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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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왜 악당은 말을 많이 할까?
멀리서 들려오는 전투와 비명의 소리를 들으며 잭은 조소를 지었다.
“직접 시간을 끄는 사이 외부의 지원군을 이용해 내외로 전투를 확장시키는게 네 목적이었냐?”
“뭐 그런셈이지. 그나마 현실적으로 내가 시도해볼만한 수단이 이것밖에 없거든.”
언데드 무리속에서 들려오는 성훈의 목소리. 대략적으로 위치를 가늠한 잭은 은근슬쩍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이어갔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누구나 떠올릴수있는게 네가 선택한 방법이라니 왠지 맥 빠지는군. 얼마나 되는 병력을 동원한거지? 백? 천? 만? 고작해야 그 정도 숫자로 이 상황을 뒤집을수 있을것같나?”
4개 길드가 연합하고 구성원 대부분을 필드에 포진시킨 대동맹의 총병력은 10만이 넘어간다. 물론 그 전부가 사방에 퍼져있다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전력을 가지고는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 어마어마한 대군인건 틀림없었고 그만한 전력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건 왠만큼 간이 부었다고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실력에 자신있는 탑랭커가 나서던가, 아니면 최소 만명단위의 병력을 동원해야 찔러볼 구석이라도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조건일뿐이었고 병력의 질을 고려해본다면 결과는 뻔할 뻔자였다. 물론 그런 당연한 사실을 모를정도로 바보인 상대는 아니었기때문에 잭은 성훈이 아직 뭔가 수를 더 감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 병력조차도 시간을 끌기위한 미끼? 그렇다면 진짜로 노리는건 뭐지?’
“네 말대로 고작해야 만단위의 병력으로는 그들 전부가 3차 각성자라도 되지않는이상 이 상황을 뒤집을수 없겠지.”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는 짓이 아니야. 유성훈 네 진짜 목적은 지금 이기는것이 아니라 이 전투 그 자체니까.”
중간에 말을 자르며 끼어든것은 바로 아르벤이었다. 말하는도중 잭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에 애써 시선을 언데드 무리속으로 돌렸다.
“흥미로운 의견이로군. 전투 그 자체?”
“그래. 이만한 피해가 발생한이상 최후의 무대 공략은 필연적으로 연기될수밖에 없지. 지금 당장 복수를 하겠다는게 아니라 일단 복수를 할 시간을 벌겠다는게 네 진짜 목적이겠지.”
“음. 그런 방법도 있었군. 나쁜 방법은 아니야. 영구한 평화를 약속했던 대동맹이 결성되자마자 대규모 살상이 일어나버린셈이니 그 점을 잘 파고들면 여론을 악화시키는것도 가능하겠군.”
‘위치를 계속 옮기고 있군.’
잭과 마찬가지로 성훈의 위치를 특정해내려는 아르벤이었다. 최대한 피를 적게 흘리고 이 싸움을 끝내기위해서는 머리를 치는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성훈의 목소리는 어쩔때는 가까이에서 들리는듯 했다가 멀리서 들리는듯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나선것치고는 전혀 엉뚱한 선택지를 골랐어. 내가 설마 결판을 뒤로 미루겠다는 미적지근한 방법을 선택할것같았어? 난 이곳에서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어.”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최소한 후회를 남기지 않고 죽겠다는건가?”
“흐흐흐흐,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정도로 멋있는 녀석이 아니야. 최소한 내가 이길 가능성이 5할이 되지 않는다면 아예 시도할 생각도 안하는 소극적인 녀석이지.”
“무슨 소리냐? 대체 뭘 믿고….”
우와아아아아!
콰아아앙!
조금 더 커진 함성과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적이 더 가까이 파고 들었으니 소리가 크게 들리는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최초로 소리가 들려온곳과는 정반대쪽에서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는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다른족에서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수 없다는듯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르벤을 향해 가볍게 혀를 내밀어준 성훈은 최대한 상대방이 열받을만한 어조로 말했다.
“뭐 계략 자체는 잭의 말대로 그다지 대단할것도 없지만 나는 언제나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것을 생각해내는 사람이거든. 방법은 맞췄는데….”
“…지금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적의 숫자는 측정불가, 네개 도시에서 튀어나온 최소 십만은 넘는 병력이 사방에서 밀려들고 있어요,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유백우가 비명을 토해내듯이 외치자 성훈은 가볍게 그 뒤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규모가 좀 커. 어디 한번 막을수 있을때까지 막아봐. 막아도 파멸, 못막아도 파멸이다.”
악마의 목소리도 이것보다는 더 듣기좋을거라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거짓된 정보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최대한 빨아먹을수 있을때까지 빨아먹은 이후에 자기들만 살겠다고 떠나는 지배층이라는 프레임을 대동맹에 씌운다. 그렇게 한다면 성훈은 굳이 열을 내면서 결백을 주장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지배층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로 인식된다.
거기에 더해서 최종 목표인 신들의 후계자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흩뿌리면 연합에 속하지않은 최상위 및 상위 랭커들을 끌어들일수있고 더 미션이 완벽하게 클리어된다면 이 세계 자체가 사라져버릴수도 있다는 정보를 퍼트리면 일반인들 대부분을 끌어들이는게 가능하다.
‘이 두개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훈 형은 설마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갈줄이야.’
사종원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전방에 보이는 대동맹의 사람들과 비교해도 절대로 꿇리지 않을만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있었다.
“신시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모스크바까지….”
“허허허. 그 최악의 상황에서 설마 이런 식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수 있을줄이야. 다른건 몰라도 일의 스케일만큼은 나도 감탄을 금할수없군.”
“뭐, 뭘 놀라요? 형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거라고요.”
“그렇겠지. 내가 실수했군.”
인자한 미소를 지은채 사종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볼프는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엘리의 배신을 겪었을때 볼프는 더 이상 사람들을 하느님의 곁으로 보내줄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건 성훈이 구출해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기운을 내기는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성훈이 말한 수많은 사람을 그분의 곁으로 보낸다는 원대한 계획은 이룰수없고 예전처럼 음지에서 한명한명씩 구원을 행할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토론토로 가달라는 말인가?”
“그곳은 아르벤이 꽉 잡고 있는만큼 제가 직접 가도 큰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겁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볼프님만은 다릅니다.”
“잘 이해가 안되는군. 고작해야 미약한 신부 한명인 내가 무슨 일을 할수 있단 말인가?”
“미약하다는 말은 좀 그렇지만…, 이 일은 볼프님밖에 맡을수 없습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볼프님은 타인을 진심으로 설득할수 있으니까요.”
비록 그 진심이 한없이 잔혹한것이라고는 하더라도 볼프는 연기가 아니라 마음을 터놓고 사람들을 대할수있다. 거기에 신성력이라는 힘이 더해지면 그의 말은 검은것도 흰것으로 바꿀수있을정도로 무시무시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너무 과도하게 나서면 안됩니다. 최근 무리한 공략으로 다소 안좋은 소문이 돌기는해도 토론토는 법과 질서로 유지되는 다른 도시와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을 파고들수도 있죠.”
지금까지 굳건히 믿어왔던 정의의 영웅이 사실은 가면을 쓰고 있던 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애초에 그런 말을 쉽게 믿을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의도치않은 우연한 상황들과 악수들이 겹치고겹쳐 ‘혹시?’라는 의심을 심어주게됐다. 거기까지만 가면 일은 간단하다.
“저는 피를 보기위해 이곳에 온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서 진심을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아르벤이라는 청년이 떳떳하다면 이 모든 의문들을 확실하게 풀어줄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누군가를 믿는다는건 오히려 그 사람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의심하고 의심하는것만이 그 사람을 진심으로 믿을수있는 길입니다. 이 모든 오해들을 풀고 확실하게 아르벤을 믿기위해 모두들 절 따라와주십시오!”
볼프의 연설은 성훈처럼 과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신의 곁으로 보내기위해서 수백, 수천번이 넘게 진심어린 설득을 반복해온 볼프의 말에는 듣는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하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 후는 간단했다. 볼프의 말대로 싸우기위한것이 아닌, 아르벤을 만나 모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행군은 피로 물들어버렸다. 경계를 서고 있던 대동맹의 병력중에서 지레 겁먹은 ‘누군가’가 대화를 위해 나온 사람을 향해 살수를 펼쳤고 그걸 본 토론토의 ‘누군가’가 뛰쳐나와 마법을 사용해 수십명을 불로 태워버렸다.
‘비록 거짓을 행하기는 했으나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위함이니 이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가볍게 성호를 그은 볼프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외쳤다.
“대화를 하고자 했으나 저 간악한 무리들은 끝까지 칼와 창을 치켜들고 저희를 위협하기만 하고 있습니다. 모든것을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계속해서 외치고만 있을겁니까?”
“그, 그래도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것도 아닌데….”
“확실하게 밝혀진게 없다?! 대체 뭐가 말입니까! 대화를 나누고자 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참살하고 그 이후로 기다렸다는듯이 저희를 향해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때로는 대화보다는 단호하게 칼을 들어야할때도 있는법입니다!”
어떻게든 아르벤을 옹호하고자 하는 사내를 향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호통을 친 볼프는 한손에는 십자가를 한손에는 단검을 움켜잡고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진정 정의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무엇이 다수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말만을 남기고 볼프는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사종원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 그저 가만히 서있을뿐이었지만 곧 완전무장을 갖춘 기사나 후드를 눌러쓴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는건가?”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수만명의 군대를 통솔하던 보리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몰래 찾아온 유성훈이 내민 제안은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할수있었다. 4개의 거대세력을 ‘악’으로 몰아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전부 규합해서 정의를 위한 성전을 일으킨다는 계획.
“그건, 그건 악마나 할짓이야!!! 세르게이, 이걸 그냥 보고만 있을거야?!”
“…보고만 있지 않을거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할수있지?”
“당연한거 아니야? 당장 일반인들에게 명확한 사정을 알려주고 대동맹에 전달해서 사건을 조기에 진압해야지.”
“호오. 그럴듯한 생각이군요. 하지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세르게이의 최측근인 보리스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낸 성훈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채 나른하게 말했다.
“이 사실을 공표한다면 최후의 무대 공략에 참가할 멤버를 뽑는것만으로도 한세월이 걸리겠죠.”
“그래서 어쨌다는거냐? 그렇다면 공략을 뒤로 미루면 될일이야!”
“제 말의 요지는 그게 아닙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제가 시간에 쫒길일없이 느긋하게 움직일수있는 판이 마련된다는 뜻이죠.”
“뭐?”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성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일이 들통나더라도 저는 망설이지 않고 이 계획을 실행할겁니다. 애초에 지금까지 신의 후계자에 제한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춘것만으로도 이미지는 깎일수밖에 없죠. 거기에 더해서 이미 쌓일대로 쌓여있는 반감을 자극해서 억압하는 지배층과 억압받는 피지배층의 분쟁을 일으킬겁니다. 걱정마세요. 시간은 많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
“지금까지 벌인일이 있으니 한번 터지면 이 분쟁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겠지요. 게다가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입니다. 이기면 일반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무력을 동원해서 억압한 지배층들을 향해 결코 되돌릴수없는 원한을 가질겁니다. 그렇다고 지면 어떻게 될까요?”
“…위협하는건가?”
“위협이 아니라 일어날 사실을 말씀드리는겁니다. 한번 이기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분쟁의 단초를 마련하게 되는거고 지면 그대로 인생 종치는거죠. 아니면 둘다 사이좋게 공멸하든가요. 이 세 가지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성훈은 거절따위는 절대로 나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제 4의 선택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겨도 져도, 비겨도 파멸이라면 지배층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피지배층의 입장에 서시면 모든게 해결되죠. 어때요, 참 쉽죠?”
주륵.
“보, 보리스님. 피가 흐릅니다!”
“…잠깐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선혈이 흘러나옴에도 보리스는 조금의 아픔도 느낄수 없었다. 육체의 고통보다 악에 굴복했다는 마음의 고통이 훨씬 더 컸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선택을 되돌릴수는 없었다.
“…전군 전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