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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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용기? 만용?
“머리를 쓰라구요?”
“그렇다네.”
“싸우거나 그런건 아닌겁니까?”
“싸운다는 선택지도 있기는 하지만 내 장담컨데 싸웠을때의 난이도는 그냥 평범하게 시험을 받을때보다 훨씬 더 높을거라고 장담하지.”
아무래도 저 노인은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NPC처럼 보인다. 이런 형식의 미션은 처음 겪지만 그래도 눈치라는게 있는법이다. 싸우지 않고 해결할수 있다면 성훈이야 대환영이었다.
스릉!
룬 블레이들 집어넣자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구석에 쌓여있던 탁자와 의자가 날아오더니 부드럽게 가운데에 놓였다.
“자 그럼 앉아서 이야기하지.”
“실례하겠습니다.”
“역시 아주 훌륭하군. 자 그럼 어디부터 시작해야할까 자네는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이네. 분명히 몬스터들을 물리치거나 뭔가의 물건을 얻어오는걸로 짐작하고 있었겠지?”
“아니라고하지는 못하겠군요.”
“이 최초의 시련은 그런게 아니라 자네가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한 미션일세. 나같은 경우에는 지혜를 맡고 있지. 그러니 나를 지혜로 이겨야 이 관문을 통과하는것이 가능한것이라네.”
“지혜라고 해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어떤식으로 판가름 하는겁니까?”
순수하게 ‘지혜’에 의해서만 판가름되는 승부는 꽤 있는편이다. 물론 선수를 잡느냐 후수를 잡느냐에 따라서 승률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바둑이라던가 장기, 체스같은거라면 성훈도 나름대로 큰소리는 칠수 있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뭐든지.”
“뭐든지?”
“그렇다네. 수많은 종류의 승부 중 단순하게 지혜로만 가려지는 승부는 거의 없지. 힘이라던지, 행운이라던지, 여러종류의 다른 요소들이 충분히 개입할수 있네. 그래도 다른 요소보다 지혜가 더 많이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된다면 어떤 승부든지 가능하다네. 문자 그대로 뭐든지 말일세.”
“승부에서 진다면 생기는 패널티는 있습니까?”
“없다네.”
“없어요?”
“그렇다네. 내가 그래서 운이 좋다고 한것일세. 다른 다섯개의 시험을 맡고 있는 자들은 성격이 괴팍해서 목숨이 위험할수도 있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함부로 생명을 죽이거나 해를 입히는게 싫어서 말일세. 자네가 이길때까지 무한히 도전하는것도 가능하네.”
무한히 도전이 가능하고 패널티가 없다는건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지혜를 가장 처음에 선택했던건 정답인것같았다. 패널티가 없다면 일단 가볍게 실력을 보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바둑 둘줄 아십니까?”
“물론일세. 한판 둬보겠는가?”
“좋죠.”
딱!
어느새 탁자위에 놓여있는 바둑판과 바둑알.
“삼판이선승제입니까?”
“아닐세. 설마 그렇게 ‘가혹’한 조건일리가 있겠나? 한판이라도 승부를 따내면 문제없다네.”
“…좋습니다. 그러면 한판 둬보죠.”
“응? 왜 백을 잡는가?”
바둑에서는 먼저 선공을 가할수 있는 흑이 약간 더 유리하다. 그래서 백에게는 집을 덤으로 준다. 이곳의 심판관은 자신이고 도전하는 자는 성훈이다. 그런데 성훈은 망설임없이 백을 쥔것이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가볍게 실력도 알아볼겸 말이죠.”
“그렇긴하지. 그럼 내가 먼저 둬보겠네.”
툭!
망설임없이 돌을 든 노인이 흑돌을 내려놓은곳은 바둑판의 가장 정중앙. 천원(天元)이었다.
그와 동시에 성훈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오래전의 바둑이라면 몰라도 시대가 지나면서 시작부터 정중앙인 천원에 돌을 놓는것은 상대방을 놀리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선수를 양보해도 당신정도는 이길수 있다는 의미인것이다. 백돌을 쥔채로 성훈은 돌을 착수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성훈 역시 어릴적에 여러가지 학원에 다니기는 했다. 피아노 학원도 가보고 미술 학원, 태권도 학원도 다녀봤다. 그리고 그 중에서 그나마 성훈이 가장 두각을 드러냈던것이 바둑이라고 할수 있었다.
프로까지는 무리더라도 아마추어로써 꽤나 이름을 날리기는 했다. 물론 그 이름을 날린건 어디까지나 학원내에서만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실력은 어디가는게 아니다. 그리고 1000이 넘는 지혜는 성훈의 머리를 열심히 굴려주고 있었다.
근력이 올라가면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수있는것처럼 지혜가 올라가면 실제로 머리가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단순한 암산이나 계산, 어떤것을 습득하는 능력, 숙달하는 요령등이 훨씬 나아지는것이다. 아마 지금의 성훈이라면 프로급의 선수와 바둑을 두더라도 크게 밀리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바둑돌을 쥔 성훈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딱!
“허허. 다 끝났구만. 계가를 해볼까?”
“…할 필요 없습니다. 반집차이로 이기지 않으셨잖습니까?”
“음? 자네 참 계산이 빠르구만! 이거이거 이번에도 우연히 내가 이겨버렸군.”
‘우연히? 지금 장난하냐?!’
성훈은 정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면서 바둑을 두었다. 사고분할뿐만 아니라 사고가속까지 이용해 정신이 아득할때까지 필사적으로 덤볐지만 다섯판이 넘는 대전은 모두 반집차이로 지고 말았다. 이건 우연도 아니고 실력이 아슬아슬하게 차이가 난다는 차원이 아니다.
‘이 영감은 내 실력에 맞춰서 일부러 반집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내고 있는거야!’
그저 성격좋은 옆집 할아버지쯤으로 보였던 노인에게서 알수없는 공포심을 느낀 성훈은 바둑판을 옆으로 밀어내고 관자놀이를 살살 만져주기 시작했다.
“종목을 바꾸죠.”
“나야 좋지. 뭘로 하겠는가?”
“체스 어떻습니까?”
“흑? 백?”
“…흑으로 하죠.”
체스에서도 연전연패. 그것도 차마 손을 쓸수 없을정도 완패였다. 중간부터는 몇개의 말을 빼고 했음에도 그랬다. 장기도 어차피 체스에서 말만 바꾼것과 큰 차이가 없어서 패배를 기록했다.
“암산!”
“자네정도의 지혜라면 일정수준 이하의 암산은 바로 풀어버리겠지. 열개의 수를 다섯제곱근한 숫자를 더 많이, 먼저 맞추는쪽이 이기는걸로 하지.”
“…이걸 암산하라구요?”
열자리를 넘어가는 숫자를 바라보며 성훈은 입을 떡 벌렸다. 굳이 설명할것도없이 6:4로 패배.
“제, 젠장! 혹시 보드게임같은건 없습니까?”
“있기야 하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건 전부 지혜의 비중이 큰 게임일세.”
이것 역시 아슬아슬하게 패배.
“…카드게임도 됩니까?”
“단판 승부는 안되네. 그랬다가는 행운이 지혜보다 더 많은 요소를 차지할테니 말이야. 백판승부로 하지.”
아무래도 이것까지 조작을 하는건 불가능한 모양인지 지금까지의 아슬아슬한 승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성훈이 졌다는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동수가 나오거나 성훈이 이기기는 했어도 중후반으로 접어들어갈수록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도전했지만 성훈은 어느것하나에서도 승리를 맛볼수 없었다. 전부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인이 봐주고 있기 때문에 얻은 결과라는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돌아버리겠네. 이걸로는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다.’
여기서 한 몇년 푹 썩으면서 노력하다보면 뭔가의 깨달음을 얻어서 이길 가능성도 없는건 아니지만 성훈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좀 나중에 하는건데 이건 너무 오래걸리겠어!’
지혜뿐만 아니라 아직 다섯개의 시험이 더 남아있다. 정확한 시간은 잴수없지만 벌써 이 지혜의 관문에서만 반나절이 넘게 소비해버렸다. 미션도 중요했지만 지금 성훈에게 가장 중요한건 바로 시간이었다.
지혜를 겨루는 방식으로 가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아까 싸우는것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그건 별로 추천하는건 아니네만.”
“그래도 일단 해보는게 낫겠죠. 솔직히 계속 머리만 굴리다보니 정신이 이상해질것 같은데 잠시 기분전환할겸 몸을 움직이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그럼 싸우는걸로가지. 조건은 간단하네. 나를 죽이면….”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훈은 벌써 룬 블레이드로 노인의 가슴을 찔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서는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칼질을 한 밋밋한 감각. 짧게 혀를 차며 기감을 확장시킨 성훈은 바로 노인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주술을 발동시켰다.
화르르르륵!
거칠게 타오르며 날아가는 화염과 뇌전의 화살들! 금방이라도 폭발할듯한 그것들은 허무하게도 연기로 변하며 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뭣?!”
“디스펠이라네. 처음보는것도 아닐텐데 뭘 그리 놀라는가? 아, 그리고 뒷통수 조심하게.”
콰아아아앙!
뒷통수라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그대로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덕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수 있었다. 강체로 강화된 몸에서 느껴지는 화끈하고도 얼얼한 고통은 느낄새도 없이 성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코앞에 위치해있는 스태프의 끝자락이 보였던것이다.
뻐억!
“큭!”
“흐음. 이마가 참 단단하구만. 내 소중한 지팡이가 부러져버릴것만 같네.”
“아니 잠깐! 지혜를 이용한 싸움이 아니었습니까?”
“지혜를 이용해서 싸우고 있지 않나?”
노인이 손을 휘젓자 사방에서 생겨난 마법들이 성훈을 향해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것이 아닌 정확하게 급소를 노려오는 절묘한 속도와 각도의 마법들. 서커스를 하는듯한 기묘한 동작으로 간신히 회피해내는 성훈을 바라보며 노인은 설명을 이어갔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꿰뚫어보고 그에 따라 가장 적절한 대응을 취하는것. 그것도 지혜일세. 내가 마력을 이용해서 압도적인 물량으로 자네를 몰아붙이고 있나? 아니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괴롭히고 있나?”
단순히 마법의 발동속도와 운용능력을 제외하면 노인의 속도는 성훈의 입장에서는 약간 느릿하게 보일뿐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성훈을 본 노인은 옆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더니 지팡이를 들어서 옆을 후려쳤다.
퍽!
마치 그 자리에 나타날것을 예상이라도 한듯한 공격. 자신이 가속하려는 타이밍에 딱 맞춘듯이 나타난 지팡이를 피하지 못하고 목젖을 명중당하고 말았다.
“크헉?”
“내가 아무의미없이 마법을 난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전부 자네를 몰아붙이기 위해서 하나하나 계산하고 사용한것일세. 자네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 내 공격을 회피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세.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전부 유도된거지.”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내리꽂히는 불덩이를 향해서 성훈이 룬 블레이드를 찌르자 불덩이는 허공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회피도중 미리 저장해놓은 얼음의 기운을 탄자결로 발사해낸것이다.
“잠깐, 잠깐! 이건 지혜를 이용한 싸움이라기보다는 전사의….”
“아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는 알겠네.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지혜야. 전사들이 재능이나 수련을 통해 본능적으로 행하는것이라면 우리들은 계산과 예측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행한다는 차이점이 있지.”
‘씨발! 싸우는것도 만만치 않잖아!’
아니, 오히려 시종일관 밀리는걸 생각하면 더 힘들다고 볼수도 있었다. 감춰두었던 스킬이나 아이템의 능력을 이용한다면 조금 더 승부를 끌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성훈은 그런 생각을 억눌렀다.
만약 노인이 정말로 자신의 행동을 전부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한다면 방금전 뒤로 넘어졌을때 그 불덩이에 맞았어야했다. 그러나 자신이 쏘아보낸 탄(彈)자결에는 반응하지 못하고 그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즉 내 스킬이나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모른다는 이야기다. 함부로 드러내는것은 내 밑천을 보여주는 일밖에 되지 않아.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여기서 드러난 정보가 나머지 다섯개의 시험관에게도 공유될수도….’
“뭘 그리 생각하고있나? 슬슬 몸은 풀렸을테니 이제 진심으로 가도 되겠지?”
2배. 지금까지 자신을 몰아쳤던 마법의 정확히 2배가 나타났다. 게다가 아직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지도 않았는데 머리 한구석에서 맹렬히 위험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은 포위되어있다고 말이다. 어차피 이대로 싸워봤자 승산은 0%다.
“졌습니다.”
“잘 생각했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들을 바라보며 성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마 이건 꽤 만만찮은 미션이 될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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