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36)
EP.336 뜻밖의 사자대면
“수고하셨습니다.”
“꺼져.”
허허. 좋게 인사를 해도 매를 버는구나.
헛웃음을 친 내가 렌카를 지그시 쳐다보자, 찔끔한 그녀가 시선을 쓰윽 돌리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왜 자꾸 욕을 해요.”
“하고 싶으니까.”
“세상 참 편하게 사네.”
“어쩌라고.”
“사춘기에요?”
“…..”
렌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유치한 말대꾸를 하는 자신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저런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또 똑같이 굴겠지.
우리 렌카는 겁이 많지만 일단 개기고 보는 신경쇠약 치와와니까.
렌카에게로 가까이 다가간 나는, 찔끔하는 그녀의 등허리를 토닥였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선생님 같은 태도.
그에 몸을 휙 돌리면서 내 손을 뿌리친 그녀가 말했다.
“만지지 마. 더러워.”
“오늘 뭐할 거예요?”
“치나미랑 놀 거야. 넌 방해하지 마.”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요.”
“그럼 됐고.”
“오늘 왜 이렇게 틱틱대지? 그렇게 벌 받고 싶어요?”
“뭐래…! 볼일 끝났으면 이제 사라져.”
렌카가 날 닮아가는 게 눈에 보여서 웃기다.
렌카를 어찌 혼내줄까 고민해보던 나는, 치나미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환기되자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부실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학생회 일이 끝난 미유키와 만난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떡하지? 나 지금 시골에 내려가 봐야할 것 같아.”
미유키가 돌연 저런 말을 해왔던 것이다.
“왜?”
“모르겠어. 엄마아빠가 지금 여기로 오고 있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안 좋은 일이었다면 미유키의 표정이 심상찮았을 텐데, 지금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러브 코미디에서 이런 갑작스런 일이 발생했다면, 별 것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도 보내긴 해야겠지. 미도리와 와타루가 직접 오고 있다는데 별 수 있나.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내가 대답했다.
“알았어. 같이 기다리고 있자.”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시끄럽고, 나가자. 오랜만에 인사나 드려야겠다.”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까?
미유키의 입가가 방긋 올라갔다.
그런 그녀와 함께 정문 쪽으로 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SUV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서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스으윽.
“안녕? 마츠다 군.”
조수석 창문을 내린 미도리의 인사.
그녀뿐만이 아니라 와타루, 그리고 카나까지 있다.
셋 다 웃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방금 했던 생각에 확신이 더해진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물론이야.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네?”
미도리는 여전하구나. 단아하고, 풍만하다.
말만 해도 기품을 줄줄 풍기는 미도리와의 하룻밤은 얼마나 황홀할까?
아래가 텅텅 빌 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 최고의 행운아인 와타루와도 인사를 나눈 나는, 뒷좌석에 탄 카나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누나도 오랜만이네요.”
“안녕.”
밝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예전에 내게 허리를 잡혔던 부분에 대한 쑥스러움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만나면 강렬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나?
적응력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태평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만간 집에 들르겠다는 약속을 한 나는, 떠나는 차 안에서 내게 손을 마구 흔드는 미유키를 보다가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꼼짝없이 혼자 하루를 보내게 됐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렌카한테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다.
아니, 그냥 가서 끼면 되지.
주인이 노예 눈치를 봐서야 되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렌카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마츠다 선배?”
뒤에서 히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려보니, 히요리가 학교를 나가려는 듯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이것이었나?
미유키가 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부활동 끝난 거예요?”
이어지는 히요리의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보인 내가 대답했다.
“어. 너도 끝났냐?”
“네.”
“집으로 가는 길이야?”
“아니요. 놀러 가려구요.”
“그럴 것 같았다.”
“뭐예요? 그 편견이 가득한 대사는?”
“가서 공부나 해. 더운데 맨날 싸돌아다니니까 피부가 시꺼매지는 거 아니야.”
그 말에 화들짝 놀란 히요리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은근히 순진한 면이 있구나.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기다.
“이게 뭐가 까매요! 밝기만 한데!”
콧등에 주름이 질 정도로 인상을 쓴 히요리가 따져오자, 그러려니 한 내가 말했다.
“곧 그렇게 된다고. 선크림 잘 발라라.”
“그러고 있거든요?”
“말대꾸 좀 그만하고. 근데 어디서 노냐?”
“내려가서요.”
“번화가?”
“응.”
“카페?”
“아마도?”
“미호는?”
“걘 먼저 갔어요. 집에 들렀다 오겠대요.”
“그래? 태워줄까?”
“진짜요?”
눈이 커진 히요리의 표정은 정말이지 무척 귀여웠다.
저 얼굴을 본 것 하나만으로도 호구를 자처할 가치가 있었다.
그리 생각한 내가 주차장을 가리켰다.
“차 가지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든지, 같이 가든지.”
“택시비 달라고 하는 건 아니죠?”
“그냥 혼자 가라.”
“아 농담이에요…! 같이 가요.”
냅다 내 옆으로 오더니 가방 어깨끈을 붙잡는 그녀.
천진난만한 히요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찬 나는, 그렇게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
히요리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며 내게 온갖 질문을 쏟아내었다.
대화의 물꼬가 터져 기쁘긴 하지만… 조금 지친다.
재잘재잘 떠드는 그녀를 바라본 내가 말했다.
“좀 조용히 가면 안 될까?”
“싫엉. 조수석에 타면 말동무하랬어요.”
“누가 그랬는데?”
“인터넷에서요. 잠도 깨고 좋지 않아요?”
“애초에 안 졸렸어.”
“그래요? 선배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내 말은 전혀 듣질 않는구나.”
“뭐냐니까요?”
“안 가리고 다 잘 먹어. 가지 빼고.”
“가지… 밥경찰의 대명사이긴 하죠.”
내 말에 공감을 하며 미간을 구기는 히요리의 몸에서 풍기는 상큼한 레몬 향이 차 안에 퍼진다.
향기가 굉장히 좋다. 레몬과 관련된 무언가가 먹고 싶어지는 기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히요리가 가방에서 스이츄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내밀었다.
“먹을래요?”
“아니.”
“먹고 싶은 표정인데? 부끄러워하지 말고 받아도 돼요.”
먹고는 싶다. 하지만 받으면 왠지 지는 느낌이라 조금 꺼려진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잘했다고 할 것 같아.
“됐다. 어디서 내려주면 돼?”
“세 블록 더 가면 카페 있어요. 그때 거기요.”
“그때 거기?”
“고양이.”
“아… 알겠다.”
“그렇죠? 근데 바로 가려구요? 같이 커피 마시고 가지?”
“친구들 온다며.”
“오려면 멀었어요. 약속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서.”
“그럼 너도 집에 들렀다가 가지, 왜 굳이 혼자 있으려고 하는 건데?”
“그러면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래, 뭐… 어떻게 하건 네 마음이지.”
“커피 마실 거죠? 내가 사줄게요.”
이런 적극적인 모습은 다른 히로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면이다 보니 아직도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뭐… 거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처음으로 히요리와 단둘이 따로 만나는 것이잖은가.
내가 무슨 테츠야도 아니고… 발을 뺄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라. 그럼 차는 공용주차장에 댄다?”
“넹.”
그렇게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대어놓은 나는, 히요리와 함께 골목으로 갔다.
그녀는 골목 입구를 들어가면서 주변 곳곳을 살폈다.
행여나 자신이 우산을 씌워주었던 고양이가 아직도 있을까 찾아보려는 것이다.
“없네…”
아무리 눈을 굴려보아도 고양이가 보이지 않자, 히요리가 실망스러운 듯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은근히 정이 많다. 착해 빠져가지고…
“길고양이라서 없을 거야. 괜히 정 주지 마라. 버릇 나빠진다.”
“누구 버릇이 나빠지는데요? 고양이?”
“아니. 너.”
“아 뭐예요…!”
맥락 없는 놀림에 황당했는지 내 등을 미는 히요리.
무의식적인 스킨십 강도가 세진 않지만 그래도 신경 쓰인다.
다른 남자한테 그러고 다니지 마라.
카페 안은 약간 SNS 감성이 느껴졌다.
영세하지만 분위기가 괜찮았다. 디저트도 다양하게 팔았고 말이다.
“뭐 드실래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히요리의 물음.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내가 반문했다.
“자몽 티 먹어봤어?”
“아뇨. 친구가 먹는 건 봤어요. 맛있냐니까 그럭저럭 괜찮다던데.”
“그럼 그걸로 할게.”
“알았어요. 2층 자리 잡아놓고 있을래요? 주문하고 갈게요.”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비슷한 크기. 그러나 카운터가 없어서 1층보다는 훨씬 넓게 느껴지는 그곳엔 손님들이 꽤나 많았다.
자리 위치가 별로임에도 인기가 많구나.
역시 카페는 분위기가 절반을 차지하는 건가?
그러한 생각으로 빈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나는, 뜻밖의 사람을 마주쳤다.
“므응?”
치나미가 구석 자리에서 케이크로 보이는 음식을 먹고 있다가 날 발견한 것이다.
“어…?”
렌카와 함께 말이다.
두 사람이 오늘 놀러 가기로 한 장소가 여기였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