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330
◈ 조손 (3)
* * *
고수의 초식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한 수라 해도 그렇다.
투로의 방향과 팔다리 근육의 형태는 물론, 내공 호흡의 깊이와 진기가 띤 성질 등이 단서다.
웬만큼 강호 견문이 있다면 상대가 쾌검수인지 강검을 익힌 칼잡이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안법을 연성했다면 더욱 꿰뚫어 보기 쉽다.
절세고수는 다르다.
쾌검으로 환검에 준하는 변화를 일으킨다. 한 수에 동산을 부수는 강권의 절세 권법가는 부드러운 화경(和境)에도 능할 수밖에 없다.
제 몸에 끼친 반동을 흘려내야 하는 까닭이다.
경공이 천하에서 가장 쾌속하다는 개방주 주광신개(住光神丐)는, 각법 몇 수로 경천동지의 위력을 자아낸다 했다.
손속을 깊이 나누지 않으면 성명절기를 알기 힘들다는 의미다.
앞서 심무련주가 본 불청객의 무공은 일평생 쌓아 올린 성명절기에 가까웠다.
첫 출수가 발경력을 겹겹이 쌓는 수법이었다. 무당파 십단금(十緞錦)과 유사했다는 말이다.
한 호흡의 초식보다 두 호흡째의 공격초가 몇 갑절은 더 강력한 무학. 경파 중첩과 같은 기교에 능한 자인 줄 알았다.
어떤 무인도 제 장기가 아닌 공부로는 그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이 지긋한 노고수가 아니고서야 온갖 묘리에 두루 깊은 조예를 가지기는 힘든 것이다.
찰나라 해도 전력을 내기까지 연환식이 필요하다면, 절세 무비의 감각으로 첫 일격만 감당하는 게 가능하리라 여겼다.
본인에게 미치는 수법에 한해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절세의 호신강기, 휘황신갑이 열 겹이었다.
신공 무장휘황(無張輝晃)의 고법 경파를 폭풍처럼 둘렀다.
심무련주의 몸은 그 자체로 천재지변이다. 십단금과 같은 중첩 무공의 천적. 발경력이 쌓이는 족족 한 겹씩 모조리 분쇄할 수 있는 것이다.
마광익주에게 쇄도하는 와중에, 옆에서 곧바로 따라붙은 불청객에게 살갗을 내어준 이유였다.
연화나타라는 입황성의 무릎뼈부터 부수고자 했다.
허나, 앞서 짧게나마 불가해한 존재감을 드러낸 소년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탓일까.
반로환동을 고려하지 못했다. 엄청나게 드문 일이라서다.
불청객의 무학은 십단금으로 헤아릴 만한 공부가 아니었다.
‘패도 무공의 극치……!’
한 번의 출수에 무지막지한 진기를 싣는 게 가능했다. 몸을 돌보지 않는 공부인 것이다.
한순간, 푸른빛을 띤 손아귀가 호신강기와 고법 경파를 송두리째 으깨고 들어왔다. 미처 흘릴 새도 없었다.
투로를 정면으로 틀고 있었다면 이토록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
쿠구궁―
심무련주의 어깻죽지에서 막강하게 흘러나오던 기파가 흐릿해진다. 팔이 어깨 관절과 함께 완전히 뜯겨나간 이후였다.
호신강기가 부서지고 기혈이 박살 났다. 엄청난 양의 핏물이 시뻘겋게 쏟아져 내렸다.
시간이 느려진 듯했다.
봉우리 정상에서 검을 맞대고 있던 정연신과 모용가주가 잠시 물러섰다.
“저, 군가 놈이……?”
모용중락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굉장히 이상하고도 놀라운 광경을 본 얼굴이었다.
마연적과 심무련주를 한꺼번에 담은 눈동자에서 미미한 혼란이 비쳤다. 허나 흥분과 호승심을 띤 은빛 안광이 함께 어려 있어 기괴해 보였다.
정연신은 심무련주의 어깨 너머를 향해 짧게 묵례한 뒤, 담담히 검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몹시 고마운 일이었으나 성휘대검군을 견제하는 게 먼저였다.
그 와중에.
군왕무제 군위후의 입매가 미세하게 떨렸다.
과묵해 보이는 얼굴도 사지가 경혈째로 뜯긴 반동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괴력난신의 무표정을 또 다른 괴력난신이 부쉈다.
그는 짧게 궁리했다. 이자가 처음에 발경을 중첩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한 수를 받자마자 시체가 된 군세의 핏물을 억지로 내리누르는 듯한 일초였는데.
“지저분하구나.”
심무련주의 측면이었다.
화려한 장포 자락이 길게 휘날렸다. 별다른 격조가 없는 빛깔. 천하에 드문 분홍포(粉紅袍)였다.
“비천한 강호의 칼잡이들이.”
저벅.
마연적은 옆으로 발을 옮겼다. 손아귀에 쥔 팔을 대충 땅에 던진 직후였다. 뼈째로 뽑힌 근육질의 팔 한 짝이 툭 나뒹군다.
간헐적으로 강하게 솟구치는 핏물은 패협의 묵직한 회피 보법에 닿지 못했다.
그의 장포는 무지막지한 강격을 뿜고도 말끔했다.
“우습게 오만방자해서는.”
어조에 노회한 경멸이 담겼다. 강호인과 상종하지 않는 자세였다. 천하의 어떤 무림 호족보다도 오만한 몸가짐이 비쳤다.
“대방파의 문주? 잡것이 따로 없다. 나라의 근간을 흔들면서 도시와 마을의 문물을 누리지. 민생을 위협하고, 공납에 응하지도 않는 놈팽이들이.”
“당신은…….”
심무련주 군위후의 눈에 무채색 광망이 맺혔다. 일렁이는 불꽃 같은 모양새였다.
불안정한 내공의 흐름이 안구에서 드러난 것이다. 삼화취정을 유지하는 데만도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고 있을 터였다.
마연적은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나마 네놈은 북방 전선에 기여하는 바가 크니, 그리 영락한 채로 살거라.”
그의 말을 듣는 자는 절세고수였다. 다른 말로는 무(武)의 광인이다.
차라리 자신의 사문과 이름을 밝히며 단칼에 목을 베어 주는 쪽을 기꺼워할 인물.
군위후의 안광이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난 기세와 함께였다.
“입황성의 암검… 석년의 패협 같은 무인이 또 있었던가?”
통증이 극심할 텐데도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다. 혼잣말에 가까운 얘기였다. 무언가를 떠보는 듯한 기색이 비치기도 했다.
“우둔한 놈.”
마연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자는 강호에 없다.”
“…….”
심무련주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등 뒤에서 하얗게 요동치던 털옷이 불현듯 잠잠해졌다. 격랑처럼 흔들리던 안광이 꺼지고 새까만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어깨에서 넘쳐흐르고 있던 핏물은, 내공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지혈했는지 점차 멎어 갔다.
“내가…….”
심무련주가 왼팔을 들어 올렸다.
소림의 승려들이 한 손으로 합장하는 것처럼, 군위후 역시 왼손만으로 포권을 취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다.
“결례를 범했소.”
“……!”
비탈길 아래에서 당장이라도 경공 질주를 펼치려던 무공 군세가 주춤거렸다. 짧은 순간 술렁이다시피 했다.
십삼천주, 군왕무제, 심무련주.
군위후를 존귀하다 일컫는 온갖 별칭들이 이 자리에서 무색해졌다.
패배를 승복한 것도 모자라 고개마저 굽힌 까닭이다. 천지개벽에 가까운 일이었다.
련주의 팔을 뽑아버린 사내의 언행은, 그 와중에도 파격을 거듭했다.
“얌전히 군세만 기르도록 해라.”
“…그리될 거요.”
짧게 대답한 심무련주가 느릿하게 돌아섰다.
곧이곧대로 수긍하는 듯한 대답.
내공을 연성한 무인들의 경혈은 삼라만상처럼 일정한 법도로 소우주를 이룬다.
절세고수라면 대개는 상반신의 대주천을 넘어 전신 주천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러한 내가기공 체계에서 사지 한쪽이 사라지는 것은, 매우 큰 무력 저하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떤 고강한 인물이 홀로 심무련에 난입하여 련주에게 질주한다 해도 막아낼 방도가 드문 것이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다시 한번 나라에 누를 범하게 되는 순간, 새로이 자색 장포를 입은 신진에게 목이 날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저벅.
심무련주가 산비탈을 내려갔다. 불안정하게 흘러나오는 기파와 함께였다. 적막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세상의 선두를 다투던 절세고수의 뒷모습이 노을마냥 아래로, 아래로 저물었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을 맞이하여.
인적 없는 숲속에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객사하는 여느 무인들처럼.
강호 무림의 정경이었다.
“…….”
비탈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마 무인들이 심무련주의 등을 둘러쌌다. 개중 누구도 마연적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이끄는 말들의 발굽 소리와 함께 자신들의 주군을 감출 뿐이었다. 언제고 강자로 행세하던 십삼천 고수들은 고고한 행색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다그닥.
그들은 점차로 멀어졌다. 보이지 않는 거칠 황 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였다.
무리 한쪽에서 묘한 표정을 지은 외팔이 전백과 정연신을 힐끗한 군유린의 걸음만 다소 느렸다.
―오늘날과 훗날을 아울러 열패했도다.
굵직한 음성으로 흘러나온 심무련주의 읊조림이 곧장 희미해졌다.
미지근하고도 밝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끝나가는 겨울과 다가오는 봄 틈새로 목소리가 몸을 감추는 듯했다.
그 침묵을 뚫고 호쾌한 노랫말 같은 말소리가 울렸다.
“오늘날은 저분 패… 대협일 테고, 훗날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대주를 이르는 말이외다. 심무련의 망나니 대공자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공녀를 어찌 연화나타에게 견줄까! 후회막급이겠지. 무인의 손은 무거워야 하거늘.”
비탈길 너머, 산봉우리 정상 아래쯤에서 흘러나왔다. 깎아지른 절벽에 누군가가 벽호공으로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 두루 회자될 사건이 폭풍처럼 지나가자마자 감상을 내뱉고는, 지레 깜짝 놀란 기척으로 벽을 타고 올라왔다.
벼랑 쪽이다. 정연신과 모용가주 쪽에 가까웠다.
이마에 두른 영웅건이 빼꼼 드러난 순간, 심각한 표정을 띠고 있던 모용중락의 검이 별안간 움직였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궤적이 명백히 헌원창을 노리고 있었다.
쩌어엉―!
두 자루 검에서 번뜩인 빛줄기가 사방을 환하게 쓸었다. 뒤늦게 번진 무형의 충격파에 땅이 흔들렸다.
모용가주의 보검과 마광익주의 북명검이 아래에서 교차된 광경. 한 수를 주고받은 격이었다.
아래쪽에서 고개를 내민 헌원창의 영웅건 매듭 두 자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얼핏 보기엔 기겁한 얼굴인데, 눈동자는 굉장히 차분했다. 그를 슬쩍 내려다본 모용중락이 희미하게 웃었다.
“잘 짜인 문파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문도들이 종주를 믿는 게지.”
“…….”
“마광익주. 제법 잘 따라오는군. 그 연꽃은 호롱불마냥 껐다가 켤 수도 있는 모양이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마연적이 심무련주와 대치하는 동안, 시전 시간에 제한이 있는 종극뢰를 잠시 사그라뜨린 까닭이다. 정연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극을 똑바로 해라.”
강요에 가까운 어조였다. 입황성 대주의 격으로 팔가주에게 뱉을 말이 아니다.
암묵적인 강호의 위계에 대한 도전에 가까웠다. 배분을 뛰어넘어 무력으로 너와 나를 견주어 보겠다는 뜻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모용가주의 웃음이 짙어졌다.
“기가 막히는군. 외통수 아닌가 말이야.”
말을 내뱉으면서 눈길을 둔 자리에 오연히 팔짱을 낀 마연적이 있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심무련주가 그 지경이 됐다. 팔가주 같은 강호 호족들의 절대자에게도 고약한 상황이었다.
“모용 아해야, 노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네 알량한 검재를 뽐내는 데만 심력을 쏟도록 해라.”
마연적이 무던하게 얘기했다. 모용중락은 듣지 않는 눈치였다.
“설마… 아니, 합화신공으로 어찌? 어떤 신공으로도 그 패공의 여파를 어찌할 수는 없을진대…….”
그가 홀로 중얼거릴 때.
반대쪽에서는 헌원창이 두 사람과 함께 절벽에서 기어 올라왔다.
“내 이 순간을 똑똑히 보고 시구 한 수를 지어 퍼뜨리고자 하오. 마광익이 신검대를 넘볼 때도 됐지. 우리 대주가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죽을 뻔한 놈이 잘도 나불대는군. 짐이 될 기미가 보이면 본 공자의 손에 명을 달리할 줄 알아라. 얌전히 비켜서 있기나 해.”
“아니, 방금 대설검 선배 때문이었어요? 대주님을 믿는 것도 유분수지!”
거뭇거뭇한 청색 소매와 깔끔한 흰빛 옷자락이 바닥을 스쳤다.
태염룡과 신소빈. 황보세가 대공자의 얼굴에는 헌원창을 몹시 하찮게 여기는 표정이, 입황신가 후계자의 눈매에는 선배를 힐난하는 기색이 어려 있다.
혹여 대주 정연신에게 방해될까 걸음을 바깥으로 옮기는 모습.
“이 사람들이 뭘 모르는군. 자색 장포를 입는다고 곧바로 신검단주가 되는 줄 아나? 강호를 널리 두렵게 할 만한 명성이 먼저다, 이 말이외다. 풍문을 퍼뜨리는 데 노랫가락만 한 게 어디 있다고. 신빙성 있는 묘사가 들어간 글줄이 곧 주의를 끄는 힘이올시다.”
두 사람과 함께 소리 없이 정연신의 등 뒤로 돌아가던 헌원창이 얘기할 때였다.
화아아악―!
밑에서부터 온갖 그림자들이 솟구쳤다. 기파의 울림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극히 갈무리된 기척으로 절벽을 박차며 치솟은 신형이 족히 수십에 달했다.
행색이 제각각이었다.
인근에서 명망 높은 노학사, 대도시 태원의 물류를 이끄는 대상인, 삼류무가의 문하로 보이는 허름한 복식의 검객, 객잔의 음식 냄새를 풍기는 점소이까지.
오월대살문.
신분을 숨긴 채 각지에 퍼져 있던 이들이 돌아왔다. 사방의 벼랑 끄트머리에 달라붙으면서 눈길을 한곳으로 모은다.
얼음장 같은 살기가 모조리 모용가주에게 향했다. 사문의 원수를 보게 된 까닭일 터였다.
“그래, 잠시 잊었군.”
스르릉.
모용중락의 검이 정연신이 내려 쥔 북명검의 칼날을 타고 되돌아갔다. 검을 자신 쪽으로 갈무리한 유성검법의 괴력난신이 입을 열었다.
“천마신갑의 마지막 구결이 네놈들에게 있으렷다.”
좌우로 펼쳐진 벽면의 곳곳에서 절규에 가까운 지탄들이 터졌다.
“이 탐욕스러운 종자야!”
“감히! 감히 네놈이 우리의 면전에서 그런 망발을……!”
“그날의 일로는 부족했단 말인가! 내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네놈의 멱을 따고 말겠다!”
“원로들은 자중하시오! 놈은 혼자요! 검기를 벼립시다!”
“마광익주의 발경 한 수도 못 견딜 것들이.”
정연신을 흘깃한 그가 다시 입을 뗐다. 경공을 제대로 시전하면 마연적에게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걸까. 천마총에서 얻은 비급 중에 보신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아한 백색 옷자락을 펄럭이는 모습에서 그만한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마광익주의 몸이 우우웅― 소리와 함께 투명한 연꽃으로 완전히 휩싸이기 시작한 와중에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네놈, 네놈 말이다. 금가의 아해.”
절세 검객의 눈길이 정연신의 어깨 너머를 향했다. 명백히 헌원창에게 꽂혔다.
모용가주와 시선을 맞댄 헌원창의 어깨 옷자락이 흠칫했다. 누가 봐도 의도치 않은 반응이었다.
“본가의 학사들이 물렀다. 네놈의 기경팔맥을 모조리 들어내서라도 천마 무맥의 흔적을 찾으라 일렀는데, 고작해야 한 줌인 영약의 기운에 정신을 쏟다가 네놈을 놓쳤지. 벌을 줄까 하다 말았느니라.”
사아아―
성휘대검군 모용중락의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드문드문 검푸른 빛을 띤 기류가 점차로 그의 몸을 둘러치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기이한 안개를 떼어다 만든 신선의 옷자락 같았다.
“어찌 됐든 이 몸의 호신강기는 완성 직전에 이르렀으니.”
그가 말을 맺은 순간.
우웅―!
사방팔방의 대기가 무채색으로 물결쳤다.
신묘한 영성의 충격파였다. 모용가주의 몸에서 끊임없이 뻗어 나왔다.
순간 절벽에 붙어 있던 살문도 대여섯 명이 그대로 떨어졌다. 눈을 뜬 채로 혼절한 것이다.
살문 측이 극도로 번잡해진 가운데,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력 파동은 정연신의 몸 앞에서만 두 갈래로 갈라졌다. 마군(魔軍)들이 여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것처럼.
아래쪽 비탈길에 선 마연적은 더했다.
범람해 가던 기파가 그쪽에 이르자마자 포말처럼 산산이 박살 나고 있었다. 양팔에 끼인 채 너울지는 분홍빛 소맷자락만 선명했다.
“…….”
모용중락은 문득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