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396
◈ 융단 (5)
멀리서 울린 지저귐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 번, 또 한 번… 뒤이어 몇 번이고 중첩됐다. 적어도 두 마리 이상이었다.
원로원주가 멈칫했다.
“…….”
정당한 권위로 신검단주의 경질과 대안을 논하던 회합장 수뇌부의 논쟁도 멎었다.
기다란 울음소리들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입황하후가에서 씨족의 비술로 기른 영물 제비. 신검단에 속한 고위 인사들의 상징이다. 흑색의 위계 아래로는 감히 소유할 수가 없다.
하후가주의 큼지막한 귀가 칼처럼 곤두섰다. 그는 입황성의 모든 영물을 꿰고 있는 인물로, 강호에 몹시 드문 기인이었다.
좌중의 이목이 하후가주에게 쏠릴 때였다. 눈을 반개한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보혈대주의 흑연(黑燕)이로군. 이놈 한 마리가 아니야. 천룡대주의 궁연(穹燕)에, 신검 부대주의 벽연(霹燕)도 오는구려. 차기 흑색삼강 중 둘이야 거기선 막내에 가까우니 소식통을 맡을 법한데, 신창 할매는 왜…?”
“노련한 분 아닙니까. 서찰의 분실을 우려하셨겠지요.”
“그만큼 중요한 안건일 테지. 집결령이 사천에 떨어졌으니, 마광익주에 대한 소식도 있겠구려. 근래의 임무 중 가장 큰 일을 맡지 않았소?”
“흑색들이 모였으니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됐겠지요.”
“마침내…….”
기대와 불안 등의 기색이 오고 간다.
마진이 금속질의 검푸른 손을 위로 뻗었다. 사천 명공도의 철족들이 만들어낸 공력 의수.
범상한 내공 화후로는 어떤 신병이기보다도 다루기 힘들다는 다섯 손가락이 활짝 펼쳐진 순간이었다. 그의 장심에서 반투명한 기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앙―!
천장의 정중앙이 그대로 박살 났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부스스 떨어진다.
제각각 넓은 기막을 펼친 수뇌부의 머리 위, 세 마리의 제비가 푸른 하늘을 등지고 내려왔다. 놀라지도 않고 구멍을 통과하는 모습이 영물들다웠다.
대총관 임진명은 곁에 선 백색무사를 향해 손짓했다.
“야장들에게 기별해 두게. 지붕 일이라 하면 알아들을 걸세.”
그러고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의 팔뚝에 하늘빛 제비가 내려앉았다. 삑 하는 지저귐과 함께였다. 입황신창 악수림의 ‘벽연’. 몸집보다 큰 연통을 다리에 매달고 있었다.
대총관은 곧장 연통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엄청나게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의 군집이 드러났다.
괴발개발에 가까운 초서(草書)다. 심상의 흐름을 그대로 글줄에 옮긴 듯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신가주, 바꿉시다.”
한쪽에 있던 신설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막 하후가주에게서 서찰 한 통을 건네받은 참이었다. 보혈대주의 문건으로.
천룡대주의 흰 제비가 가져온 문건은 하후가주와 마가주 사이에 놓였다.
상석의 원로원주가 팔짱을 꼈다.
어느새 그는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젊은 아랫사람들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
총관부 회합장에서 유일하게 대총관보다 위계가 높은 노인은, 입을 다문 채 눈빛으로만 그들을 독촉했다.
“곧장 보고드리겠습니다.”
대총관 임진명이 보혈대주의 계서(計書:보고서)를 펼치며 말했다.
서찰은 고아한 글씨로 가득했다. 획 끝을 적당히 흘려 쓰는 행서체(行書體). 얼핏 보기에도 필요한 내용으로만 엮은 듯 보였다.
대총관의 눈이 글귀를 훑었다.
“…순천익주 하도운, 금시문주의 진법에서 임무 중 타계. 흉수는… 귀명패왕 팽여란.”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문무겸전과 철혈의 기질로 유명한 초고수다웠다.
다른 이들은 달랐다. 곳곳에 침음이 깔렸다.
전대 팽가주를 모르는 자는 없다. 비보를 접하고도 비분강개가 터져 나오지 않는 이유. 절세고수의 이름에 짓눌린 것이다.
구파의 신선들도 입황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환경에, 신검단주의 실종과 더불어 온천지에 악재뿐이었다.
본성의 수뇌라 해도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사천이 복마전이었군.”
“선목령주와 천림대주는 무사하답니다. 또한…….”
“뭐요?”
대총관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등락을 겪은 모습이었다. 반대편에서 마진과 머리를 모으고 있던 하후가주가 눈을 부릅떴다.
“마광익주가 팽여란을 패사시켰다는군! 팽가 노괴의 목을 홀로 베었다고!”
그의 큼지막한 손이 마진의 의수를 쩡쩡 두들겨댔다. 둔중한 진동과 함께 좌중이 술렁였다.
“그 아해가 또다시 팔가주를?”
“팽가 무공은 정종의 공부요. 살아있는 전대 팔가주라면, 근소하게나마 모용가주보다 우위였을진대…….”
아해 운운한 원로원 무인이 마진의 권풍에 직격당해 뒤로 쿵― 넘어가는 사이, 한쪽에서 미간을 모은 신가주 신설하가 입술을 뗐다.
그녀는 암호문에 가까운 악수림의 서찰을 거침없이 읽어나가던 차였다.
“은원을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과단성.”
묘한 독백이었다. 짧은 말로 그쳤다.
순천익주의 죽음에서 비롯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한 사람이 그녀를 향해 농을 건넸다.
여식을 수하로 둔 대주에게 노골적으로 후한 것이 아니냐고. 마광익주의 공적으로 인한 경악이 여운처럼 섞인 말이었다.
“…….”
신가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흔들리는 눈을 감추지 못했다.
“본성의 위신을 천하에 세울 신위.”
신설하는 입황성 제일가문의 주인이다. 대대로 원로원주를 배출한 명가의 안법을 연성했다.
악수림의 서찰이 아무리 난잡하다 해도 수유의 시간이면 독파가 가능했다.
이미 모두 읽은 것이었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공적.”
그녀의 말이 이어질 때였다.
스윽.
그사이 대총관은 보혈대주의 서신을 탁자에 내렸다.
짧은 시간이 주어져 모든 내용을 눈에 새긴 직후였다. 권법과 붓질로 두루 다져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이게…….”
대총관이 말을 더듬을 때였다. 그들을 굽어보던 원로원주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왜 보고를 하다 마는 것이냐? 악재와 호재가 섞였음은 알겠다. 신가주가 제 여식의 상관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도.”
“…….”
“그래, 일면으로는 옳다. 섬예는 과연 본성의 미래구나. 엊그제 흑포를 입은 백기린과 함께 입문했었다 하더니.”
태사의에 등을 기댄 원로원주가 그를 준엄하게 바라봤다.
“대주 놈들이 모이기까지의 행적이 더 있을 터. 미적거리지 말거라. 노부가 직접 읽으랴?”
대총관의 동공이 초점을 되찾는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조곤조곤한 벽력탄이 떨어졌다.
“…당가에서 준동한 십전문, 순마련을 홀로 몰아내고 아미와 청성의 협조를 얻어 비무 제전을 주최. 십전문주, 순마련주, 금시문주를 연달아 격파했다 합니다. 순마련주는 그 자리에서 도주하였고, 보혈대주가 십전문주와 금시문주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한 호흡이었다.
기세만으로 시종들을 혼절시킨 자리다. 감각도(感覺途)가 출중한 고수들뿐이니 잘못 들을 자가 없다.
대총관이 말을 끝맺은 순간 회합장의 시간이 얼어붙었고, 원로원주의 시선이 탁자 위 서찰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
신혈극마 진명조의 글귀.
십삼천주들의 죽음을 논한 부분만 필체가 달랐다. 고매한 행서가 곧은 해서(楷書)로 바뀌어 있었다.
십전문주와 금시문주의 귀천 앞에 놓인 ‘마광익주’란 네 글자. 일고의 여지도 없는 진실을 말했다. 격조와 강단으로는 입황성 제일이라는 보혈대주가.
“…거기서 흑색이 집결했습니다. 본성의 제일 암검과 성주님을 따라 천하목으로 향한 대주들 외 열셋이, 십삼천 셋을 괴멸시키고 북동쪽으로 올라오는 중이라 합니다.”
대총관이 말했다.
하지만 입황성 수뇌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자리에 없는 당대 신검단주의 눈이 회합장을 집어삼켰다.
천하를 경동시킬 청년 대주의 공적, 건국 이래로 긴 시간에 묻혀 있던 신검단의 힘. 압도적인 전율이 좌중을 휘감고 질주했다.
왜 십전문이었는가.
어째서 그곳으로 모이라 한 걸까.
부침이 많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대방파 여섯이 난립해 있던 사천. 명나라와 새외로 두루 임무를 나가는 대주들의 중간점.
호전적인 십전문의 멸문을 시작으로, 그 난세의 땅에서 뭇 대주들의 무력을 드러냈다. 입황성을 보급 창고쯤으로 여기기 시작한 천하 강호가 멈칫하도록.
소란이 일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돌연 마가주 마진이 광소를 터뜨렸다. 순천익주의 부고를 접한 참인데 누구도 막지 못했다.
탁자를 짚은 원로원주의 주름진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질시나 노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입황성을 경애하는 노인이다. 가늠하기 힘든 북받침에서 비롯된 악력이 탁자를 짜부라뜨렸다.
콰직―
“북경으로 가야겠다. 가주들은 채비하거라.”
“어찌하실 요량입니까?”
대총관이 물었다. 원로원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준비해야 할 것이 생겼다. 황실의 괴력난신들을 보러 가자꾸나.”
“…본성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대총관이 말했다.
* * *
암야전주의 내실.
길고 짧은 온갖 형태의 활이 거치된 장소였다.
정연신은 두 장문인과 마주 앉았다. 중앙에 자그마한 다탁을 둔 채였다. 은은한 향기를 품은 김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올라갔다.
셋 중 누구도 찻잔에 손대지 않았다. 정연신이 모르는 외조부의 과거, 화산지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참이었다.
두 장문인은 마치 굉장히 큰 결심을 한 듯했다.
그들은 앞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지금부터 정연신이 행할 일이 무엇이든 크게 수월해질 것이라고.
“빈니가 젊었을 적의 일이외다. 구파일방 출신의 일곱 제자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소. 당시에 이미 천하 기재라 불리고 있던 이들이었지.”
백약 사태가 말했다.
그녀 본인과 청성의 전대 장문인.
무당의 고검.
화산파 성화검신의 스승.
점창의 검후(劍后).
소림 방장.
개방주.
“두려울 게 없었소. 용봉지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하로 협객행을 나가 뭉치고 흩어지길 반복했지. 당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용이었소. 그래,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 여겼지.”
그들은 구파의 명맥을 이어받을 후계자였다. 누구나 추앙하는 강호의 소신선(小神仙)들. 다른 말로 산중 문파의 장문지재라고도 했다.
안중에 있는 건 서로뿐이었다.
“입황성 출신의 웬 잘생긴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소. 근래에 참룡맹회의 합일 과정에서 금시문주에게 살해당한 참룡맹회주, 그자의 스승이 우리에게 명을 달리한 이후였지.”
십삼천주 격살.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수양을 뚫고 올라오던 시기다.
원기 왕성한 젊은 고수들이 만났다. 자연스러운 수순이 이어졌다.
“지금은 개방주가 되어있는 거지 청년이 말했소. 입황마가의 공부는 패도 무공이니, 굳이 술을 나눌 필요는 없겠다고 말이오. 늘 정신이 혼미하지 않냐는 도발이었지.”
“하수로군요.”
무심코 대꾸한 정연신은 내심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남을 평가할 계제는 아닌데?
“하수라 했소?”
“…초면의 어른들은 술잔으로 교분을 맺지 않습니까? 굳이 적을 만드는 언행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도우는 그리 말할 수 있지. 노자께서도 적을 만들지 않는 자가 무적이라 하셨네.”
한쪽에서 양벽검군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는 정연신의 성품을 굉장히 높게 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백약 사태 역시 웃음을 보였다. 정연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법력을 찻물 대신 조용히 들이켜면서.
“여하간 입황성 청년의 대꾸는 통렬했소. 취권(取拳)으로 겨뤄도 질 듯싶으니 염병을 한다고 말하더이다.”
백약 사태의 인자한 음성은 젊은 마연적의 언행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정연신은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자신과 마세인이 없었다면 마가는 어찌 됐을까.
‘나만 믿어야 해.’
그는 애써 수치심을 내리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