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
교감은 미간을 찌푸렸다.
반쯤 체념했던 마틴이 고개를 돌리자, 검사단 사이에서 분홍색 병아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있었다.
“증거조사와 검사측, 변호측의 신문과 진술 과정이 생략되었는데요…. 그, 최후 진술도….”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이상하다 싶어서 제기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할 말은 다 했다.
교감과 주임 선생들, 몇몇 선생들의 안색에 분노가 서렸다.
“자넨 뭐지?”
교감이 재판석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헤, 헤일리 폰 루아 에뜨랑데 교생입니다.”
“교생? 교생이 왜 여기 있지?”
“저, 저… 시험 당일에 하교하던 마틴 생도와 마주쳤어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교감의 위압적인 신문에 헤일리 교생이 몸을 떨었다.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더해졌다.
“다른 선생? 누가? …아니, 아니야. 그건 중요하지 않지.”
분명 4대 공작가와 줄을 댄 교감 라인 외의 선생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었다.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한 교감은 서둘러서 일을 거행하려고 했다.
“필요 없네. 마틴에 대한 정황 증거는 충분하니까. 이미 위에서는 다 판결이 끝났네. 흠! 다시 판결을 내리겠다. 마틴 폰 타르곤 울브하딘은 이 시간부로…!”
“잠깐만요, 교감 선생님.”
이번 발언자는 헤일리 교생의 동행자.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헤일리 교생의 말마따나 아무런 과정 없이 곧바로 판결을 내리시는 겁니까?”
“하…, 오늘따라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군. 자네는 또 뭔가? 교생이야? 자네들이 아카데미의 법도를 개처럼 무시하니 나도 할 말이 없군. 무엇보다 인식 저해 마법을 걸고 이 자리에 온 건 징계를 피할 수 없네. 당장 해제하도록!”
교감의 엄포에 동행자는 말없이 마법을 해제했다.
인식 저해 마법이 풀리면서 로브 아래로 드러난 맨얼굴은, 강직하고 정의로운 기사.
어쩌면 세계에서 제일 강할지도 모를 기사.
임페리움 제국 현 황제의 가장 큰 신임을 받았던 기사단장이었던 자.
핵티아 폰 빌레몬 하르트만이었다.
“…핵티아 선생?”
교감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하필이면 핵티아 선생인가. 저자는… 4대 공작가의 비호를 받는 자신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다.
번거롭게 다른 선생들 눈치 보며 은밀하게 교감 라인의 인원만 모여서 징계위원회를 연 이유가 뭔가. 이 사람, 핵티아를 경계한 것 아니었나.
그래서 선생 중 한 명한테 지시해서 신경을 돌려달라고까지 했거늘. 그 간단한 임무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다니…!
교감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몇 번이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증거는 분명하네.”
분명하지 않다. 심증만이 있을 뿐.
그러나 다수의 선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같은 임무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마틴이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온다면, 퇴학시켜라.
4대 공작가의 가주들로부터 내려온 임무였다.
마틴이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행동들은 그야말로 최악. 4대 공작가의 명령을 모르는 선생들도 당연히 찬성해주리라 생각했건만.
“저는 용납 못 합니다.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 하나 없습니다. 심증뿐입니다.”
거듭된 방해에 교감의 화가 제법 많이 끓어올랐다.
“…생도의 교과서가 발견됐다지 않나!”
“당연히 교과서가 책상 서랍 아래에 있을 수도 있죠.”
“시험 중에 자리에 교과서가 있으면 안 된다는 원칙도 모르나, 선생은?!”
“물론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러한 원칙은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마틴 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 서랍에도 교과서나 참고 서적이 있었을 겁니다. 시험을 친다고 서랍 검사를 하거나 주의를 주거나 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핵티아 선생!”
교감이 이를 악물었다.
“위에서… 다 판결이 났다고… 했지 않나…!”
“저는 모릅니다. 그저 맡겨진 선생으로의 일을 다 할 뿐. 담임이 확실하지 않은 일로부터 생도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핵티아 선생!”
핵티아가 굽히지 않자 교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강렬한 위압감을 뿜어내면서 반대로 핵티아가 교감의 말을 끊었다.
“…임페리움 아카데미의 교감이라 하나… 이 나를 기세로 압박하다니, 겁대가리를 상실했는가.”
마치 붉은 호랑이가 어금니를 드러낸 듯한 환각에 교감은 실신하려던 걸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아니면! 담임으로 감독한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1학년 생도의 부정행위조차 감지하지 못했다고요.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생도의 부정행위를 방조했다는 겁니까? 제 명예를 그렇게 더럽히시려는 겁니까?”
황제의 신임을 받는 핵티아를 전면으로 부정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교감의 입이 언제 권위적이었냐는 듯 뻣뻣하게 굳었다.
“…아니, 그건 아닐세.”
“굳이 서랍을 검사하지 않는 건 애초에 미끼잖습니까. 일찌감치 부적절한 인성의 생도들을 걸러내기 위한 미끼요. 우리 선생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허가되는 일인 줄 압니다. 교과서가 책상 속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정황 증거가 성립되지는 않습니다. 왜 그게 부정행위의 증거가 되는지, 그거 하나만으로 모든 걸 일단락시키려는지, 교감 선생님과 징계위원단의 의중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끝났다. 하필이면 핵티아 선생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훼방을 놓을 줄이야. 하지만 괜찮다. 실패했어도, 저 남자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4대 공작가에서도 크게 문책하지는 않을 테니까.
“위에서 판결이 내려왔다, 말고는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없네.”
“그렇다면….”
핵티아가 뭐라 더 말하려는 찰나, 교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선점했다.
“흠! 징계위원회를 해산하겠네! 마틴 생도를 퇴학시키기 위한 재판은, 흠, 나중으로 미루지!”
그러고는 입을 싹 닫고는 아무 말 없이 큰 보폭으로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크흠!”
“흠!”
3명의 주임 선생도 핵티아 선생을 흘기면서 밖으로 나갔다.
징계위원회가 갑자기 흐지부지되자 선생들도 눈치를 보면서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핵티아 선생도 말없이 마틴을 주시하다가 빠져나갔고.
재판 폐회에 불씨를 놓은 헤일리는 미련이 남은 듯, 말없이 피고인석에 앉은 마틴을 보다가 물길에 휩쓸리듯 빠져나갔다.
엉망진창으로 끝나버린 징계위원회의 무대 위에 앉아서, 나는 말없이 독백에 잠겼다.
‘그렇구나.’
소설 속 세계로 들어온 나는 나름 주인공처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현실에서도 저질 같은 재능으로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남들을 질투하는 것밖에 못 하는 엑스트라였던 나는, 이곳에서도 주인공은커녕 조연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지쳤다.’
운이 따랐는지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퇴학은 면했다.
조금 아쉽다. 징계위원회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었는데. 차라리 종말에게 붙어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선두에 선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생각이.
그 순간 거짓말처럼 라일락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종말에 빌붙어서 목숨을 연명한들, 그녀까지 지켜줄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위의 방법은 무기한 보류다.
하지만 만약의 만약에, 정말로 이 세계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나의 모든 걸 앗아가려고 한다면, 나는 종말의 편에 서리라.
‘애초부터 잘못됐지.’
이곳은 내가 쓴 소설 속이지만, 어느 하나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Recola를 질투하는 내가, Recola의 세계에 들어와서 그가 만든 등장인물들을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런 일까지 당해야 깨닫는 거냐, 나는.’
피고인석에 앉은 채 홀로 남은 나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나는, 마음의 문을 닫기로 했다.
***
– 당신은 임페리움 아카데미 고등부 1학년 중간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였습니다.
– 당신은 기존에 없던 대규모 징계위원회의 주역이 되었음에도 퇴학을 면했습니다.
– 2명의 인물이 당신에게 동정을 가지게 됩니다.
– 대다수의 아카데미 구성원이 당신에게 보내는 멸시와 경계가 더욱 강화됩니다.
– 아카데미의 여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으므로 1,25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하….”
조소 섞인 한숨이 비틀린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서 눈조차 가린 채 나는 시스템의 비아냥을 들었다.
– 척척박사(Lv 1)가 문밖에 나는 소리는 라일락과 세바스찬의 것이라고 감지했습니다.
혼탁한 악의에 상처받은 주인의 몰골을 본 라일락과 세바스찬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마음 착한 메이드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를 들고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쟤들이 있었네.’
라일락. 나 같은 변변찮은 놈이라도 사랑해주는 엑스트라.
마틴처럼 내가 창작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Recola의 창작물도 아닌 캐릭터.
애초부터 주인공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어.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글러 먹었다고. Recola가 만든 세계관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그러니까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자. 내가 창작한 마틴과 세바스찬, Recola가 설정한 적 없는 라일락.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겠어.’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도 이 세계에서는 사양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Recola가 만든 세계에서만큼은 사양이다. 죽더라도 지구의 개똥밭에서 죽지 여기서만큼은 안 된다.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왜곡된 감정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내가 자아내는 나만의 악의 속에서 나는 안식을 느낀다.
그래, 중2병이라 욕해도 좋다. 열등감의 지옥 속에서 발버둥 쳐보지 못한 녀석의 훈수 따위, 개가 짖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난 바보였어.’
마틴이 주인공 일행과 친해진다? 내가 Recola의 창작물을 사랑한다? 그런 주인공 같은 발상이, 행동이 내게 어울릴 리가 없었다.
루저에게는 루저의, 패배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무기가 필요해.’
휘몰아치는 타인의 악의에서 살아남을 무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바닥의 카펫을 치우고 바닥을 뜯었다. 숨겨두었던 상자의 봉인을 뜯고 열어젖혔다.
울브하딘 가문을 뛰쳐나올 때 챙겨두었던 마틴의 무기, 길고 매끈한 엽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원작에 나왔던 무수한 스킬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킬을 획득하겠어.”
– 포인트를 소모하여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무브먼트.”
– 400포인트를 소모하여서 무브먼트 (Lv 1)을 획득했습니다. 850포인트가 남았습니다.
“총기 이해.”
– 5포인트를 소모하여서 총기 이해 Lv 1을 획득했습니다. 845포인트가 남았습니다.
– 마틴 폰 타르곤 울브하딘은 총기술에 관련된 모든 스킬에 더욱 큰 상향 보정을 받습니다.
“근력, 민첩, 내구, 마나.”
– 50포인트를 소모하여서 근력 Lv 1을 획득했습니다.
– 50포인트를 소모하여서 민첩 Lv 1을 획득했습니다.
– 50포인트를 소모하여서 내구 Lv 1을 획득했습니다.
– 50포인트를 소모하여서 마나 Lv 1을 획득했습니다.
시야가 격변하고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낡고 헤진 근육을 뜯어버리고 최신소재의 인공 근육으로 갈아 끼운 듯 근력이 솟구쳤다.
“마지막으로… 특전 스킬 야생 감각을 체험해보겠어.”
시야가 반전되며 연습장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