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83)
EP.383 합동 수학여행 #2
미유키가 흘끔흘끔 눈치를 보며 가방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있다.
그것의 정체는 속옷이었다.
미유키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항상 이랬다.
속옷 같은 것도 내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저런 식으로 숨겼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무조건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는다.
이미 그녀와 할 것도 다 하고, 볼 것도 다 봤음에도 말이다.
“뭘 그렇게 숨겨?”
내 말에 화들짝 놀라선 속옷을 깊숙이 쑤셔 넣는 미유키.
세면도구와 수건 등을 차곡차곡 얹어놓고 내게로 돌아온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TV에서 재미있는 거 안 해?”
히요리는 아마 미유키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겠지?
부끄부끄한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다소 과감한 면도 있긴 한 터라, 첫 관계 때 승부속옷이라며 무척 야한 디자인으로 입고 올 것 같다.
“안 하는데.”
“배는 안 고파?”
“30분 전에 먹었잖아.”
“아, 그렇지.”
깜박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 옆부분을 두드린 미유키가 누워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허리춤에 엉덩이를 붙여 앉더니, 복부를 손바닥으로 톡톡 건드렸다.
“뭐하냐?”
“그냥.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구.”
“갑자기?”
“왜? 끝났으니까 할 수도 있지.”
“그렇긴 하네. 근데…”
“응?”
“수영 못할 것 같으면 눈치 보지 말고 말해.”
빠져 죽을 뻔한 날 이후 생긴 약간의 물 트라우마를 말함이었다.
이를 눈치챈 미유키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데서 놀게?”
“그래야지.”
“배려해줘서 고마워. 난 수영 못하는 애들이랑 얕은 물에서 물놀이하면 돼. 그리고 학생회라 학생들 지켜봐야 해서 자리를 비워야하는 시간이 많을 거야. 특히 1학년이랑 합동으로 가는 거라서, 엇나가지 않게 잘 봐야지.”
“그러냐?”
“응. 그래도 저녁에는 시간 많을 테니까 숙소에서 같이 있자. 주변에 놀러도 가고.”
“알았다. 오늘 자고 가?”
“아니. 집에 들러서 언니랑 놀아줘야 돼. 요새 외박 너무 많이 한다고 심심하대.”
그렇다면 카나 또한 우리 집으로 초대하면 되지.
자매와 할 일은 많다.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가게?”
“한 10분 뒤에?”
“태워줄게 그럼.”
“고마워, 마츠다 군.”
오래 만난 연인들은 감사와 사과에 인색해지고는 하는데, 미유키는 그러지 않아서 참 좋다.
물론 내가 미유키와 오래 만난 건 아니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다.
그나저나 왜 지금은 또 마츠다 군일까. 아까는 이름으로 불렀으면서.
편한 건가? 하긴, 하도 오랫동안 성씨로만 불러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나도 이젠 이름으로 불리면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미유키와 함께 요 위에서 뒹굴거린 나는, 시간이 되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후 다시 돌아와, 휴대폰 카메라로 미유키와 함께 싼 가방을 찍어 히요리에게 전송했다.
우웅-!
카페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나?
답장이 굉장히 빠르다.
[내가 네 짐꾼이냐?] [부탁해요♥]뒤에 하트는 뭐야? 요망하기 짝이 없는 것.
다른 남자들한테도 저런 이모티콘을 보내니?
아닐 거라고 믿는다.
[싫어.] [왜용? 부탁까지 했는데.] [목적이 너무 뻔히 드러나는 부탁이라서 와 닿지가 않아.] [들켰나? 그래도 부탁해요. 우리 집 냉동실이 꽉 차서 얼음물을 못 넣어요.] [미츠시마한테 말하면 되잖아.] [선배가 가져다줬으면 좋겠어요.]고작 텍스트에 진정성이 웬 말이겠냐만, 이번엔 진심이 보이는 것 같긴 하다.
특별히 들어주마. 대신 이건 공짜가 아니라 나중에 갚아야할 거다.
[알았다.] [고마워요. 상으로 까까 줄게요.]무슨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를 대하듯 하는구나.
근데 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까?
히요리도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나는 휴대폰 키패드를 두드렸다.
[필요 없어.] [그러면 야한 사진은요?] [그건 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잠시만요.]히요리의 답장을 보고 설마 싶었던 나는, 농담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전에 히요리가 사진을 전송해오자 황당함이 가득 서려있는 헛웃음을 쳤다.
동시에 아랫도리에 피가 확 몰려옴을 느꼈다.
혓바닥을 빼꼼 내밀고 윙크를 하며, 자신의 와이셔츠 단추에 검지를 올려놓고 아래로 내려서 가슴골을 보여주는…
그런 사진이 왔기 때문이었다.
각도와 보낸 시간으로 보아, 미리 찍어두었던 사진인 모양이었다.
하트 이모티콘을 덧붙인 문자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아예 잡아 잡수라고 그러는구나.
내일 빈틈을 보이기만 해봐라. 그대로 덮쳐준다.
[만족해요?]사진을 터치하여 큰 화면으로 감상하고 있던 나는, 이어지는 히요리의 메시지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히요리와의 메시지를 끝마친 나는 요 위에 대 자로 누웠다.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대는 된다.
내가 가장 바라는 건 미유키와 히요리의 냉전이 조금은 완화되는 것.
부디 내일 그럴 수 있길 바라며, 나는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
“버스가 엄청 많네.”
교문 앞에 늘어서있는 버스를 본 내 감상에, 미유키가 우려스런 투로 말했다.
“1, 2학년 합동이니까.”
학생들이 많은 만큼 관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야무진 미유키라면 무엇이든 잘할 텐데,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구나.
다른 학생회도 있고, 각 반의 반장들에게 당부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하니 통솔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바로 달려올 거야?”
“어.”
“믿음직하네? 명심하고 있을게.”
내 허벅지를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며 방긋 웃는 미유키.
날 안심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안심하기 위해 하는 행동인지 헷갈린다.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무척 높을 것 같다.
교내에 주차를 마친 나는, 자신은 학생회 선배를 만나야하니 먼저 버스에 가있으라는 미유키의 말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가방과 내 가방을 양쪽 어깨에 한 짝씩 짊어진 채로, 나는 마주치는 우리 반 동급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히요리가 있는 1학년 버스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았으나, 나는 무척 쉽게 히요리를 찾을 수 있었다.
노란 머리, 그 중에서도 톡 튀어나온 바보털만 보면 되는데 어려울 리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인파를 헤치고 히요리에게로 다가간 내가 미호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아사히나.”
그러자 히요리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밝은 낯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마츠마츠! 안녕.”
무난하게 흰 티셔츠와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
목에 걸려있는 학생증의 줄이 가슴 아래로 내려온 모습이 은근히 야하다.
의외로 노출이 없는데, 바다에서 마음껏 뽐낼 생각인 건가 싶다.
가방에서 약속한 얼음물 두 개를 꺼낸 내가 그것을 히요리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아라.”
“오.”
양손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페트병을 받은 히요리의 탄성.
감상이 저것뿐인가?
담백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감정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느낌이다.
가방을 닫는 날 흘깃거리며 배시시 웃은 히요리가, 손에 들고 있는 페트병 하나를 미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공을 돌렸다.
“선배가 네 것도 챙겼어.”
히요리는 이렇게만 보면 배려심이 참 넘치는데… 예상하지 못할 때 악셀을 마구 밟는다는 말이지.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는 미호의 인사를 손을 휘젓는 것으로 받아준 내가 히요리에게 말했다.
“간다.”
“벌써요? 상 받아가야죠.”
“무슨 상?”
히요리가 등에 맨 커다란 여행가방에서 스이츄를 꺼내, 내 손을 강제로 펴며 그 위에 올려놓았다.
“까까 준다고 했잖아요.”
“굳이 까까라고 해야 되냐?”
“별로에요? 그러면 엉덩이 토닥토닥해줄까요?”
“사람들 있는데서 그런 말은 자제하라고 했지?”
“뭐 어때요. 야한 말도 아니잖아요.”
“가벼운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잖아. 자제할 수 있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내자, 그녀의 입이 꾸욱 다물리며 눈동자가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저번에 내가 히요리 자신의 이름을 불렀던 게 기억나 쑥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 깜찍한 모습에 피식한 나는, 미리 사둔 젤리 두 봉지를 미호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가면서 히요리와 같이 먹으라 말하고는 우리 반이 탈 버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테츠야가 주변 학생들에게 미유키를 봤냐며 묻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좋은 날인데 아침부터 똥을 봐버리니 기분이 팍 상한다.
오늘만큼은 놈과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미유키가 부반장과 함께 이쪽으로 오더니 말했다.
“얘들아, 인원 체크하게 잠깐 내 앞에 네 줄로 서볼래?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은 체크 끝나고 시간 줄 거니까 그때 다녀와.”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미유키의 앞에 모여 오와 열을 맞추는 학생들.
이에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인 미유키가, 들떠있는 학생들을 손으로 일일이 세기 시작했다.
미유키가 차에서 했던 걱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우리 미유키는 은근한 카리스마가 있다.
무어라고 말을 하면 따르고 싶어진단 말이지.
맨 뒷자리에 서있는 내게 다가와, 수를 헤아리는 척 검지를 까딱이더니 남들 몰래 내 허리를 약하게 꼬집는 미유키.
짝다리를 짚은 채로 서있는 날 그렇게 나무란 그녀는, 버스 안에서 한 번 더 체크를 할 거라고 말하고는 학생들에게 15분의 시간을 주었다.
다시 어디론가 가는 미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심하게 빵을 한 입 베어 먹고 있는 빵녀를 불렀다.
“야.”
“콜록.”
“여분 빵 있으면 음료수랑 바꿀래?”
“콜록… 응…”
“근데 넌 화장실 안 가냐?”
“나, 난 안 가도 돼…”
“그러냐? 그럼 타자.”
“아, 응…”
빵녀가 입는 수영복은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분명히 밋밋할 테지만, 거기에서 오는 꼴림도 있는 법이지.
오늘 많은 학생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빵녀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