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37)
EP.337 뜻밖의 사자대면 #2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렌카와, 반가운 낯으로 날 반기는 치나미.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나는, 그녀들의 테이블에 남아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놀러 간다던 장소가 여기였나보네요?”
평범하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러나 렌카는 다르게 받아들였나보다.
“읏…!?”
저 스스로 찔끔해버린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저러는 모습이 웃기다.
아니지, 렌카의 입장에서는 나만 쏙 빼놓고 왔다가 걸린 상황처럼 보이려나?
그렇다면 이걸 이용해서 우리 노예를 사랑해주지 않을 수 없겠지?
“맞아요. 이곳의 케이크가 맛있다고 하길래 와봤답니다.”
치나미가 렌카를 대신하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자리에 놓인 흰색의 딸기가 들어있는 케이크.
그것을 본 내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복숭아 케이크가 아니네요?”
“네. 팔지 않아서요.”
팝콘에 복숭아 가루까지 뿌리던 애가 얌전히 딸기 케이크를 먹는다고?
세상이 망해간다는 징조인가? 불안하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이어지는 치나미의 물음에 계단 쪽을 흘깃거린 내가 대답했다.
“후배랑 커피 한 잔 하러 왔습니다.”
“앗, 누구일까요?”
“아사히나 히요리라고… 저번에도 봤었죠?”
“아사히나 히요리…? 아하, 그 검도부 설명회 때 오셨던 분 맞나요?”
“예. 마침 오네요.”
치나미와 렌카의 시선이 내가 가리킨 엄지를 따라갔다.
작은 원목 트레이를 들고 2층으로 올라온 히요리. 앉아있는 나와 렌카, 그리고 치나미를 본 그녀의 고개가 갸웃했다.
“으응?”
안 그래도 개구쟁이 같은 애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은근히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또 잘 어울린다.
카페 안이 환해지는 것 같은 기분.
나는 자신의 큼지막한 눈망울을 끔벅이는 히요리를 위해, 렌카의 옆으로 붙으면서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머뭇거림 없이 다가온 그녀가 트레이를 든 채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건가?
밝게 인사를 하고는 내 옆자리에 착석하더니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몸짓과 태도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네가 여기 왜 있어…?”
히요리가 치나미와 대화하는 틈을 탄 렌카의 물음.
무슨 음모라도 꾸미듯 속삭이는 그녀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나와 내 귀를 간질인다.
은근슬쩍 그녀의 허벅지로 손을 가져간 내가 말했다.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아니… 왜 쟤랑 단둘이 있냐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둘이 뭐 있어?”
아직은 없다.
아니, 있다고 해야 맞을까 싶다.
“아뇨. 후배랑 같이 커피 한 잔 하는 게 뭐가 어때서요? 부장도 저랑 그런 적 자주 있잖아요.”
“그, 그 말이 아니잖아…! 무슨 비유를 나로 해?”
툴툴대는 렌카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치나미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듯 내어주는 딸기 케이크를 먹던 히요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에 흠칫한 렌카가 몇 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아쉽네…? 검도부에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검도부 얘기는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당황했을 때의 렌카 특유의 국어책 읽기까지 튀어나오는데, 빈말이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티가 팍팍 난다.
“주, 중간고사 준비는 열심히 하고 있어?”
자신 또한 어색함을 느꼈는지 대사를 바꿔보지만, 바꾼 대사가 더 상황에 맞지 않는 건 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렌카는 어쩜 이렇게나 귀여울까.
굳이 방금까지 히요리 얘길 하고 있었다는 걸 티내지 않아도 되는데…
이러니까 내가 렌카 덕질을 그만두지 못한다.
“저는 거의 놨어요. 애초에 공부를 엄청 못해서…”
“그래? 그 너랑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잘하지 않아? 모범생이라고 소문 났던데…”
“미호요? 걔는 엄청 잘해요. 시험 때 옆자리에 앉아서 살짝 베껴볼까 고민 중이에요.”
“그래선 안 돼. 컨닝은 나쁜 거야.”
그래도 로봇 같은 렌카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 히요리 덕에, 분위기는 어색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알겠어용. 근데 선배도 그 카페에서 알바하셨었죠?”
“그 카페? 아… 그렇지.”
“그럼 이거 쓸 수 있어요?”
그리 말한 히요리가 카페 쿠폰을 꺼내 렌카에게 내밀었다.
쟤는 왜 저 쿠폰을 항상 챙기고 다니는 거지?
날 놀려먹을 때 쓰려는 건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쿠폰이네…?”
렌카의 눈이 살짝 아련해졌다가, 이내 사나워졌다.
카페 알바를 하면서 있었던 나와의 추억을 되새기다가, 여러 번 굴욕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성질이 난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는 그녀가 웃겼던 나는, 남들 몰래 킬킬대다가 히요리에게 인상을 썼다.
“왜 부장한테는 반값 할인해달라고 안 하냐?”
“그걸 왜 선배한테 해요…! 할 데가 따로 있지.”
“나한테는 해도 돼?”
“넹.”
“그럼 부장이 불편한 거네?”
“아 뭐래요…! 그렇게 안 봤는데 막 이간질을 하려고 하네?”
장난을 치는 내 팔을 약하게 미는 히요리.
운동계 선배가 무섭다는 편견이 있음에도 적응을 참 잘하고 있다.
애초에 렌카와 치나미가 딱딱한 사람은 절대 아니고, 히요리도 그런 편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뭐가 됐든 선배 둘 앞에서 기가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예전에도 생각했듯, 진짜로 히요리가 내 하렘의 열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찬 생각을 해본다.
할퀴는 시늉을 하는 히요리의 손을, 팔을 들어올리며 막아낸 내가 치나미에게 물었다.
“케이크는 입맛에 맞아요? 잘 드시는 것 같네요?”
“복숭아 케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만 만족스럽군요. 후배님도 한 입 드시겠어요?”
제일 큰 딸기 조각이 섞인 케이크를 포크로 잘 받치고 내미는 치나미.
아무렇지도 않게 히요리의 앞쪽으로 머리를 들이민 나는,
“으익…”
히요리가 무심코 작게 내뱉은 당혹스런 탄성, 그리고 턱을 뒤로 쭉 빼는 행동에 속으로 낄낄거리며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개방적인 척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불쑥 들이대니까 당황하긴 하는구나.
히요리가 저런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그녀와 단둘이 그윽한 분위기를 잡게 되는 상황이 기대된다.
“여기 있다가 바로 집에 가는 거예요? 아니면 또 어디 놀러갈 거예요?”
케이크를 꼭꼭 씹어 삼킨 내가 치나미에게 저리 묻자, 그녀가 멀리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모모님 굿즈가 새로 출시되어서요. 렌카와 함께 사러 가기로 했답니다.”
“저도 가면 안 돼요?”
“당연히 되지요. 그런데 후배님께선 아사히나 후배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아사히나는 여기서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대요.”
“앗, 그런가요? 아사히나 후배님께 모모님의 귀여움을 전파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그 말에 히요리가 귀를 쫑긋했다.
“아, 저 그거 알아요. 이번에 음료수 회사랑 콜라보 했던데? TV에서 본 것 같아요.”
“낫? 그 광고를 보셨나요?”
“네. 엄청 귀엽게 생겼던데… 선배 모모님 좋아해요?”
“넷. 굿즈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답니다.”
“아 진짜요? 혹시 사진 같은 거 있어요?”
“무후후… 물론 있지요. 보여드릴까요?”
딱 보니 치나미가 히요리를 좋아하게 될 날은 머지않았구나.
아니, 이미 충분히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덕질에 관심을 보여주는데, 치나미의 성격상 호감이 안 가면 이상한 일이긴 하다.
“하나자와는 어디 가고 우리랑 논대…”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렌카가 나만 들릴 정도라 아주 작게 투덜거렸다.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그런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은 내가 말했다.
“미유키는 시골 내려갔어요.”
“그래…? 무슨 일 있대?”
“큰일은 아닌 것 같던데… 근데 부장.”
“뭐…”
“자꾸 절 살살 긁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내, 내가 언제 널 긁었다고…”
“일부러 이러나? 벌 받고 싶어서?”
“아니거든…? 망상에 빠지지 말고 현실을 살아…! 별 이상한 소릴 다 하고 있어… 짜증나게…”
망상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란다.
라는 말을 삼킨 나는, 렌카가 괜히 찔끔하게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 뭘 쪼개고 난리야…”
그리고는 예상대로 불안한 듯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는 그녀를 무시하며 치나미와 히요리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때우다 보니 금세 음료가 떨어졌다.
이제 헤어져야할 때인가?
히요리의 친구들이 그녀를 잊어먹고 다른 곳으로 놀러가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히요리의 무리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모이니까.
우연찮게 렌카와 치나미를 만나서 데이트가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오늘 이 뜻밖의 사자대면은, 잠깐 내 미래의 편린을 엿본 거라고 생각한다.
렌카, 치나미, 히요리, 그리고 미유키와 함께 집에서 평화롭게 생활을 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것 같은 느낌.
그러니 좋게좋게 생각하자.
“이제 모모님 매장에 갈 거예요?”
반납대에 컵을 올려놓은 히요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내가 대답했다.
“그래야지. 다음에 또 커피 먹자.”
“웬일이래요? 오기 전까진 시큰둥하던 사람이?”
“내가 언제 시큰둥했다고?”
“막 조용히 하라면서 뭐라 했잖아요.”
“그게 시큰둥한 거냐?”
“아님 말구.”
속편한 발언을 해보인 히요리가 밖으로 나가는 날 마중했다.
골목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렌카와 치나미.
그녀들을 곁눈질한 내가 물었다.
“넌 여기 있게?”
“네. 2분 뒤에 애들 온다니까 자리 맡아놓으려구요.”
“괜히 까불다가 시비 걸리지 마라.”
“그건 무슨 뜻이에요?”
“억지로 자리 맡으려다가 다투지 말라는 소리야.”
“에이… 제가 그렇게 개념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어.”
“너무하다… 농담이죠?”
“마음대로 생각해.”
“그럴 거예요.”
말 한 마디를 안 지네.
네가 호텔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 기대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참아주마.
“이만 간다. 재미있게 놀고 내일 보자.”
“응. 잘 가용, 마츠켄 선배.”
히요리 특유의 친해진 사람의 성과 이름을 줄여부르는 호칭.
그것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츠켄?”
기쁜 마음을 억지로 억누른 내가 황당한 척을 하자, 배시시 웃은 히요리가 말했다.
“오늘부터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내 선택권은 없는 거야?”
“그렇죠?”
그래, 그래.
앞으로도 날 더 편하게 대해주렴.
힘없는 웃음으로 감상평을 대신한 나는, 그러려니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간다.”
그리고는 마주 손을 흔드는 히요리를 등지자마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 저렇게 불러주나 싶었는데 오늘 해주는구나.
그저 지나가듯 한 말이지만 상상이상으로 듣기 좋다.
히요리와 내가 더욱 가까워졌다는 증거라서 무척 기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