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on the protagonist's flower path RAW novel - Chapter (54)
5. 이상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 (3)
여기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는데! 설마 엿보고 있었던 건가?
나는 민재윤의 상태를 보고 총을 드는 감시원들에게 황급히 손짓했다.
“자, 잠시만요!”
감시원들을 말리려던 그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나현이도 더 소중한 사람한테 가 버리는구나. 그래, 어차피 나 같은 앤 아무도 소중히 여겨 주지 않을 거야…….”
“그건 아냐.”
나는 즉각 부정했다.
주변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민재윤이니까.
나는 민재윤의 양 어깨를 짚고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너 좋아해.”
이 말랑하고 순한 아가씨를 챙기면서 제법 마음이 가 버렸으므로.
그래서 이 자신감 없는 애가 좀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들끓던 검은 마력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민재윤은 비로소 진정한 듯 들끓던 마력을 완전히 갈무리했다. 그리고 어마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나현이가 나랑만 친하게 지내 줄 순 없어……?”
“그럴 순 없어.”
그건 힘들어.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
민재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래도 말을 이었다.
“모든 관계를 끊고 너와만 살 수는 없어.”
그 말을 들은 민재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싫어. 나는 그럴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교실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경쾌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10대는 우정을 쌓기에 좋은 나이지!”
“이그드라실 님?”
“음! 전해 줄 말이 있어 기다렸다!”
전해 줄 말?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그드라실이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곧 현장 실습 시즌인 건 알겠지? 6월에 말이다. 그때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반가운 사람들이요?”
“그래. 선물도 가지고 갈 거라는구나.”
선물이라…… 선물은 현금이 좋다. 아니, 이게 아니라.
“누군지 알려 주시면 안 되나요?”
사기꾼이랑은 마주치기 좀 껄끄러운데, 사기꾼은 아니겠지?
“안 된다! 참고로 선물은 서프라이즈라더구나!”
쳇.
나는 그렇게 찜찜함을 안고 교실로 돌아와야 했다.
교실에서는 민재윤이 책상에 엎드린 채 훌쩍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강나현’이라는 캐릭터답게 민재윤을 다정하게 위로해 줄까, 너만을 위하겠다고 다정한 말을 속삭여 줄까 고민하다가, 그것마저도 민재윤을 농락하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민재윤.”
민재윤에게 내보이는 내 모습과 말이 모두 거짓이라면, 그리고 그걸 들킨다면 민재윤은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민재윤은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아이다. 약속한다면 내 본 성격도 최선을 다해 숨겨 줄 거다.
“점심시간에 이야기 좀 하자.”
그러니 괜찮겠지.
한 사람에게쯤은, 내 본 성격을 보여도.
민재윤은 고개를 살짝 들여 내 쪽을 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냥 신성의 반지를 괜히 한 번 더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침묵으로 가득 찬 수업 시간이 지나갔다.
“무, 무슨 일이야?”
의외였던 것은 민재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는 점이다.
민재윤은 우물쭈물하며 나와 눈을 맞췄다가 다시 아래로 고개를 떨궜다가 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아까 나눈 대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민재윤을 끌고 근처 훈련장으로 나왔다.
집중 감시 감찰반 전용으로 만들어진 이 훈련장은 수련장보단 아주 작았지만 무척이나 튼튼했다.
나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민재윤에게 건넸다.
“왜 내가 널 버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을 꺼내자마자 민재윤의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곳은 훈련장이다. 다칠 사람은 없어.
“그, 그야…… 나현이 너한테 소중한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게 널 버릴 이유는 되지 않아.”
“나,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금방 버려질 거야.”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민재윤의 마력은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를 가장 소중히 해 줘.”
민재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네 곁에 나만 있게 해 줘. 내 모든 걸 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럴 순 없어.”
좀 더, 강하게.
“미안하지만 내겐 가족들이 너무나, 아니……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야.”
잠시 말이 없던 민재윤이 힘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의 눈은 공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가족이 없으면?”
검은 마력이 점점 짙어지며 훈련장을 감싸고 있었다.
“네 가족이 없어지면, 내가 너의 첫 번째가 되는 거야?”
어딘가에서 빠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려진 음료수 캔이 바닥에 구르며 캉캉 소리를 냈다.
“네가 내 가족을 죽이려 한다면, 나는 필사적으로 널 막을 거야.”
“왜?”
그건 답을 원한 질문이 아니었다.
“왜……?”
미친 듯이 중얼거리던 민재윤이 웅크렸다.
“이제야…… 이제야 진짜 소중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한동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놀랍게도 환히 웃고 있었다.
광기 가득한 그 웃음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같이 죽으면…… 나현이는 영원히 내 것이 되겠지?”
천진난만한 그 미소와 대비되게 검은 마력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콰드득!
훈련장의 파편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쏟아지는 파편들을 피했다. 다행히 신성의 반지가 제 효력을 발휘해 민재윤의 공격이 내게 먹혀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민재윤의 주먹질이었다.
민재윤의 직업은 광전사다. 광화로 본인의 몸을 강화해 전선에서 싸우는 타입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윽!”
저격수인 나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다.
나는 민재윤의 공격을 빠르게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한 대라도 맞으면 안 된다. 지금 상태의 민재윤의 근력은 S+니까!
그렇다고 장기전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구력도 S+니까!
“민재윤!”
원래 스펙이 이러니까 사기꾼이 어떻게든 구워삶으려고 접근하지!
“내 말 들려?”
나는 민재윤에게 소리쳤지만, 민재윤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웃으며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텍스트로 보는 것보다 훨씬 무서워서 절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차라리 계속 감췄으면…… 계속 감췄으면 됐잖아!”
내게 다가오는 민재윤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모르게! 알 수 없게!”
“내가!”
악을 쓰듯 내지르는 그 말에 어느새 내 언성도 높아졌다.
탕!
한 발의 탄환이 민재윤의 머리로 향하던 파편을 튕겨 냈다.
민재윤은 놀란 듯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야. 내가, 가짜로 속여서까지 너를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야.”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 내겐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그게 네가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되진 않아.”
민재윤의 마력은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나타내듯 일렁였다.
“내가 다른 친구를 만들더라도, 우리가 친구가 아닌 건 아니야. 다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그 사람의 최고가 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러면, 내 모든 걸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눈에 나밖에 없지 않으면, 누가 나 따위를 사랑하겠어?”
“‘나 따위’가 아니야. 너는 충분히 사랑스러운걸.”
민재윤이 멈칫했다.
“하지만 나, 나는 힘 조절도 못 하고, 나약하고…….”
“너는 나약하지 않아. 그리고 설사 나약한 사람이라 해도 나약함이 미움 받을 이유가 되진 못해.”
움츠리는 민재윤을 따라 민재윤의 마력도 점차 흩어져 갔다.
“그, 그래도……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네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곁에 함께 있어 줄게.”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으니까.
내 말에 민재윤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낯에서 광기는 사라지고 양처럼 순한 모양새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쭈뼛쭈뼛 팔을 뻗으며 다가온 민재윤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약속이야.”
“그래.”
근데……
“어기면 안 돼……. 그럼 나도…… 지옥 끝까지 쫓아갈 거니까…….”
“그, 그래.”
팔 힘이 좀 세다, 재윤아…….
하지만 그녀의 팔 힘과는 다르게 그녀의 마력은 순한 양처럼 변해 있었다.
줄기줄기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나무처럼 뻗어 있던 그녀의 마력은 그녀가 내 곁에서 한 번 숨을 내쉴 때마다 점점 둥글게, 둥글게 그녀 곁으로 모여 갔다.
그래. 민재윤은 기어코 폭주의 끝에 마력을 통제해 낸 것이었다.
자신도 그걸 깨달았는지 민재윤이 놀란 낯으로 날 바라봤다.
“나현아, 나 마력이 통제가 가능해……!”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성공이다.
“잘됐네. 그보다, 우리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지 않아?”
내가 부서진 천장을 뻘쭘하게 가리켜 보이자 민재윤은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참상을 눈치챈 듯했다.
“앗, 어, 어쩌지……?”
“나가자.”
그 와중에도 민재윤은 날 놓을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꼭 끌어안은 채 이동했다.
그녀가 아까 뿜은 거센 마력으로 인해 훈련장이 거의 반파되어서 여기저기서 파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난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민재윤은 자신의 검은 마력을 쭉쭉 시원하게 휘두르며 나를 보호했으니까.
그런데 큰 파편은 마력으로 능숙하게 쳐 내긴 했지만, 작은 건 그냥 깡으로 밀어붙이더라.
그냥 맨손으로 퍽퍽 쳐 내더라니까. 하여간 참 튼튼하구나. 나는 그냥 허허 웃었다.
그리고 훈련장 밖에는……
“왔느냐?”
이그드라실이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입구에 기대 있었다.
“앗,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이그드라실은 민재윤의 어깨를 툭툭 쳐 작은 파편과 먼지를 털어 냈다.
“위험해지면 구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잘 해냈구나!”
왔으면 빨리 좀 도와주지 그랬…… 아니, 이그드라실이라면 이것도 청춘이다! 수련이다! 이러면서 구경만 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음! 훈련장이 무너졌으니, 자율적으로 훈련하긴 힘들겠지?”
어라?
나는 눈을 빛내는 이그드라실을 보면서 불길함을 느꼈다.
“내일부턴 내가 네 훈련을 도와주마!”
안 돼.
“아, 안 바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재윤은 이그드라실이 직접 훈련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에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기뻐하지 마. 이그드라실의 훈련은 지옥 그 자체라고. 뭐, 성과는 확실하게 나오긴 하는데…….
“으음…… 지금 맡고 있는 녀석들은 오전에 실기를 하니, 너희는 오후에 훈련하면 되지 않겠느냐?”
“저희도 오후에 이론 수업인데요……?”
“으흠. 그건 내가 땡깡…… 아니, 협상을 통해 어떻게든 해 보마.”
“정말요?”
“음! 나만 믿거라!”
“와!”
아무튼 그렇게 나는 간만에 이그드라실과의 신나는 훈련 시간을 가지게 됐다.
나는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