 볼 법했다.
‘장관이로군.’
백무량은 생각했다. 사파의 종주들이 위일화의 말을 따라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서안과 그 인근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바라본다. 협곡을 빼곡히 채우고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윗사람을 숭앙하는 기색이 묻어나왔다.
이로써.
문주들은 목적을 이뤘다. 이미 끝났다.
어마어마한 무공 군세다. 가까이에서 보고 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지간한 나라에 버금가는 섬서성의 민초들이 무수히 모인 자리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천하가 주목하는 셈이었다.
이만한 무력시위가 없는 것이다. 입황성 흑색을 논한 얘기도 그렇다. 무의미했다.
불규칙적인 기파들이 수백 자락씩 뭉쳐 엉키고, 뻗어 나가고, 발밑을 패어내고 있었다.
평야가 대군으로 가득 찬 듯했다.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이 자리의 누구도 접해 보지 못한 힘이다.
하늘 바깥에 있는 패검종과 여령이 아니고서야 논해 볼 상대가 없다. 흉년에 민초들을 쥐어짤 지배력을 온전히 얻었다.
반항을 꿈꾸던 놈들은 검 대신 쟁기를 들 것이고, 뭇 백성들은 두말없이 생업에 종사하며 서안 사파의 배를 불려 줄 터였다.
매번 흉작이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파인을 몰아내고, 사파인이 득세했다.
‘우리의 강호가 완성되었군.’
백무량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불현듯, 그들의 면전에 한 사람이 내려설 때까지도 그랬다.
저벅.
등 뒤를 새까맣게 덮은 옷자락이 펄럭였다. 어깨까지 덮은 흑발이 피풍의와 함께 한 차례 너울진다.
웬 소년 한 명이 검은 가죽신으로 땅을 디딘 것이다. 도약 거리에 비해 소리가 없는 착지였다.
“…실로 가공할 보신경이로군. 멀리서 점으로 보이더니.”
미간의 주름을 더 짙게 좁힌 백무량이 중얼거렸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새까만 눈동자만 요요롭게 빛냈다. 선이 뚜렷한 턱끝을 들면서다. 평야에서 마주한 수백 명의 사파인들을 훑어보기만 했다.
시선만으로 묘한 압박감을 선사한다. 눈길을 따라 침묵이 번졌다.
그의 외양을 처음으로 본 위일화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런 애송이의 모습이었다고?”
“보이는 바와 같이 어린 자는 아니겠지. 강호의 고인으로 대하겠소.”
짐짓 미소를 띤 백무량이 입을 열었다.
“검을 부딪쳐 보지 않아도 알 만한 기량이외다. 무림을 홀로 거닐 만하오. 웬만한 지역이면 어딜 가든 그렇겠지. 흉년이 얼마나 심하든지 생존을 논할 수 있겠구려.”
“…….”
“허나 이쪽을 보시오. 세를 갖추지 못한 고수의 싸움이란… 아주 복잡하고 신경 쓸 게 많은 법이오. 일대일 싸움과는 격이 다르지. 강호의 낭만은 여기에 없소. 지금 물러난다고 흉잡을 사람은 없을 거요.”
그때였다.
어린 낯을 지닌 검객이 입술을 뗐다.
“휘월가주, 맞나?”
“그렇소.”
“여기 모인 자들…… 서안 칠대 문중의 사파인들뿐이겠군.”
“바로 맞혔소. 어중이떠중이는 없소이다. 내 분명히 장담하오.”
“수탈과 상해, 살해를 행동 양식으로 삼았지. 민초를 노예로 부리길 반복하고, 실전 무공을 연성하는 데 온갖 수단을 취했다는 첩보가 있었다.”
“별 하찮은 말을. 물러날 마음이 없구만?”
백무량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강하게 일었다. 돌개바람을 불러온 것마냥 소용돌이치는 경파였다.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휘월패공(輝月覇功)의 전조다. 첫 일격만 막아내면 무공 군세로 쓸어낼 요량이었다.
후우웅!
흙바닥에서 돌멩이들 부딪치는 소리가 강풍과 함께 울렸다. 한켠에서는 위일화의 주단 옷자락이 화려하게 너울졌다.
곡선으로 솟아오른 입매를 타고, 공기를 쓸어내는 기파가 비단폭 같았다. 몹시 투명할 뿐이었다.
화아아악!
여타 종주들의 기세도 그들 못지않았다. 날붙이들이 산란시키는 빛줄기가 연신 번뜩여댔다.
소음이 컸다. 이제는 누구의 말소리든 경파의 울림에 집어삼켜질 터였다.
그 가운데.
“인정하는군.”
정연신이 고개를 까딱였다.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오연한 품행이었다. 이어,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도 그랬다. 앞에 자리한 사파 종주들의 눈에만 비쳐 들었다.
“본 대주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
“입황성 마광익은 잡것들을 징치하라.”
전음 섞인 말을 내뱉은 직후.
등 뒤에 자리한 산등성이에서 화살 한 발이 솟아올랐다.
휘이이이이익―!
거대한 새가 길게 지저귀는 듯했다. 명적(鳴鏑:피리 구조의 화살) 소리였다. 실린 내공이 엄청났다.
사월궁귀 위예령의 한 수다. 폭풍 같은 울림을 머금은 화살이 문주들의 경파를 삼키고 지나갔다.
입황성 청색 명족의 강대한 공력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빛살처럼 위를 지나쳤다.
쾅!
사파 강호인 셋을 꿰뚫고 땅에 꽂혔다. 살갗을 후려치듯 관통한 세 줄기의 굉음이 한 번에 울렸다. 포격에 가까운 궁술이었다.
비명조차 터지지 않았다. 밀집되어 있던 이들이 기겁하여 사방으로 거리를 벌렸다.
“지금, 무슨……!”
“놈의 지원이다!”
위일화와 백무량이 눈을 부릅뜰 때였다.
협곡의 측면 위에서 무지막지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새하얀 아지랑이들과 함께였다. 빗대자면 구름 수준이 아니라 태양에 가까웠다.
절벽을 평지처럼 오르는 강호인이기에 신경 쓰지 않은 언덕에서, 새벽이 다시 차오르는 것마냥 강대하게 움텄다.
스물여덟 자루의 광검(光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으로 유형화시킨 기운에 햇살이 아른거린다.
사람이 검으로 보였다. 칼을 쥐지 않은 자들조차 그러했다. 그들 스스로 태양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래 평야에 모여있는 이들에 비하면 한 줌이다.
기세는 달랐다.
드문드문 명족 무인이 보이는 집단이었다. 제각기 다른 색채의 무복을 입고 있는데, 무시무시한 통일감을 발했다. 기질적으로 같았다.
쿠구구구궁!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일제히 땅을 박차고 내려왔다. 서른 명에 가까운 남녀들이 봉우리를 찍으면서 솔개처럼 떨어져 내렸다.
바위를 한 번 디딜 때마다 병장기와 몸을 둘러친 흰색 빛줄기들이 짙어졌다. 언뜻 상서로운 광경이었다.
신검단 십칠대 중 한 곳을 일컬어, 천하의 마(魔)를 멸하는 입황성의 날개라 했다.
“어, 어어……?”
“뭐냐! 뭐야!”
서안 사파의 무공 군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빨랐다.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의 경공 돌파가 거대한 빛덩이로 화했다.
눈 몇 번 깜박일 새에 갈수록 쾌속해지더니, 이내 움직임 자체가 벼락처럼 명멸해 왔다.
마광익이 깃털을 펼쳤다. 온 사방으로 광예결의 경파를 내뿜었다.
콰아아아아아―!
순식간이었다. 발산된 경력이 지축을 울리고 대기를 찢어댔다.
새하얗게 빛나는 광채의 물결이 사파 무인들과 부딪쳤다.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팔방으로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