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86)
EP.386 부끄러워하는 주제에 까불기는
툭.
야키토리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히요리의 윗가슴에 소스가 한 방울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그것을 훑어낸 그녀는, 휴지에 손가락을 닦으려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날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소스가 묻어있는 검지를 내밀었다.
“아 해봐요.”
아주 과감한 행동을 하고 있구나. 진짜 빨면 얼굴이 새빨개질 거면서.
마치 치녀인 척하는 처녀를 보는 느낌이다.
이걸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더라? 기억이 잘 안 난다.
“이상한 짓 하지 마.”
“이게 뭐가 이상한 짓이에요? 소스 아까우니까 먹여주려고 하는 건데.”
“가운이나 제대로 여며. 일부러 가슴 부각하지 말고.”
“패션이에요.”
“가운 두른 게 뭐가 패션이야? 안 가려?”
“안 가려.”
“말 안 듣지?”
“안 들어. 아 아파…! 아파요…! 때리지 마세요…!”
콧대를 세우는 히요리에게 성큼 다가가자, 그녀가 되도 않는 연기로 엄살을 피웠다.
순식간에 처량하게 변한 그녀를 황당한 눈으로 내려다본 나는, 살짝 풀어헤쳐져있는 가운을 잘 여며주었다.
“제발 시도 때도 없이 노출하지 좀 마라. 그러다가 저번처럼 이상한 호스트한테 잡힌다?”
“여기에 호스트가 어디 있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내 말 명심해. 알았냐?”
“몰랑.”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꼬치 식기 전에 먹기나 해.”
“선배는 왜 안 먹어요?”
“나는 호텔 식당에서 먹을 거야.”
“꼬치도 먹고 식당에서 밥도 먹고 하면 되잖아요.”
“내 위장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아.”
“뭐래요. 호텔에서 하는 식사량을 줄이면 되지. 그러지 말고 제 거 한 입 먹어요.”
내 입가에 꼬치를 내미는 히요리.
포즈가 쓸데없이 당당한데, 은근히 귀엽다.
그녀의 말괄량이 같은 행동에 실소를 지은 나는 꼬치 윗부분에 있는 닭다리살을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팡 터지는 육즙이 식감을 살려주는데, 상당히 맛이 좋다.
노하우라도 있는 건가? 어쩐지 손님이 많더라니… 나중에 미유키를 데리고 와야겠다.
“맛있죠?”
“어. 맛있네.”
“한 입 더 먹을래요?”
“강요 그만해라.”
“이게 무슨 강요에요! 선배를 생각하는 마음에 주는 건데!”
“알았어. 소리 지르지 마.”
“짜증.”
히요리가 꼬치를 크게 베어 물었다.
조신한 척을 하지 않고 잘 먹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나는 꼬치를 먹으며 투덜거리는 히요리와 함께 다시 해변으로 향했다.
그때,
“아사히나!”
저 뒤에서부터 반가운 기색이 잔뜩 담겨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우리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히요리의 반에 있었던 학생이었나? 얼굴이 낯익은데 맞는 것 같다.
“안녕, 코바야시.”
꼬치를 들지 않은 한손을 흔들어주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마주 손을 흔들고는 내 얼굴을 한 차례 쓰윽 훑은 그가 물었다.
“여기서 뭐해? 애들 기다리는데 같이 안 놀아?”
딱 봐도 나와 노는 게 티가 나는데 실례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히요리와 있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질투심이 섞인 남자의 눈총 말이다.
약간 미유키와 나를 질투하는 테츠야를 보는 느낌이라 역한 기분이 확 일어난다.
“나 오늘 선배랑 놀 거라고 말했잖아. 근데 너 인사 안 해?”
“뭐가?”
“선배한테 인사해야지.”
“아, 선배인 줄 몰랐어. 안녕하세요.”
까딱 목례를 하는 코바야시라 불린 남학생.
불량한 학생은 아닌 듯한데 조금 거슬린다.
은근히 날 무시하려는 것 같은 행동과 말투가 보여.
저놈의 태도와 똑같이 반응해주고 싶지만, 그런 것보다 사근사근 대하는 것이 히요리로 하여금 날 향한 호감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판단을 마친 나는 웃는 낯으로 놈에게 말했다.
“그래, 안녕.”
그러자 히요리가 코바야시라 불린 남학생에게 농담어린 목소리를 냈다.
“선배랑 놀 거라고 말했는데 내 옆에 있으면 당연히 선배지. 코바야시, 너 바보야?”
“그런가?”
“아무튼 난 선배랑 학생회 도와줘야 되니까 너희들끼리 놀아.”
“학생회?”
코바야시의 고개가 갸웃했다.
학생회를 피하고 다니는 히요리가 그들을 도와준다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히요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긴 한데, 핑계거리가 조금 안 맞는다.
속으로 킥킥거린 나는 히요리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코바야시가 아쉬운 표정으로 멀어지자 그녀의 등허리를 툭 하고 쳤다.
“너는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냐?”
“안 걸렸으면 됐죠. 어쨌든 다시 바다로 가요.”
“그 전에 수영복부터 갈아입어.”
“나 수영복 이거밖에 안 갖고 왔는데요?”
“티셔츠랑 반바지는 갖고 왔을 거 아니야.”
“그거 입고 바다에 들어가라구요?”
“어.”
“싫은데요? 수영하라고 만든 옷을 왜 갈아입어야 해요?”
“수영하고 싶었으면 스쿨미즈 같은 전신수영복을 갖고 왔었어야지.”
“몰라. 이대로 갈 거예요. 저 그리고 선배 잔소리 때문에 다리 아파졌으니까 업어줘요.”
히요리의 시선이 내 팔로 향했다.
아까 물속에서 자신의 엉덩이를 받쳤던 일이 생각났나보다.
약간 홍조를 띠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은 내가 말했다.
“이상한 억지 좀 부리지 마. 일단 꼬치부터 다 먹어.”
“그럼 수영복은 안 갈아입어도 돼요?”
“그대로 가도 되는데, 대신 물놀이 끝나자마자 돌아가서 갈아입어라. 괜히 노출한답시고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히요리.
나는 그녀의 허리에 허술하게 묶여있는 가운 끈을 다소 강하게 조여주었다.
이후 왜 그렇게 세게 끈을 묶냐고, 자신을 질식시킬 생각이냐는 히요리의 불평을 한 귀로 흘리면서 그녀와 함께 바다로 돌아갔다.
**
히요리와 논 시간은 얼마 안 됐다.
끽해봐야 두 시간. 그러나 최소 다섯 시간은 전력으로 논 것처럼 진이 쭈욱 빠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육체나 정신이나 멀쩡한데 머리는 피로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히요리는 어쩌면 음마가 아닐까? 그래서 주변에 있기만 해도 기운이 빨렸을 수도 있겠다.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하품을 하는 히요리를 흘끗 바라본 나는, 그녀와 함께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히요리의 방은 나보다 3층 아래에 있었다.
같은 층이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겠으나 호수 같은 건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
나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흐물흐물해진 히요리의 입에서 나른한 하품이 나오는 것을 보며, 내가 말했다.
“가서 푹 쉬어.”
“저 친구들 만나러 나갈 건데용.”
“그러냐? 여유가 넘치네. 수영복은 꼭 갈아입어라.”
“근데 왜 자꾸 갈아입으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야해서?”
“잘 아네.”
“그러니까 더 갈아입기 싫어지는데요.”
우리 히요리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반란을 잘 일으켰을 거다.
반골기질이 아주 충만해서, 그녀를 백성으로 둔 왕이 불안감에 잠을 못 이뤘을 것 같다.
히요리의 머리에 손을 툭 올려놓은 나는, 그녀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갑작스럽게 진중한 표정을 짓는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의 분위기가 살짝 쳐졌다.
“왜용?”
그런 히요리의 자그마한 머리를 다섯 손가락으로 꾸우욱 누른 나는, 손을 앞뒤로 움직였다.
내 팔이 가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히요리의 머리.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피식한 나는, 지나가는 듯한 투로 그녀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말은 더럽게 안 듣네. 귀여워가지고.”
그러자 으어어… 하는 하찮은 소리를 내던 히요리의 도톰한 입술이 안쪽으로 쏘옥 오므려졌다.
굉장한 쑥스러움을 느꼈다는 증거였다.
스킨십엔 나름 내성이 생겼지만, 말로 하는 애정표현은 아직 적응하려면 멀었구나.
그런데도 빠꾸 없이 까부는 꼴이 허접하다고 해야 할지, 보기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머리를 놓아준 내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갈아입어. 알았냐?”
“…..”
“대답 안 할 거야?”
“아니… 하려고 했어요. 갈아입으면 되잖아요.”
“그래. 착하다.”
“갈아입은 거 사진 찍어서 보내면 돼요?”
어떻게든 날 곤란하게 해보고 싶어서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난을 치는 게 웃기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태연하게 히요리의 도발을 넘겼다.
“어차피 저녁에도 만날 거잖아. 그때 확인해보면 되지.”
“…..”
“맞지?”
“아, 네… 그렇죵…”
자연스럽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약속을 잡아버리니 본전도 못 찾고 다시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히요리의 품에 들려있는 파우치가 떨어질락 말락 하는 것을 본 나는, 그것의 위치를 잘 조정해준 뒤 히죽 웃어보였다.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 나중에 보자.”
“알았어요…”
수줍은 대답을 해보이는 히요리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딱밥을 때린 나는, 슬리퍼가 질질 끌리는 소리를 들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후 샤워를 마치고 미유키와 통화를 한 뒤, 일이 막 끝난 그녀와 만나기 위해 로비로 내려갔다.
우웅-!
미유키가 알려준 곳으로 가는 도중에 온 메시지.
그것을 확인해본 나는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은 히요리가 거울 셀카를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SNS에 올릴 용도로 찍는 것 같은, 나름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
딱 달라붙는 티셔츠와 엉밑살이라 일컫는 부위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기가 차기도 하지만 같잖은 도발을 하는 게 느껴져서 입꼬리가 씰룩거리기도 한다.
답장은 보내지 말고, 나중에 직접 만나면 혼쭐을 내던가 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나는 로비 옆 카페에서 부반장, 그리고 빵녀와 함께 케이크를 먹고 있는 미유키를 발견하고 걸음을 빨리했다.
오늘 저녁은 셋이서 만나게 해볼까?
아무리 현재 미유키와 히요리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도, 관계개선을 위해선 서로 떨어뜨려놓는 것보단 마주치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히요리가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하긴 한데… 내가 잘 타이르면 되니까 일단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