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35)
EP.335 청춘의 향기 #2
히요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떠나질 않는다.
수영장에 앉아 준비운동을 끝내고,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 미호와 함께 까르르 거리며 좋아하던 모습… 아마 최소 일주일 정도는 계속 생각날 것 같다.
근데 수영복이 좀 작았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노출이 많아서 외설적이었어.
우리 히요리의 정조관념 교육…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겠다.
“선배! 부활동 가는 거예요?”
터벅터벅 부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뒤에서 히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반은 못 되는구나. 그래서 좋다.
“그렇지. 미츠시마는 또 어디 가고 너 혼자야?”
“미호는 먼저 부실에 갔어요.”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맞는데?”
“근데 왜 요새 따로 다녀?”
“그럴 수도 있죠.”
“수영 수업은 재미있게 했냐?”
“엄청 재미있었는데, 힘들기도 했어요.”
“헤엄을 너무 많이 쳐서?”
“그것보단 킥판 잡고 발차기를 너무 오래 했거든요. 지루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워밍업을 열심히 시켰구나.”
“그러게요.”
히요리의 셔츠 단추는 위에가 하나 풀려있었다.
날이 좀 더워졌다고 벌써부터 노출을 시동 거는데, 아주 마음에 안 든다.
그런 모습은 오직 나한테만 보여주란 말이야.
혀를 끌끌 찬 내가 말했다.
“단추 잠가라.”
“싫은뎅. 더워요.”
“잠가.”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자꾸 보수적으로 굴어요? 선배가 우리 할아버지에요?”
“빨리.”
엄한 목소리에 반골기질이 일어났을까?
혼잣말로 무어라 투덜거린 히요리가 반쯤 억지로 단추를 여몄다.
“됐어요?”
“그래.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으… 꽉 막혔네요.”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히요리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온몸에서 스멀스멀 퍼져 나오는 꼰대 기질에 어이가 없어진 듯했다.
킥킥거린 나는 실내 동아리부가 모여 있는 건물을 턱짓했다.
“안 가냐?”
“갈 건데… 왜 약이 오르는 것 같죠?”
“태도가 글러먹었구나. 조언을 해줬으면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지.”
“막 짜증나려고 해요.”
“그렇다니까 다행이네.”
“밉상이당…”
음음. 반응이 의외로 나쁘지 않다.
매번 당해오다가 한 방 먹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히요리를 대할 땐 꼰대력을 폭발시켜야겠다.
“농담이야. 화내지 마.”
“화 안 냈어요. 근데 선배, 이거 사용할 수 있어요?”
제복 포켓에서 직사각형의 종이를 꺼내는 히요리.
그녀가 내게 내민 건, 카페 알바를 할 때 받아갔던… 다섯 개의 도장이 찍혀있는 쿠폰이었다.
저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렌카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나.
“사용할 수 있지. 열 개 채워서 써.”
“반값은 안 돼요?”
“이상한 억지 부리지 말고.”
“이게 왜 억지에요? 열 개 찍으면 음료수 하나 공짜인데, 다섯 개면 반값에 해줄 수도 있잖아요.”
“그거 진상들 논리인데.”
“해줘요.”
“내가 어떻게 해줘? 사장님한테 가서 물어보든가 그럼.”
“그냥 해줘요.”
장난 식으로 심통을 부리는 모습이 예쁘다.
“줘봐 그럼.”
“해주실 거예요?”
“어.”
“거짓말이죠? 쿠폰 뺏은 다음 직접 쓰려고 하는 거죠?”
“해준다고 해도 난리네. 저리 가 이제.”
귀찮은 모기를 쫓아내듯 손을 휘젓자, 헤실헤실 웃은 히요리가 내 손을 피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등에 맨 가방을 앞으로 돌리더니, 그 안에서 스이츄를 꺼내 내밀었다.
“100엔 빌렸던 거 갚을게요.”
“진짜 스이츄로 갚냐?”
“마음대로 하라면서요. 안 받으면 제가 먹을게요?”
“내놔.”
히요리의 손에서 휙 하고 빠져나가는 기다란 포장지.
순식간에 스이츄를 빼앗겨버린 히요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빠른 손놀림에 놀란 듯했다.
“손이 왜 그렇게 빨라요…?”
“소매치기를 자주 했거든.”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시답잖은 농담에도 일일이 반응해주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방금 보니까 가방이 밋밋하던데, 키링 같은 거라도 하나 사줄까 싶다.
레몬 키링은 어떨까? 이미지와 맞아떨어져서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
근데 저번에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요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한데, 반성해야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이어지는 히요리의 물음.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넌 몰라도 돼.”
“야한 생각하고 있구나? 다 보여요.”
진짜 야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개방적으로 굴기는.
넌 수영복을 입으면 안 됐다.
내 열정을 마구 샘솟게 하였으니 빨리 잡아먹어버릴 거다.
라고는 하지만 히요리와의 줄다리기가 쉽지는 않단 말이지.
노력,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
“먁.”
빨래를 걷고 있던 치나미의 머리에 살포시 팔을 얹어놓으니, 그녀의 입에서 특유의 요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엇을 하시는 건가요?”
“갑자기 올려놓고 싶어서요.”
“그럴 수 있어요. 렌카도 제게 자주 이런답니다. 지금처럼 한 팔이 아니라 양팔을 전부 올려놓긴 하지만요.”
“부장이 스승님을 많이 아끼나봐요.”
“말을 참 예쁘게 하시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근데 스승님.”
“말씀하세요.”
“스승님도 수영을 좋아하나요?”
“그럼요. 하지만 잘하지는 못해요.”
치나미가 수영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에 히로인들과 다 같이 해수욕장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러고 보니 1, 2, 3학년 합동 수학여행은 안 가려나?
세 학년이 전부 같은 장소에 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 필수 클리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나오는 이벤트이긴 한데…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한 번 보고 싶네요.”
“뭘요?”
“스승님이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요.”
“낫?”
노골적으로 취향을 드러내자 당황하는 치나미.
팔에 눌린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정리해준 내가 말을 이었다.
“다음에 같이 수영장이나 해수욕장 가요.”
“앗… 네… 그렇게 해요.”
“약속한 겁니다?”
“넷…”
앞서 수영복 이야기를 꺼내니 부끄러워졌는지, 치나미가 들고 있던 롱타올을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썼다.
사람이 왜 저렇게 깜찍한 짓만 할까.
치나미 같은 사람은 국보로 지정해야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그렇게 치나미와 기약 없는 약속을 잡고, 종종 렌카도 괴롭히면서 무탈한 하루를 보낸 다음날.
미술 수업을 하러 이동하던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서 자고 있는 히요리를 발견했다.
반팔 체육복 차림으로 수건을 눈가에 덮은 채 곯아떨어져있는데,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 생각한 나는 조심조심 히요리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살펴보았다.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내뱉는 그녀의 입은 살짝 벌어져있었다.
한쪽 다리까지 스탠드 아래로 내려 보낸 상태였는데, 아주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체육교사가 운동장에 있는데도 간이 크구나.
심지어는 어디서 갖고 왔는지 작은 휴대용 베개까지 베고 있다.
들키면 벌점일 텐데… 아주 자유분방한 녀석이로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나는, 히요리의 넓고 매끈한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응엑.”
그러자 숨을 훅 들이켠 히요리가 느릿하게 눈가를 가린 수건을 치웠다.
그리고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마츠다 선배…? 뭐예요…?”
“미술실 가다가 봤어. 선생님도 계시는데 뭐하는 거야?”
“아 왜 깨우고 잔소리해요…!”
잠이 채 깨지 않은 애교 섞인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옆으로 돌아누워선 다시 잘 준비를 하는 그녀를 향해, 내가 말했다.
“잘 거면 구석에서 자든가. 여기 있으면 들킨다?”
“귀찮앙… 절 좀 내버려둬요…”
“베개는 어디서 난 거야? 샀냐?”
“네… 1500엔… 친구들이랑 공구했어요…”
“공구가 뭐야?”
“공동구매…”
“그건 안 물어봤어.”
“아 괴롭히지 마요…!”
나는 졸음에 잔뜩 취한 채로 사춘기 소녀 같은 대사를 하는 히요리의 옆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으려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미안해서였다. 괜히 단잠을 방해한 것 같아서 말이다.
“치마나 내려.”
“치마?”
“허벅지 보여.”
그 말마따나 히요리는 지금 허벅지가 드러날락 말락 하고 있었다.
잠버릇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면서 말려 올라간 것이다.
“만족했어요…?”
더듬더듬 자신의 치마를 내리다가, 돌연 의미심장한 물음을 건네오는 그녀.
자신의 허벅지를 잘 봤냐는 소리였다.
가당치도 않은 듯 코웃음을 친 내가 대답했다.
“아니, 전혀.”
“넹…”
“더 자라. 들키지 말고.”
“응… 담요 있으면 줘봐요.”
당연하다는 듯 내 쪽으로 한 팔을 뻗는데, 어이가 없다.
나는 히요리의 얇은 팔목을 조심스럽게 잡고, 그녀의 허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거 없어.”
“앞으로 갖고 다녀요…”
방금 들었던 미안함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그냥 더 괴롭힐까?
아니다. 깨운 건 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오냐.”
나는 옆에 널브러진 수건을 들어, 깨끗한 부분이 바깥으로 오게끔 잘 접었다.
이후 히요리의 이마에 고이 올려놓고 어슬렁어슬렁 스탠드를 떠났다.
더운 것만 빼면 아주 평화롭고 무탈한 하루다.
날씨도 어제처럼 맑다. 드넓고 푸르른 하늘을 보니 오늘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