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87)
EP.387 과감한 반격
“뭐했었어? 바다 들렀다 왔어?”
자그마한 포크로 잘린 케이크를 찍어 입으로 가져가는 미유키.
생크림이 살짝 묻어버린 그녀의 한쪽 입가를 엄지로 닦아낸 내가 대답했다.
“어.”
“수영한 거야?”
그 스킨십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인 미유키가, 나와 대화를 하다 말고 멈칫했다.
부반장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자신과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꼴이 굉장히 시린 모양인데, 부러우면 너도 나한테 관심을 줘보든가.
그럼 미유키랑 같이 이것저것 해준다.
그러고 보니 반장이 먼저 양아치의 마수에 당하고, 부반장이 하렘에 편입되는 게 NTR, 조교물의 정석적인 패턴 아니던가?
상상하니까 아랫도리에 피가 몰린다.
“수영했냐구?”
내가 먹기 좋게끔 미리 준비해둔 작은 그릇에 케이크를 잘라서 내민 미유키의 물음에, 포크를 든 내가 대답했다.
“어, 했어.”
“어땠어?”
“그냥저냥 할만하던데. 온도도 적당해.”
“그래? 케이크 다 먹고 넷이서 잠깐 다녀올래? 마츠다 군은 샤워 또 해야 돼서 번거롭나?”
“난 상관없어.”
“그러면 옷 갈아입고 로비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
“알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과 디저트를 먹은 나는, 뒤에서 미유키를 포옹한 채 로비를 거닐었다.
미유키의 뒤꿈치에 내 앞꿈치를 딱 붙인 채로, 마치 2인 3각을 하듯 뻣뻣한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우리.
발을 좀 제대로 붙여보라고 깔깔거리는 미유키의 장난기 어린 타박을 들으며, 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다.
이후 호텔에 있는 편의점에서 젤리를 비롯한 간식거리를 사러 가고 있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 싫은 얼굴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테츠야였다.
저놈이랑 엮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왜 내 시야에 보이는 걸까.
이거 신께서 빨리 테츠야를 치워버리라고 계시를 내려주시는 게 아닐까?
테츠야의 표정은,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썩어문드러진 게 티가 났다.
내가 미유키를 끌어안고 복부를 꾸욱 꾹 누르면서 장난을 쳤던 모습을, 서로 딱 달라붙은 채로 엘리베이터로 가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놈에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한 내가 물었다.
“여기서 뭐해? 사람이라도 찾냐?”
“…. 아니.”
“바다는 놀러 갔다 왔고?”
“어. 나 이만 가볼게.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러냐? 재미있게 놀아라.”
“…..”
평소엔 짜증이 나도 대답은 하던 놈이 날 무시하며 호텔을 나간다.
목소리도 상당히 가라앉아있었고 말이다.
터지기 직전까지 온 것 같은데… 지금 나는 너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뭐든 해다오.
빨리빨리 처리해버리게.
간식거리를 사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하면서 물만 치댔던 트렁크와, 미유키가 추워할 때를 대비해 그녀에게 입힐 가운을 챙겼다.
그리고는 로비로 돌아오니, 편한 복장을 입은 세 사람이 보였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없나?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느낀 나는, 입맛을 다시며 셋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
**
바다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 사람의 물놀이가 굉장히 건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부반장과 빵녀가 바다에 들어간 직후부터, 상황은 건전한 러브 코미디물이 아니라 야겜의 이벤트 CG처럼 변질되었다.
물놀이를 하면 할수록 젖어가는 두 사람의 옷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입고 있는 흰 티셔츠가 바닷물에 젖어 들어가자 피부가 안쪽에서 비치기 시작했는데, 속옷 색깔은 물론이요 굴곡진 허리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반장은 전형적인 모범생 같은 얼굴과는 달리 굉장히 공격적인 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윗가슴에 X자로 교차한 끈이 보이는 야한 속옷을 입고 있었다.
저런 과감한 브라라니… 갑자기 성에 눈을 뜬 건가?
내가 알려주고 싶어진다.
또한 의외로… 빵녀의 몸매가 대단하다.
가슴은 조금 작지만 골반이 양옆으로 톡 튀어나와있는데다, 허리가 무척이나 잘록해서 후배위를 하면 시각적인 쾌감이 상당할 것 같았다.
박을 때마다 콜록거리는 빵녀의 기침소리를 상상해보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요즘 빵녀를 보면 욕구가 마구 샘솟는데, 예전에도 생각했듯 하렘의 꿈을 이룬 후에 마수를 뻗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어쩌면 내가 너무 야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저 장면이 야겜의 CG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며 상념을 날려버린 나는, 파인애플 꼬치를 오물거리고 있는 미유키를 보며 입을 벌렸다.
“나도 한 입 줘봐.”
“밥 먹어야 돼서 싫다더니?”
“한 조각 정도는 괜찮잖아.”
“돼지.”
“돼지?”
“이 돼지야.”
애정이 잔뜩 섞여있는 투로 날 놀린 미유키의 눈가가 호선을 그렸다.
오늘따라 미유키의 애교가 남다르다.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이겨먹겠답시고 반격을 하려고 하지는 말자.
그녀가 내민 꼬치에서 파인애플 조각을 입으로 하나 가져온 나는, 과즙이 팡팡 터지는 시고 달달한 맛을 음미하며 물었다.
“너는 물에 안 들어가냐?”
“나는 조금 이따가 갈래.”
그날 바다에서의 일은,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 위험했다.
자칫하다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는, 똥겜다운 이벤트였다.
미유키는 괜찮다고는 했으나 트라우마가 도질까 걱정이 많았는데, 목소리가 밝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참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잔잔한 파도, 모래찜질을 하는 젊은 학생들, 그리고 물장구를 치는 가족 단위의 여행객…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나른해진다.
꽥꽥거리는 갈매기 소리만 빼면 완벽했으리라.
내일도 이렇게 부드러운 기류가 흘렀으면 좋겠다.
그런 희망사항을 가진 채로 파라솔의 그늘 아래에서 편히 쉬던 나는,
“나 이제 들어갈 건데 같이 가줄 거지?”
돗자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끔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올려놓는 미유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가자.”
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미유키가 내게 손을 뻗었다.
잡아달라는 뜻. 미유키의 귀여운 행동에 피식한 나는, 그녀와 손깍지를 끼고 천천히 바다로 가, 물에 발을 담갔다.
“차가워?”
“아니? 마츠다 군이 얘기했던 대로 적당해.”
찰박-!
그리 말한 미유키가 발을 약하게 휘저어 내 다리에 물을 튀겼다.
히요리도 저랬는데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역시 은근히 닮았다니까.
서로 으르렁대지만 않으면 무척 친해지리라는 확신이 선다.
“응. 근데 옛날 생각나지 않아?”
“무슨 옛날?”
“마츠다 군이 우리 가족들이랑 여행 온 날.”
“그건 도착할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 근데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
“좋은 일밖에 없었는데?”
나와의 추억을 쌓았던 일을 말하나보다.
내게 구해지고, 보트에 올라타 잔뜩 머금은 바닷물을 토하고, 또 나는 그것을 피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내가 없는 것을 알고 빨리 오라는 성화를 내고, 단둘이 대화를 하다가 그 전에 찍었던 둘만의 첫 사진을 저장하라고 하고…
미유키와 있었던 일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겠지.
미유키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나는 발을 휘휘 저으면서 그녀의 앙증맞은 발바닥에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모래를 쌓기 시작했다.
물론 모래는 곧바로 바닷물에 씻겨나갔으나, 내 목적은 미유키와 은근한 스킨십을 하는 데에 있었다.
처음엔 많은 양의 모래를 옮기던 발이, 나중엔 그냥 미유키의 발등을 매만지기만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유키와 내 몸이 점점 돌아가면서, 서로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어느새 자연스레 이마까지 대게 된 건 덤이었다.
“미유키! 마츠다 군! 이리 와!”
종아리의 절반까지 차오르는 수심까지 간 부반장의 외침.
그 밝은 목소리를 들은 나는 눈으로 미유키의 의중을 물었다.
이후 미유키가 괜찮다는 시선을 보내자,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강하게 꾸우욱 부딪치고 부반장과 빵녀에게로 향했다.
**
바다에서 건전한, 그러나 속은 문란한 시간을 보낸 나는 저녁이 되자 호텔로 돌아왔다.
배가 고픈지 연신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는 미유키.
식당이 있는 층을 살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내가 히요리와 함께 밥을 먹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하려고 할 때였다.
“어?”
미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짤막한 탄성을 내뱉더니, 돌연 양손으로 내 뺨을 꾸욱 눌렀다.
그 돌발적인 행동에 움찔한 내가 뭘 하는 거냐며 말을 하려는 찰나, 그녀가 자신의 입술을 들이밀었다.
기승전결 따윈 없는, 갑작스럽기 짝이 없는 애정표현이었다.
그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웠으나, 본능은 입술에서부터 느껴지는 도톰말랑한 감각, 그리고 콧속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향긋한 자두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혀까지 얽는 진한 키스는 아니었지만, 미유키가 먼저 해온 것치고는 충분히 과감했다.
그런 미유키의 행동에 가만히 있던 나는, 그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떼어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냐?”
“뭐가?”
“갑자기 왜 이래?”
“그냥.”
시치미를 뚝 떼는 미유키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승리감에 도취된 듯한 웃음 같은데… 대체 뭐하는 걸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미유키의 의중을 파악해보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시선이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쪽에 꽂혀있자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거기에서 히요리가 우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미유키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한 이유를 알겠다.
히요리에게 우리 사이를 보여주면서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한 거였다.
방식이 어이가 없긴 하나, 신선한 느낌도 든다.
“아니, 뭐하는 거예요…?”
오만상을 다 쓴 채로 다가오는 히요리.
말끝이 쭈우욱 올라가는데, 누가 봐도 질투심을 느낀 소녀 같은 모습이다.
반면 미유키는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히요리를 도발하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기까지 했다.
“왜 그래? 문제 있어?”
길쭉한 다리를 성큼성큼 놀리며 다가온 히요리를 향한 여유로운 물음.
저번에 우리 집에서는 히요리가 미유키에게 한 방 먹였는데, 이번엔 미유키가 히요리에게 펀치를 날리는구나.
기가 찼는지 훅! 하는 숨을 내뱉은 히요리가 팔짱을 꼈다.
“사람들 많은데서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면 어떡해요?”
“사람들 별로 없는데? 그리고 남자친구랑 그거… 하는 게 뭐 어때서?”
“선배는 학생회니까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건 다른 의미로 모범을 보이라는 뜻이야. 수업태도 같은…”
“풍기문란행위도 포함 아니에요? 맞잖아요. 이거 벌점 감인데?”
히요리에게서 보수적인 면모가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있다.
나한테 배운 건가? 왠지 흐뭇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헌데 내용이 참… 좋은 의미로 하찮다.
이건 히요리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미유키도 포함이었다.
딱히 우길 게 없어 학생회인 미유키 앞에서 교칙을 끼워 맞추며 들먹이는 히요리, 그리고 키스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부끄러워 ‘그거’라고 에둘러 말하는 미유키…
겉으로는 무시무시해보였으나, 실상은 절로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소심한 다툼이다.
그나저나 히요리가 당돌한 줄은 알았지만, 저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제야 서막이 끝나고 본방이 시작하는 느낌.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건 기회라고 본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