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38)
EP.338 복숭아를 좋아하는 또 한 사람
긴 줄을 기다린 끝에, 우린 모모님 굿즈 판매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소 어린 여성 비율이 대다수인 그곳에서, 나는 렌카, 치나미와 함께 굿즈들을 둘러보았다.
큰 인기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즐비해있다.
다양한 사이즈의 인형, 컵, 텀블러, 엽서, 공책 같은 기본적인 상품부터 시작해서, 샴푸와 바디워시 같은 생활 용품들도 있다.
대단하다. 하지만 아헤가오 모모님은 여전히 없어서 통탄스럽다.
이상성욕자들의 수요는 수요도 아니라는 것인가?
이건 항의를 해야지 안 되겠다.
정신없이 물건을 고르고 있는 치나미를 흘깃거린 나는, 팔짱을 낀 채 눈으로만 제품을 보고 있던 렌카를 툭 건드렸다.
“부장, 모모님 애니메이션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왔어.”
“근데 왜 부장은 모모님 덕질 안 해요?”
“아이 씨…! 나는 애니면 다 좋아해야 되냐?”
“부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편협한 시각이네. 너다워.”
“편협한 시각? 부장이 할 말인가요?”
“못할 건 뭐가 있는데?”
도도하게 턱을 치켜세운 채로 당당히 개기는 모습이 예쁘다.
공공장소라서 내가 뭘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렌카는 큰 오판을 했다.
툭.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렌카의 제복 치마 부근에 손을 올려놓자,
“흐익…!?”
기겁을 한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
그녀에게는 천만 다행스럽게도, 시선이 끌리지 않고 있는 상황.
이에 안도한 렌카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하는 거야 미친놈아…!”
매번 똑같은 패턴이지만 재미있다.
낄낄거린 나는 까불지 말라는 뜻으로 렌카의 둔부 위쪽을 두어 차례 토닥인 후,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담고 있는 치나미에게로 다가갔다.
“그걸 다 사려고요?”
“넷. 신상품이 많이 나와서요.”
“방에 놓을 공간은 있고요? 모모님으로 꽉 차있을 것 같은데.”
“이날을 위해 진열대도 하나 사놓았지요. 의외로 렌카가 그쪽에 조예가 깊어서 도움을 받았어요.”
렌카는 보관함 같은 쪽에 조예가 깊은 게 아니라, 서브컬처에 조예가 깊어서 잘 아는 건데…
아직 치나미한테 자신이 서브컬처 덕질을 하는 걸 숨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치나미라면 무조건 비밀로 해줄 테고, 이해도 할 텐데.
어차피 나중에 다 같이 함께 살게 되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상관없기는 하다.
그리 생각한 내가 바구니에 담겨있는 포장지 하나를 가리켰다.
“저건 뭔가요?”
“아, 이것은 복숭아 가루에요.”
“아이스티 같은 걸 만들 때 뿌리는 건가요? 아니면 그 팝콘 같은 데에다가?”
“아니요. 과일에 뿌리는 가루랍니다.”
“…. 예? 과일이요?”
“넷. 딸기나 오렌지 같은 것에 뿌리면 순식간에 녹아서 복숭아 맛을 내도록 해주는 가루래요.”
모모님 회사는 왜 저딴 물건을 만든 걸까?
하도 제작할 굿즈가 없어서 아무거나 만들기로 한 건가?
세상이 점점 미쳐 돌아가는구나. 그쪽의 개발팀과 진심어린 토론을 해보고 싶어진다.
“무려 실제 복숭아를 사용한 가루라서, 복숭아에도 뿌리면 단맛이 더 진해질 것 같아요. 내일 제가 가져와볼 테니 함께 먹도록 해요.”
이어지는 치나미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넷.”
나는 우릴 쳐다보는 렌카의 눈빛이 굉장히 불안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복숭아 가루의 첫 타자가 되리란 것을 직감했다는 증거.
그녀도 저 미상의 물질이 수상했나보다.
그래도 속이 착한 렌카답게, 주면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웃기다.
굿즈를 다 산 치나미는 그것들을 가방이 빵빵해질 때까지 쑤셔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큼지막한 쇼핑백 2개를 든 상태였다.
그런 치나미를 도와 쇼핑백을 집어든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차로 향했다.
그리고는 금방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가방을 놔두고 전철역으로 가는 치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렌카와 대화를 나누었다.
“부장은 뒷좌석에 타세요.”
“내가?”
“예. 원래 먼저 내리는 사람이 뒤에 타는 거예요.”
“아니… 어디 타든 상관은 없는데… 치나미네 집이 더 가까운데 왜 날 먼저 데려다줘? 너 내가 가면 치나미한테 이상한 짓 하려고 그러지…!”
“이상한 짓? 구체적으로 어떤?”
“그,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해…!”
데자뷰인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재생되는 것 같다.
렌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연분홍색 틴트를 바른 입술을 앙다물었다.
“부장은 맨날 똑같은 말만 하는 것 같네요.”
“…. 네가 먼저 똑같은 말을 하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앞으로는 색다르게 해볼까요?”
“새, 색다르게…?”
“어때요?”
“난… 별로…”
“동의한 걸로 알고, 그렇게 할게요.”
“내가 언제 동의했어! 별로라고 했잖아!”
“타기나 해요.”
“싫어! 치나미랑 전철 타고 갈 거야…!”
나는 말없이 뒷좌석을 열고, 렌카와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턱짓했다.
그러자 입술을 댓 발 내민 그녀가 무어라고 웅얼거리더니, 치마를 조심하며 좌석에 올라탔다.
탈 거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봉사의 기억은 쏘옥 사라져버린 것 같은데, 조만간 수위를 높여서 다시 해야겠다.
**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예. 그냥 들고만 있으면 돼서 크게 힘든 부분은 없습니다.”
“죄송해요. 폐만 끼쳐서요.”
“폐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넷. 감사해요.”
치나미가 살고 있는 멘션의 엘리베이터 안.
치나미를 도와 쇼핑백을 들어주던 나는, 그녀의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서려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치나미는 참 착하다. 그래서 삭막한 세상에 혼자 보내기가 불안하다.
“스승님.”
“네?”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거 알죠?”
“므아앗…!?”
갑작스런 고백에 조막만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치나미.
귀여움이 뚝뚝 묻어나온다. 치나미가 매고 있는 분홍색 가방의 어깨끈이 그 귀여움을 배가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
그녀의 행동에 절로 아빠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도착했네요. 내릴까요?”
“네, 넷…!”
후다닥 내 옆에 선 치나미에게 한손을 내밀자, 부끄럽기 그지없는 눈빛을 한 그녀가 머뭇머뭇 그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손깍지까지 낀 나는, 풋풋한 분위기 속에서 치나미의 집 현관문까지 향했다.
“그럼… 헤어질 시간이로군요…”
“그러게요.”
“내일 뵈어요…”
“예, 그래요.”
작별인사를 하고는 있지만 손을 놓지는 않는다.
치나미는 이렇게 몸으로 자신의 은근한 고집을 표현하고는 한다.
의사표현은 렌카보다 낫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얼굴이 복숭어처럼 물든 치나미를 보고 있던 찰나,
덜컥.
문이 열리면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끝이 말린 분홍 단발머리를 지닌 여성이 나왔다.
“치나미니? 이제 온… 으응?”
아담한데다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목소리가 굉장히 나긋나긋한 사람이었다.
앞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를 본 순간, 나는 단박에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나미와 똑 닮은 사람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리라.
“누구…?”
깜찍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에게, 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마츠다 켄이라고 합니다.”
“아하…! 네가 마츠다 군이니?”
“예.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나세 모모카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존대를 하더니 마주 상체를 숙이는 그녀.
치나미의 엉뚱함은 역시 어머니를 닮았구나.
소녀소녀하면서도 또 어딘지 모르게 성숙한 듯한 기색이 담겨있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
치나미가 나이를 먹으면 딱 저렇게 될 것 같아.
외모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보살펴주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작은 체구, 치나미를 쏙 빼닮은 다람쥐 같은 토실토실한 뺨, 그리고 분홍분홍한 눈동자…
왜 히로인들의 어머니는 모두 미인에 동안일까?
그런 클리셰는 누가 정립한 걸까?
또 다시 모녀덮밥의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혹시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치나미의 아버지도 엉뚱하다면…
그런 4차원적인 아버지라면, 패배자위도 좋아하지 않으려나.
어차피 하렘이라는 꿈을 이룩하려면 네 사람의 부모님에게도 말을 해야 하는데, 굳이 저자세로 나가지 말고 어머니 쪽을 공략하면 더 쉽지 않나?
물론 피해자가 네 명이 발생하겠지만, 공리주의에 입각해서 여덟 명… 아니, 카나까지 포함해 아홉 명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그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편들에게는 가끔씩 와이프의 영상이 담긴 USB를 보내주면 괜찮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해버린 나는, 그 상념을 날려버리고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모모카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나나세 선배를 데려다드리려고 왔어요.”
“그러니? 고마워. 치나미가 네 얘기를 엄청 많이 했는데… 듬직해서 믿음직스럽네?”
미도리와 같은 말을 하는구나.
역시 히로인들의 어머니는 주인공을 잘 믿는다.
“감사합니다.”
“밥은 먹었니?”
“예. 이노오 선배랑 세 명이서 간단하게 먹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과일이라도 먹을래?”
과일은 분명히 복숭아겠지?
“아닙니다. 다음에 먹을게요. 시간이 늦어서요. 주차도 갓길에 해놔서 차를 빼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그러면 다음에 꼭 오도록 하렴. 맛있는 복숭아를 준비해놓을게.”
그럴 줄 알았다.
보면 볼수록,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치나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관계를 가질 때도 딸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안아달라고 하지 않을까?
상상하니 아랫도리에 급격하게 피가 몰린다.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자신의 큼지막한 눈을 끔벅이는 치나미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허리를 수그렸다.
그러자,
“조심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두 사람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내게 작별인사를 했다.
저 귀여운 모습을 보니까 자꾸 사악한 마음이 일어나는데, 이걸 참아야하나?
쾌락에 몸을 맡겨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혹을 억누르며 멘션을 나온 나는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했다.
이후 요 위에 대자로 누워 미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음음. 미유키의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니 나쁜 생각이 씻겨나가긴 커녕 더 강해진다.
“뭐해?”
-지금 잔치 중이야.
“잔치?”
-할머니 집에서 키우는 개가 새끼를 아홉 마리 낳았대. 그래서 경사라고 친척들을 다 불러 모았어.
그래, 이런 사소한 일 때문일 것 같았다.
헌데 아홉 마리라니… 대단하긴 하다.
그나저나 미유키네 할머니가 사는 동네엔 키우던 동물이 새끼를 여러 마리 낳으면 축제를 하는… 그런 미신이 있나보다.
아주 특이한, 러브 코미디나 청춘물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신이다.
“아 진짜?”
-응. 맛있는 반찬 많이 갖고 갈게.
이어지는 미유키의 말에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내가 대답했다.
“알았다. 오늘 돌아오는 거야?”
-잘 모르겠어. 늦게 가거나 내일 아침 일찍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미유키도 늦게 온다?
이러면 밤까지 엄청 심심할 텐데… 렌카를 마구 괴롭히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