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78)
EP.378 그녀의 다짐 #2
“아니 왜 꿈쩍도 안 해?”
다시 한 번 등 뒤로 가서 날 밀어본 히요리의 감상.
몸을 돌릴 때마다 내 등으로 돌아가는데, 쬐끄만한 건 아니지만 나보다 훨씬 작은 애가 저러니 마치 주인의 주변에서 뽈뽈 돌아다니는 강아지 같다.
“선배 혹시 벽이에요?”
“뭐라는 거야…? 여기서 뭐하냐니까?”
“선배 보이길래 따라왔어요. 사탕 먹을래요?”
갑자기 사탕이라고?
나중엔 내가 렌카를 조교할 때처럼, 하루에 한 번씩 준다고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방금 양치질하긴 했는데… 일단 줘봐.”
“왜 양치질을 방금 해요?”
“팝콘 먹어서 옥수수 껍질 때문에.”
“팝콘?”
“교실에 누가 가져왔더라.”
“저도 줘요.”
“다 먹어서 없어.”
“그럼 저도 사탕 못 줘요.”
“애초에 내가 산 팝콘도 아니었는데?”
“그런 거 몰랑.”
“심보 고약한 거 봐라.”
황당함이 서려있는 내 말에, 까르르 웃은 히요리가 막대사탕을 꺼내, 포장지를 까더니 내게 먹으라는 듯 내밀었다.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왜 포장지를 뜯어?”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 거예요.”
내가 종종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웃기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얌전히 히요리가 내민 사탕을 삼켰다.
“잘 먹을게.”
“네. 근데 수학여행 장소는 정해졌어요?”
“어. 바다로 가게 됐어.”
“시즈오카로 가요?”
“그럴 걸?”
“그럼 같은 곳이겠네?”
“그건 모르지. 거기 해수욕장 많잖아.”
“어디 해수욕장인지는 몰라요?”
“몰라. 자세히 안 봤어.”
“인생을 참 편하게 사시네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고민을 들으면 그런 말은 못할 걸?
히요리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려는 시늉을 한 나는, 그녀가 냅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자 힘 빠진 콧바람을 내쉬었다.
“너만 하겠냐. 1교시 수업 뭐야?”
“수학이요.”
“월요일부터 수학이면 이번 주는 재수가 없겠네.”
“왜요?”
“수학 어렵잖아.”
“어차피 잘 거라서 괜찮아요.”
“그런 얘기를 왜 당당하게 하는 거야?”
“거짓말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렇긴 하네.
히요리의 솔직한 면모에 헛웃음을 친 내가 말했다.
“열심히 들어. 잠잘 생각하지 말고.”
“저를 너무…”
“억압하는 거 아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빼앗긴 히요리가 입맛을 찹찹 다셨다.
레퍼토리를 바꿔야하나 싶은 감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런 궁리를 하는 게 귀엽기도 하지만 어이가 없기도 하다.
“들어가. 수업시간 다 됐다.”
“같이 땡땡이치는 건 어때요?”
“너는 시험 걱정 같은 건 안 하냐?”
“안 하죠.”
“그래… 긍정적이어서 보기 좋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수업 들어. 자면 혼날 줄 알아.”
“제가 자는지 안 자는지 선배는 모르잖아요.”
“그러네. 수업 끝나고 미츠시마한테 물어볼까?”
“미호는 안 잤다고 해줄 텐데?”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던데. 오히려 깨우면 깨웠지.”
“맞긴 해요. 미호는 가끔 엄마 같아요.”
히요리 같은 사람 옆엔 미유키 같은 포지션이 있긴 해야 맞다.
그녀의 입장에선 그 사람이 미호겠지.
히요리가 준 사탕을 입에 문 나는, 왜인지 모르게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에 멋쩍은 듯 뺨을 긁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냐?”
“그냥요.”
묘하게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은 기분인데… 맞나?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그 적극성이 도드라지는 듯하다.
뭔가 마음을 다잡은… 그런 느낌이 든다.
“오늘 아이템 줄까요?”
“아이템?”
“동물들의 숲이요.”
“그거? 주면 고맙게 받지.”
“알았어요. 밤에 연락할게요.”
“너무 늦게는 안 돼. 평일이니까.”
“선배는 가만 보면 은근히 모범생 같아요.”
“칭찬 고맙고, 머리나 좀 정리해라.”
그리 말한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아래로 쳐진, 그런 와중에도 톡 튀어나온 잔디 같은 바보털 주변의 윗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히요리가 자신의 머리를 내리누르더니 말했다.
“쉬는 시간에 볼륨 먹일 거예요.”
“왜 등교하기 전에 안 하고?”
“늦잠 잤어요.”
“그런데도 또 자려고?”
“원래 피부가 좋은 사람들은 잠이 많아요.”
“자랑이다. 뒤로 돌아.”
엄한 말투에, 히요리가 순순히 자신의 몸을 돌렸다.
그런 히요리의 등을 툭 떠밀며 반쯤 강제적으로 걸음을 옮기도록 한 나는, 가기 싫다며 재잘재잘 떠드는 그녀와 함께 1학년 복도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3학년 수학여행도 바다로 정해졌을까?
한 번 물어봐야겠다.
**
“부…”
“으익…!”
부르기도 전에 내 인기척을 알아차리고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렌카.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졸지에 혼자 남게 되어버린 치나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므응?”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멀어지는 렌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치나미가, 가까이 다가온 내게 물었다.
“왜 후배님을 피하는 느낌이 들까요?”
“글쎄요. 야한 생각이라도 했나보죠.”
“야한 생각을 하는데 어째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요?”
치나미의 고개가 한쪽 방향으로 귀엽게 쏠렸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야한 짓들을 생각해보는 모양.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거나, 뒤에서 꼭 껴안거나…
러브호텔에서 마사지를 하거나, 그 뒤에 격렬한 관계를 나누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였는지, 치나미의 눈동자가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점점 뺨이 불그스름해지는 그녀를 보자니 폭소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
부끄러워하고는 있지만, 변태 같은 행위의 내성만큼은 치나미가 렌카보다 수백 배는 더 낫다.
그리 생각한 내가 말했다.
“지금 스승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랑 비슷하겠네요.”
“아하… 이, 이해했어요.”
“그런데 3학년 수학여행 장소는 정해졌나요?”
“넷…! 바다와 계곡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으나 계곡으로 정해졌답니다.”
아쉽다. 너무나도 아쉽다.
렌카와 치나미까지 바다로 가게 되면 3P, 더 나아가 미유키를 포함해 4P에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다음 학기 여행을 기대해봐야 하나?
아니, 방학 때 따로 바다를 가든지 해야겠다.
“그렇군요. 대회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요?”
“그럼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후배님이 참가하지 않는 건 무척 아쉽지만요.”
“겨울 대회 땐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스승님.”
“네?”
“저번에 부장과 함께 라피아 호텔에 갔었던 거 기억해요?”
“느앗…!? 기, 기억은 하는데요…? 왜 물으시는지요…?”
예전에 렌카와 치나미를 러브호텔로 데려갔을 땐, 각자 개인 마사지만 해주면서 관계도 따로 맺었다.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나와 함께 야릇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데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으나,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렌카도 플러그를 시도하여 성공했을 만큼 잘 조교되었고, 최근 치나미도 내가 몸을 만져줄 때마다 평소에 비해 강한 흥분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두 사람과 한 침대에서 여러 일들을 해볼 생각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진짜 쓰리섬. 목적은 그것이다.
“혹시 이번에도 생각이 있나 해서요.”
“낫… 그, 그런…?”
어쩔 줄 몰라 하는 치나미.
몸까지 배배 꼬기 시작하는 그녀의 등을 잘 토닥인 내가 방긋 웃어보였다.
“거기서 같이 푹 쉬면 좋을 것 같아요.”
“아하… 그러시군요…”
“예. 어떻게,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으음… 저야 후배님과 함께 쉬면 무척 편안하고 좋긴 한데요…”
“부장이 문제다?”
“그, 글쎄요… 문제라기보다는… 흐으음…! 이것은 렌카와 함께 잘 토의해보아야 할 것 같군요…!”
“부장은 승낙할 겁니다.”
“앗…? 제게 여쭤보기 전에 렌카에게 미리 언질을 드렸었던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분명 알겠다고 할 거예요.”
“그, 그런가요…?”
반신반의하는 치나미의 표정이 무척 깜찍하다.
“예. 일단 이야기 잘 나눠 봐요. 저도 부장한테 얘기해놓을 테니까요.”
“넷… 알겠어요… 앗, 이럴 게 아니라 일을 해야…”
“오늘은 제가 다 할 예정입니다. 스승님은 검도 연습해요. 대회 준비해야죠.”
“저는 괜찮은데요…?”
“제가 안 괜찮아요. 최근 매니저 일을 하면서 매번 허공에 손을 휘두르잖아요. 그럴 바에 마음놓고 훈련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앗… 그래도 될지…”
“안 될 게 뭐가 있나요? 힘든 일도 없는데. 걱정하지 말고 훈련해요.”
“그러면 제가 오늘 갖고 온 복숭아를 후배님께 전부 드려야겠군요.”
음음…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치나미는 마음씨가 너무 곱다.
아마 어머니인 모모카를 닮았겠지?
갑자기 설거지를 하는 모녀의 가운데에 끼어들어 허리를 감싸고 싶어진다.
“한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실 중앙에서부터 심판을 봐주는 선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테츠야가 죽도를 회수하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대는 어렸을 때부터 검도를 배웠던 1학년 후배.
그에게서 한판승을 따낸 건가?
검도도 열심히 하고, 복싱도 열심히 하고…
우리 테츠야, 많이 성장했구나.
미리 좀 저렇게 해보지… 빼앗길 건 다 빼앗겨놓고 지금 하면 뭐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훈련을 하러 가보겠다는 치나미에게 웃는 낯으로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저 멀리서 이쪽을 흘끔거리다가 눈을 마주치자 흠칫하는 렌카에게로 다가갔다.
“부장.”
“…..”
“부장.”
“아, 누구…”
웃기지도 않는 모른 척을 하고 있다.
애써 태연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그녀를 바라본 내가 건조실을 가리켜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따라오세요.”
“내, 내가 왜… 오늘 치 사탕은 아까 먹었는데…”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무슨 할 말…?”
“부장이 도와줄 거 있어요.”
“바, 방금은 할 말 있다고… 그랬잖아.”
“빨리요.”
불안한 듯 데구르르 굴러가는 렌카의 눈동자.
식은땀마저도 흘릴 것처럼 불안해하고 있으면서, 따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이 날 무척 싫어하던 그 강압적인 부장이 맞나?
가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현재의 렌카와 비교되어서 믿기 힘들뿐만이 아니라, 감회가 새롭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조심 날 따라 걸음을 옮기는 렌카와 건조실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