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225)
Chapter 225 – 노예한테 스킨십하기
-여기… 여기 이렇게 섰잖아요…! 제발요…!
간드러지는 투로 저리 말하고는 남자 주인공의 아랫도리에 슬쩍 손을 가져가는 여자 주인공. 안달이 난 듯한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본 렌카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헛기침을 했다.
“흐흠…”
선정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저러는 모습이 웃기다. 심지어는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었다. 스토리가 제 취향인 듯 말이다.
침을 꼴깍 삼키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렌카를 흘깃거린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팝콘 통에 손을 가져갔다.
부스럭.
“힛…!?”
그러자 렌카가 왜인지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팝콘을 뒤적거리는 소리에 저러는 건 아닌 듯한데… 내 몸이 가까이 붙어있음을 눈치챈 건가 싶다.
팝콘을 입 안으로 가져간 내가 물었다.
“왜요?”
“…. 팝콘 좀 달라고 말을 하든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못 들었잖아요. 영화에 집중하느라.”
“그, 그래…? 근데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어?”
“부장이 먹은 건데요. 전 입에도 안 댔어요.”
“내, 내가…?”
“그것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렌카가 돌연 입맛을 다셨다. 자신의 입 안에 캐러멜의 잔향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내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린 그녀가 겸연쩍은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시끄럽고, 영화나 봐.”
“팝콘은 제가 들까요?”
“남은 거 네가 다 먹으려고?”
“불편한 것 같아서 들어주려는 거잖아요. 심보 한 번 고약하네.”
“…. 머리나 치워…”
“왜요 또.”
“너무 가깝잖아…”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무, 뭐라는 거야…! 내가 안 괜찮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네가 괜찮든 말든 나는 아무 상관없어…!”
“상관없으면 이래도 되겠네.”
“그 말이 아니라…! 하아… 아니다, 됐어.”
더 이상 대화를 나누면 화딱지가 올라오리라고 생각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렌카가 다시금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있었다. 반면 남자 주인공은 난색을 표하며 여자 주인공을 밀어내는 중이었고 말이다.
-저기… 잠깐만요. 전 아직…
-어제도 해놓고선 왜 빼요…?
-그땐 제가 인사불성이어서…
-그럼 어제처럼 술 마실까요?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성욕을 감당할 수가 없는 병에 걸렸다고요. 우리 딱 한 번만 더 해요.
-미치겠네… 좋습니다. 일단 술부터 마셔요. 대신 이번 딱 한 번만 하는 겁니다.
-네, 고마워요.
영화 스토리가 점점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점점 흥미가 식어가는 마음을 다스리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귓속으로 렌카의 기다란 콧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에게 이입을 하고 흥분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힙스터 기질이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렌카 같다.
**
영화가 중반부에 도달했을 시점에, 여자 주인공이 묘한 대사를 쳤다.
-저… 죄송하지만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조금만 떨어져주실래요…?
욕구로 가득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숙녀처럼 구는 그녀. 그런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본 남자 주인공이 말했다.
-키스… 할까요?
-…. 네.
렌카가 내게 머리를 치우라고 했던 상황과 비슷한, 공교로운 장면이 영화에 나오고 있었다. 렌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이러면 장난을 안 칠 수가 없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렌카를 빤히 주시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좋아하는 중저음의 톤으로, 남자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했다.
“키스… 할까요?”
“느흡!?”
내가 설마 그 대사를 그대로 읊을 줄은 몰랐는지, 렌카가 무척이나 거센 반응을 보였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컸기에, 상영관 안의 몇 없던 관객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잠깐 쏠렸다. 그에 자신이 민폐를 끼쳤음을 알아차린 렌카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미, 미친놈아…! 죽어…!”
“키스는 안 하는 거예요?”
“왜 아쉬워하고 지랄이야…! 안 해…!”
“지랄이 뭡니까, 지랄이…”
자신이 내뱉은 욕이 꽤나 저급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그녀가 언성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 그건 미안하지만 네가 자꾸 욕을 하게 만들잖아…”
“차라리 그냥 화를 내면 되지… 원래 그렇게 욕을 자주 해요?”
“원래는 거의 안 해…! 이건 다 너 때문이야…”
“이러다 버릇 들겠네.”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 팝콘을 집어먹었다. 이후 진정이 필요한 듯 심호흡을 하고 있는 렌카의 바깥쪽 팔걸이에 놓인 커피를 턱짓했다.
“커피 한 입만 줘요.”
“왜…? 싫어. 콜라 있잖아.”
“빨리.”
“…. 하… 진짜 뭐 이런 이기적인 사람이 다 있어…”
불평을 터뜨린 렌카가 커피의 빨대를 뒤집고 내게 내밀었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줄 줄 알았는데 의외다. 뒤집어서 주는 정도로는 괜찮다 이건가?
렌카가 주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집게손가락으로 내 입에 닿았던 부위를 조심조심 피해가면서 빨대를 잡고 다시 뒤집었다.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간접키스는 했다면서 렌카를 놀리려다가 그만두었다. 강렬한 장난을 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제하자.
팝콘 통에 들어있는, 미처 팝콘이 되지 못한 몇 개의 옥수수 알맹이를 집어 입 안에 털어넣은 나는, 그것을 아그작 거리며 씹어댔다. 그러자 렌카가 한심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속닥였다.
“너 그러다 이빨 다 나가.”
“튼튼해서 괜찮아요.”
“그거 안전불감증이야. 딱딱한 옥수수잖아. 그렇게 씹어대면 깨질 수도 있어.”
“저주하는 거예요?”
“걱정해줘도 난리야…”
“농담이에요. 조심히 씹을게요.”
“…. 그러든가.”
여느 때처럼 틱틱댄 렌카가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어둑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빨개져있을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방금 날 걱정해줄 때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나왔었으니까.
따스한 BGM이 울려 퍼지는 상영관 안. 남녀 주인공이 낙엽 진 나무 아래에서 풋풋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보는 둥 마는 둥하며, 나는 렌카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
“솔직히 말이 안 돼. 매일, 매 시간마다 성욕을 느끼는 불치병이 어디 있는데?”
상영관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렌카의 말. 아까 집중할 땐 언제고 지금 이런 비판을 하다니… 능청스럽기 짝이 없다. 옥수수 알갱이만 남아있는 팝콘 통을 쓰레기통에 버린 내가 말했다.
“색정증이 있지 않나요?”
“계속해서 성욕을 느끼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건 치료가 가능하고.”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재미있게 봐놓고선 내숭은…”
“재미는 있었어. 설정을 조금만 더 가다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야.”
“점수는 몇 점 정도 줄래요?”
“내 기준으로?”
“예. 10점 만점으로 대답해보세요.”
“음… 한 7점 정도는 될 것 같아.”
“깐깐한 부장치고는 점수가 후하네요?”
그 말에 렌카가 코웃음을 쳤다.
“깐깐하긴 무슨… 내 입에서 몇 점이 나오길 기대한 건데?”
“5점?”
“이유는?”
“방금 부장이 설정에 관해서 비판을 했으니까요. 다만 영화 자체는 재미있게 본 듯하니까 5점이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타당하네. 근데 다른 요소도 있잖아.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섹스 연기가 좋긴 하더라고요.”
“그, 그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관한 연기…! 이 무식한 놈아!”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 채로 날 나무라는 렌카. 노골적인 단어에 깜짝 놀란 것 같다.
“캐릭터 연기에 그것도 포함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전체적인… 그래, 전체적인 연기를 말하는 거였어…! 그리고 말을 좀 순화해서 해…! 대놓고 그러지 말고…!”
“어떻게 순화하는데요?”
“애정 신이라는 예쁜 표현도 있고, 베드 신 같은 평범한 표현도 있잖아…!”
“부장의 말처럼 제가 좀 무식해서 표현력이 달리는 걸 어떡하라고요?”
“지금 나 비꼬는 거야?”
“부장이 그렇게 들었다면 그런 거겠죠.”
“말장난하지 말지? 재수 없어.”
팔짱을 끼며 새침데기처럼 구는 렌카를 쳐다본 나는, 말없이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움찔한 렌카가 내 보폭만큼 뒤로 물러났다.
“무, 뭐하는 거야…? 저리 안 가…?”
평소 렌카에 비해 반응이 격하다. 아까 키스와 관련된 장난을 친 터라 감정상태가 조금 아리송해져있는 상태인가보다.
귀신이라도 본 사람마냥 뒷걸음질을 치는 렌카가 통로 벽에 등을 기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간 내가 정색을 했다.
“부장.”
“…. 뭐…!”
“요즘 왜 이래요?”
“뭐가…!”
“왜 이렇게 까부냐고.”
“까, 까불다니… 너 지금 그게 나한테 할 말이야…?”
“친한 사이에 못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너 자꾸 능청을 부리면서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데, 우린 전혀 친한 게…”
렌카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더 나아가 눈을 부릅뜨기까지 했다. 내가 안 그래도 가까운 그녀의 얼굴에 더욱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뭐해…! 야…! 뭐하냐…?”
다급하게 내 의중을 묻는 렌카. 내가 그대로 들이대 입술을 부딪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히죽 웃어보인 나는,
“뭘 그렇게 웃고…”
이를 악 물고 내게 기어오르려는 렌카의 이마에, 내 이마를 살포시 가져다대었다. 톡. 하는 감각과 함께 전해져오는 렌카의 체온. 이마를 통해 그 따스함을 느낀 나는 얼굴을 떼어냈다.
예전의 렌카였다면, 내가 갑자기 이런 짓을 했을 때 손찌검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돌발행동에 입이 벌어진 채로 굳어만 있었다. 그녀의 얼빵한 표정이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한 내가 말했다.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