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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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누가 그래?
자욱하게 일어났던 먼지가 가라앉고 그 곳에 남아있는것은 프라가라흐를 지지대 삼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르벤 한명뿐이었다. 물론 멀쩡한것은 아니었다. 옷은 상당부분 불타거나 헤져있었고 보호받지 않은 맨살은 수많은 칼날에 베인듯 걸레짝이 되어있거나 심각한 화상을 입은듯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엄청…나군.’
먼저 공격을 가한건 자신이고 최철형은 뒤늦게 대응할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가라흐의 능력을 이용한 공격이 역류해서 자신에게 해를 입힐정도라니. 정말이지 방심할수 없는 남자였다. 최철형이 있던곳에 남아있는것은 갈가리 찢겨나간 옷과 얼마간의 길드, 그리고 부러진 장검 한 자루 뿐이었다.
주변은 완벽하게 빈공터로 변해버렸다. 피부를 후끈하게 데울정도로 격렬하던 세계수의 불길도 방금전의 여파로 상당부분 진화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아르벤은 쓴웃음을 짓고는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든후 그것을 둘로 찢어버렸다.
파앗!
새하얀 빛이 몸을 뒤덮자 붉게 물든 피부가 시간을 거꾸로 감듯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벤의 표정은 어두운 기운이 남아있었다. 루시아가 걸어준 버프의 효과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이 세계에서의 버프는 일정시간만 유지되는게 아니라 급격한 전투를 벌이거나 강한 충격을 받을수록 점점 지속시간이 줄어드는데 최철형과의 일전으로 그 버프 대부분이 사라져버린것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결과군. 아무리 그래도 유령이나 미리내도 아닌….”
쐐액!
생각하기도전에 몸이 움직였다. 이 난리통에서 들려온 자그마한 이질적인 소리와 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무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임과 동시에 그것은 볼을 살짝 베어내며 빗나갔다.
“어라? 왜 피하고 그래? 그냥 가만히 맞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모두 해피한데 말이야. 크큭.”
“…유령. 지금까지 전부 보고 있었던거냐?”
“뭐, 그런 셈이지.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나도 이 폭발에 휩쓸렸을테니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지? 흠흠.”
장난스러운 태도로 단검을 저글링하며 다가오는 유령을 바라본 아르벤은 이마를 찡그리며 프라가라흐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일단 지금 해야할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것이다. 지금은 부상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스크롤의 효과가 완벽하게 나타나려면 더 기다려야한다.
“원래 최종보스는 이런 중간보스가 싸우는 장소가 아니라 제일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어야하는게 맞는데 아무래도 그랬다가는 네가 이것저것 다 회복하고 올것같아서 말이야. 최철형이 이렇게까지 분발할줄은 나도 몰랐단 말이야.”
“이 모든 일은….”
“응?”
“이 모든 일은 네가 저지른 일이냐?”
“흠. 예상외로 멍청한 질문을 하네. 그럼 당연히 내가 하지 누가 했겠어? 너를 위해서 마련한 판인데 어때? 마음에 들어?”
툭.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은근슬쩍 옆으로 움직였지만 유령은 별로 제지할 생각도 없다는듯 단검으로 이런저런 묘기를 부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넌 지금 다크 엘프들이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있지?”
“후후후, 다 망한거 아니야? 대충 거점지나 요충지는 죄다 박살나고 점령이 불가능한곳은 그냥 불태워버리고, 아마 네 실력을 보면 대전사장까지 다 족쳐버렸을거같은데. 아닌가?”
“뭐?”
다크 엘프들이 당한것을 모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저 능글맞은 얼굴에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넣어줬다고 생각하던 아르벤은 오히려 저 담담한 말에 멍한 표정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아아, 뭔가 멍청한 착각을 하고 있는것 같은데 설마 다크 엘프들을 물리쳤다고 나를 이겼다고 뭐 그런식으로 생각한건 아니겠지?”
“너, 너는 분명 다크 엘프들과 같이….”
“어디까지나 잠시 도와줬을뿐이지 같은 편이라고 말하면 섭하지. 알만한 사람끼리 왜 이래? 우리의 착하신 영웅인 아르벤님이야 엘프들의 패배는 즉 자신의 패배로 연결될지도 모르겠지만….”
팅!
들고 있던 단검을 일부러 아르벤의 발끝을 향해서 던진 성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다크 엘프가 망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야? 오히려 보상은 보상대로 잔뜩 받았고 충분한 미션 포인트도 획득했고 덤으로 귀찮은 엘프들도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오히려 내 승리라고 할수 있지.”
아르벤은 엘프와 같이 행동한다. 당연히 아르벤이 개인적으로 적을 격퇴한들 엘프가 전체적으로 패배했다면 그것은 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성훈은 다크엘프과 같이 행동하되 그들의 승리나 패배를 자신과 연관지어서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은 자신으로 딱 구분지어서 생각한다.
바로 그 기초적인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한탓에 이런 결과가 생기고 말았다.
“…미친 놈.”
“자주 듣는 말이야. 별로 마음이 아프거나 한건 아닌데 좀 더 참신한 말을 해주면 나로써는 더 기쁠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다시 악의 보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보기로 할까?”
짝짝!
가볍게 울리는 박수에 혹시 공격인줄 알고 긴장했지만 정작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뭐 하는거야? 지금 네가 봐야할건 내가 아니라 저 쪽인데.”
유령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무심코 눈을 살짝 돌린 아르벤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뻔했다. 크리스티나가 한 남자에게 잡힌채 축 늘어져있었다. 얼굴은 찢어지고 멍이 들고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으며 얼핏 보이는 몸 곳곳에도 심각한 상처가 나 있었다. 미미하게 움직이는것을 볼때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른 치료가 필요한건 분명했다.
“공주님!”
“풋,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하기위해 달려온 왕자님. 참 감동스러운 장면이야. 뭐 그다지 심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심한짓을 하지 않았다고? 대체 어디를 봐서!”
“당연한것 아니야? 여자가 당할수 있는 가장 심한 짓이 뭐가 있겠어? 사실 할까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저런 멍청한 년한테는 내가 너무 아깝잖아? 그래서 그냥 적당하게 고문만 했지. 아,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거야.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공주님의 목이 데굴데굴 굴러다닐지도 모르거든. 크크큭.”
“큿!”
오만상을 다 쓰고 있는 아르벤을 바라보던 성훈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곧 진짜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이런건 너무 뻔한 전개같아서 하기 싫지만 그래도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해보는게 낫겠지? 아르벤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뀡 먹고 알도 먹고 하는 그런 제안.”
그 나라의 고유한 속담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한 아르벤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까지 너 때문에 당한 정신 및 육체적 손해 보상으로 그 검을 준다면 이쯤하고 물러나주지. 조오기 있는 공주님도 무사히 풀어드리고 나는 더 이상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조해주지.”
“이 검을 내달라고?”
“그래.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명검인것 같고 미리내가 너와 싸울때마다 그 검 때문에 몇번이나 찬스를 놓쳤다고 말했거든. 널 죽이려면 다소의 위험을 감수해야되지만 깔끔하게 거래를 하면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어때?”
넉살좋게 말하는 유령의 모습.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거래를 받아들일지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높은곳을 선택하는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르벤의 그 대부분의 사람에 속하지 않았다. 유령이 겉으로 보여주는 태도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가면 그 너머를 볼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와 이거 섭섭해질려고 그러네. 이래뵈도 신용하면 유령, 유령하면 신용이라고. 난 지금까지 내가 한 약속은 한번도 어긴적이 없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면 내가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네.”
“신용? 검을 주면 오히려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된 나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네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건 단순히 내 과대망상일까?”
“…푸, 푸하하하하! 아아아, 이거 순둥이 왕자님인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날카로운 구석도 있었네? 그럼 어쩔수 없나?”
서걱!
그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적어도 아르벤은 유령이 크리스티나를 인질로써 활용하기 위해 죽이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설령 죽이더라도 좀 더 최악으로 몰린 상황에서 시도할거라고, 조금 더 여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거절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유령이 팔을 내렸고 전사는 검을 휘둘러 크리스티나의 목을 잘라내버렸다.
“평범한 악당이라면 여기서 공주님은 놔두고 너와 싸우다 당하겠지? 그리고 저 공주는 네가 구해서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할테고 말이야. 하지만 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멍청한 악당이 아니라서 말이지.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으면 바로바로 처리하는게 맞는거 아니야?”
“…어.”
“아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죽어어어어엇!”
순식간에 펼쳐진 일검!
좌에서 우로 그어지는 단순한 일검이었지만 거기에서 튕겨져나온 검기는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워가며 모든걸 양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훈은 그 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듯이 가볍게 위로 뛰어올라서 그 공격을 피해버렸다.
콰아아아아앙!
프라가라흐와 룬 블레이드가 부딪히자 둘을 중심으로 원형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그 위력은 최철형떄보다 한층 더 거세고 한층 더 격렬했다.
“유령, 유령, 유령!!! 너는,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아주 격렬하군! 혹시 괜찮으면 여기 말고 다른곳에 가서 싸워도 될까? 너도 알겠지만 여기는 공기도 별로 안좋고 저 쓸데없니 크기만 한 나무가 언제 쓰러질지도 몰라서 좀 불안한데. 잠시 휴전하고 사이좋게 저기로만 가는건 어떨까?”
“닥쳐어어어엇!”
그야말로 악(惡)으로 이루어진 인간. 그것이 바로 아르벤이 유령에게서 느끼고 있는것이었다. 숨쉴틈 없이 펼쳐지는 아르벤의 공격을 정교한 검놀림으로 전부 다 쳐낸 성훈은 왼손을 얼굴로 들어올리더니 손가락을 쫙 펼친후 하나하나 접으면서 말했다.
“네가 회복할줄 알면서도 내가 왜 멍청하게 시간을 끌면서 너랑 얘기해줬는지 알아?”
피잉!
다섯개의 손가락이 전부 접혀진 순간 갑자기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일순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이면 고수와의 접전에서는 열번도 넘게 목이 날아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도 시간이 필요했거든.”
‘독!’
뒤늦게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단검을 떠올린 아르벤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설마하니 독을 사용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황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은밀하게 침습한 독을 몰아냈지만 이미 그가 대처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성훈의 검이 빛을 반사하며 휘둘러졌다.
콰직!
한 줄기 선혈이 솟구치며 두 사람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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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양은 좀 적습니다.
내일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보니 평소보다 약간 양이 줄어들게 됐습니다. 게다가 다음주부터는 개강시즌에 이것저것 겹칠테니 훨씬 더 바빠지겠군요. 꿀같은 시절은 이제 가는건가… ㅠㅠ
그런 의미에서 독자님들은 추천, 코멘, 쿠폰을 살포시 놓고 가셔서 이 불량 작가의 부진한 의욕을 채워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니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