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13
Chapter 26. 대항전(1)
91,999명.
여의도 불꽃축제 이후로 처음 보는 규모의 인파가 죄다 목을 쭉 빼고선 하늘을 쳐다본다.
[신입사원 연수 첫 번째 프로젝트.] [프로젝트 ‘체력장’을 시작합니다.]장기자랑에 이은 체력장.
애들 장난 같은 미션이지만…….
꿀꺽!
여기 모인 이들 중 장난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웁!”
파쇄기 속 종이처럼 갈려 버린 시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관리국 까마귀’가 친우의 실력을 보여 줄 때가 왔다며 주먹을 불끈 쥡니다!】
【‘대외협력국 신입사원’이 올해 체력장은 더 빡셀 거 같다고 예언합니다.】
【‘조사국 브레인’이 다른 놈들도 만만치 않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여기서 웃고 떠드는 건 ‘눈’ 너머에서 감상 중인 저들뿐.
“체력장…….”
“몸 쓰는 거겠지?”
“……단체전이려나?”
웃고 떠들던 아이돌들도.
시시덕거리던 사람들도.
티격태격 대던 이예지나 욕쟁이도.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체력장은 총 4라운드.] [각 라운드가 종료될 때마다 승리한 팀은 성공 보상과 함께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합니다.] [대신 패배한 팀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없으며, 패배 팀들끼리 순위결정전을 진행하오니 주의하세요!]승리하면 다음 라운드 진출.
패배하면 순위결정전이라.
잘 짜인 유희는 9만2천 명의 생존자들을 불안으로 내몰았다.
매 라운드마다 50%의 확률로 닥쳐올 불행.
“뭐? 승리한 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고?”
“그럼 1라운드에서 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순위결정전을 하겠지만…… 거기서 제일 잘해 봐야 24등이겠군요.”
딱!
지은 씨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만약에 오늘 최하위권에 들어가면…….”
섬뜩!
지은 씨의 말에 모두가 움찔 놀랐다.
뒷말을 잘라먹었으나 필요는 없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테니까.
“숙소! 다 은빛칼날이었습니다!”
은빛칼날에 가게 될 거다.
모두가 목도 한 미지의 지옥에.
“……무조건 이겨야겠네요.”
“맞습니다, 누님!”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들려온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뭘까.
지금껏 누군가를 앞지르고, 밀어내고, 죽이기까지 하며 올라온 9만2천 명.
이들을 한데 모아서 한다는 종목은.
‘체력장이니 머리 쓰는 건 아닐 거고. 체력이나 근력을 테스트하는 종류의…….’
[‘줄다리기’입니다.]“……뭐?”
너무도 평범한 종목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그게 고까웠던지 너도나도 한마디씩 훈수를 던져 온다.
【‘대외협력국 신입사원’이 지금 줄다리기 무시하냐고 묻습니다.】
【‘조사국 브레인’이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고 조언합니다.】
“……나도 알아.”
하긴, 장기자랑에서도 뜬금없이 바둑돌에 맞아 죽을 뻔했으니.
줄다리기도 목숨 걸고 해야겠지.
갑자기 줄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놈이 나온다 해도 그리 놀라지 않을 것도 같고.
[지금부터 대진 추첨이 시작됩니다.] [대진표를 확인하세요!]팟!
그리 멀지 않은 하늘에 견출지 같은 네모 칸으로 가득한 창이 떠올랐다.
두 개씩 묶여 있는 스물세 쌍의 빈칸.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커다란 대포.
파지지지직!
대포 끝에 달린 심지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끝까지 타고 들어간 불씨 끝에.
퍼엉!
튀어 나간 폭탄…… 이 아니라, 공이 스물세 쌍의 견출지에 가 부딪혔다.
그러자 그 속에서 파편처럼 튀어나온 건 이름.
푸홧-!
남은 구역의 이름들이었다.
[대진 추첨 완료!]“ROK…… 저기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붙은 상대는…….
“JP?”
일본이었다.
“에엣! 한국?!”
“신입사원 대표가 있는 팀이잖아!”
“어이, 주장! 괜찮겠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번역 투의 말투.
저들 또한 비장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아. 그나저나…….
‘여기서까지 한일전이야?’
* * *
[구역별 안전 구역이 생성되었습니다.]파앗-!
지도상 멀지 않은 곳에 초록색 안전 구역이 나타났다.
멀리서 보면 면이 아니라 선에 가까울 정도로 기다란 직사각형.
[제한 시간은 10분.] [전원 안전 구역으로 이동하세요!]“뛰어요!”
타닥-!
비장한 얼굴로 달리기 시작한 건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영역으로 내달리는 9만2천 명의 질주.
짓밟히다 못해 움푹 파인 풀밭에서 모래 먼지가 몽글몽글 피었다.
“주장! 일단 내 생각엔…….”
일본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우릴 의식한 듯 소리를 낮춘 탓에 뒤 내용은 못 들었지만.
“저 사람이 대표인가 봐요.”
“예. 그런가 봅니다.”
주장이라 불린 사내는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체격.
키는 170cm가 겨우 넘고, 근골 자체가 크지 않아 전형적인 무인(武人)의 상은 아니었다.
다만.
“아빠…… 저 아저씨 무셔워…….”
“괜찮아, 율아. 쳐다보지 마.”
율이가 얼굴만 보고 울먹거릴 정도로 무서운 외모였다.
짧게 자른 머리.
마주치기만 해도 목을 조를 것처럼 형형한 눈빛.
거기다 뺨에는 작은 흉터까지 있어서 위압감이 더했다.
작은 체구를 눈빛으로 뒤덮고도 남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주장, 주장하며 말을 건넨 사내는 척 봐도 운동부였다.
일본인답지 않게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흰색 도복까지.
‘유도 선수인가.’
유도건 가라테건, 운동부는 저보다 약한 이에게 쉬이 머리를 조아리는 족속들이 아니다.
그건 유한 축에 속한다 자부하는 나조차도 마찬가지였고.
‘뭔가 있다는 얘기겠지.’
저들의 충심을 얻을 만큼 압도적인 무언가가.
“이은호, 저 새끼부터…….”
“아니. 일단 경기…….”
하아.
그나저나 견제를 아주 대놓고 하네.
“은호 씨, 저 사람…… 위험해 보여요.”
“네. 무섭게도 생겼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분위기가 달라요.”
“예?”
“다가가면 베일 것 같은…… 잘 벼려진 칼 같다고 해야 하나?”
지은 씨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지은 씨의 감이 말하는 거라면, 허투루 들을 수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어떤 능력일까.’
1억 명이 넘는 인구 중 1등을 차지했을 사내.
특별한 능력이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을 각오로 달려들 겁니다.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네……!”
“재혁이가 웬만하면 앞쪽에 서 줘.”
“예, 형님!”
타닥!
그렇게 비장함을 안고 도착한 안전 구역은 운동장이었다.
잔디 깔린 경기장 말고, 학교 운동장 같은 흙밭.
그리고 바닥에 중앙선처럼 놓여 있는 건.
“와 씨, 줄 뭐야?”
“왜 이렇게 길어?”
어마어마하게 긴 로프였다.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천명이 반쪽씩 잡아야 하니 길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를 감안해도 너무 길다.
중앙에 서서 아무리 목을 빼 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이은호 씨! 이 노란색 선은 뭘까요?”
“중앙선, 그러니까 기준점인 것 같습니다.”
“아, 그래서 로프 매듭도 노란색으로 칠해 놓은 거예요? 여기가 가운데라고 표시하려고?”
“그런가 보네요.”
바닥을 살피던 이예지가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응? 저-기 뒤에 선 하나 더 있는데요?”
이예지의 말에 목을 쭉 빼자 한참 뒤에 그려진 붉은 선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에는 노란 선, 멀리 떨어진 뒤쪽에는 붉은 선이라.
[ROK 대 JP, JP 대 ROK!] [제한 시간은 1분, 승리 조건은 두 가지!] [첫째, 로프 중앙의 매듭을 각 팀의 ‘승부 선’까지 끌고 가거나.] [둘째,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을 때 매듭을 영역 내에 보유한 팀이 승리합니다.] [단, 공정한 경기를 위해 직접적인 공격으로 상대 진영이 사망할 경우, 심각한 페널티를 얻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아…… 매듭을 자기 영역 깊숙이 끌고 가면 바로 이기는 거고, 아니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맞습니다. 일단…….”
줄다리기.
학창 시절 운동회에서나 하던 기억 때문에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줄다리기 또한 하나의 스포츠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가야 합니다.”
“네? 줄다리기에도 전략이 있어요?”
“있죠. 필승법까진 아니지만.”
양쪽 인원이 같다면, 체격 좋고 힘이 센 사람들을 맨 앞과 맨 뒤에 적절히 배치하는 게 포인트다.
하지만, 이번 승부는 2천 명 대 2천 명.
맨 뒤라고 하면 2천 번째 순서가 된다는 건데, 이 정도 규모에선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보단 차라리.
“체격 좋고 힘이 센 사람들을 맨 앞으로 몰아야 합니다.”
그럼, 내가 아는 한 가장 체격이 좋은 이들부터.
“거기 덩치랑 망치, 앞으로 가 주시죠.”
“더, 덩치?”
“망치는 또 뭐야?!”
명승태 편에서 싸웠던 덩치들부터 빼냈다.
세뇌 때문인 걸 알았어도 나와는 어색한 사이였다.
6대1로 싸웠음에도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우린 아직 몸이…….”
“솔아가 치료 다 해 줬죠? 멀쩡한 거 아니까 빨리 나가세요.”
“…….”
지방 덩어리든 근육 덩어리든 귀하다고. 지금은.
“창 잘린 분도 체력이 25는 넘는 거 같던데. 맞죠?”
“창 잘린…… 뭐?”
“맞습니까, 아닙니까?”
“……넘어. 28이야.”
“나가시고요.”
“……예.”
그럼 일단 여덟.
재혁이까지 포함하면 아홉은 정해졌고.
“아저씨! 체력 몇이라고 하셨죠?”
“어…… 나 지금 25여!”
꽤 높다.
그렇다면.
“앞으로요.”
“알겠네!”
씩씩하게 대답하는 경비 아저씨까지 앞으로 보내는 사이, 먼저 달려오는 박공찬과 그 일행들.
“우리도 가지.”
“그래 주면 고맙고.”
녀석들에 이어 장한일이 튀어나왔다.
제 후배들을 잔뜩 이끌고.
“이놈들 힘 엄청 쎄. 데려가.”
“그래.”
이놈이 먼저 손을 내밀 줄은 몰랐는데.
일단은 팀 게임이라는 건가.
‘장한일, 변했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태릉 무리에게 일렀다.
“축구팀 뒤쪽에 서 주면 됩니다.”
“예!”
“알겠어요!”
그 모습에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장한일.
“나도…… 거의 다 됐어.”
아직 놈의 다리는 절뚝이는 채였다.
완전히 나으려면 반드시 미션 보상이 필요할 터.
시선을 떨구고는 주먹을 꽉 쥔 모습에서 간절함과 분함을 동시에 느꼈다.
2천 대 2천의 대결.
한 명, 한 명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80% 정도 됐나?”
“어, 어떻게 알았지?”
“다 나으면 두 배로 뛰어라.”
“뭐?”
“그러면 돼.”
한마디 던졌다.
지금 그리 괴로워할 필요 없다고.
그러자 놈이 뭐라 할 말이 있는지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뗐다.
“너는…… 어떻게 항상 아무렇지 않냐?”
“뭐?”
[ROK-JP 구역 생존자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뒤이어 흘러나온 안내 방송에 막히고 말았지만.
“내가 그렇게 거지같이…….”
“미안한데 나중에.”
손을 뻗어 막은 뒤, 곧바로 적진을 훑었다.
[30초 뒤 ‘줄다리기’를 시작합니다.] [줄을 잡아 주세요!]경기 시작까지 30초 전.
우린 전략적으로 모든 대상자들을 체격 순으로 거의 배치했는데.
“어……?”
“저긴 왜 저래?”
그에 반해 일본팀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앞쪽은 주장이라 불린 남자 외에는 텅 비다시피 했고.
그 뒤로도 듬성듬성 서 있는 게 이상하다.
“뒤로 누울 자리를 만든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간격이 너무 넓은데?”
이해할 수 없는 전략에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놈이 왼손가락 두 개와 오른손가락 두 개를 가슴팍으로 들어 겹치더니 눈을 감았다.
“뭐, 뭐 하는 걸까요, 형님?!”
“불안한데…….”
그리고.
팟!
눈을 뜨고는 읊었다.
“분신술(分身術).”
‘!!’
가만히 있는 놈의 몸이 좌우로 흔들린다.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한 카메라처럼 파르르 떨리나 싶더니.
파밧!
놈이 둘이 되고.
파바밧!
셋이 되고. 넷이 되고. 다섯이 되더니.
파바바바바바밧!
도장을 찍어 내듯 증식했다.
기다란 줄을 따라서.
“저, 저건 대체…….”
“X발……?”
분신은 어림잡아도 오백 명.
잘 벼려진 도축 칼 같은 사내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눈빛을 오백 배로 쏟아 냈다.
그에 완전히 제압당해 버린 사람들이 너도나도 비명 같은 외침을 던졌고.
“저거 설마…… 분신들이 힘까지 똑같은 걸까요?!”
“이, 이런 게 어디 있어! 인원수가 너무 다르잖아!”
“몸무게로 버티기만 해도 우리가 훨씬 불리해!”
2천 대 2천5백.
산술적으로 본다면 불리하기 짝이 없지만.
“율아.”
우리도 있다고.
꼬마 닌자가.
“삼촌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도와줄래?”