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12)
Chapter 12 – 살을 주고 호감도를 취한다 #2
딩-동-!
선명한 초인종 소리가 귀에 박힌다. 조심히 양치를 막 끝낸 나는 절뚝거리며 정문으로 향했다. 느릿한 속도. 이 때문인지 종소리가 한 차례 더 울렸다.
딩-동-!
“마츠다 군?”
미유키의 상큼한 목소리… 언제 들어도 너무 좋아. 웃고 싶지만 웃으면 갈비뼈가 아파서 그럴 수가 없는 게 한이다. 어찌 저찌 정문에 도착한 나는, 양쪽에 박혀있는 기둥에 몸을 기댄 채로 문을 열었다.
철컥…
“마츠다 군, 늦잠이라도 잤…”
방글방글한 미소를 지은 채 들어온 미유키는, 얼굴이 찐빵이 되어버린 날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꺄아아악!”
“허어억! 미유키! 놀랐잖아!”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는 미유키와, 그녀 덕에 덩달아 놀란 테츠야. 마치 귀신의 집이라도 온 것 같은 반응.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마, 마츠다 군…! 뭐야? 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도 곧바로 걱정을 해주니까 다행이다.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내가 말했다.
“들어와…”
“어, 얼굴이 왜 이래…? 어제 대체 뭘 했길래…”
“일단 들어오기나 해…”
말을 마친 나는 한쪽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몸까지 휘청거리면서 거실로 갔다. 평상에 양손을 짚고 끙끙거리며 올라가니, 미유키가 재빨리 신발을 벗고 올라와 날 부축하려고 했다. 손을 느릿느릿 휘저어 그녀의 도움을 뿌리친 나는 거실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미유키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상태를 살폈다.
“어떡해… 멀쩡한 곳이 없어… 여긴 물집도 생겼어… 약간 찢어진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는 미유키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구석 장롱을 가리켰다.
“저 안에 구급상자 있거든? 혹시 상처 난 곳에 좀 붙여줄 수 있냐?”
“이건 반창고가 아니라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일단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허겁지겁 움직여 장롱을 열더니 구급상자를 찾는 미유키. 테츠야가 다가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런 놈에게 쿨한 척 턱짓을 한 내가 말했다.
“머리는 다음에 자르러 가자. 나 힘들다.”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너 상태 진짜 심해…”
“금방 나아. 튼튼해서.”
그 말에 구급상자를 들고 앉은 미유키가 날 타박했다.
“튼튼했으면 멍이 들지도 않았겠지…! 고개 똑바로 들 수 있어?”
“이렇게…?”
“응, 그대로 있어.”
상자에서 알콜솜과 소독약을 꺼낸 미유키는, 소독약을 면봉에 발라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시야에서 점점 커지는 미유키의 가슴. 옷에 묻어있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풍겨와 후각을 자극한다.
“따가울지도 몰라.”
그냥 손가락으로 발라주지, 아쉽다.
“알았… 끄아아아아…!!”
순순히 대답을 하려던 나는, 눈썹 위가 따끔거리자 비명을 질렀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미유키가 말했다.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방금 소독약 묻힌 거 아니었냐?”
“묻히긴 묻혔어. 진짜 조금. 티도 안 날 정도로.”
“…. 그래…? 다시 해봐.”
“응. 이번엔 아파도 참아.”
최대한 그러도록 노력해보지.
**
“이제 얘기해봐.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오랜 시간 끝에 상처를 전부 치료한 미유키의 말이었다. 다짜고짜 싸웠냐고 묻지 않는구나. 이는 곧 미유키가 날 어느 정도는 신임하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테츠야가 가져온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내가 물었다.
“비밀로 해줄 수 있어?”
“교수님들께 얘기하지 말라는 거야?”
“맞아.”
“아카데미와 관계된 일이었구나?”
“대충. 너 시모야마라고 알아? 시모야마 아키로.”
미유키의 고개가 갸웃했다. 반면 테츠야는 그 이름을 듣고 살짝 겁을 집어먹었다.
“시모야마 아키로…? 혹시 2학년의 그 시모야마 아키로 선배를 말하는 거야?”
대화 사이에 끼어든 테츠야의 물음. 나는 긍정의 뜻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유키가 무언가 알아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들어본 것 같아…! 2학년 문제아라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왜? 너 때렸어? 이유도 없이?”
“이유는 있지. 어제…”
나는 어제 두 사람과 헤어지고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말했다. 중간에 테츠야가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미유키가 엄한 눈으로 쳐다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지. 쌤통이다.
진지한 얼굴로 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준 미유키가 말했다.
“결론은… 이나기 아카데미 학생들이랑 시비가 붙기 싫어서 거절했는데, 시모야마 아키로가 폭력을 썼다는 거네? 마츠다 군은 가만히 맞아준 거고?”
“어.”
“…. 잘 알았어. 일단 칭찬해주고 싶어.”
“뭐가.”
“화가 날만한 상황인데도 참았잖아. 예전의 마츠다 군이었다면 한 대 맞은 순간 바로 덤벼들었겠지. 같은 서클의 선배라고 무서워서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지?”
“내가 그딴 말라비틀어진 해골 놈을 무서워할 거 같냐? 그냥 더러워서 피한 거지.”
“응. 내 말이 그 말이야. 마츠다 군은 확실히 변하고 있어. 정말 기뻐.”
나도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려 하던 나는, 팔을 올리자마자 갈비뼈가 시큰해져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많이 아파? 병원부터 갈래?”
“뭔 병원이야. 대충 만져보니까 금 간 것도 아니어서, 며칠 지나면 나을 거야.”
“그걸 마츠다 군이 어떻게 알아? 걱정되니까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좋겠어.”
“알아서 갈게.”
“안 갈 거잖아.”
“아 그래서, 교수님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억지로 화제를 돌려버리자, 미유키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말했으면 좋겠는데… 마츠다 군을 때린 것도 그렇고… 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시비를 일으켜서 단체로 싸우려는 것도 그렇고… 너무 도가 지나쳐.”
“말하지 말라면 하지 마.”
“왜? 왜 하지 말라는 건데?”
그에 대한 대답은 테츠야가 대신 했다.
“마츠다는 우리가 엮이는 걸 우려하고 있어서 그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 우리가 교수님들에게 이 얘기를 한다면, 교수님들은 사실확인 후에 시모야마 선배를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릴 거야. 그럼 징계를 받은 그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비밀리에 계획한 일인데 범인을 찾으려고 하겠지.”
그러면 당연히 명령을 거절한 나부터 의심하고 족칠 테고,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시작할 거다. 물론 나와 미유키, 그리고 테츠야가 같이 공부를 하면서 논다는 건 모르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조심스러워하는 거다.
테츠야의 설명을 들은 미유키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정말 그래서 말하지 말라고 한 거야?”
“그건 알아서 생각들 하시고, 서클에 관한 건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라. 나도 너희를 믿어서 솔직하게 말한 거니까, 너희도 날 믿어야 돼. 신용은 없겠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미유키가 끼어드는 순간 사건이 커질 우려가 크다. 서클과의 인연은 딱 호감도용으로만 쓰고 끝내는 게 가장 좋고, 난 그렇게 끝낼 자신이 있다. 슈프리 서클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3학년 대가리가 약간 선한 쪽이었기 때문이다.
학원물에서 악역 포스를 팍팍 풍기고 나오는데, 실상은 성격이 괜찮고 쿨한 놈, 1, 2학년 때 사고를 치고 다니다가, 3학년이 돼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놈. 놈은 이런 클리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도 양아치이긴 양아치인 만큼, 놈의 앞에서 탈퇴선언을 하면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각오해야겠지만.
“그래줄 거지?”
정성이 들어간 부탁조에 미유키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저번에 내가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는 걸 봤잖아.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주라.
이런 바람이 통했을까? 미유키의 고개가 아주 작게 끄덕여졌다.
“…. 좋아. 그렇게 할게. 그리고 우리는 마츠다 군을 믿고 있어. 신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마츠다 군의 착각이야.”
저런 말까지 해주다니… 오늘 복이 아예 굴러들어온 수준이구만.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 나… 쳐맞길 잘했을지도…
“됐네 그럼. 이제 공부나 하자.”
“몸 상태가 그런데 무슨 공부를 해… 마츠다 군은 여기서 쉬고 있어. 우린 청소할게.”
“청소?”
“여기저기 피가 떨어져 있잖아. 바닥이 다다미라서 더 큰 얼룩이 지기 전에 빨리 제거해놔야 돼.”
나의 미유키는 생활력이 좋아도 너무 좋다. 그래서 너무 사랑스럽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
미유키는 구석에 옆으로 누워 미동도 없는 내 모습이 무척 안쓰럽고, 걱정되는 것 같았다.
“진짜 병원에 안 가 봐도 되겠어?”
청소를 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저런 말을 해왔던 것이다. 나도 미유키와 단둘이 병원에 가고 싶으니까, 슬슬 떡밥을 던져보자.
“안 간다고… 자존심 상하게 뭔 병원이야…”
“진짜 쓸데없는 자존심이네…? 그러다가 몸에 큰 이상이 생겨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청소도 다 끝냈으니까 계속 그렇게 있지 말고 가자. 택시 부를게. 테츠야 군은 먼저 집으로 가있을래?”
남의 시간을 빼앗기 싫어하는 미유키라면, 테츠야에게 저리 말할 줄 알았다. 아무리 소꿉친구라고는 해도 이런 오지랖까지 끼어들게 할 수는 없었겠지.
“어? 같이 가도 되는데…”
또 다시 미유키와 내 사이를 방해하려는 테츠야. 그냥 꺼지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수동적인 놈이니만큼, 미유키가 한 번 더 제안하면 돌아가겠지만.
“아냐.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테츠야 군은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런가…? 알았어.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는 불만을 터뜨렸다.
“간다고 한 적도 없는데 둘이서 쇼를 하네.”
“마츠다 군.”
허리춤에 손을 올린 미유키의 앙칼진 목소리. 자포자기한 모습을 연기한 내가 떨떠름한 투로 대답했다.
“알았어. 갈게. 간다고.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마츠다 군은 이래야 말을 듣잖아.”
“잔소리는…”
투덜거린 나는 테츠야가 맡은 곳 청소를 다 끝내자, 그에게 툭 내뱉듯 말했다.
“고맙다, 미우라.”
“아냐. 당연히 도와줘야지. 이만 일어나볼게. 미유키, 나 간다?”
그에 휴대폰으로 택시 위치를 보고 있던 미유키가 대답했다.
“응. 조심히 들어가구, 나중에 연락할게.”
연락하지 마. 테츠야한테 자꾸 여지를 주지 말라고. 테츠야를 홀로 보낸 우린, 곧 택시가 도착한다는 신호를 받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렵게 신발을 신고 평상에 손을 짚으며 일어나니, 미유키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부축해줄까?”
“아니. 걸을 수 있어.”
“아까 보니까 엄청 휘청거리던데… 내 손 잡아봐.”
뭐라고? 귀를 쫑긋한 내가 가만히 멈춰있자, 미유키가 내 앞에 서선 자신의 양손을 내밀었다.
“잡아. 걷다가 넘어질 수도 있잖아. 내가 중심 잡아줄게.”
미유키는 그저 친구를 도와준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않고 있겠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확 뒤바뀔 수도 있다. 기회가 왔으니까 잡아야지.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미유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방금 차가운 물로 손을 씻었음에도, 미유키의 손엔 온기가 남아있었다. 몸에 열이 많은 편인가? 겨울에 두꺼운 이불 안에서 껴안고 자면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다. 미유키의 뒷걸음질에 맞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최대한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하네.”
“뭐가?”
“네 손, 따뜻하다고.”
“…. 그래…?”
미유키의 고개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살짝 숙여졌다. 뺨에 미약하게나마 홍조가 돈 것 같은데…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지만 참아야한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미유키의 심경을 체크해보자.
땅과 미유키의 손을 바라보면서, 정문을 향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내가 물었다.
“내 손은 어때? 차갑냐?”
“…. 으응… 조금 차가운 것 같기도 해…”
약간의 망설임 후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내 의도가 제대로 먹혀든 듯했다. 주먹이라도 꽉 쥐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면 미유키가 고통스러워할 테니 속으로만 환호하자.
그렇게 우리는 왠지 모르게 묘해진 듯한 주변 공기를 헤쳐 나가면서,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