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on the protagonist's flower path RAW novel - Chapter (65)
5. 이상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 (14)
나는 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떨 때 나오는 것인지 안다.
당혹과 공포가 버무려진,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의 분위기.
“무사하냐, 꼬맹이들?”
다급하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최가람은 최대한 빠르고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갑자기 위험 지대의 모든 외곽영역이 급격히 확장됐어.”
그녀의 굳은 표정은 이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게이트가 요새 너머 중간 지대 불법 거주자들의 영역까지 발생했다. 이례적인 속도야.”
“그럼 이 소리는 전투 소리인가요?”
내 말에 최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전시 상황이야. 다들 주의해. 요새 바깥으로 나서진 마.”
그러곤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우리는 최가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마정석과 대포 등을 옮기며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최가람이 안내한 곳에는 덤덤이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덤덤이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내부 대피소야. 이곳에 있도록 해.”
“네.”
“조금만 참아. 결계를 발동하면 상황이 진정될 테니까.”
대피소의 사용법을 이것저것 알려 준 뒤, 최가람은 한시가 급한 듯 빠르게 저 멀리로 사라졌다.
나는 내 품으로 파고드는 민재윤을 토닥였다. 그리고 괜히 두리번거리는 신바란도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야. 다들 베테랑이잖아.”
그러니까 그 옛날 내게 벌어진 악몽과는 달라.
내 말이 통했는지 둘은 조금씩 진정해 갔다.
문제는……
“박시우.”
희미하게 빛을 뿜는 푸른 황혼을 홀린 듯 바라보는 덤덤이다.
덤덤이는 내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여전히 자신의 성검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박시우!”
내가 소리친 후에야 덤덤이는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너도 이리 와.”
내 말에 덤덤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집어넣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됐다.
“괜찮아?”
“괜찮아. 너는?”
“문제없어.”
그 말을 하는 덤덤이의 낯은 약간 창백해서 그럼에도 걱정이 됐다.
무어라 말을 걸려던 순간, 눈부신 빛이 요새를 감쌌다. 누군가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됐다! 결계가 발동됐어!”
사람들의 함성에 귓가가 먹먹했다. 내부 대피소에서는 바깥을 볼 수 없어서 우리는 소리로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다 끝난 걸까요?”
“그런가 봐……!”
함성이 잦아들 즈음, 최가람은 우리를 다시 데리러 왔다. 우리는 다시 방으로 이동했다.
돌아가는 도중에도 덤덤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리고 방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좋지 않다.”
신바른은 기대했던 희소식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요새의 결계는 바깥과 안을 차단한다. 즉, 우리는 고립되었다는 뜻이다.”
민재윤이 파들파들 떨고 신바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고, 고립이요?”
“하지만 본부와 통신은 가능하잖아요? 지원을 요청하면-”
그 말에 신바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부는 지금 여력이 없을 거다. 그리고 이 부천 경인 요새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곳이야. 지원은…… 힘들 거다.”
그 말의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신바른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 마라, 학생들.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테니.”
나는 가만히 신바른의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계속 방이나 내부 대피소에서만 생활하는 건가요?”
“그래. 상황이 안정적일 때는 잠시 주변을 오가는 걸 허용하겠지만, 그 외에는 금지다.”
결국 헌터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셈이다.
내가 그냥 베테랑 헌터들에게 모든 걸 맡겨 둘까 고민하는 사이, 신바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기!”
“뭐지?”
“혹시, 저희도 일을 도울 수 없나요?”
“너희는 학생이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야.”
“하지만 실습을 하러 온 거기도 해요.”
신바란은 신바른의 말에 쭈그러들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주먹을 꼭 쥐면서 자신의 언니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제법 간절해 보였다.
“최전선에 두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후방에서라도 실전을 체험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일을 하면 어떨까요……?”
“…….”
“저희도 엄연한 각성자니까요……!”
신바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신바란은 달달 떨면서도 신바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분명 전에도 언니 같은 사람의 도움이 되고 싶다 했지.
어쩌면 바란이는 제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데도 가만히 보호받기만 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한참을 신바란을 내려다보던 신바른은,
“……숙고해 보지.”
짧은 한마디만을 남기고 뒤돌아 사라졌다.
다음 날.
우리에겐 일거리가 주어졌다.
* * *
그리고 신바란은…… 일을 잘했다.
“성 속성 마정석……! 은 이미 있네?”
“오, 붕대.”
“오늘은 바란이 이쪽으로 보내 줘!”
“뭔 소리야! 어제도 갔잖아!”
그것도 아주 잘했다.
뭔가를 찾기도 전에 척척,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옆에. 그야말로 보좌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아가씨, 졸업하면 우리 길드에 올래?”
“언니랑 같이 일해 볼래?”
그동안 갈고닦은 능력을 한껏 빛낸 신바란은 며칠 만에 헌터들 사이에서 인기 스타가 되었다. 얼떨떨해하면서도 여러모로 사랑받는 신바란은 제법 귀여웠다.
그런데 그거 알아? 바란아, 너네 언니 질투 중이다?
“일해라, 일.”
나는 괜히 검집으로 인파를 흩어 버리고 신바란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하는 신바른 쪽을 구경했다.
“이상이다.”
“네!”
“그리고……”
“?”
“……일을 잘하더군.”
“!”
“잘했다.”
“!”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칭찬을 건네는 신바른과 그 칭찬에 환한 표정이 되는 신바란을 주변인들이 따스한 시선으로 구경 중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돕는 신바란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보던 신바른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이걸 계기로 둘의 관계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일단은 순항 중이라 해 두자.
“어째서입니까?”
문제는 덤덤이에게서 일어났다.
덤덤이가 항의하자 최가람이 삐딱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꼬마 용사님. 학생을 최전선에 투입할 수는 없어.”
그 말에 덤덤이는 이를 악물며 성검, 푸른 황혼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용사입니다. 몬스터를 쓰러트리기에 가장 적합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지. 아직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최가람이 단호하게 대꾸하자 덤덤이가 발끈한 듯 외쳤다.
“하지만 지금도 인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헌터들이 몬스터의 수를 줄여 봤자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숫자가 더 많았기에 끊임없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계가 있다지만 끝없는 몬스터 세례로 인해 점점 내구도가 깎이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게이트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대부분은 암 속성. 이 상황에서 성 속성의 힘을 주로 사용하는 덤덤이가 전투에 참전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저 데이터로만 상황을 본다면, 덤덤이 정도의 스펙을 전투에 참전시키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학생이라서 전장에 강제로 투입할 수는 없는데, 본인이 스스로 나선다? 전력이 부족한 지금,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제안이겠지.
“우린 학생들을 전장에 떠밀 만큼 염치없진 않아.”
하지만 최가람은 끄떡없이 답했다.
“정말 다 죽을 상황이면 모르지. 근데 아직 살 만하거든. 좀 더 살 만해지자고 애를 전장에 던진다? 나가 뒈져야지.”
심드렁하게 뒷목을 쓸며 말하는 그 모습엔 진중함 따위는 없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어떤 굳건함이 있었다.
최가람은 한숨을 쉬며 타이르듯 말했다.
“꼬마 용사님, 넌 분명 대단해질 거야. 어쩌면 지금도 우리 중 몇몇보단 강하겠지. 하지만 네가 강하고 특별하다 하더라도, 그게 너의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포기당할 이유가 되진 않아.”
그녀의 흑안이 나를 향한다. 그 눈이 나를 책망하는 것처럼 느꼈다면 기분 탓일까?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가요. 난 이제 괜찮으니까.’
하지만 날 두고 엄마의 유품을 완성하러 간 건 당신인데.
“부천 경인 요새의 부대장으로서의 명령이다. 요새 바깥으로 나가지 마. 전투도 금지다.”
최가람은 자신의 모자를 푹 눌러쓴 후 저 멀리로 사라졌다.
문득,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